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6)
믿을 만한 사람
국수 기계를 판매하는 곳을 나와서 주위에 다른 가게도 들렸다. 남포동에는 식품을 만드는 기계와 시설을 수입하는 곳이 많았다.
“여기에서 오뎅을 만드는 기계를 수입합니까?”
“어서 옵쇼. 원하는 기계는 말만 하시면 무엇이든 구해드릴 수 있어예.”
“어육 분쇄기와 대형 튀김기도 가능하죠.”
“왜? 오뎅 공장이라도 하시랍니까?”
“오뎅 공장을 하는 것 말고 그런 기계를 살 다른 이유가 있겠어요?”
“일제는 비쌉니더. 괜찮어예?”
그곳의 직원과 오뎅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계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그때 아버지가 말을 끊었다.
“잠깐만. 강철아, 아비하고 이야기 좀 하자.”
아버지가 가게 밖으로 나를 끌고 갔다.
“녀석아, 뭐를 그리 많이 사느냐. 가져온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건물과 가게, 땅, 주택 등의 계약금으로 아버지는 상당한 돈을 이미 사용했다. 마지막에 국수 기계를 주문하면서 계약금을 50%나 건 것이 타격이 컸다.
“아버지, 그럼, 이번에는 계약금을 2할만 걸죠.”
어묵 기계는 국수 기계와 달리 그 중요성을 아는 데 시간이 걸린다. 수입상 일본에서 수입해 온 후 쉽게 다른 곳에 팔지 않을 것이다.
“국수 기계는 그렇다고 쳐도 갑자기 오뎅 기계는 왜 필요한 것이냐.”
“오뎅도 전쟁 통에 잘 팔릴 것입니다.”
“다들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에서 무슨 오뎅이냐.”
“아버지가 생각하시는 그런 고급 오뎅이 아닙니다. 수산 시장에서 버리는 잡어들로 만드는 저렴한 오뎅이에요.”
오뎅은 처음부터 저급한 음식이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나름대로 고급 음식이었다. 흰살 생선의 살을 발라내어 고기 갈이와 식염을 넣어 탄력을 부여하는 고급 음식이었다. 그런 오뎅을 찌거나 굽기도 하고 기름에 튀기기도 해서 먹었다.
‘기름에 튀기기만 해도 고급이지. 일제 강점기와 한동안 식용 기름이 얼마나 비쌌는데.’
하지만 한국전쟁 시기와 그 이후에 만들어진 부산 어묵은 그런 고급품과 달랐다.
그것은 잡어의 뼈와 껍질을 통째로 갈고 거기에 배급으로 나오는 전분을 버무린 후, 미군에서 나오는 기름에 튀긴 음식이었다.
‘그게 꼭 나쁜 것도 아니지. 칼슘이 풍부하고 무기질과 단백질, 지방까지 고루 갖춘 피난민의 영양을 채워 줄 좋은 음식이야.’
“잡어를 갈아 만든 그런 싸구려 오뎅을 누가 사서 먹겠냐.”
“아버지의 말씀처럼 먹고 살기도 힘든 전시 상황이지 않습니까? 전쟁 통에 그것만큼 괜찮은 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말대로였다. 먹고 살기 힘든 전쟁 기간에 잡어와 생선 부산물로 만든 오뎅만큼 좋은 음식이 없었다.
“오뎅이 전쟁 때 괜찮은 음식이라는 말이냐.”
“그뿐만이 아닙니다. 전쟁이 끝나도 한동안 먹고 살기 힘들 것입니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오뎅은 오랜 기간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 것입니다.”
오뎅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스테디셀러였다. 꾸준한 수요가 있었다.
“그래, 앞으로 오뎅 사업이 괜찮다는 말이지…….”
“아버지, 여기는 부산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생선만큼은 풍부합니다. 잡어로 만든 저렴한 오뎅이 큰 인기를 끌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잡어로 만든 오뎅이 인기가 좋았다. 나중에는 북양에서 만드는 명태살로 오뎅을 만들지만, 그 시절 잡어로 만든 오뎅의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추억의 보정이 있지만, 잡어로 만든 오뎅이 맛이 나쁘지 않았다. 다양한 생선의 살과 뼈, 껍질로 만들어진 오뎅에서는 비릿하고 찐한 생선의 맛이 났다.
‘맛도 좋고 저렴하며 영양가도 높은 이 시기의 최고의 음식이야.’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다시 기계 수입상으로 갔다. 그곳에서 생선을 가는 믹서기이자 어육 분쇄기와 대형 튀김기를 각각 10대씩 주문했다. 아버지가 가진 돈으로 아슬아슬하게 선금을 맞출 수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수입 대금의 2할을 선금으로 받았습니다. 대신에 반드시 기계를 찾아가셔야 합니다.”
그는 서울의 주소와 연락처까지 적어 갔다.
‘걱정하지 말아요. 나중에 안 판다고나 하지 마세요.’
부산에서 해야 할 사업이 하나 더 늘었다. 이곳에서의 일을 모두 마치고 기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아버지, 이제 서울로 가시죠. 부산에 계약한 것들의 잔금을 치르려면 빠듯합니다.”
“내가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
“전쟁이 터지면 저에게 고맙다고 하실 거예요.”
저번 회차에도 서울에서 가지고 온 돈을 보고 고맙다고 하셨다. 이번에는 규모가 훨씬 컸다. 그것이 부산에 가면 수십 배에서 수백 배로 뻥튀기될 것이다.
그 돈은 최고의 재벌로 가는 밑천이었다.
기분 좋게 서울로 가는 차창을 바라보면서 등을 뉘었다.
‘부산에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건졌어. 돈이 얼마나 불어나는지 지켜보자고……. 하하.’
* * *
서울에 돌아가서도 할 일이 많았다. 재산을 모두 정리하고 부산으로 이전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상인 중에 아는 분들이 많아 빠르게 처분할 수 있었다. 다들 대를 이어 같이 장사를 한 사람들이었다.
“이번에 갑자기 재산을 처분하고 부산으로 이전한다고 하니, 이상하게 생각하더구나.”
“제가 말씀드린 대로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셨습니까?”
“그래. 네가 말한 대로 부산에서 식품 사업을 새로 시작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정미소를 하던 사람이 부산에서 식품 사업을 한다고 하니, 생각보다 수긍하는 사람이 많았다.
서울이 중심지이기는 해도 부산에도 할 일이 많았다. 서울 토박이가 갑자기 부산으로 간다는 것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걸 물어보는 분들은 없었지요.”
“급하게 서두르는 것에 조금 말이 있었지만……. 미국과 일본에 연관된 사업을 한다고 하니, 다 이해하더구나.”
부산은 이 시기에도 무역 항구였다. 일본과 미국에서 여러 가지 물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부산으로 향했다. 해방 이후에 사람들의 이동이 활발해졌다. 그곳에서 새 사업을 시작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유명한 재벌도 경남 의령에서 만석꾼 집 아들로 태어나 마산과 대구, 부산 등지에서 사업을 하게 된다.
“그런데 아들아, 정미소에서 믿을 만한 직원을 부산으로 데려가는 게 좋지 않으냐?”
사업은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부산에서 일을 시키려면 사람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정미소에서 쓸만한 직원을 데리고 가고 싶어 했다.
“아버지가 데리고 가고 싶다고 해서, 그들이 자신이 사는 서울을 버리고 따라오려 하겠습니까?”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서울을 버리고 부산까지 오려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그래도 내가 부탁하면 몇 명은 따라오려 할 것이다. 이 아비가 직원들에게 그리 신망이 없지는 않다.”
“아버지, 제가 한 마디만 말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말해 봐라.”
아버지에서 앞선 삶에서 재벌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을 말해 주었다.
“아버지가 그들에게 부탁하시면 안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부산까지 그들을 데리고 가려면 당연히 부탁해야지
부산까지 부탁해서 가는 것과 스스로 찾아오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러면 부산으로 안전하게 대피하게 되었다고 해도 고마운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 될 것입니다. 아버지가 부탁한 것이니 말이죠.”
“직원들이 내가 도움을 준 것을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여긴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아버지를 도와드렸다고 생각하겠지요. 은혜를 받은 쪽은 아버지가 되시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큰 은혜를 입히지 못합니다. ”
아버지가 이 말에 생각에 잠겼다. 말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려 했다.
“하지만 부산에 피난 온 그들을 채용한다면 그들은 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과거의 인연을 잃지 않고 도와준 고마운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흠…….”
“어느 것이 직원들의 충성심이 더 높아지겠습니까? 앞으로 사업을 하시려면 그런 충성스러운 직원들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그런 사람을 만들 기회를 놓치시겠습니까?”
두 가지는 큰 차이가 있었다. 뒤에 말한 것대로 하면 아버지는 믿을 수 있는 직원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은 많아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직원이 그리 많지 않은 법이야.’
그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다. 이 시기의 직원들은 그렇게 회사에 충성심이 높지 않았다.
회사에 충성심이 높은 직원들이 나타나는 것은 고도 성장기였다. 그때는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시대였다. 지금과 같은 전쟁과 혼란기에는 믿을 수 있는 직원을 구하는 것은 중요했다.
‘그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정미소 직원 중 안전하게 부산까지 내려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 내려와서 아버지 밑으로 다시 오게 되는 직원들은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이었다. 아버지도 내 말을 이해했다. 사람을 다루는 일을 해 본 분이었다.
“그래, 그것은 네 말이 맞다. 그런데 강철아, 어째 이 아비는 네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네가 언제부터 이렇게 변한 것이냐.”
‘아이고, 실수했네. 너무 나갔어.’
이런 이야기는 이제 19살인 대학교 1학년이 말할 내용은 아니었다. 그래도 적절한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 제가 최근에 꿈속에서 미래를 봅니다. 미래를 보는데 사람이 어떻게 달라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더 강하게 아버지의 말에 반격했다.
“그래, 미래를 보는데…… 사람이 안 달라지는 것이 더 이상하지. 이번에 정말 네 말처럼 된다면 모든 걸 너의 뜻대로 따르마.”
아버지는 전쟁이 터지고 부산에서의 일이 그대로 진행된다면 더 중요한 일들을 맡기려고 했다. 아버지에게 미래를 보는 아들보다 믿을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 이런 것은 비밀이신 것은 아시죠?”
“네 녀석은 아버지를 뭐로 보는 것이냐. 아비가 그런 말을 실없이 하고 다닐 사람이냐.”
“압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비밀 엄수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함부로 떠들고 다닐 수 없는 이야기였다.
‘유언비어 유포로 총을 맞기 딱 좋지.’
서울에서 빠르게 모든 것을 정리했다. 이제 부산으로 이사가 갈 때가 되었다.
* * *
“아버지, 갑순이는 데려가시죠.”
“식모는 뭐하게. 전쟁이 나면 사방에 널린 것이 식모일 텐데.”
시골에서 올라와서 도시에서 식모살이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일자리가 없는 이 시기에 어린 여자가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전쟁이 나면 그런 식모살이 자리라도 구하려고 난리가 날 것이었다.
“갑순이는 시골에서 올라와 지낼 곳도 없는 아이입니다. 그런 아이를 부산까지 데리고 가서 먹여 주고 입혀 준다면 매우 고마워할 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밥만 먹여 줘도 고마워했다.
“그렇겠지.”
“회사뿐만 아니라 집안에도 믿을 만한 사람을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외로 이런 일에 부주의한 사람이 많았다. 물건뿐만 아니라 많은 비밀이 집안에서 새어나갔다.
“그래, 네 말대로 집에 그런 사람이 필요하지. 모르는 사람을 들였다가 손이라도 타면 큰일이야. 갑순이 하나 데려가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느냐.”
정미소 직원들과 갑순이는 처지가 달랐다. 그것에 맞게 사람을 대하는 것이 달라져야 했다. 상황에 따라 충성심과 신뢰를 얻는 방법이 달랐다. 갑순이는 부산으로 데려가는 게 맞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죽일 수는 없어.’
갑순이는 전쟁 이후로 한 번도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 아마도 전쟁 통에 죽었을 가능성이 컸다. 집안에 믿을 만한 사람을 두면서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어렵지도 않은 일인데 안 할 이유가 없어.’
저번 생에서 지켜본 바로는 갑순이는 믿을 만했다. 정신없을 때 집안의 귀중품을 훔쳐 도망갔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탈 때까지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 정도면 일부러 데려갈 이유로 충분했다.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구하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제부터 믿을 만한 사람을 구하는 것도 중요해.’
서울에서 내려온 정미소의 직원들은 아버지에게 충성을 다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