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8)
달러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전황이 급속히 안 좋아졌다. 서울은 금방 함락되고, 그 사실에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
‘아는 대로 흘러가는군.’
라디오에서는 국군이 선전한다고 떠들고 있지만, 부산으로 피난민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서울이 무너지면서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었어. 누가 정부가 하는 말을 믿어.’
대전이 밀리면서 전선이 급격히 무너졌다. 미 24사단의 딘 소장도 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히는 수치를 당했다.
미국은 급하게 일본에 주둔하는 24사단뿐만 아니라 다수의 부대를 한국으로 보냈다. 부산으로 다수의 미군과 유엔군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곧 대구로 옮겼던 대한민국 임시 수도를 부산으로 옮겨 올 것이었다. 이제 인천 상륙 작전이 있을 때까지 지루한 낙동강 전투가 벌어질 것이었다.
‘다행이다. 그전에 준비를 마칠 수가 있었어.’
그사이에 미래 상사는 준비를 마치고 업무를 시작했다. 광복동에 금은방과 환전소가 문을 열었다.
일본에서 수입한 국수 기계가 밀가루를 국수로 만들고 있었다. 자갈치로 들어온 생선 중 가치가 낮은 잡어들은 어묵 공장에서 어묵으로 가공되어 팔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남포동 시장은 넓어지고 있었다. 남포동의 가게들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피난 온 사람들이 함석판과 판자로 부평동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에 맞추어 부평동의 땅들에 정식으로 가게를 냈다.
부평동 깡통 시장의 시작이었다. 미군들이 대량으로 들어옴으로써 그들이 가지고 온 통조림과 전투 식량인 C―레이션이 부평시장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이군.’
3회차에서는 2회차 때 학도 의용군으로 끌려가서 죽은 것이 트라우마가 되었다. 휴전되어 서울로 돌아갈 때까지 부산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숨어 있었다.
그때 대학생들을 학도 의용군으로 끌려가게 하지 않기 위해 임시 학생증을 부산에서 발급했었다. 그것을 알게 되었지만,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임시 학생증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안 끌려간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번 회차에는 임시 학생증을 받고 부산에서 학교도 다니면서 사업을 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것을 포기했다.
보다 적극적으로 이 상황에 대처하기로 했다. 군대에 들어가면 군대에 끌려갈 일이 없었다. 말도 안 되는 말장난 같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다. 다만 가려는 군대는 일반 군대는 아니었다.
한국에 보급되는 미군과 유엔군의 물자는 미국 본토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일본에서 오는 경우도 많았다. 미국에서 물자가 오든지, 일본에서 물자가 오든지, 그 물자가 반드시 거치는 곳이 있었다.
그것은 항구 도시인 부산이었다. 미군의 한국전쟁 군수 사령부가 부산에 있었다. 그러한 군수 사령부의 미국 군무원이 되기로 했다.
* * *
이 일은 빠르게 서둘러야 했다. 곧 실력 좋은 이들이 대거 부산으로 몰려온다. 쓸만한 미군 군무원이 필요한 시점에 군수 사령부를 방문하고자 했다.
1950년 7월 4일, 크룸프 가빈 준장과 참모와 대원들은 극동 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부산에 도착하여 유엔 사령부 소속 국제군을 지원하기 위해 부산 기지 사령부를 조직했다.
‘며칠 안에 움직여야 해. 지금 아니면 들어가기가 힘들어. 모든 것에 적기라는 게 있어.’
기지 사령부는 곧 있어 7월 13일에 부산 군수 사령부로 개편되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부산에 미군 군수 사령부가 만들어졌다는 말을 듣고 바로 움직였다.
미국도 부산에 도착하자 미래 상사와 비슷한 처지에 빠졌다. 사람은 많은데 쓸만한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든 사람을 구해서 써야 했다.
“김춘삼 씨. 이번에 새로 생긴 미군 군수 사령부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요?”
“예. 지 사돈의 팔촌이 그곳에서 청소부로 일하게 되었스예.”
“그것보다 좀 더 가깝고 백을 쓸 만한 사람으로 알아보세요.”
“동생들을 다 풀어서 알만한 사람을 뒤지뿔랑게 걱정 마이소.”
“돈은 얼마가 들어서 상관없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세요.”
미리 부산에 자리를 잡은 덕분에 많은 돈이 벌리고 있었다. 많은 피난민이 몰리면서 금은방과 환전소, 국수, 오뎅 공장에서 돈을 쓸어 담고 있었다.
돈은 충분했다. 미군 군수 사령부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투자한 돈을 몇 배, 아니 몇십 배를 뽑아낼 수가 있었다.
“부사장님, 지 사촌이 그곳 장교와 눈 맞았어예.”
‘남자는 다 똑같군. 벌써…….
“잘되었네요. 이거 받으세요. 그 사람에게 군수 사령부의 통역 군무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알려주세요.”
그에게 달러 뭉치를 건네주었다. 바로 며칠 후 연락이 왔다.
“부사장님, 됬십니더. 내일 모레, 부대로 들어가시면 됩니더.”
“누구를 만나면 됩니까?”
“군수 연대의 앤더슨 중령이라꼬 하데예. 여기 출입증도 얻어 왔습니더.”
“고생했습니다.”
연줄과 돈, 그리고 준비된 실력으로 통역 장교를 모집하는 중령 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영어로 된 영문 소설과 경영학 도서, 그리고 한국대 학생증을 들고 있었다. 이때를 대비해서 서울 집에서 가져온 물건들이었다.
* * *
이 몸의 주인은 영어를 잘했다. 하지만 나도 만만치 않았다. 세계 경영을 한다고 외국을 많이 다녔었다. 이 시기의 웬만한 한국대 대학생보다 영어 실력이 나았다.
거기에 책으로 배운 영어가 아닌 몸으로 배운 실전 영어였다. 실제 외국을 다니면서 익힌 생활 및 비즈니스 영어였다. 자연스러운 발음으로 면접을 보는 장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영어 발음이 상당히 좋군요. 이제까지 만난 사람은 영어를 잘한다고 하면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는데……. 아주 좋습니다.”
“앤더슨 중령님,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면접을 보는 군수 연대의 앤더슨 중령은 영어 실력에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런데…… 그대가 앞으로 하게 될 군수 업무는 영어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본인이 그대를 채용해야 할 이유를 설명해 보세요.”
‘뭐야……. 입사 면접도 아니고 왜 이리 까다로워. 그래도 미리 준비했지.’
그에게 원서로 된 경영학 원론 책을 내밀었다.
“제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군수 업무는 기업으로 친다면 재무와 재고 관리, 인사를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경영학을 전공한 저보다 괜찮은 군무원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고요. 음…… 그런데 어느 학교입니까?”
한국대 학생증을 그에게 내밀었다.
“저는 한국대가 한국 최고의 대학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건 한국에서만 그렇지요. 면접을 본 사람 중에는 일본의 와세다 대학이나 동경대 출신도 있습니다.”
미군의 군수 사령부의 군무원은 꿀보직이었다. 일본의 명문대 출신도 지원했다.
“물론 그런 사람도 뛰어난 인재라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미군의 군무원은 영어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말과 한국 사정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일본에서 생활한 사람보다 제가 이곳의 사정을 더 잘 알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대답이 엔더스 중령의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한번 고려해 보겠습니다. 우선 여기에 머무는 주소와 연락할 방법을 알려 주세요.”
그에게 영어로 사는 주소를 적어 주었다.
“어?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군요.”
“네, 그렇습니다. 바로 내일이라도 출근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임시 정부 청사와 미군의 군수 사령부가 들어설 장소는 정해져 있었다.
모두 부민동 인근이었다. 그곳이 부산에서 살기에 제일 좋았다. 변함없이 자신의 집과 가까운 곳에 임시 정부 청사를 정했다.
그러자 줄줄이 그곳으로 관청이 들어왔다. 그것은 한국 정부와 협력해야 하는 미군도 마찬가지였다.
‘미군의 군수 사령부와 대한민국의 관청들이 죄다 여기로 들어오지.’
미리 알고 군수 사령부 옆에 집을 마련했다. 군수 사령부가 다른 곳으로 정해져도 상관없었다. 부민동에 고급 주택을 여러 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어디로 들어와도 가까운 곳에 주택을 마련할 수 있었다.
“잘되었군요. 그럼 가서 연락을 기다리세요.”
“혹시 연락이 안 되거나. 제가 연락을 못 받으면 어떻게 합니까?”
“부대 앞에 공고를 붙일 것입니다. 모래까지 연락이 안 오면 안 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모래에 부대 앞으로 확인하러 가야겠습니다.”
그러자 앤더슨 중령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그대는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이는군요.”
그가 은근하게 합격했다고 알려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그대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나 나타나면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저보다 더 나은 사람은 만나기 힘들 것입니다.”
“하하. 자신감이 넘치는군요. 좋아요, 좋아.”
기분 좋게 면접을 보고 나왔다. 나올 때 쳐다보니 앤더슨 중령의 표정이 좋았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의 말대로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안되면 임시 학생증을 발급받아야지. 최선이 아니면 차선도 마련해 두어야 해.’
그런데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모래가 되기 전에 미군이 집으로 방문했다. 그 병사가 내일부터 사령부로 출근하라고 말했다.
‘기회는 준비된 자의 것이야. 하하.’
그렇게 무난하게 미군 군수 사령부의 군무원으로 채용되었다.
‘이제까지는 계획대로 되었어. 흐름이 좋아.’
최고의 재벌로 가는 시작이 좋았다. 제대로 흐름에 올라탔다.
* * *
군수 사령부에서 앤더슨 중령과 다시 만났다.
“자네와 함께하게 되어 기쁘네.”
“저도 한국과 미국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하하. 그럼 양국을 위해서 잘해 보세. 우선 첫 번째 임무를 주겠네.”
‘뭐, 벌써 임무야. 겨우 두 번 만나고 이러는 게 어디에 있어.’
마음과 달리 말이 자동으로 나왔다.
“얼마면 되겠…… 아니, 뭘 하면 되겠습니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네.”
‘이거 불길한데……. 어렵지 않다고 말하고 보통 어려운 일을 시키는데…….’
저번 회차 때 직원들에게 잘하던 말이었다.
― 이건 자네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야. 믿고 맡기는 것이니. 제대로 해내게.―
― 예. 회장님.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사령관님이 부산에 오셨는데 계속 막사에 머무르고 계시네. 계속 그래서야 하겠는가? 사령관님이 머무르실 적당한 관사를 알아보게.”
“사령관님께서 어떤 집을 원하십니까?”
“아무래도 한국의 변소는 적응이 안 되네. 실내에 양변기가 있는 집이 좋겠지.”
“알겠습니다. 바로 확인하고 보고드리겠습니다.”
‘일단 너무 쉽게 구해 주면 안 되겠지. 적당히 힘든 척을 해야겠어.’
“첫 번째 임무를 잘 해내리라고 믿네. 나를 실망시키지 말게.”
“그럴 일을 없을 것입니다.”
첫 번째 임무에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그런 집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인이나 관료에게 갈 것으로 생각할 집이 이렇게 사용되네.’
미군과 정치인이 좋아할 집을 미리 선점했다. 아직 그런 집이 몇 채 더 남아 있었다.
양옥 주택 중에서 제일 좋은 집을 크룸프 가빈 준장의 관사로 주기로 마음먹었다. 앤더슨 중령과 그는 내가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이었다.
군수 사령관은 그 집을 관사로 마음에 들어 할 것이었다.
“앤더슨 중령님. 정말 힘들게 구했습니다.”
“그래, 어떤 집인데?”
“우선 보러 가지죠.”
며칠 후 앤더슨 중령을 모시고 그 집으로 갔다.
* * *
그 집을 보고 랜더슨 중령이 만족했다. 부민동에서 제일 좋은 집이었다.
“이런 집을 부산에서 어떻게 구했나? 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인데.”
“일제 시대에 부산에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집입니다.”
“일본인들 집치고는 신식이군.”
“부산에도 몇 채 없는 집입니다.”
“수고했네. 그런데 이곳의 집주인은 얼마를 달라고 하던가?”
“집주인은 한국을 위해서 오신 미군을 위한 집이라 알아서 달라고 했습니다. 앤더슨 중령님께서는 얼마면 되겠습니까?”
‘이러면 헐값을 부를 수가 없어. 미국인은 애국자에 약하지.’
“그분의 마음은 고마우나, 그럴수록 더 제값을 쳐 주어야지.”
‘걸렸다.’
“괜찮습니다. 그분은 저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왜 며칠이나 걸렸나.”
“군수 사령관님을 위해서 더 좋은 집을 찾아다녔습니다. 최고로 좋은 집을 찾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 말은 이 집이 부민동에서 최고라는 말이었다.
“큭…….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께서 한국을 위해서 먼 곳에 온 미군에게 이 집이라도 드리라고 하며 주셨습니다. 돈은 받을 필요 없으시다고 하십니다.”
“아니, 그러면 더 확실하게 해야 하네. 어때, 10,000달러면 괜찮겠는가?”
“네, 괜찮습니다.”
“……”
준다는 돈을 냉큼 받았다. 그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앤더슨 중령은 미국의 집값을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했다. 1950년은 2차대전이 끝나면서 미국의 집값이 폭등한 시기였다.
미국에서는 상당히 저렴한 집값이지만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는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곧 한국에서 달러의 가치가 폭등한다.
50년 1달러가 1,800원이었다. 그것이 53년이 되면 6,000원, 화폐개혁으로 60환이 되었다. 이것은 공식 환율이었다. 암시장에서는 더 비쌌다. 모든 사람이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원 대신에 달러를 원했다.
외국에서 물건을 수입해 오려 해도 달러가 필요했다. 1,800만 원의 가치가 2년만 지나면 3배로 늘어난다. 하지만 돈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안 되었다.
그것이 달러라도 돈은 계속 굴려야 하는 법이었다. 그 돈을 굴릴 방법을 찾았다.
‘누구는 이 시기에 일본에 고철을 팔고 설탕과 비료를 수입해서 1년에 60억을 벌었지.’
이 시기에 1,800만 원은 큰돈이지만 그런 이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돈은 눈덩이처럼 굴려서 키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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