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Expenses RAW novel - Chapter 121
제121화
위라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새카만 눈동자로 그의 얇은 입술을 응시하다, 마침내 천천히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적극적이지도 않았을뿐더러 서툴렀다. 부드러운 분홍빛 혀를 내밀어 그의 입술을 핥다가 눈을 깜박거리며 물었다.
“됐어요?”
조개가 까만 눈동자를 굴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평소에 하는 것처럼 해야지.”
위라는 조개만큼 뻔뻔한 인간이 아니었다. 살짝 깨물다 그만 후퇴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안 할래요. 맛없어요.”
조개가 실소하며 그녀의 얼굴을 받쳐 들고 입술을 포갰다. 그는 몇 번이나 맛을 본 후에야 그녀를 놓아주었다.
* * *
칠월 말, 위쟁과 이송의 혼사였다.
혼례식 전날, 위쟁은 은행원에 가서 두 씨에게 말했다. 은행원에 사는 두 씨는 진즉에 소식을 들어 딸이 여양왕부의 세자에게 시집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매우 기뻐하며 위쟁이 복 받은 딸이라고 칭찬했다.
그녀가 은행원에 산 지도 벌써 팔 년이었다. 시간은 그녀의 모든 기품과 여유를 앗아 가 버렸다.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귀티 나고 여유로운 다섯째 부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 씨보다 한 살이 어렸지만 벌써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했고, 얼굴의 주름도 뚜렷하게 파였다. 남루한 옷은 너무 많이 빨아서 색이 하얗게 바랬다. 그 궁상맞은 모습에서 영국공부의 다섯째 부인이라는 사실을 찾아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위쟁은 그녀의 모습을 보자 코끝이 찡해졌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제가 여양왕부에 들어가서 집안일을 관장하게 되면 어머니를 그리로 모셔 갈게요. 다시는 어머니가 여기에 계시게 두지 않을 거예요.”
이송은 여양왕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그녀가 시집가면 적장 며느리가 되는 것이었으니, 여양왕부의 집안일은 당연히 그녀가 맡게 될 터였다.
두 씨는 뛸 듯이 기뻐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연신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 상미도 있잖니. 가족이 같이 살아야지…….”
위쟁은 위상미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두 씨는 볼 때마다 그를 언급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했다.
이송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녀도 이송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그에게 시집가는 건 오로지 자신의 평판을 위한 일이었다. 발붙일 곳만 있으면 될 뿐,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았다.
다음 날.
영국공부는 아가씨를 시집보내는 날이라 안팎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문과 창에는 커다란 ‘쌍희’(결혼이나 약혼 등 경사스러운 날에 붙이는 경사를 나타내는 글자인 두 개의 喜, 기쁠 희 자로 구성) 자가 붙었고, 낭하에는 커다랗고 붉은 등롱이 달렸다. 아침부터 바깥에선 폭죽을 터뜨려 경사를 알렸다. 오랜만에 영국공부가 왁자지껄했다.
혼례가 치러질 시간이 되고, 여양왕부 사람들이 와서 신부를 맞이했다.
이송은 붉은 혼례복을 입고 준마를 타고 왔다. 준수한 얼굴에는 좋아하는 기색은커녕 소름 끼치는 냉랭함만 감돌았다.
신부를 맞이하러 가는 부인이 위쟁을 업고 안에서 나왔을 때도 그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얇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말을 타고 떠났다. 신부 맞이 행렬은 그대로 여양왕부에 도착했다.
신랑과 신부가 어른들께 인사했다. 다른 사람들은 흐뭇하게 보는데, 정작 여양왕과 고양 장공주는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옆에 있던 이상도 기가 막힌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위쟁을 바라보는 눈에 경멸이 한껏 담겨 있었다.
어른들께 인사를 한 후, 다음 순서는 신방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송은 신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합근주(合卺酒, 결혼할 때 함께 잔을 나누어 마시는 술)를 마시지도, 개두를 벗겨 주지도 않고 뜰에 있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러 갔다. 왁자지껄해야 마땅한 신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모든 사람이 신부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아무도 그녀를 챙겨 주지도, 환영하지도 않았다.
위쟁을 따라온 시녀 은루가 억울함에 울상이 되었다.
“아가씨, 이거 사람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요…….”
위쟁은 고개를 떨구었다. 개두 아래에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손에 쥔 비단 수건은 하도 비벼서 해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여양왕부가 일부러 겁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순진한 생각이었다. 이건 맛보기에 불과했고, 더한 일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위쟁은 술시(戌時, 오후 일곱 시에서 아홉 시 사이)가 될 때까지 침상에 앉아 있었다. 창밖에 땅거미가 내려앉고, 날이 어두워지도록 이송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온몸이 쑤셨다. 결국 개두를 벗어 던지며 은루에게 말했다.
“옷 갈아입어야겠어. 안 기다릴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이송이었다.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송이 무서웠다. 그날 아침, 그는 거의 그녀를 목 졸라 죽일 뻔했다. 그날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는 화가 나면 너무 폭력적으로 변해서 쉽게 건드릴 수 없었지만, 그녀의 성질도 대단했다. 아무리 무섭다 한들 쉽사리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송은 술을 많이 마셨음에도 정신은 말짱했고, 표정도 썩 좋지 않았다. 그는 다가오지 않고 눈앞의 위쟁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어쩌다 위라와 헷갈린 걸까? 어디가 닮았다고?
정말이지 하늘과 땅 차이인데.
한참이 지나고, 위쟁은 이렇게 버티는 것도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입을 열려던 그때, 이송의 뒤에서 화려한 금포를 입은 남자 너덧 명이 나타났다. 다들 술을 잔뜩 마신 이송의 친구들, 고양 장공주의 말을 빌리자면 불량배들이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관료 신분과 집안을 등에 업은 채 재주도 없이 빈둥빈둥 놀기만 하면서 툭하면 말썽을 일으켰다.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추태를 부리는 그들이 위쟁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위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송이 누군가 그의 어깨에 걸친 손을 치우고는 어깨를 털며 냉랭하게 말했다.
“너희한테 맡긴다. 숨만 붙어 있게 해 두면 돼.”
위쟁이 뒷걸음질 쳤다. 그녀는 두려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송, 이러지 마…….”
이송은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하인에게 피자탕(避子湯, 피임을 위한 약탕)을 가져오라 한 다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 버렸다.
* * *
팔월 초하루, 이송이 처가에 인사하러 가는 날이었다.
위곤은 사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갖춰야 할 예의는 갖춰야 했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한 후 테두리에 연꽃 문양이 장식된 검은색 직철을 입었다. 전청에 가서 영국공과 태부인에게 예를 갖춘 후 아래에 있는 두메밤나무 관모의에 앉았다.
이미 전청에는 사람이 많았다. 용원, 죽원, 이원, 매원 사람들이 모두 와서 미소 띤 얼굴로 신혼부부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진시가 되자, 하인이 들어와서 여양왕부의 마차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얼마 후, 이송과 위쟁이 들어왔다. 이송은 보상화문이 수놓인 짙은 남색 금포를 입고 검은 장화를 신었다. 전청에 들어온 그는 앞에 앉은 영국공과 태부인에게 예를 갖췄다.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 이전의 공격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온순한 표정이었다. 위곤을 마주하자 이번엔 ‘아버님’ 하며 인사하기까지 했다.
위곤은 깜짝 놀라서 그만 사레가 들렸다.
위곤은 이송의 성격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오늘 또 한바탕 소란을 피울지도 모르겠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얌전히 사람을 놀라게 하다니. 위곤은 그의 팔을 잡고 일으켰다.
“자, 자. 앉게.”
이송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던 관모의에 앉았다.
옆에 있던 위쟁은 연둣빛 비단 웃옷에 수홍색 비단 치마를 입었다. 머리는 양 갈래로 땋아 뒤쪽으로 틀어 올린 후, 금사로 원앙을 만든, 새 장식 잠(簪)을 꽂았다. 그녀의 입술은 미소를 머금었고, 두 볼은 발그레했다. 출가하기 전과는 인상이 많이 달라졌다.
혼인한 소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풋풋함 속에 요염함이 들어 있었고, 일거수일투족에 운치가 있었다. 그녀가 몸을 굽혀 어른들께 일일이 예를 갖추며 차를 올렸다.
“할아버지, 할머니, 차 드세요.”
영국공은 아직도 그녀에 대한 화가 풀리지 않았다. 차를 마시긴 했지만 표정은 딱딱했다. 태부인 나 씨는 그래도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위쟁의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
“가서 앉아라, 너무 서 있지 말고.”
멈칫하던 위쟁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송의 옆에 있는 관모의로 걸어갔다. 발걸음은 아주 느렸고, 의자에 앉은 후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영국공과 태부인이 몇 마디를 더 한 후, 이송과 위쟁에게 점심을 먹고 가라고 했다. 이송은 거절하지 않았다.
점심을 먹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다. 이송은 영국공, 위곤 등 몇 사람과 전청에 남고, 부인들은 위쟁을 데리고 옆에 있는 화청에 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두 씨가 없으니 부인들도 말을 많이 하기도 민망했다. 그저 부부 사이에서, 고부 사이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좀 알려 주고 시댁에서 어떻게 지내야 할지를 일러 주는 정도였다. 위쟁은 내내 고개를 떨군 채 대답하지 않았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았다.
대부인과 넷째 부인은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었으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째 부인은 요즘 남편이 바깥에서 데려온 딸 때문에 이미 충분히 힘든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수다쟁이 셋째 부인만 궁금증을 마음에 담아 두지 못하고 위쟁의 손을 끌며 물었다.
“이가, 사람들이 잘해 주니?”
위쟁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는 손을 빼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살짝 웃어 보였다.
“장공주 마마와 여양왕 두 분 다 잘해 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류 씨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뜻밖이긴 했지만 안심도 되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또 물었다.
“그럼… 이송하고는 어때?”
위쟁은 태연하게 손을 빼냈다. 류 씨가 자신이 떨고 있다는 걸 눈치챌까 봐 겁났다. 그녀는 월계화 문양이 그려진 백유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후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걱정을 많이 해요. 아버지께서 요즘 몸이 안 좋으시다고 하니까, 오늘 아침 나오기 전에 인삼이랑 영지를 잔뜩 챙기라고 하더라고요.”
그러고는 류 씨가 의심할까 봐 부끄러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저한테도 잘해 줘요. 가끔 거칠 때도 있지만…….”
류 씨는 그녀의 말속에 담긴 뜻을 금세 알아차리고는 의미심장하게 웃을 뿐 더는 묻지 않았다.
여양왕은 무장이었고, 그의 아들도 어릴 때부터 무술을 익혔다. 무인이 부드러우면 얼마나 부드럽겠는가? 조금 거친 건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