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Expenses RAW novel - Chapter 177
제177화
위라도 차를 한 입 맛보았다. 시원하고도 깔끔한 단맛이었다.
“모후께선 왜 영 귀비가 마음에 안 드시는지요?”
질문을 하면서도 자신이 멍청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남편을 빼앗아 간 여자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진 황후의 대답은 그녀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얼마 전 이가에 사달이 났을 때, 고양 장공주가 알려 준 사실이 있다.”
그녀가 문득 말을 멈추었다. 그녀는 먹먹한 죄책감 앞에서 쉽사리 입술을 떼지 못했다.
“유리가 왜 어렸을 때부터 약하고 자주 아팠던 것 같으냐?”
위라는 채색 찻잔을 든 채 천천히 물었다.
“영 귀비와 관련이 있습니까?”
“유리가 한 살 때, 독에 중독되었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지. 태의가 사흘 밤낮을 매달린 끝에 겨우 살릴 수 있었다. 그때 독을 먹인 사람은 숙비로 밝혀졌고, 폐하께선 숙비를 처형했지. 하지만 그 죽음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어. 하여 지금까지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며칠 전 그 일이 영 귀비의 소행임을 확증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폐하께 말씀드리지 않으십니까? 처단을 내려 달라 하시면 되지 않나요?”
진 황후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해서 무엇 하겠느냐. 폐하께서 날 위해 나서는 걸 원하는 게 아니다. 그저 유리와 장생이 평생 무탈하게, 아무 일 없이 지내면 그걸로 됐어.”
게다가 그녀가 언질을 주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황제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계속해서 영 귀비를 감싸고돌았다. 진 황후는 이제 숭정황제에게 어떠한 기대도 품을 수 없었다.
위라는 속으로 내심 놀랐다. 황제와 황후의 갈등은 바로 여기서 출발하고 있었다. 진 황후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 버렸는데, 정작 숭정황제는 그 이유도 모른 채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황제가 무엇을 하든 진 황후가 반응이 없을 수밖에.
진 황후가 담담하게 덧붙였다.
“장생의 미래가 밝기만 하다면, 내가 영 귀비 하나 다스리지 못하겠느냐.”
진 황후의 예측도 틀리진 않았다. 조개는 적자이니, 황위는 당연히 그의 것이 아닌가. 그러나 위라는 전생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황제는 조장에게 황위를 물려주었고, 조개는 기꺼이 섭정왕으로 나섰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조유리와 진 황후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안 그래도 냉혹한 조개의 성정이 더욱 포악하게 변하면서 성경성 사람들이 그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을 시기였다. 황제는 조장이었지만, 조정의 판세를 쥔 채 모든 실권을 장악한 건 조개였다.
심지어 조례 때 조장의 옆에 의자 하나를 더 갖다 놓고 최초로 ‘두 황제가 정치를 하는’ 형국을 만들었다. 거리에는 일찍이 소문이 나돌았다. 조장의 황위는 얼마 못 가 조개에게 돌아갈 것이라고들 했다.
그 후 조개가 자신의 자리를 되찾았는지, 위라는 알 수 없었다. 그녀도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이번 생에서도 전생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아니면 조개가 순조롭게 황위를 이어받게 될까?
지금의 형국으로 봐선 세력을 잃은 조장은 어떠한 위협도 되지 못했다. 숭정황제가 무조건 그를 태자로 밀어붙이지 않는 이상, 가망이 없었다. 그러나 조정 언관의 강력한 간언과 반대를 무릅써야 하는 일이었고, 그렇게 나서는 황제가 정상으로 비칠 리도 없었다.
위라는 답할 수 없는 일 대신, 화제를 슬그머니 돌렸다.
“모후께선 요즘 유리를 위한 신랑감을 찾고 계신다고요?”
진 황후의 표정은 그제야 조금 누그러졌다. 그녀가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마음에 들어도, 유리가 다 싫다는구나.”
위라가 입을 다문 채 웃었다. 조유리의 마음에는 이미 한 사람이 자리 잡고 있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좋다고 할까. 그녀가 위로했다.
“너무 조급해 마십시오. 유리는 신분이 높으니 아무렇게나 시집을 보낼 수도 없지 않습니까. 아쉽지 않으시겠어요?”
아쉬웠다. 진 황후가 얼마나 유리를 아꼈던가. 그러나 아쉽다고 한들, 평생 옆에 두고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위라가 슬그머니 덧붙였다.
“조금 전에 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유리는 모후와 헤어지는 게 아쉬워, 적어도 이 년은 더 모후의 곁에 있고 싶다고 하였는데… 모후께서 화내실까 봐 직접은 못 하겠고, 저더러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진 황후는 기가 막힌 표정이었다.
“얘가 또… 못 할 건 또 뭐란 말이냐? 내가 잡아먹기라도 한단 말이냐?”
위라가 말없이 웃었다.
두 사람은 한참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부 관계가 된 후로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었지만, 대화는 매끄럽고 분위기는 즐거웠다.
어느새 한 시진이 지나고, 승월루에서 열리던 연회도 진즉에 끝이 났다. 조개가 소양전에 왔을 때, 그의 어린 아내는 주칠을 한 향탁에 앉아 죽을 마시며 꿀에 절인 무를 먹고 있었다.
조개가 다가와 앉으며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모후께선?”
위라는 하마터면 죽을 엎지를 뻔했다. 그녀가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 소리도 없이 들어오세요? 모후께선 침소로 가셨고, 저는 배가 고파서 먹을 것 좀 갖다 달라고 했어요.”
조개가 낮게 웃었다.
“내가 내 아내를 안겠다는데, 무슨 인기척을 해야 한단 말이냐?”
그의 몸에선 술 냄새가 났다. 위라는 그가 술을 적잖이 마셨음을 깨닫고 닭고기 버섯 죽을 한 숟갈 떠서 그에게 먹였다.
“아무것도 안 드셨죠? 배고프지 않아요? 뭐 좀 더 가져오라고 할까요? 모후께서 이곳의 부엌엔 마음대로 지시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조개는 죽을 삼키고선 그녀의 턱을 잡고 입을 맞췄다.
“괜찮다. 집에 가자꾸나.”
위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그럼 가요.”
“모후와 무슨 얘길 나눈 것이냐?”
조개가 물었다.
위라가 잠시 멈칫했다. 흐르지 않는 물처럼 고요하고, 무겁게 잠겨 버린 진 황후의 두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조개를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좀 도와주시면 안 되나요?”
조개가 눈썹을 추켜세웠다.
“말해 보거라.”
첫 번째로 위라는 조유리가 독을 먹은 사건을 말했다.
“이 일이 정말 영 귀비와 관련이 있다면, 폐하께서도 진상을 아셔야 하지 않을까요…….”
조개의 짙은 눈동자가 더 깊은 어둠을 품었다. 진 황후는 한 번도 그에게 이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유리가 독을 먹었을 때 그는 고작 아홉 살이었으니 내막을 알지 못했지만, 이리 내막을 알게 된 이상 그 역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 일은 내가 철저히 조사하겠다. 다른 건 무엇이냐?”
두 번째 일은……. 위라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 까치발을 하고 조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양진의 소식을 좀 알아봐 주실 수 있나요? 떠난 지 두 달이 넘어서, 유리가 걱정이 많아요.”
조개가 고개를 돌리더니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
“다른 사람 일에 관심도 많구나.”
또 질투를 하는 모양이었다. 위라가 웃으며 조개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에게 천진하게 매달린 그녀가 그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오라버니는 재주가 신통하시니, 이런 일은 식은 죽 먹기 아닌가요? 그렇죠?”
조개가 입술을 가리켰다.
“여기에 해야 효과가 있다.”
어쩔 수 없었다. 위라는 또 몇 번이나 입맞춤을 해 주었다.
두 사람이 소양전을 떠날 때, 소양전의 궁녀들은 모두 익은 새우처럼 얼굴이 달아오른 상태였다.
궁녀들은 정왕과 정왕비가 서로를 무척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왕비의 앞에서는, 그 냉혹하고 엄한 정왕은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사랑에 빠진 사내만이 있을 뿐이었다. 정말이지, 그 무심하던 사람이야말로 내면에 깊은 사랑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조개와 위라가 떠나고 얼마 후, 숭정황제가 네 마리의 용이 수놓인 편복으로 갈아입고 소양전 문 앞에 나타났다.
소양전 안. 자줏빛 옷을 입은 궁녀 몇 명이 정리를 하다가 숭정황제를 보고는 얼른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다.
“폐하를 뵈옵니다.”
황제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진 황후가 보이지 않자 근엄한 얼굴로 물었다.
“황후는 어디 갔느냐?”
자죽(紫竹)이라는 이름의 궁녀가 말했다.
“폐하, 마마께선 조금 전 정왕비와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난각에서 쉬고 계십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칠을 한 탁자 위에 놓인 음식을 보며 물었다.
“정왕비는 갔느냐?”
자죽이 대답했다.
“이제 막 나가셨습니다. 정왕야께서 직접 데리러 오셨습니다.”
그는 더 묻지 않고 난각으로 들어갔다.
“황후를 봐야겠다.”
숭정황제와 진 황후는 십 년을 하루같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며 살아왔다. 만날 때마다 언짢은 기분으로 헤어지건만, 숭정황제는 여전히 한 달에 한 번꼴로 소양전을 찾곤 했다. 그의 의도를 누구도 읽지 못했다.
다만 소양전의 궁녀와 어멈들은 이런 일에 익숙해진 터라, 숭정황제가 굳이 황후를 만나러 가겠다는 말에도 놀라지 않았다.
황제는 나뭇가지에 앉은 까치가 새겨진 낙지조(落地罩, 중국 가옥의 칸막이)를 지나 문을 밀어 열었다. 창가에 자단목 미인탑이 하나 있었다.
옆으로 누운 진 황후는 상서로운 용과 봉황 문양이 수놓인 짙은 자줏빛 담요를 덮고, 화려한 베개를 벤 채였다. 머리에 꽂았던 장식을 전부 빼놓아, 까맣고 풍성한 머리칼이 영침을 뒤덮고 있었다. 문득 한 구절이 떠올랐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머리칼과 옥처럼 희고 빛나는 목덜미.
미인탑으로 다가간 숭정황제는 누워 있는 여인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함께 천하를 평정하던 때, 그녀는 지금보다 훨씬 결단력 있고 자신감이 넘쳤다. 작은 맹수처럼 길들이기도 힘들었고,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바로 그에게 화를 냈다. 그는 말로는 그녀에게 어쩔 수 없다고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힘든 것도 기꺼이 받아 줄 수 있었다. 그녀가 무엇을 하든 그녀의 성미를 다 품을 수 있었다.
한번은 의견 충돌이 있었는데, 그녀가 말을 타고 진영을 빠져나간 뒤 밤늦도록 돌아오질 않았다. 양측 군대가 교전을 하던 중요한 시점이었다. 그는 그녀가 적군에게 납치된 건 아닐까, 무슨 사고라도 당한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이틀 동안 사방으로 그녀를 찾아다녔다. 위험을 무릅쓰고 적군의 진영에 들어가 그녀의 종적을 찾아보기도 했다.
사흘째 되던 날, 그녀는 홀로 적군들 틈에서 뛰쳐나왔다. 말 등에는 적의 수급이 매달려 있었다. 그녀가 도도하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한껏 들고 그에게 말했다.
“내 계략이 쓸 만하지 않아요?”
아직도 그 장면이 눈앞에 선했다. 태양을 등진 그녀는 금방이라도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 듯 생기가 넘쳤고, 아름다웠다.
나중에 그는 직접 그녀의 날개를 꺾었다. 자유와 전장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금사작이 되도록 그녀를 압박했다. 하지만 그녀는 기뻐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그를 원망하며 거리를 두었다. 그 역시 이를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막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점점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