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286)
협상을 위한 사전 준비.
북해의 차가운 바다에 커다란 선박 한 척이 떠 있었다. 그것은 상선이나 어선과는 모양이 다른 배였다. 그 배는 일명 드릴 쉽이라 불리는 시추선이었다.
배 중앙에 데릭(Derrick)이라는 타워가 높이 솟아 있는 특이한 모습의 선박이었다. 그 선박의 이름은 승리호였다.
승리호라는 이름은 북해 유전 개발에 성공하겠다는 이강철 부회장의 다짐이 담겨 있었다.
“이 박사님, 이 광구에 석유가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됩니까?”
“지질 조사상으로는 80% 이상입니다.”
“가능하면 석유층이 지표에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좋겠군요.”
“해저가 융기한 형태를 보아 그리 깊지 않은 곳에 있을 것 같습니다.”
선장인 서일환은 지금 고민에 잠겼다. 이미 앞선 한 번의 시추에 실패했다.
드릴 쉽은 깊은 바다에서 깊은 곳까지 파 내려가는 만큼 한번 실패했을 때 손해가 컸다. 무한정 시추할 수 없었다. 몇 번 안에 유전을 찾아야 했다. 그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상업적으로 가치가 있어야 할 것인데…….”
“저번에는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첫 번째 시추에서 석유와 가스를 발견했다. 파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지역으로 옮기려고 할 때 파이프로 천연가스가 올라왔다.
그곳은 천연가스는 풍부한데 올라오는 석유의 양은 많지 않았다. 석유가 매장된 층은 그곳보다 더 깊은 곳에 있었다. 거기에 산출되는 가스의 압력이 그리 높지 않았다. 유정에서 가스와 석유가 높게 치솟아 오를수록 좋았다.
천연가스전으로 나쁘지는 않지만…… 유전으로는 상업성이 높지 않았다. 천연가스로는 수지가 맞지 않았다. 그곳은 석유와 천연가스의 가격이 상승할 때까지 봉인해 두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이곳을 시추하는 것으로 하죠.”
실패가 두렵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 없었다. 선원들에게 시추 작업을 지시했다.
“라이저(Riser)를 조립하여 해저로 내려!”
라이저 파이프가 깊은 바닷속으로 내려갔다. 라이저 파이프는 이론상으로 수천 미터 수심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 다행히 북해는 그렇게 깊지 않았다. 수심이 깊은 편인 노르웨이 부근도 7백 m를 넘지 않았다. 승리호가 시추하는 지역은 보통 5백 m 내외였다. 일반적인 대륙붕의 수심인 2백 m보다 다소 깊은 곳이었다.
“선장님! Top Drive와 드릴링 파이프가 해저에 도착했습니다.”
“그럼 해저에 구멍을 내!”
드. 드. 드. 드―
Top Drive가 해저를 파는 진동으로 배 전체가 흔들리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선장님, 해저 면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이제 그곳에 콘크리트를 부어서 시추 기반을 만들어!”
해저의 표면은 연약했다. 쉽게 붕괴할 수 있었다. 흙더미가 파놓은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가면 작업하기 곤란해졌다. 먼저 시추 기반을 만들어 놓은 후 그곳을 기초로 지하로 파 내려가게 된다.
“라이저에 BOP(Blow out Preventer)를 넣어 다시 해저로 내려보내!”
이제는 시추 기반을 통해 본격적으로 해저를 파내려 나갈 차례였다. Top Drive가 회전하면서 드릴 파이프의 드릴 비트(Drill Bit)가 암석을 파기 시작했다.
드. 드. 드. 드―
다시 선체가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너무 단단한 지층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군. 날이 부러지면 손해가 커.’
암석을 파 내려가는 드릴의 날은 비싼 물건이었다. ‘다결정 다이아몬드 콤팩트(Polycrystalline Diamond Compac)’, 즉 공업용 다이아몬드로 만들었다. 다이아몬드로 만든 날도 일정 이상 마모되면 교체해 주어야 했다.
서일환은 석유가 너무 깊지 않은 곳에 묻혀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시추 작업이 한동안 이어졌다.
‘더 이상 깊이 파 내려가는 것은 의미가 없어.’
상업성이 애매해질 타이밍에 드. 드. 드. 드― 거리는 소리가 순간 멈추었다.
“어어. 이건!”
동시에 선체에 다른 진동이 느껴졌다. 그것은 오랫동안 고압으로 갇혀 있던 천연가스와 석유가 파이프라는 틈새를 타고 올라오는 소리였다.
푸! 푸악!―
천연가스에 이어서 석유가 높이 솟구쳤다.
“빨리 근처에 대기 중인 FPSO에 연락해서 이곳으로 오라고 해!”
아까운 천연가스와 석유가 바다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마음은 관을 완전히 잠그고 싶었지만, 압력이 너무 강했다. 완전히 잠가 버리면 압력으로 어딘가가 터져 버릴 수 있었다.
“파이프를 70%만 잠그고 나머지는 불태워 버려!”
기름이 해양에 누출되면 큰 피해가 난다. 아깝지만 불태워 버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빨리 FPSO 선이 왔으면 좋겠군.’
FPSO 선은 ‘바다 위 정유 공장’으로 불렸다. 석유를 분류, 저장, 정유까지 할 수 있었다. 정유와 석유 화학 기술을 보유한 미래 그룹은 드릴 쉽에 이어 FPSO 선도 만들 수 있었다. FPSO 선은 덩치가 큰 만큼 움직임이 느렸다. 이것은 유전에 고정되어 석유를 생산하는 시설이었다.
“선장님! 저기 FPSO 선이 보입니다.”
수평선 너머로 FPSO 선의 상부가 보였다. 예인선까지 붙어 끌고 있으니, 도착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가스와 석유가 타면서 내는 열기가 뜨거웠다. 그만큼 가슴속에는 뜨거운 감정이 휘몰아쳤다.
‘북해 유전 개발에 성공했어. 부회장님을 볼 면목이 생기겠군.’
서일환은 자신을 믿고 큰일을 맡겨 준 이강철 부회장님에게 보답을 할 수 있어 기뻤다.
* * *
헬기 제작을 맡은 김영삼은 지금 아주 바빴다. 그가 꿈을 꾸던 한국형 헬기 제작에 성공했다.
두. 두. 두. 투다닥―
초도 비행을 마친 헬기의 프로펠러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김영삼은 연구진들과 함께 초도 비행을 마친 조종사에게 다가갔다.
“강 소령, 헬기를 몰아 본 소감은 어때?”
강 소령은 베트남전에도 참여한 베테랑 조종사였다. 전역 후 헬기 개발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금은 미래 그룹의 직원으로 활약했다.
그는 용감하고 도전적인 사람이었다. 헬기나 비행기의 초도 비행은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예기치 않은 오작동으로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었다.
“미국의 휴이(UH―1)에 비해서 속도가 빠르고 방향 전환이 더 쉽습니다.”
이번에 시험 비행을 한 KR―01은 미국의 휴이와 비슷한 수송과 기동 헬기였다.
공격용 무기를 장착하면, 부족하지만 공격용 헬기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다목적 헬기에 가까웠다.
지금은 엔진과 본체만 있는 깡통이지만…… 구매자가 목적에 맞게 장비를 부착해서 사용하면 되었다.
“드디어 대한민국이 헬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어.”
“네, 대한민국 국민 만세입니다.”
“만세!”
개발에 참여한 이들이 모두 신나서 만세를 불렀다. 이것은 긴 인고(忍苦)의 세월과 시행착오를 견디어 얻어 낸 성과였다. 김영삼은 처음에는 자신만만했다. 자기 기술을 믿었고, 미래 그룹이 지원해 주는데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헬기 엔진의 기본이 되는 터보 샤프트 엔진은 고도의 기술의 집합이었다.
자동차 엔진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고온과 고압을 견딜 수 있는 소재 개발에 벽이 막혔다. 그렇게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이강철 부회장이 툭 던지듯이 조언해 주었다.
―김영삼 연구원, 자신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나도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는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미래 그룹이 있는 것은 나와 함께한 많은 직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가끔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들이세요. 지금 추진하는 헬기 엔진 개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자신이 모든 것을 다할 수 없다는 부회장님의 말에 온몸이 떨려 왔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느꼈다. 자동차 엔진을 만드는 데 성공한 나머지 세상을 너무 쉽게 보았다.
자동차 엔진처럼 헬기도 혼자서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협조를 등한시했다. 결국 그 오만함이 자신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었다.
‘짐을 함께 나누어지면 훨씬 편한 것을……. 나는 천재가 아니고 멍청이일 뿐이었어.’
자신 앞에 있는 벽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했다. 그러자 헬기 엔진을 만드는 연구가 진척되었다. 그것과 함께 해외의 엔진업체와 기술 협력을 했다. 몇 해를 노력한 결과 이렇게 자신이 만들 헬기로 시험 비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현재 KR―01, 나중에 참수리라는 이름이 붙을 다목적 헬기가 완성되었다.
―시작이 중요합니다. 부족한 부분은 차차 메워 가면 됩니다.―
현재 참수리의 국산화율은 엔진은 30% 수준이고, 동체를 합하면 50% 남짓이었다. 하지만…… 이강철 부회장의 말대로 시작이 중요했다. 국산화율은 조금씩 높여 가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자체적으로 헬기를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나를 믿고 중책을 맡겨 준 이강철 부회장님에게 드디어 보답할 수 있게 되었군.’
이강철 부회장은 조언을 해 주지만…… 나머지 부분은 직원들을 믿고 맡겼다. 그 덕분에 김영삼도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헬기 제작 사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 미래 그룹의 직원들은 모두 그러한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노력과 보상, 권리와 의무는 언제나 함께 가야 합니다. 노력하는 이들과 의무에 충실한 직원에게 충분한 권한과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한 이강철 부회장의 말은 모든 직원의 귀감이 되었다.
* * *
재즈 선율이 울려 퍼지는 해변이 보이는 카페에서 뉴저지와 뉴욕에서 온 두 남자가 만났다. 그들은 이강철 부회장과 이학수 실장이었다.
진한 바카디의 향기가 나는 쿠바 칵테일을 마시며 이학수에게 물었다.
“그들과 이야기는 잘 되었어?”
그것은 핵 발전소 건설을 위해 프리먼 다이슨과 에드워드 텔러를 만난 일이었다.
“두 사람 다 제안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 정도로 충분해. 결국 그들은 넘어올 거야.”
“부회장님, 혹시 그들이 응하지 않으면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그들이 응해 주면 좋지만…… 안 된다고 해도 다른 방법이 있어.”
프리먼 다이슨과 에드워드 텔러를 영입하면 좋지만, 못해도 큰 상관은 없었다. 다른 대안이 있었다. 그것을 이학수도 눈치챈 모양이었다.
“국내 대학과 원자력 개발과 관련하여 산학 협력을 진행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한국에 이미 원자력 기술에 어느 정도 기반을 갖추고 있으니, 다소 시간이 늦어질 뿐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는 문제가 없어.”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원자력 기술이 앞서 있었다.
잘못한 일을 따지면 끝도 없을 정도지만…….
‘그 사람도 한 가지 잘한 게 있어.’
그것은 원자력에 대한 투자였다.
‘전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그는 원자력이 한국의 중요한 에너지원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미국의 과학 고문이었던 워커 리 시슬러(W. L. Cisler)박사를 만나 원자력 도입을 결정했다.
1950년대에 이미 대학에 원자력을 전공하는 학과가 2개나 있었다.
그 덕분에 이 시기에 원자력 관련 인력이 어느 정도 양성되어 있었다. 한국에 연구용 원자로도 있어 이론뿐만 아니라 있어 실무에도 능했다.
여기에 충분한 자본만 투자되면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았다. 웨스팅하우스의 도움을 받아야겠지만, 다이너마이트보다 더 위험한 핵물질을 다루기에는 경험이 많은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웨스팅하우스가 그쪽 분야에 기술은 높은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그들은 발전과 전기 사업 분야에서 유명하니, 그럴 법도 하지.”
웨스팅하우스는 GE 못지않은 전자 회사였다. 발전에서 시작하여 냉장고와 같은 가전 제품에서 카메라, 승강기, 군용기 제트 엔진까지 손을 안 대는 분야가 없었다.
미래 그룹은 그들과 헬기 엔진 개발로 협력하고 있었다. 원래 웨스팅하우스는 이 시기부터 서서히 몰락할 회사였다. 페어차일드와 론풀랑크, 훽스트사와 비슷했다. 원자력 개발을 위해서는 언젠가 인수해야 할 회사였다. 그전에…….
“미국의 기술을 지원받더라도 독자적인 원전 기술을 가져야 해. 산학 협력과 자체 연구 시설은 필수야.”
“알겠습니다. 산학 협력과 함께 자체 연구소도 설립하겠습니다.”
미래 그룹의 연구소는 대한민국 원자력 기술 발전의 산실이 될 것이었다.
‘원자력은 단점도 많지만…… 발전할 여지가 많아.’
원자력은 기술 발전의 여지가 많았다.
전에 ‘미래에는 우주선에 원자로를 사용하지 않겠어?’라고 이학수에게 말했던 적이 있다. 우주 시대에는 원자력이나 핵융합로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수소는 우주 공간에 너무 희박하게 분포되어 있고, 우주에 화석 연료가 있는 것은 아니잖아.’
원자력은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기술이었다.
술잔을 나누는 사이에 마이애미의 밤이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