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285)
원자력 발전
한국은 원자력 발전의 비중이 높았다. 전체 전력 생산량의 30%를 원자력이 차지했다. 그 이유는 자원이 적고 국토가 좁은 데 비해서 많은 사람이 살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비중도 매우 높아서 전력 요구량을 맞추려면 원자력은 필수였다.
다른 에너지원(화력, 신재생 에너지)으로 대체한다면 무역 수지 적자가 심해졌다. 많은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한국에 원자력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만주나 연해주, 사할린 정도만 있었어도……. 아니, 남북 분단만 안 되었어도…….’
그러한 가정은 의미가 없었다. 1950년에 시작한 이상 그것을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분단은 대한민국에 많은 불이익을 주었다. 그것을 극복한 한민족이 대단한 것이다.
대한민국 원자력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1956년 정부 조직으로 원자력과가 신설되고 한미 원자력 협정을 체결하였다.
1958년에 원자력법과 원자력원, 원자력 연구소. 한양대에 최초로 원자력 공학과가 신설되었다.
959년에는 서울대에 원자핵 공학과가 설치되고 최초의 연구로인 트리가 마크―Ⅱ를 미국으로부터 도입되었다.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던 대한민국의 핵 개발이 난관에 빠졌다. 미국이 핵 개발 지원을 중단한 것이다.
‘쿠바 사태의 충격이 미국에 컸어.’
쿠바 사태로 전 세계가 핵전쟁 위협 아래 놓였다. 미국은 자신들도 언제든지 핵무기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 일은 미국인에게 엄청난 공포를 주었다. 뉴스와 신문들은 당장 세계가 멸망할 것처럼 이야기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과 같은……. 미 전역에 수많은 핵 방공호가 만들어졌다.
‘이 시절 미국인의 핵에 대한 공포는 엄청났지.’
이러한 공포는 양립할 수 없는 두 진영에 합의를 끌어냈다. 결국 1969년 핵확산 금지 조약(NPT)이 체결되면서 핵 개발에 제동이 걸렸다.
핵무기를 개발 및 보유할 수 있는 나라는 기존에 이미 핵무기를 개발, 보유하고 있던 몇 개 강대국으로 제한되었다.
‘올해가 지나면 원자력에 대한 자체 연구 개발이 더욱 어려워져.’
원자력 기술 보유를 위해 서두르기로 했다.
* * *
이학수는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의 핵물리학 연구소에 있었다. 눈앞의 과학자가 한 돌발 발언에 당황하고 있었다.
“미래 그룹에서 충분히 연구비를 지원한다면 원자 폭탄이 아니라, 수소 폭탄을 만드는 것도 돕겠소.”
여기에 오기 전 이강철 부회장과 한 대화가 떠올랐다.
―원자력 발전소 개발을 위해 누구를 접촉해야 할지 고민이군.―
―트리가 마크―Ⅱ를 개발한 이들 중에 선택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트리가 마크―Ⅱ는 미국이 한국에 제공한 연구용 원자로였다. 그것은 한국 원자력 기술 발전의 토대를 제공했다.
연구로의 존재는 그러한 시간과 노력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 트리가 마크―Ⅱ는 한국의 원자력 기술의 빠른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트리가 마크―Ⅱ는 미국의 유명한 핵물리학자에 의해 설계되고 완성되었다. 두 명의 천재에 의해서…….
―둘 중 누구를 선택하느냐가 문제야. 두 사람 모두 너무 극단적이니…….―
트리가 마크―Ⅱ의 개발에 참여한 사람 중 한 명은 프리먼 다이슨이었다. 다른 사람은 에드워드 텔러였다.
프리먼 다이슨은 트리가 마크―Ⅱ를 학부에 다니는 대학생이 운영해도 안전할 정도의 원자로를 목표로 개발했다. 그는 핵 개발의 위험성을 알고 안전한 이용을 위해 노력한 것이다. 그는 무분별한 핵확산에 부정적이었다.
에드워드 텔러는 그와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에드워드 텔러는 수소 폭탄의 아버지이자 적극적인 핵 옹호자였다. 그는 심지어 다이너마이트를 핵무기로 대체하자고 주장할 정도였다. 훗날 미친 과학자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한 사람은 너무 소극적이라 협조받기 힘들고 다른 사람은 너무 위험천만해.―
―부회장님, 어느 쪽이든 문제라면 두 사람 모두 접촉하면 어떻겠습니까? ―
―하하, 학수의 말이 맞네. 우문현답이군.―
* * *
이강철 부회장에게 자신 있게 말하고 왔는데 에드워드 텔러는 예상보다 강적이었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수소 폭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희는 원자력 발전을 통해 전력 생산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을 하면 핵폭탄을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소. 하는 김에 그것도 만드는 것이 어떻겠소?”
“핵무기 제조는 미국 정부에서 반대하지 않겠습니까?”
“무기가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산업용이오. 원하는 곳만 국소적으로 파괴하는 폭탄이오.”
“그러니까…… 핵무기로 그렇게 만든다는 말이시죠? 그럼 무기가 아닙니까?”
“다이너마이트가 무기요, 아님, 토목 공사용 도구요?”
“쓰이기 나름이 아니겠습니까?”
정말 쓰이기 나름이었다.
“내 말이 그 말이오. 원자력 발파 도구는 다이너마이트보다 훨씬 강력한 놈이 될 것이오.”
“그렇습니다만…… 방사능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모든 효과적인 도구에 부작용은 필수적이오. 다이너마이트를 생각하시오. 그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그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다이너마이트가 광산이나 토목 공사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노벨이 만든 화약이 전쟁에 사용되어 많은 사람이 죽은 것도 사실이었다. 원자력과 방사능은 단순히 부작용이라 하기에 너무 위험했다.
“교수님의 말씀은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제어 못 하는 무기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교수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미래 그룹이 나에게 충분한 연구비를 지원하라는 말이오. 그럼 내가 그것을 개발해 내겠소.”
‘연구비가 부족한 모양이네.’
에드워드 텔러는 미국 정부로부터 많은 연구비를 타내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수소 폭탄은 너무 파괴력이 강했다. 거기에 핵전쟁이 날뻔한 쿠바 사태도 겪었다.
미국 유권자들은 핵전쟁의 공포에 잠들지 못했다. 그것이 정책에도 반영되었다. 핵 개발을 제한하고 핵무기 확산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만들어 진 것이 1969년 핵확산 금지 조약(NPT)이었다. 그 조약에 따라 미 정부는 에드워드 텔러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에드워드 텔러가 들고나온 것이 ‘플라우셰어 프로젝트(project Plowshare)’였다. 그것은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을 통과하는 200㎞ 거리의 수로를 파기 위해 520개의 핵폭탄을 터뜨리자는 미친 발상이었다. 추가로 알래스카에 수소 폭탄을 터트려 항구를 만들자는 계획도 추진했다.
‘그 제안들은 오히려 큰 반발을 일으켰지.’
그것이 그가 매드 사이언티스트(미치광이 과학자)로 불린 이유였다.
“알겠습니다. 미래 그룹에서 연구비를 지원하겠습니다.”
“하하. 시원시원해서 좋군. 잘해 봅시다.”
그의 생각이 말도 안 되는 것 같아도 타당한 부분이 있었다.
―학수, 원자 폭탄과 핵발전소는 큰 차이가 없어. 핵분열이 빠르게 일어나면 그게 핵폭탄이 돼. 반대로 천천히 일어나면 원자력 발전소야. 그것은 폭발과 연소 반응도 마찬가지고.―
원자 폭탄과 핵발전소는 폭발과 연소의 관계와 비슷했다. 차이는 원자력 에너지를 사용하느냐, 화학 에너지를 사용하느냐였다. 폭발을 조절하는 기술은 당연히 연소와도 연관이 깊었다.
―핵폭탄의 파괴력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면…… 발전소의 핵분열 에너지의 통제에도 도움이 되겠지.―
이강철 부회장님은 자신이 보지 못하는 부분도 보는 분이다. 그분의 말을 들어 손해 본 적 없었다. 에드워드 텔러가 개발하는 기술이 미래 그룹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다.
* * *
에드워드 텔러를 만난 후 뉴저지로 와서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의 프리먼 다이슨을 만났다.
“나는 이제 핵 개발에 관심이 없소.”
그는 트리가 마크―Ⅱ 개발의 팀장으로서 활약했었다. 그리고 1957년부터 1961년까지는 핵 추진기를 이용한 우주 비행 계획인 오리온 계획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오리온 계획은 핵실험 금지 조약에 의해 중도에 파기됐다. 그는 그 이후부터는 핵보다는 우주 개발에 관심이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주 개발에 핵에너지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지금. 그것을 연구할 방법이 없지 않소.”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PTBT)이 맺어진 상태였다. 지하를 제외한 대기권 내, 우주 공간 및 수중에서 핵무기 실험을 금지하는 조약이었다. 우주 공간에서 핵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핵폭발을 추진력으로 하는 오리온 계획이 폐기된 이유다.
‘이 사람도 상당히 미친 사람이야.’
그가 구상한 우주선은 지름 20km, 4천만 톤의 질량에 그중 3/4는 핵폭탄의 무게를 차지하는 것으로 광속의 0.33퍼센트의 속도로 1330년 걸려서 알파 센타우리까지 날아갈 수 있는 물건이었다.
“우주선을 추진하는데, 굳이 폭발을 이용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연소로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핵발전을 이용하라는 말 같은데 그것은 쉽지 않소. 물리적인 무게와 안정성 면에서 어려움이 있소.”
“기술이 발달하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미래에는 우주선에 원자로를 사용하지 않겠어?―
SF 소설에는 그런 내용이 많이 나왔다. SF 소설을 좋아하는 이강철 부회장이 좋아할 법한 이야기였다.
“잠수함에는 사용하지 않습니까?”
“대부분 3천 톤급 이상이지. 우주에 3천 톤을 올려보내려 하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지 아시오? 그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이오.”
핵발전으로 얻는 에너지는 핵폭발에 비해서 미미했다. 3천 톤을 우주로 보내기 위해 수만 톤의 발전기를 부착해야 할 수 있었다. 정말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오리온 계획이나 다이슨 스피어를 발표한 분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시군요.”
“…….”
그가 제안한 다이슨 스피어는 태양을 둘러싼 거대한 인공 구조물이었다. 항성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뛰어난 외계 문명은 이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경수로는 너무 덩치가 크고 흑연로는 방사선 누출의 위험이 크오.”
그의 말이 맞았다. 소형화할 수 있는 원자로인 흑연로는 사고의 위험이 컸다.
공간과 안전성은 비례하는 경향이 있었다. 원자력 엔진이나 발전소를 작게 만들려고 하면 사고의 위험이 커졌다. 아니면 출력이 낮아지거나…….
체르노빌의 흑연 감속로와 후쿠시마 원전의 방식 모두 그런 문제가 있었다. 단순하고 덩치가 큰 한국식 경수로가 가장 안전한 편이었다.
“다이슨 스피어의 아이디어는 불확실한 인공 태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태양을 이용하는 방법이지요. 그것을 발전소에 적용해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나보고 무겁고 비효율적인 경수로를 만들라는 것이오?”
그는 흑연 감속로의 유용성을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가 개발한 트리가 마크―Ⅱ도 소형 흑연 감속로였다.
그가 추구한, 학부에 다니는 대학생이 운영해도 안전할 정도의 원자로는 불가능한 목표였다. 그 일로 원자력에 한계를 느끼고 우주 개발로 전향했다.
“안전한 핵에너지의 이용이 연구원님의 바람이지 않습니까? 굳이 그것을 먼 태양에서 찾을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파랑새는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파랑새는 가까운 곳에 있다……. 경수로가 그 파랑새란 말이오?”
그가 흑연감속로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한 경수로가 먼 미래에도 사용되었다.
“음, 고민해 보겠소.”
비록 이학수는 그것을 모르지만, 이강철 부회장의 말이 떠올랐다.
―심플 이즈 베스트야.―
* * *
“조만간에 좋은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그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 주었다. 선택은 그의 몫이었다.
이학수는 그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로 생각했다. 미래 그룹이 그에게 상당히 많은 연구비를 제시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연구비를 싫어하는 연구자는 없어.’
아무리 하고 싶은 연구도 돈이 없으면 못 한다. 다이슨 스피어가 이론 물리학으로 다시 돌아간 것도 그 이유였다.
핵 추진기를 이용한 우주 비행 계획이 취소된 후 국가에서 대규모 지원금이 끊어졌다.
‘1969년 핵 확산 금지 조약(NPT)이 미국과 소련 사이에 체결된 것은 단순히 인류 공멸의 위험 때문만은 아니야.’
거기에는 냉전으로 인한 군 비경쟁의 한계에 다다른 미국과 소련의 사정이 있었다. 핵 개발이나 우주 개발은 천문학적인 돈이 들었다. 소련은 예전부터 한계에 봉착했다. 미국은 베트남전에 과도한 전비를 투자하여 경제가 휘청이고 있었다. 손뼉도 부딪혀야 소리가 났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핵 확산 금지 조약(NPT)의 체결에는 그러한 경제적인 문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모든 사건은 한 가지 면만 바라보면 안 되었다.
베트남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세계사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한국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이나 잊힌 전쟁으로 불렸다. 중동 전쟁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들이 남긴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