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313)
이기 시작하는 정세
남산 부근의 궁정동 안가에서 술자리가 벌어졌다. 그 자리에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된 김종칠, 중앙정보부장인 김경욱이 모였다.
“각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으니. 이제 여인들은 물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경욱이!”
“네. 각하.”
“종칠이가 국무총리가 되니 몸을 사리는 것 같은데, 잘 말해 줘.”
“종칠이가 많이 죽었네. 옛날 같지 않아.”
김종칠과 김경욱은 육사 8기 동기 동창이었다. 하지만 둘이 걸어온 길은 달랐다.
일찍부터 출세의 가도를 달린 김종칠과 달리 무식한 것으로 알려진 김경욱은 늦게 빛을 보았다. 그만큼 자신의 지위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이것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야. 너희들, 입을 함부로 놀리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지?”
그 말에 합석한 여인들의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김경욱은 남산의 멧돼지, 공포의 삼겹살이라고 불릴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경욱이! 애들이 긴장했잖아. 이러면 맛이 없지. 적당히 해.”
“너희들, 각하의 말씀을 잘 들었지? 입을 잘 놀려야 할 거야. 알겠나? 낄낄.”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그들은 시정잡배나 다름없었다. 낮과 밤의 모습은 천지 차이였다.
‘무식한 놈. 이러는 것도 오래가지 못할 거다. 둘이 사이좋게 함께 보내 주지.’
김종칠도 그들 못지않지만…… 그는 그나마 자리를 봐 가면서 놀았다. 아니, 이제는 한번 권력에서 멀어지자 조심스러워졌다.
대통령의 본질을 잘 알았다. 김종칠이 뱀이라면 그는 뱀보다 더한 자였다.
낮의 좋은 어버이 같은 근엄한 모습도, 밤의 시정잡배도 모두 가면이었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가면을 바꾸어 쓰면서 주위의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각하, 이번에는 여인을 물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멧돼지는 김경욱 하나로 족해.’
각하라 불리는 그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충성스러운 책사였다. 김종칠은 충언하는 신하의 자세를 취했다.
“거 참. 술맛 떨어지게, 왜 그래.”
“각하, 중요한 안건입니다. 이번만은 부탁드립니다.”
“알겠어. 경욱이, 애들을 물려.”
“네. 각하.”
여인들이 물러나자, 김종칠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각하, 이번에는 빨리 서두르셔야 할 것입니다.”
“그것 말인가?”
“네. 더 늦어진다면 헌법 개정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번처럼 하면 되지 않나?”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헌법 개정 시 반발이 심할 것입니다.”
“번거롭군. 임자, 쉽게 가는 방법은 없겠어?”
3선 개헌으로 대통령직을 유지하게 되었지만…… 계속 대통령을 하기 위해서는 다시 헌법을 고쳐야 했다.
다음에 5선을 하게 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매 4년마다 헌법을 바꾸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쉽게 가는 법이 있긴 있습니다. 다만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임자, 대체 무슨 방법인데 그러는가?”
김종칠은 한발 물러서는 척하면서 대통령을 끌어들였다.
“좋은 방법은 아닌지라 차마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는…….”
“뭔데 그러는가? 한번 이야기해 봐. 내가 듣고 판단하지.”
평생 대통령을 해 먹고 싶은 입장에서는 김종칠이 말한 제안이 궁금했다.
‘낚였군.’
“이번에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헌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새로운 헌법이라……. 어떤 식으로 할 생각인가?”
“우선 대통령 임기 제한을 없애는 것입니다.”
“음……. 그건 괜찮겠군. 마음에 들어.”
김종칠은 대통령이 원하는 답을 해 주었다.
“그럼, 종신 대통령으로 할 생각인가?”
전 정권은 초대에 제한하여 종신 대통령을 추진했다.
“그렇습니다. 헌법에서 명분을 얻을 수 있도록, 대통령 임기 제한을 없앨 생각입니다.”
“음……. 마음에 드네그려. 그런데, 이왕 할 거면 한 번에 해결하고 싶군.”
그 말은 선거 한 번에 평생 대통령을 해 먹겠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국민의 반발이 심할 건데 말이지. 그렇게 해서 선거에 당선될 가능성이 있겠나?”
김종칠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종신 대통령을 하겠다면…… 국회와 사법부, 언론, 국민, 모두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전 정권도 종신 대통령을 추진하다가 몰락했던 사례가 있는 만큼 더욱 조심스러웠다.
“대통령을 직선제가 아니라 간선제로 뽑게 바꾸면 어떻겠습니까? 선거에 나서는 선거인도 직접 임명하는 것입니다.”
김종칠은 체육관 선거를 획책하고 있었다.
“음……. 괜찮긴 한데…… 너무 과격하지 않나?”
저번 3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헌법을 수정하면 무리 없이 4선도 가능해 보였다.
과격한 방법을 사용하면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다. 대통령은 한발 물러섰다. 그는 멍청한 이는 아니었다.
‘칫, 역시나 쉽게 물어 주지는 않는군. 이런 때에는 다른 방법이 있지.’
“이번에는 야당에서 단단히 벼르고 있습니다. 후보 단일화도 고려해야 합니다.”
김종칠은 후보 단일화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과장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인간들이 단일화를 할 수 있겠어? 서로 대통령이 되길 원할 텐데. 저번처럼 두 사람이 싸우는 사이에 ‘구국의 결단’으로 포장하면 될 거 아니야.”
“혹시라도 단일화가 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그렇게 되면 상당히 피곤해졌다. 당선을 확신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무리한 수를 써야 합니다.”
선거에 진다면 새로운 헌법을 만드는 것보다 더한 일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선거 결과를 부정하거나, 다시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그런 일을 벌이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대비라……. 새로운 헌법을 만드는 일도 만만치 않을 텐데.”
대통령의 마음이 다시 새로운 헌법을 만드는 것으로 기울었다.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방법 말인가?”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면 됩니다. 그것으로 3법을 무력화하고 새로운 헌법을 통과시키는 것입니다.”
“임자의 주장은 너무 과격해. 모든 일에는 명분이 필요한 법이야.”
구미가 당기는 말이었으나, 쉽게 물지 않았다.
“명분은 만들면 됩니다.”
“어떻게 말인가?”
“정국의 혼란을 일으키면 됩니다.”
“공작으로 혼란을 일부러 일으킨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정치인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전국에서 데모가 일어난다면……. 국민은 안정을 원할 것입니다. 그때 구국의 일념으로 젊은 장교들이 나라를 위한 결단을 내리는 거지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대통령은 그 제안을 곰곰이 검토했다. 그 후 말문을 열었다.
“임자의 제안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어.”
“그것이 무엇입니까?”
“지금은 경제도 좋고 나라가 안정되어 있어. 정국의 혼란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아.”
저번 회차에서는 오일 쇼크로 경제가 힘들었다. 정치적으로도 10·2 항명 파동 등 혼란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회차에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안정된 정국이라, 4선도 기대해 보는 것이었다.
“사람의 욕심을 흔들어야 합니다.”
“어떤 욕심을 흔든다는 말인가?”
“당 내외에 각하의 차기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흔들어 줘야 합니다.”
김종칠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그런 이들의 마음을 잘 알았다.
“그런 불충한 놈들이 있나! 경욱이, 그런 생각을 품은 놈들은 싹 다 찾아낼 수 있도록 조사해!”
“네? 예. 각하.”
김경욱은 없는 이들이라도 만들어 낼 것이었다.
“각하, 힘으로 하는 것은 하수입니다. 스스로 자기 굴 밖으로 나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말인가?”
“새로운 헌법에 관한 이야기를 슬쩍 흘리십시오. 그러면 다들 알아서 모두 굴 밖으로 나올 것입니다.”
현 대통령이 평생을 해 먹겠다고 하면 우선 여당의 인사부터 반발할 것이다.
여당에서는 3선 이후에 자신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고 김칫국을 먹는 이들이 많았다. 그것은 군부도 마찬가지였다.
실낱같은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다. 확정된 사실은 희망 고문보다 더 힘든 법이다.
“여당 내의 불충한 이들을 제거할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소문을 흘림으로써 인위적으로 10·2 항명 파동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으로 당내의 종신 대통령을 반대하는 세력을 제거할 수 있었다.
“음…… 그 방법이 더 괜찮은 것 같군.”
대통령은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을 숙청해나갔다. 김종칠도 그 과정에서 제거되었다가 복귀한 것이다.
이번 일은 당내 인사의 충성심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영구 집권을 방해할 인물을 제거하기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되면 야당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차기 대권을 목표로 하는 인사들이 대거 국회에서 반발할 것이다. 국회에서 그들의 뜻을 이루지 못하면 여론을 불러 모으기 위해 거리로 나갈 것이었다. 연일 시위가 계속될 것이었다.
“각하께서는 국민이 시위가 지겨워질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시면 됩니다.”
“잘못하여 벌집을 건드리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는군.”
종신 대통령 건이라면 생각보다 시위의 파장이 커질 수도 있었다. 그의 우려는 당연했다.
“여기 김경욱 부장이 있지 않습니까? 정 그가 불안하다면 제가 나서겠습니다.”
“아닙니다. 각하. 제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음…….”
김종칠이 그런 공작은 잘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에게 너무 큰 권력을 몰아주게 된다.
“아니. 이 건은 경욱이에게 맞기지.”
“감사합니다. 각하.”
‘뜻대로 되었군.’
김종칠이 원하는 것은 진정한 혼란이었다. 지금의 대통령을 몰아내고 국무총리인 자신이 정권을 차지할 수 있는 명분……. 불도저 같은 김경욱은 일을 더 크게 만들 것이다. 그래도 조심성이 많은 대통령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더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군이 개입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위가 필요합니다. 즉, 시위의 수위 조절이 필요합니다. 제가 나서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각하, 제가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아니, 경욱이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야. 임자는 다른 할 일도 많지 않나.”
“알겠습니다. 그럼 중앙정보부장을 믿고 맡기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제때 막지 못한 시위가 활활 불타오를 것이다. 소방수도 거센 불길은 막기 힘들었다.
* * *
“혼란을 일으키는 문제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래도 자네의 계획에는 한 가지 문제가 더 남아 있어. 누구에게 힘을 실어 줄 건가?”
“영관급에 괜찮은 이들이 있습니다.”
“하X회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대통령도 하X회를 알고 있었다. 그들의 군부 장성들의 견제 세력으로 삼았다.
“그들이라면…… 이럴 때 쓰기 적당한 이들입니다.”
하X회가 세력을 이루고 있으나 그들의 대부분은 영관급이었다. 세력이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친위 쿠데타에 써먹기 딱 좋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총을 쥔 녀석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총을 든 자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다. 그들이 불충한 마음을 먹으면 자신이 언제든지 자신을 위협할 수 있었다. 그것이 친위 쿠데타라고 하더라도…….
“제가 책임지고 그들을 관리하겠습니다.”
김경욱이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다.
“경욱이 자네가 말인가?”
“잘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은 김경욱에게 큰일을 맡기기 미덥지 않았다. 고민이 되었다. 김종칠은 그러한 그를 도왔다.
“하X회의 전석두가 중정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를 중정에서 관리한다면 하X회가 함부로 날뛰지 못할 것입니다.”
“음…….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해. 전석두라는 녀석을 중정에 두라고.”
“알겠습니다. 제 밑에 두고 관리하겠습니다.”
중앙정보부와 인연이 있고 대통령의 신임이 깊은 전석두가 중정 차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대통령은 안심하지 못했다.
“임자가 이 일에 나서 줘야겠어.”
“제가 말입니까?”
“임자가 동기들에게 신뢰가 깊지 않은가? 밑에 있는 이들도 잘 따르고…….”
“그건 옛날 말입니다.”
“내가 힘을 실어 줄 테니 잘해 봐.”
대통령은 중정에 지나치게 힘이 실리는 것을 경계했다. 중정이 하나회를 완전히 장악한다면 위험했다.
육사 8기와 하나회를 포함한 군부 인사를 관리할 권한을 김종칠에게 주었었다.
의심이 많은 그의 눈길을 피하고자 일부러 발을 빼었더니, 오히려 그 일을 맡겼다.
‘잘 되고 있어. 계획대로 진행되는구만.’
“그 일을 하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나?”
“문제없이 진행하려면 족히 1년은 잡아야 합니다.”
“1년이라…… 시간이 많지 않구만.”
벌써 3번째 임기의 반이 지났다. 그리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긴밀히 말씀드린 것입니다.”
“알겠어. 임자와 경욱이가 잘 성사해 봐.”
“알겠습니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렇게 친위 쿠데타를 통한 정권 연장 계획이 수립되었다. 물론, 동상이몽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헌법의 이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유신이 어떻습니까?”
“유신이라고 함은?”
“낡은 제도를 버리고 새로운 것을 도입한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많이 해 먹었잖아. 너도 이제 내려올 때가 되었어.’
“괜찮은 이름이군.”
저번 회차와 상당 부분 달라진 각자의 유신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