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5)
에서의 사업
부민동(富民洞)은 말 그대로 부민(富民, 부자)들이 사는 동네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부자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다. 곳곳에 일본인들이 살던 문화 주택이나 양옥들이 많았다.
유래는 부민포(富民浦)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지만 유래와 관계없이 이 시기의 부자 동네였다.
임시 수도와 각종 정부 기관들이 이 지역에 대거 몰렸다. 정부의 고관들이 살만한 고급 주택들이 대부분 이곳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머무는 집 근처로 정부 청사를 다 옮겨 오다니. 행정 편의주의야.’
부민동이 이 시기 부산의 중심지이기는 해도, 사는 집 근처로 정부 기관들을 다 몰아 오는 것은 심했다.
‘워낙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시기이니.’
한국전쟁 중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많이 일어났다. 자신이 사는 집 옆에 정부 청사를 세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쟁이 터지면 부민동은 서울의 강남보다 더한 값비싼 곳이 된다. 그곳에 매물로 나온 고급 주택들을 살펴보았다.
부산에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적산 가옥들은 많았다. 일본과 가까워 일본인들이 많이 살던 곳이었다.
매물로 나온 고급 주택들은 많은데 그것을 살 만한 여유가 있는 부자들이 부산에 많지 않았다.
지금은 부민동의 고급 양옥 주택들이 상당수 비어 있었다. 적산 가옥으로 저렴하게 많이 나와 있었다. 이것들은 전쟁이 나고 정부 청사와 미군이 부산에 자리 잡으면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가 없었다.
“여기는 고급 주택들이 상당히 저렴하구나.”
“부산은 서울만큼 부자들이 많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싸다고 해서 고급 주택들을 여러 채 사들일 필요가 없지 않냐.”
“그것은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집들이 큰돈이 될 것이에요.”
그 말을 아버지가 반신반의했다. 전쟁 통에 고급 주택이라니…….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이왕이면 부평동의 빈 땅이나 상가들을 더 사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고급 주택들은 돈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이 나면 이런 주택은 구하기도 힘듭니다.”
“그렇다고 전쟁 때 고급 주택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다들 먹고 살기 바쁠 것인데.”
“아무리 전쟁이라고 먹고 살기 어려워도 잘사는 사람들은 잘 먹고 살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 데이터로 증명이 되어 있었다. 불황에 명품이 잘 팔렸다.
‘전쟁으로 힘든 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일반인들이지. 부자는 이 시기에 떼돈을 벌어.’
“이런 비싼 집을 누가 사겠느냐?”
“정부 관료와 정치인, 미군, 큰 부자들이지요. 그들이 모두 부산으로 모여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사람들이 아무 곳에나 살겠습니까?”
그들은 전쟁 통에도 부산에서 잘 먹고 잘살았다.
“이곳에 그들이 새로 집을 지을 수도 있지 않냐.”
“미군과 국군이 부산 근처까지 밀려난 마당에 어디에서 새로 집을 지을 자재나 물자를 구하겠습니까?”
일반인들이 살 판잣집이나 양철집들은 미군의 군수 물자로 어떻게든 지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난리 통에 양변기와 욕실이 달린 고급 주택을 구할 수가 없었다.
‘밀수나 편법으로 구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얼마나 구할 수가 있겠어. 수요와 비교해서 턱없이 부족하지.’
그런 고급 주택은 부산에 그 숫자가 정해져 있었다. 전쟁 통에 새로 짓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고관이나 정치인, 미군의 고위 장성, 큰 부자들이 살 수 있는 고급 주택은 한정된 자원이었다.
모든 가격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된다. 수요가 폭발하는 상황에서 한정된 자원은 가격이 크게 오를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런 집들은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음…… 이러다 집들이 정부에 몰수가 되는 것은 아니냐?”
아버지의 우려도 타당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이라는 이유로 정부에 빼앗아 갈 수도 있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몰수되기 전에 바치던가, 몰수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지요.”
몰수되기 전에 그들에게 먼저 호의로 주는 방법도 있었다. 집으로 정치인과 연을 맺을 수도 있었다.
‘빼앗기는 것보다는 주는 게 차라리 낫지.’
그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경우였다. 제일 좋은 것은 몰수되지 않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다.
‘계획대로 되어야 할 건데…… 나머지는 천운에 맡길 수밖에…….’
아무리 미래를 알고 계획을 세워도 100% 그것이 될 거라고는 장담을 못 했다. 세상에는 언제나 블랙 스완처럼 알 수 없는 변수가 튀어나왔다.
“이건 정말 싸게 잘 구한 것입니다.”
부산 시청의 관리가 신났다. 비싸서 팔리지 않는 적산 주택을 여러 채 처리할 수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계약이나 잘 해 주십시오.”
“새로 지으려면 이것의 몇 배는 주어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안 팔리는 것을 알고 있다고·…… 지금은 애물단지야.’
적산 재산(귀속 재산)매각에 인기가 있는 것은 사업체였다. 그게 큰돈이 되는 것이었다.
이런 양옥 주택은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양옥 주택은 가격도 비싸고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지 않아 잘 팔리지 않았다.
서울이라면 수요가 많고 공급이 적어 그나마 잘 팔리지만 부산은 공급이 많고 수요가 적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부산시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이번에 산 주택은 가격이 비싸서 민간에 팔리지 않은 고급 적산 주택 중 양옥 주택이었다. 정치인과 정부의 고관들에게 넘어갈 집들을 저렴하게 구매했다.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것들을 차지하고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아. 그것을 가져간다고 문제가 되겠어?’
적산 물자와 공장을 싸게 인수하여 재벌이 된 사람들이 많았다. 안 팔리고 남은 것을 사들이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나중에 큰돈이 된다는 것은 비밀이지.’
* * *
이 시기에 미군정과 정부에 협력하여 막대한 부를 손에 넣은 사람들이 있었다. 제일 상회와 삼양, 태창, 한국 럭키 공업사를 비롯한 재벌이라고 부를만한 회사와 사람이 10명은 되었다.
아버지가 알부자라고 하지만 그들에 비하면 형광등 아래의 반딧불이었다.
‘세계 최고는 고사하고 한국 최고가 되는 것도 한참은 가야 해.’
부산에서 부동산을 사고 금은방을 한다고 해도 그들을 따라잡으려면 까마득했다.
거기에 Mission이 한국 최고의 재벌이 아니라, 세계 최고 재벌이라고 한다면 어지간해서는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었다. 지금부터 서둘러야 했다.
실패하면 무한 반복의 루프에 빠져들 수 있었다.
‘이런 삶도 나쁘지는 않지만 계속 같은 삶을 사는 것도 고통이야.’
재벌의 삶도 한두 번은 괜찮지만, 이것이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했다.
부산에 있을 때 앞서간 따라잡을 만큼 부를 모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은방 말고도 다른 사업들을 추진해야 했다.
“아버지, 중앙동에 금은방들을 여시면 그곳에서 환전소도 같이 운영하시죠.”
“내가 사채업자들처럼 환전소를 차리란 말이냐?”
명동에는 사채업자들이 금과 함께 달러를 사고파는 환전소도 같이했다. 달러가 급한 기업인은 그곳에서 달러를 빌렸다. 금융업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 사채업자들이 활개를 쳤다.
“어차피 금과 같은 귀금속이 모이면 달러도 같이 나올 것입니다. 그것을 제대로 활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금은방과 같은 고가품을 사고파는 곳에서는 달러를 거래하기도 좋았다. 미군이 대규모로 들어오면 같이 달러도 함께 흘러들어온다.
‘수많은 파병 장병들이 쓰는 돈만 모아도 크지. 다른 곳에서는 달러를 구하기가 힘들어.’
일본이 그것으로 많은 이득을 보지만, 미군들과 유엔군들이 부산에서 사용하는 달러도 무시하지 못했다.
그것이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환전상에서 거래가 된다. 시중에 도는 그런 달러를 회수해야 했다.
‘한화를 가지고 있으면 손해야. 빨리 달러나 금으로 바꾸어야 해.’
전쟁 통에 한국 돈은 수시로 화폐 개혁이 되고 가격도 폭락한다. 돈은 달러로 보관하는 것이 좋았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해외에서 원자재를 사거나 기계를 도입하려면 달러가 필요했다.
미국의 차관과 원조를 통해서 달러가 흘러들어오겠지만 그것을 얻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이미 자리를 잡은 이들의 몫이 될 것이 뻔했다.
사업을 하기 위해 해외에서 설비와 물자를 도입하려면 달러는 필수였다.
수출 산업이 활성화될 때까지는 달러를 구할 창구가 필요했다. 한국은 오랫동안 만성적인 무역 적자국이었다. 이때가 아니면 달러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정경 유착도 나쁘지는 않은데…… 경쟁도 치열하고 위험성도 커.’
정경 유착은 양날의 칼이었다. 흐름을 잘 타고 잘나갈 수 있지만, 잘못하면 나락이었다. 정치가 격변하는 순간을 안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경제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쉬웠으면 3회차에 Mission을 달성했지.’
둘 다 변덕스러웠다. 역사에 개입하게 되면 될수록 그게 더 심해졌다.
‘나비 효과를 무시 못 하지.’
자신이 정치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 그것은 더 심해졌다.
‘역사에서 변하는 부분과 변하지 않는 것을 잘 파악해야 해.’
어떻게 흔들릴지 모르는 역사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없었다.
정치에 영향을 안 받고 안정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성장해야 했다. 그러려면 달러 확보는 필수였다.
“아버지, 다른 것보다 달러가 필요합니다. 이 시기에 최대한 그것을 모아야 합니다.”
“그래, 알겠다. 한번 노력해 보자.”
아버지도 전쟁이 일어나면 달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환전상은 해보지 않은 일이지만, 금은방과 함께 운영하시기로 했다.
* * *
아버지와 환전소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남포동으로 향했다. 그것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남포동은 부산에서 가장 큰 시장이 있는 곳이다.
생활 물품뿐 아니라 그 외 온갖 것들을 다 팔았다. 그중에서는 일본에서 수입되는 공구나 기계류, 국수 제조기와 같은 시설들도 있었다. 그중 국수 제조기를 사러 왔다.
“그런데 전쟁이 나면 국수가 돈이 되겠냐?”
“아버지, 전쟁이 나니까 국수가 돈이 되는 것입니다.”
아직 국수는 잔치국수와 같이 귀한 날 먹는 비싼 음식으로 간주하였다. 원조로 들어오는 밀가루가 보급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해졌지만, 국수가 아직은 비싼 음식으로 여겨졌다. 피난민들의 음식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국수는 피난민들이 사서 먹기에는 너무 비싸지 않겠느냐.”
사실 몸만 내려온 피난민들에게 국수는 비싼 음식이었다. 미군의 잔반을 끓여서 먹는 꿀꿀이죽이 더 싼 음식이었다.
하지만 국수도 전쟁이 터지면 그리 비싼 음식이 아니게 된다.
전쟁이 나면 부산으로 미국이 원조한 밀가루가 들어온다. 밀면과 같은 밀가루 음식이 미군의 원조 물자로 탄생했다.
부산에 많은 피난민이 몰려들었었다. 사람은 많은데 대부분 국토가 인민군에 함락되어 부산으로 식량이 들어올 곳이 없었다.
부산으로 몰린 많은 피난민을 굶겨 죽일 수는 없었다.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미국이 밀가루를 대량 원조했다.
“아버지, 부산까지 정부가 밀리면 식량을 어디에서 구하겠습니까?”
“해외에서 식량을 수입한다는 말이냐?”
“수입은 아니지만, 미국에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는 밀가루와 곡물 가루가 남아돌 정도입니다.”
미국은 이 시기에 밀가루가 남아돌아서 문제였다. 농업 생산이 급격히 늘었는데 팔 곳이 많지 않았다.
‘미국은 식량 남아도 주지 않고 불태울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다르지.’
“미국이 원조해 준다는 말이냐.”
“전쟁이 일어나면 그들도 도울 것입니다. 남한이 공산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까요.”
이 시기에 미국은 공산 국가들과 대립했다. 공산 국가와 대립하는 나라들에 식량을 원조해 주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면 그러한 원조가 더욱 적극적이 된다. 한국은 전쟁으로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는 이들이었다. 냉전 체제 안에서 남은 농산물을 아낌없이 퍼 주었다.
그것은 밀가루나 옥수수 가루, 분유 등 가루의 형태로 가공되어 제공되었다. 그렇게 배급이나 지원되는 밀가루나 곡물 가루를 그냥 먹을 수는 없었다.
“밀가루가 원조로 들어오면 그것을 가공해서 먹어야 합니다.”
“밀가루를 가공하기에는 국수가 좋긴 좋지.”
아버지도 정미소를 해서 기본적인 것은 알고 있었다. 밀가루로 수제비는 그나마 낫지만, 집에서 국수를 해 먹으려면 힘들었다.
‘수제비도 맨날 먹으면 지겹지. 국수도 사서 먹을 거야.’
원조로 나오는 밀가루를 국수로 만들면 불티나게 팔릴 것이다.
‘뭐, 국수 가게에서 시작해서 대재벌이 된 사람도 있으니. 국수도 지금은 괜찮은 사업이야.’
나중에는 제분이나 제당, 면직물과 같은 삼백 사업이 주요 산업이 되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도 없었다. 원조로 주어지는 밀가루로 국수를 만드는 것이 최고였다.
* * *
남포동의 기계 상가에서 국수 기계를 주문했다.
“반죽기와 면을 뽑는 기계를 10대씩 사겠습니다.”
“지금 당장 그 정도 수량을 구할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 수입해 와야 합니다.”
부산에는 일본에서 수입해 오는 기계들이 많았다. 그런 기계를 구하는 데는 남포동만 한 곳이 없었다.
“지금 수입하면 언제쯤 오겠습니까?”
“후쿠오카에서 수입하면 한 달도 안 걸릴 것입니다.”
“그럼 지금 당장 수입해 주십시오.”
한 달이면 충분했다. 그때쯤이면 부산으로 피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공장을 가동하고 시험 생산까지 마칠 여유가 되었다.
“그런데 선금으로 대금의 5할을 주이소.”
“선금으로 대금의 5할이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일본에서 기계를 수입했는데 가져가지 않으시면 저희는 큰 손해를 볼 것입니더.”
그때는 서로 가져가려고 난리가 날 것이었다. 그가 기계를 못 팔 걱정은 없었다. 그것을 굳이 일부러 이야기해 줄 이유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대신에 주지 않았을 때 위약금도 5할입니다.”
“하모, 좋심다.”
‘마음 같아서는 선금을 더 걸고 싶은데, 너무 큰 금액이면 돈을 가지고 튈 수도 있으니.’
금은방과 환전소와 함께 부산에서 할 사업은 국수 사업이었다.
‘처음은 그 재벌과 비슷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