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73)
첫 대면식
그 해의 마지막 날 초유진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집의 규모와 아름다움에 놀랐다. 미래에나 볼 수 있는 재벌가의 집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세상에서 이렇게 크고 멋진 집은 처음 봐요.”
그녀가 놀랄만했다. 주택이 대지가 천 평에 건평이 4백 평이었다. 주택이 아니라 저택이라고 부를 만했다.
“미국의 유명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겼어.”
“재벌은 사는 곳도 다르네요.”
설계도 외국에 맡겨서 미국의 현대적인 저택과 비슷했다. 자랑을 더 했다.
“크기로는 경무대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클걸. 멋지기로 따진다면 최고야.”
‘이런 것은 자랑해야 제맛이지. 자랑하지 않고 부러움을 받지 않는다면 이런 집을 왜 지어. 누가 이 공간을 다 쓴다고…….’
이런 공간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는 이들이 있었다. 제일 그룹의 셋째와 누나였다. 집에 숨겨진 방들이 많아서 밀회를 즐기기에는 딱 맞았다.
집이 크다 보니 고용인들도 많았다. 예전에 이미자를 식모로 쓰던 것과 달랐다. 집안에서 일을 보는 남 집사와 여 집사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넓은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도 있었다.
인건비가 저렴하기에 고용인을 팍팍 썼다. 그래도 될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다. 재벌은 일제 강점기의 자이바츠(財閥)를 말했다. 재벌이라고 불릴 만큼의 부자가 이미 탄생했다.
‘재벌이라는 말은 오래되었어. 일본에서 사라지고 한국만 남은 것뿐이야.’
“저곳이 날씨가 좋으면 밖에 나와 책을 읽는 곳이야.”
고정석인 나무 그 아래 선베드를 가리켰다.
“오빤 밖에서도 독서를 하시네요. 역시 지적이에요.”
‘플레이보이지를 읽는 것도 독서긴 하지.’
플레이보이지는 놀 줄 아는 지적 남성의 표상이었다.
초유진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 집사가 마중하러 나왔다.
“이분도 오늘 가족과 함께 식사할 것이니 준비해 주세요.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알려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도련님.”
거실이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큰 응접실에서 식사 시간을 기다렸다. 마호가니 원목에 소가죽을 두른 소파에 앉아서 음악을 들었다.
“오빠, 여기 TV도 있네요.”
“응, 컬러 TV야. 그런데 볼 만한 것은 없어.”
“컬러 TV도 있어요?”
“응, 미국에서는 컬러 방송도 해.”
“미국은 역시 다르네요.”
미국은 꿈의 나라였다. 그곳에 한번 가 보는 것이 소원인 사람도 있었다.
“한국에서 TV 방송도 해요?”
“응. 프로그램은 몇 개 없지만……. 얼마 전에 시작했어.”
작년에 대한 방송에서 TV 프로그램을 송출했다. 자체 제작 방송이 별로 없어서 외국의 방송을 수입해서 틀어 주었다.
전국에 TV를 가진 사람이 거의 없어서 방송이라는 것이 별 의미가 없었다. 일부 서울의 부자들만 TV를 보았다.
“그래도 가끔 재미있는 것도 해. 용산 미군 기지의 방송이 이곳에서 잡히거든.”
이곳은 용산과 가까운 한남동이었다. 이곳에 이 시대에 쓸모없는 컬러 TV가 있는 이유였다.
가끔 용산 기지 방송국에서 미군들을 위한 재미있는 방송들을 틀어 주었다. 그중에서 컬러도 있었다.
‘역시 그런 것은 흑백보다 컬러가 낫지.’
이렇게 유진이와 식사를 기다리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손님이 왔다는 말에 아버지가 나오셨다.
“이 아가씨는 우리 회사의 모델이 아니냐. 왜 집에 데리고 왔지?”
“안, 안녕하세요. 초유진입니다.”
아버지는 두 사람이 사귀는 것을 몰랐다. 비밀스럽게 연애하기도 했고 회사 안의 대부분이 나의 사람이었다.
지금부터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잘 이야기해야 했다. 유진이가 받아들여지고 안 들여지고는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달렸다.
초유진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와! 나도 상당히 떨리는걸. 긴장한 그녀도 나름 나쁘지 않아.’
그녀와 다른 이유로 떨렸다.
* * *
“아버지, 진정하시고 들으세요.”
“강철아, 설마…….”
“당신, 설마가 무슨 말이에요.”
어느새 어머니까지 응접실에 나오셨다.
“제가 진지하게 사귀는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시고 어머니는 영문을 모르셨다.
“아들, 그게 무슨 말이니. 이 아가씨가 네가 사귀는 사람이야?”
“네, 일전에 말씀드렸죠. 연애로 사귀겠다고요. 어머니,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시는 며느릿감입니다.”
“나는 반대다.”
“당신 왜 그러세요. 예쁜 아가씨인데…….”
“당신은 가만있어요.”
연속극과 달리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더 반대하셨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시면, 어머니의 마음도 바뀔 수가 있지. 선수를 치자.’
“어머니, 며느릿감이 예쁘죠.”
“조금 서양인 같은 느낌이 있는데……. 요새는 그런 아가씨가 인기라더라.”
“역시 어머니가 신세대에요.”
졸지에 아버지를 구세대로 만들었다. 아버지는 체면이 있으셨다. 유진이가 있는 데서 대놓고 뭐라는 못하셨다.
“어머니, 유진 양의 할아버지가 미국인이에요.”
“그럼, 이 아가씨도 미국인이니?”
“아니에요. 아버지가 혼혈이시고, 어머니는 한국인이시라서 한국인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이 아가씨의 아버지는 뭐하시니?”
드디어 나올 것이 나왔다. 그것을 다른 말로 돌렸다.
“할아버지가 미국에서 백만장자예요.”
어머니가 초유진의 아버지를 물었는데, 할아버지가 백만장자라는 동문서답을 했다. 그런데 이게 먹혔다.
백만장자라는 말에는 강한 어감이 있었다. 옛날로 친다면 할아버지가 만석꾼이라고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재벌가 사모님이 되었어도 옛날의 감각을 못 버리셨다. 아직 아버지가 정미소를 하던 그 시절의 감각으로 생각하였다.
50년대에 백만장자라고 하면 엄청났다. 지금은 자신이 그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백만장자라는 말이 크게 느껴졌다.
‘백만장자라는 말이 부자의 대명사가 되었어.’
“이 아가씨의 할아버지가 미국에서 백만장자라고? 그게 정말이니?”
“어머니, 이 아가씨가 뭐예요. 초유진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유진 양의 할아버지가 백만장자입니다.”
백만장자라는 말에 아버지도 마음이 흔들렸다.
“유진 양의 할아버지가 미국의 백만장자였냐? 그게 사실이냐.”
“네, 맞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도 관심을 보이셨다. 분노가 누그러들었다. 아버지도 어머니와 마찬가지셨다.
백만장자는 큰 울림이 있었다. 자신이 한국의 천만장자, 억만장자라도 비슷했다. 미국과 백만장자가 결합하면 더 인상이 강렬해졌다.
한국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동경했다.
―미국은 집마다 차가 있대.―
―나라가 얼마나 넓은지 차를 타고 가도 끝이 안 보인다고 해.―
―비싼 스팸을 집에 쌓아 두고 먹는대.―
‘이건 아니지. 스팸이 한국에만 고급 음식이지, 미국에서는 싸구려 음식으로 잘 먹지 않아.’
신탁 통치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사람들의 뇌리에 강력하게 박혔다.
미국은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큰 나라라고……. 그것은 군사 독재 시절의 대통령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미국 이야기만 나오면 꼬리를 내렸다.
‘사실 그리 대단한 나라는 아닌데…… 한국전쟁의 충격이 너무 컸어.’
미국에 대한 감정은 임진왜란 직후 조선의 명나라와 같았다. 미국 앞에서는 아버지도 작아졌다.
‘최고의 재벌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정도는 가뿐히 밟아 줘야지.’
그것과는 별개로 지금 이 시대 사람이 가진 미국에 대한 이미지를 이용하기로 했다. 거기에 한 방을 더 날렸다.
“유진 양의 할아버지가 S.P.A에 백만 달러를 투자하셨습니다. 유진 양의 이름으로요. 그게 지금은 3백만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가질 것입니다.”
“3백만 달러? 이 아가씨, 아니, 유진 양이 부자이네. 호호.”
어머니의 기분이 훨씬 좋아지셨다. 3백만 달러는 이 시대에 큰돈이었다. 그것도 지금같이 달러의 가치가 올라있을 때에는….…
“그런 이야기는 회사에서 못 들었는데……. 그게 정말이냐?”
“이런 일들은 제 선에서 처리되잖아요. 그래서 아버지에게는 보고가 안 되었어요. 궁금하시면 회사에 가셔서 확인해 보세요.”
아버지에게 자신 있게 당당하게 말했다. 서류상에는 유진이 S.P.A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정확한 진실을 아는 사람은 심복인 이학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누가 미래 그룹의 실세인지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 정도도 눈치가 없으면 비서실장의 자리를 못 맡기지.’
* * *
“그런데 강철이가 말하는 S.P.A가 뭐예요?”
“여자는 몰라도 되는 일이야. 그런 게 있어.”
“지금 여자라고 무시하는 거예요?”
아버지도 S.P.A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여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대충 이야기를 했는데, 어머니가 아버지의 그런 대답에 화가 났다.
며느리 앞에서 무시하는 것으로 느꼈다. 이때 바로 내가 나섰다.
“S.P.A는 미국의 아주 큰 백화점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아주 인기가 있죠.”
“그럼, 유진 양이 미국의 큰 백화점을 가졌다는 말이니?”
“뭐, 그런 셈이죠.”
“당신이 강철이처럼 이렇게 쉽게 이야기해 주면 어때서 그렇게 이야기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버지가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무셨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무언가 이상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런데 당신은 유진 양을 어떻게 알아요.”
“미스 미래 모델이었어. 미래 그룹의 홍보 모델도 했고.”
“어디에서 많이 본 미인 아가씨라고 생각했는데…… 신문에 나온 그 아가씨였네.”
어머니가 신문을 잘 안 보셨다. 그래서 유진 양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도 익숙한 얼굴이라 그녀가 이쁘게 보였다.
사람은 적당히 눈에 익은 얼굴이 예뻐 보였다. 그래서 카메라 마사지가 효과가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 미인이지요. 그것뿐만 아니라 지적이에요. 유진 양이 미술에도 조예가 깊어요. 앞으로 미술관도 경영할 거예요.”
“미술?”
“네, 미술관을 운영하는 거요.”
“강철 씨, 잠깐만요. 그건…….”
초유진이 미술관 운영이라는 말에 당황했다. 이건 사전에 협의가 된 것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미술관이라는 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에게 당황하지 말라고 부모님이 안 보이게 윙크했다.
“미술관을 운영한다고? 이 아가씨가 엄청나게 똑똑한 모양이구나.”
“네, 그래요.”
‘미래에는 재벌 집 사모라면 미술관 운영은 개나 소나 다 하지만…….’
미술관 운영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미술관의 운영과 관리는 미술관의 코디네이터가 했다. 재벌 집 사모들이 하기 좋은 일, 아니, 사업이었다.
미술관 운영도 일종의 사업이었다. 미술품은 부동산만큼 큰돈이 되었다. 무엇보다 부동산을 하는 것보다는 고상해 보였다.
‘복부인보다는 미술관 관장이 더 있어 보이지.’
초유진에게 미술관을 이야기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미술품이나 예술품은 참 좋은 가치 저장 수단이었다. 대부분 경우 그것을 샀을 때보다 가격이 많이 올랐다. 거기에 미술품은 상속할 때 세금을 적게 내었다.
상속세는 보통 매입했을 때 가격이나 평가액을 기준으로 매겼다. 하지만 미술품의 정확한 평가액은 측정하기 어려웠다. 대부분 실제 가격보다 낮은 평가액으로 상속세를 내었다.
돈도 되고 상속세도 적게 내어 미술품은 재벌 집 사모님의 좋은 재테크 취미였다. 재테크를 하면서 미술관을 운영하면 사람들 앞에서 있는 척하기에 좋았다.
집에서 노는 것보다 이런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보이기에 더 나았다. 미술관 관장은 재벌 사모의 패시브 직업이었다.
‘자신을 따르는 여사들을 불러 모아 미술관에서 노닥거리기에도 좋지.’
여러모로 미술관 관장 자리는 재벌 집 사모들이 하기 좋은 일이었다. 최고 재벌의 사모에 어울리게 초유진에게 그 일을 권유하는 것이다.
“유진이가 그림을 보는 눈이 있어요.”
“그래, 정말이니?”
“……네.”
그녀는 당황했지만 잘 받아넘겼다.
‘없으면 그림 보는 눈을 만들어 주면 되지.’
미술을 잘은 몰라도 미래에 아주 인기 있는 그림이나 화가는 대충 알고 있었다. 지금은 그런 미술품이 그리 비싸지 않을 시기였다. 나중에 S.P.A 지분을 처분하여 유진이에게 줄 것이었다.
그녀에게 미술관을 지어 주고 전담 코디네이터도 붙여줄 생각이었다. 기억이 나는 유명한 작품이나 작가를 알려 주면서…….
‘싸게 비싼 작품을 살 수 있는 시대야.’
먹고살기 바쁜 시절이었다. 이 시기의 배고픈 화가들을 지원하면 오래지 않아 그녀는 미술계의 큰손이 되어 있을 것이었다.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대한민국의 미술 발전에 큰 공헌을 할 거예요.”
‘큰돈을 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