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71)
전경련 모임
제일 그룹 회장에게서 급하게 전화 연락이 왔다.
“환을 달러로 바꾸어 주게.”
“얼마 전에 바꾸어 가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걸로 부족하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시중에 외화가 없어.”
* * *
미래는 태창과 의류와 봉제 분야에서 치킨 게임을 하고 있었다. 미래 그룹은 수출에서 손실이 안 나는 정도에서 대응하고 있었다.
―부회장님, 남미와 유럽에서 주문을 받았습니다.―
넘치는 생산량을 남미와 다른 지역으로 판매했다. 동시에 S.P.A에서의 판매를 늘리고 미국의 중고가 시장으로 진출했다. 그 덕분에 미래 어패럴은 멈추는 공장 없이 시설을 돌렸다.
―태창의 움직임은 어떤가?―
―계속 저가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태창은 가격을 무기로 삼아 미국의 저가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그런데 너무 심하게 덤핑 납품해서 팔면 팔수록 큰 손해가 나고 있었다.
―태창은 원가의 50% 이하로 덤핑하는 것 같습니다. 손해가 막심할 것입니다.―
보통은 수출하면 외화가 들어와야 했다. 어느 정도 헐값으로 수출해도 외화가 들어왔다. 그런데 태창은 너무 심하게 덤핑으로 판매했다. 수입하는 원료의 재료비도 안 나왔다.
―그러면 덤핑을 오래 유지하지 못 할 건데.―
인건비는 한화로 지급한다고 해도 재료는 달러로 지급해야 했다. 실과 섬유를 만드는 원료는 외국에서 수입해야 했다. 상당한 외화가 국외로 반출되었다.
미래 상사가 남미와 다른 시장에 진출하니 태창이 그곳까지 따라와서 덤핑했다. 이기봉과 태창이 작정하고 미래 그룹을 무너뜨리기로 마음을 먹은 듯했다.
―어딘가에서 자금 지원을 해 주는 것 같습니다.―
태창이 손해나는 것을 이기봉이 미국에서 받은 원조와 차관을 밀어줘서 버티게 해 주었다. 그것이 다른 그룹에도 영향을 미쳤다.
* * *
“국내에서 외화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
국내에서 외화가 씨가 말랐다.
‘정부의 외환 보유고가 얼마 버티지 못하겠네.’
정부의 외환 보유고가 그리 많지 않았다. 미국은 한국의 재건이 어느 정도 완료되자 원조와 차관을 줄이기 시작했다.
경쟁적으로 시장 확대와 수출 물량을 증가시키자 외화가 더 빠르게 빠져나갔다. 치킨 게임은 갈수록 더 심해졌다.
치킨 게임은 한쪽이 항복하거나 죽어야 끝났다. 서로 상대를 죽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쪽이 유리해. 덤핑으로 아직 손해를 보고 있지 않아.’
게다가 미래 그룹은 외화가 들어오는 곳은 다양했다.
‘수출이 주력이야. 외화가 들어오는 창구가 다양해.’
수산과 식품, 시멘트, 심지어 해운에서조차 외화가 들어왔다.
제일 그룹만 한화로 선박 운임을 받지, 다른 곳에서는 외화로 받았다.
회사를 유지하고 성장하는데 필요한 외화는 충분했다. 이번 치킨 게임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 * *
문제는 태창, 아니 한국 정부에서 먼저 발생했다. 국내의 외화가 마르기 시작했다.
국내 주요 그룹은 삼백 산업과 같은 수입 대체 산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었다.
수입 대체 산업은 수입 원자재를 가공하여 단가를 낮추는 사업이었다. 외화 소비를 크게 줄이지 못했다.
오히려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수입 금액은 더 늘어났다. 외화가 국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줄이지 못했다.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를 국내로 반입하지 말고 유보해 두세요.―
미래 그룹은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를 국내로 들여오지 않았다. 외국에 쌓아 두었다.
―그건 왜 그렇습니까?―
―나중에 쓸 데가 있어요.―
―주위에서 말이 나올 것입니다.―
―선박과 설비들을 수입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하세요.―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자금을 모은다는 이유였다. 외화를 국내로 반입하지 않자 더 귀해졌다.
* * *
“제일 그룹은 정부의 원조 자금을 지원받지 않습니까?”
“지금 정부에도 외화가 없네. 다들 지금 외화를 구하느라 난리야.”
미래 그룹의 국내로 외화 유입을 줄이자 수입 업체들은 외화를 못 구해 난리가 났다. 원재료가 없으면 공장의 문을 닫아야 했다.
국가가 외국에서 받는 원조와 차관은 태창 그룹에서 대부분 소진하고 있었다. 국내에 외화 부족 사태가 나타났다.
외화가 부족해서 상품을 수입할 수 없는 외화 부족 사태, 외환 위기가 시작되었다.
국내 그룹들이 달러를 구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였다. 시중에 환율이 급격하게 오르고 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사돈총각, 우리는 곧 한집안이 될 사이가 아닌가?”
“사장(査丈)어른, 저희도 투자를 많이 해서 외화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보다 낫지 않은가?”
“지금 미래 그룹이 태창과 전쟁 중인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전쟁 중에 총탄과 포탄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이렇게 부탁을 함세.”
재계 3위인 제일 그룹의 회장이 외화를 빌리기 위해 사정했다. 이러다가 정말 외환 위기가 와서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었다.
―물가 폭등으로 서민 경제 위협.―
―수출 업체 간의 지나친 경쟁으로 경제 위기 위험.―
―위기를 부채질하는 정부.―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많은 곳에서 외화를 빌려달라고 사정했다. 그중에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외환 사정이 급박해졌다.
‘슬슬 일을 벌일 때가 되었어.’
다급한 제일 그룹 회장이 직접 집까지 찾아왔다.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사장(査丈)어른, 이번 기회에 전경련(全經聯)을 만드는 것이 어떻습니까?”
“외화를 빌려달라는데 갑자기 전경련이라니, 웬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가?”
“전국 경제인 연합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저희 경제계도 정부에 대항하여 이제 뭉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단체가 필요하겠나? 괜히 정부에 밉보일 뿐일 수 있네.”
제일 그룹 회장은 그런 단체를 만드는 것에 대해 아직은 부정적이었다.
* * *
전국 경제인 연합회는 제일 그룹 회장이 일본 게이단렌(経団連―경단련)을 모델로 하여 1961년에 창립한 것이다.
전경련은 기업들이 정부에 대응할 힘을 모으기 위해 만든 단체였다.
군사 정부가 들어서면서 재벌 그룹들이 사정의 칼바람을 맞았다. 군부에 제대로 당해 보니 경제인들이 힘을 모을 필요성을 느꼈다.
전경련은 군부 독재와 관련이 있었다. 5·16 후 8월 16일에 생겼다.
‘끌려가서 군인들에게 당하니 정신이 번쩍 든 거야. 잘못하면 그때 기업을 통째로 빼앗길 수도 있었어.’
그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이 닥치면 부랴부랴 만들게 될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십시오. 정부에서 지나치게 태창을 밀어준 결과 아닙니까? 한국의 재벌끼리 굳이 이런 이전투구를 할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음. 그런 면이 있기는 하지.”
“이게 다 이기봉의 욕심 때문이 아닙니까?”
“이번에 이기봉과 태창이 너무했어.”
“대한민국 경제인도 뭉칠 필요가 있습니다.”
전경련 창설을 앞당기기로 했다.
“경제인들이 서로 힘을 합치자는 말인가?”
“정부에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체가 필요합니다.”
“생각은 좋은데 다들 이해관계가 달라서 쉽지 않을 거야.”
한국인은 모래알이지만, 잘 뭉치게 하는 적이 가까이 있었다. 일본을 들먹이면 언제나 서로가 하나가 되었다. 한일전은 언제나 뜨거웠다.
“지금 민족의 원수인 일본이 잘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내부에서 서로 총질해서야 되겠습니까?”
“그건 사돈총각의 말이 맞네.”
“국내 회사끼리 싸울 것이 아니라 외국 회사와 싸워야지요.”
“우리도 뭉칠 때가 되었어.”
“그럼 사장어른이 나서 주십시오.”
“……음, 그것은 곤란하군. 사돈어른이 나서는 것이 어떠신가?”
제일 그룹 회장이 총대를 메기 싫어서 아버지에게 회장 자리를 넘겼다.
“저의 아버님이 말입니까?”
“사돈어른이야 인품이나 덕망으로 경제인 연합회의 회장으로 가장 적합한 분이 아닌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제일의 입장에서는 앞장서서 나서기가 부담스러웠다.
‘바라던 바야. 어차피 이쪽이 나서려고 했어.’
미래 그룹은 정부에 잘 보일 필요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총대를 메겠습니다. 대신에 다른 그룹 회장들을 모으는 것은 사장어른이 나서 주십시오.”
“알겠네. 그 일에는 힘을 쏟겠네.”
미래 그룹은 수출에 전념하여 국내 그룹들과는 큰 교류가 없었다. 반면에 제일 그룹은 국내 비중이 높아서 다방면으로 재계에 아는 사람이 많았다.
“회장님이 전경련의 총무를 맡아 주십시오.”
“내가 총무를 말인가?”
부담되고 번거로운 것을 맡기 싫어하는 티를 내었다.
“사장어른, 외화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전경련의 총무에게는 외화 자금을 다른 회원사에 배정하는 일을 맡기겠습니다.”
“돈 관리는 당연히 내가 맡아야지.”
‘총무는 돈 관리가 아니라, 사람을 모으는 일을 하는 거야.’
이 일은 제일 그룹 회장이 맡는 게 어울렸다. 회원들에게 모임을 연락하고 참석을 독려하는 역할이었다.
“그럼 장소는 미래 호텔로 하겠습니다.”
“그래, 경제인 연합회 모임을 하는데 그만한 장소도 없지.”
미래 호텔이 자리를 잡으면서 국내외 행사를 다 가져가고 있었다. 전경련같이 중요하고 큰 행사를 할 곳은 미래 호텔밖에 없었다.
“그럼, 날짜와 시간을 정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나는 아는 이들에게 연락을 돌리겠네.”
* * *
1957년에 처음으로 전국 경제인 연합회가 미래 호텔에서 열리게 되었다.
행사는 미래 호텔의 여러 홀을 터서 아주 성대하게 개최하기로 했다. 정부에 전경련의 위용을 보여 주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했다.
미래 호텔은 서울역 근처라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에게도 편리했다. 전경련은 전국적인 대규모 행사가 되었다.
제일과 미래 그룹에 연관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화가 필요한 기업인들은 다 몰려왔다.
아버지가 회장으로서 전경련 발족을 축하하는 개회사를 했다.
회원들에게 덕담한 후 마이크를 이쪽으로 넘겼다. 그곳에서 원하는 것을 주었다.
“요새 외화 부족으로 모든 회원분의 어려움이 클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버님이 회장이 된 도리에서 미래 그룹은 회원사에 외화를 환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국내로 반입하지 않았던 외화를 들여오기로 했다. 개인 회사인 S.P.A에 쌓아 둔 것까지 포함하여…….
“이 일이 회원분들에게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와아!”
“다행이다.”
“역시 이곳에 오기를 잘했어.”
모임에 참석한 전경련의 회원들이 환호했다. 미래 그룹이 푸는 외화로 그들은 숨통을 틔울 수가 있게 되었다.
급한 불을 끄자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물어뜯을 상대가 필요했다. 그들 앞에 그런 상대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거 모두 태창 때문이 아니오.”
“정부도 문제에요. 한 기업에만 외화를 몰아주는 게 어디 있소.”
“그게 다 이기봉의 짓이 아니겠소.”
“나라가 어떻게 되려는지.”
태창 그룹은 전경련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물어뜯기 좋은 상대였다. 모든 이들이 이기봉과 태창 그룹을 욕했다.
* * *
이런 말이 많은 자리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언론인 기자들이었다. 그들은 현장 분위기를 기사로 받아적었다.
내일 조간이나 석간에 실릴 기사였다. 전경련 모임 소식과 함께 이기봉과 태창을 물어뜯는 기사가 실릴 것이었다.
―정부와 태창 그룹의 정경 유착.―
―지금의 외환 위기는 이기봉의 욕심?―
―손해 보고 팔고 있는 태창 그룹, 이대로 괜찮은가?―
―지금의 고물가는 정부와 태창 그룹의 합작품, 서민을 볼모로 대기업의 배를 불리는 정부.―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가 올라갔다. 기자와 경제인들은 이번 외환 위기의 원인을 알고 있었다.
정부의 한 회사에 대한 지나친 보조금 지원과 태창의 무리한 덤핑 판매 때문이었다. 덤핑 판매도 나라의 경제력이 받쳐 주어야 효과가 있었다.
부족한 외환 보유고를 가진 상태에서 과도한 덤핑 판매는 나라의 경제를 망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도 있었다. 외화를 많이 보유한 사람이었다.
‘나도 나쁘지 않아. 이번에 환차익이 쏠쏠하겠어.’
총탄과 포탄을 미리 잔뜩 준비해 두었다. 그것은 태창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태창은 처음부터 전쟁 상대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경제계 전체가 상대였다. 그것을 위한 실탄이었다.
총탄과 포탄을 한 번에 퍼붓고 상대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환차익은 그러한 전쟁의 전리품이었다.
‘이건 승리자가 가져야 할 정당한 몫이야.’
정당은 애매하지만 당당은 확실했다. 최고의 재벌이 적을 상대하는 방법이었다.
“사돈총각 덕분에 한숨을 돌렸어.”
“곧 한집안이 될 사이가 아닙니까.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전경련 회원들에게 신세를 지우고 돈도 벌었다.
‘환차익까지 포함하면 실탄이 더 두둑해지겠어.’
태창과의 치킨 게임에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