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Expenses RAW novel - Chapter 195
제195화
위보산이 조금 전의 주제를 다시 꺼냈다.
“왕야와 왕비마마께서 아이가 생기길 빌러 오신 거라면, 저에게 좋은 게 하나 있어요. 고향에서 수놓은 ‘기린백자도(麒麟百子圖)’예요. 아주 영험해서, 많은 부부들이 아이를 얻었지요. 왕비마마께서 괜찮으시다면, 제가 돌아가서 정왕부로 보내 드릴게요.”
그녀의 말은 위라의 마음을 마구 휘젓고 있었다. 위라는 체면을 봐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요? 난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내력을 믿을 수 없는 물건은 받지 않아서 말이에요. 그냥 보산 아가씨가 가지고 있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위보산의 안색이 변했다. 그녀는 조개를 흘깃 쳐다보았다. 조개의 의견을 묻는 것 같았다.
조개는 위라의 의견이라면 당연히 따를 생각이었다. 위라가 앞에 있는 아가씨에게 짜증이 났다는 걸 눈치채자, 그의 말투가 냉랭해졌다.
“아라도 기린백자도가 갖고 싶으면, 궁중의 어수방(御綉房)에 얘기해서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되지.”
빨갛게 달아올랐다가 하얗게 질리기를 반복하는 위보산의 얼굴은 정말 볼 만했다. 스스로 굴욕을 자초한 꼴이었다.
위라는 신이 나서 조개의 손을 잡고 후원의 객방으로 가려 했다.
“좋아요. 폭이 십 척, 높이가 육 척이 되는 걸로요.”
조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후, 첫째 부인과 양옥용이 도착했다.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향을 올린 후 객방으로 왔다.
대륭사는 보살이 영험한 이유도 있지만, 절밥이 일품이어서 향을 올리러 오는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조개와 위라도 절에서 점심을 들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 대륭사 입구에서 하산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눈썰미 좋은 위라가 조개의 허전한 허리춤을 알아차렸다.
“오라버니, 향낭은 어디 갔어요?”
조개가 내려다보니, 정말 향냥이 보이지 않았다. 식사 중에 실수로 떨어트린 듯했다. 주경을 시켜 찾아보려는데, 위보산이 멀리서부터 헐떡거리며 쫓아와 조개 앞에 섰다.
“왕야, 잠시만요.”
위라의 눈썹이 살짝 올라가고, 조개는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지?”
위보산이 금사로 수놓인 검푸른 향낭을 꺼내 내밀었다.
“왕야의 향낭이 아닙니까?”
조개가 말하기도 전에 위라가 단박에 알아차렸다. 조개의 향낭이 틀림없었다. 조개는 매화를 좋아했는데, 향낭에도 눈 속에 핀 매화 두 송이를 수놓았다. 그는 향낭이 매우 마음에 들었는지 최근 계속 향낭을 가지고 다녔었다.
위보산이 말을 이었다.
“객방에서 찾았어요. 왕야께서 가지고 다니시던 향낭과 비슷한 것 같아서, 여쭤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왕야의 것이 맞는다면 정말 잘되었네요. 또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보관하셔요.”
“주경.”
조개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얼굴로 주경을 불렀다.
주경이 얼른 다가왔다.
“예, 왕야.”
조개의 거침없는 분부가 내려졌다.
“다시는 내 눈에 띄지 않도록 향낭을 태워 버려라.”
주경은 멈칫했지만, 금세 주인의 의도를 알아챘다. 그가 품에서 불을 붙이는 도구를 꺼내 위보산에게서 받은 향낭 아래에 갖다 댔다. 옅게 부는 바람이 불길에 힘을 실었고, 향낭은 금세 재가 되어 날아갔다.
위보산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로서는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기에, 할 말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조개가 멍한 표정의 위라에게 다가가 그녀를 어루만졌다.
“멍하니 왜 그러는 게냐? 내가 업고 내려갈까?”
퍼뜩 정신이 든 위라가 고개를 저었다. 내려가는 건 올라온 것만큼 힘들지 않았으니 걸을 수 있었다.
위라는 산 아래에 내려와서야 그에게 물었다.
“그 향낭을 태우다니, 너무 아깝지 않아요?”
조개가 태연하게 반문했다.
“아까울 게 무엇이냐?”
“오라버니가 좋아하시는 거잖아요. 그 향낭을 하고 다니시는 걸 몇 번이나 봤다고요.”
조개가 웃더니 그녀를 마차의 끌채 위에 앉히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걸 받으면, 우리 집에서 질투의 냄새가 어마어마하게 날 텐데? 내가 못 봤을 거라 생각하진 말거라. 입이 얼마나 나와 있던지.”
위라가 그의 손을 홱 뿌리쳤다. 완전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질투의 냄새라니요.”
본인이 더 그러면서, 무슨.
더는 그녀를 놀리지 않고 마차로 간 조개는 가림막을 걷고 안에 앉았다. 조금 전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조개가 위라를 바라보았다.
“위보산은 마음이 음흉하구나. 앞으로 접촉을 줄이는 게 좋겠다.”
위라는 조개도 그 점을 알아차렸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의 옆에 앉아서 물었다.
“그 짧은 사이에 어떻게 아신 거예요?”
조개가 살짝 웃었다.
“네가 만약 외간 남자의 향낭을 주웠다면, 직접 가져다주겠느냐?”
위라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아니죠. 그냥 버릴 거예요. 그런 일까지 관여할 필요가 있나요.”
그럼 증명이 된 것이었다. 조개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시비 가리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위라의 기분이 나빠 보여서 몇 마디 더한 것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기분이 한결 좋아졌는지 다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까 저한테 기린백자도를 주겠다고 하신 거, 정말이에요?”
조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정말이지.”
다음 날, 조개는 바로 입궁했다. 어수방에서 자수 솜씨가 가장 좋은 궁인 백 명을 뽑아 위라에게 줄 기린백자도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손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진 황후도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위라가 조개를 데리고 대륭사에 가서 아이 갖기를 기도했다는 얘기에, 위라를 불러 한바탕 칭찬도 했다.
* * *
날씨는 점점 더워졌다. 곧 여름이었고, 며칠 후면 영국공부 노부인의 생신 축하연이었다.
위라는 여름이 되자마자 기운이 빠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조개는 하인에게 명해 집 안의 온도를 내리기 위해 얼음 한 수레를 사 온 다음 방의 네 모서리에 놓았다. 위라는 그제야 좀 기운이 났다.
노부인의 생신 축하연 당일, 위라는 하늘하늘하고 얇은 웃옷에 수홍색과 비취색이 섞인 비단 치마를 입었다. 깔끔하고 정갈한 차림이었다. 조개는 인동초 문양이 수놓인 검푸른 금포에 옥대를 맸다. 꼿꼿하게 허리를 편 그는 점잖은 분위기를 풍겼다.
영국공부에 도착해 축하 선물을 드린 후, 조개는 남자 손님들과 전청에 남고, 위라는 화청으로 가서 담소를 나누었다.
넷째 부인은 이제 위라를 봐도 아이 문제로 독촉하지 않았다. 위라도 아이를 원하는데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더는 위라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 앞에서 아이 이야기를 삼갔다.
그러나 넷째 부인이 꺼내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안 꺼내는 건 아니었다.
넷째 부인과 담소를 나누던 위라는 피곤이 몰려와 혼인하기 전에 머물던 규방에서 한숨 자고 싶었다. 화원을 지나는데, 위라의 손수건이 바람에 날려 석가산 뒤로 넘어갔다. 위라는 금루를 데리고 손수건을 찾으러 갔다. 손수건을 막 주운 그때, 석가산 너머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방금 정왕비마마께서 지나가시는 걸 본 것 같아요.”
이어서 위보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못 봤는데? 네가 잘못 본 거겠지.”
시녀는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확신하진 못한 것 같았다.
“이상하네. 어디 가신 거지?”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제가 확실히 봤어요. 정왕비마마는 정말 예쁘시더라고요.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오신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예쁜 사람은 처음 봤어요.”
위보산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시녀는 나이가 많지 않은 편인지, 신이 나서 재잘거렸다.
“정왕야께서 왕비마마를 무척 아끼신다고 하더라고요. 상원절에는 직접 꽃등을 백 개나 만들어서 회안하에 띄우셨대요. 오직 정왕비마마를 기쁘게 해 주려고요.”
위보산의 대답은 느릿하게 “그러니.” 하고 돌아왔다.
위보산의 마음에도 확신이 섰다. 대륭사에 향을 올리러 갔을 때, 그녀도 보지 않았던가. 어느 집 남편이 부처님께 절을 올리러 가는 길에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를 업고 산을 오른단 말인가? 심지어 조개는 조금의 불만도 내비치지 않았고, 망설임도 없었다. 진심으로 위라를 아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시녀가 다시 말했다.
“당연히 정말이지요. 정왕비마마가 정말 부럽네요. 출신이 좋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시집도 그렇게 잘 가셨으니…….”
위보산이 픽 비웃었다. 그녀의 입에서 빈정거림이 흘러나왔다.
“부러울 게 뭐 있니? 시집을 아무리 잘 가면 뭐 해, 알도 낳지 못하는 암탉인데.”
그 순간, 석가산 뒤에 있던 위라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금루도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온몸을 떨며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위보산… 정말 너무한 것 아닌가요…….”
위라는 금루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여유가 넘치는 걸음으로 석가산 뒤를 돌아 위보산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위보산의 얼굴은 순간 하얗게 질렸지만, 억지로 태연함을 가장했다. 그저 담소를 나누던 중에 위라가 나타난 것이 뜻밖이라는 듯, 아주 약간의 놀람만을 얼굴에 담으려 했다.
오히려 그녀의 옆에 있던 푸른빛 유군을 입은 시녀가 ‘털썩’ 무릎을 꿇고 황급히 말했다.
“왕비마마를 뵈옵니다…….”
위라는 시녀는 안중에도 없이 위보산만 쳐다보며 말했다.
“보산 아가씨는 앞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벽에도 귀가 있다.’는 말을 잊지 않으시는 게 좋겠네요.”
위보산의 입술이 떨렸다. 그녀 또한 얼른 고개를 숙였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위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꿇어라.”
뜰 안을 오가던 하인들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깨닫고 이쪽을 자꾸만 흘깃거렸다. 위보산은 위라가 그저 응석받이로 자란 아가씨라고만 생각했다. 예전에 위라와 마주쳤을 때도 그녀에게서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던 터였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명령에는 어떠한 저항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준엄한 기세가 서려 있었다.
위라는 그동안 위보산을 혼내 주지 않은 게 아니라 무시한 것뿐이었다.
한데 위라의 역린을 건드린 이상, 위라는 절대 참지 않을 작정이었다.
위보산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으며 변명을 시도했다.
“조금 전의 그 말은, 왕비마마를 가리킨 게 아니라…….”
위라가 슬쩍 미소 지으며 허리를 굽혀 위보산의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조금 전엔 화가 났다면, 이제는 그녀의 변명에 경멸이 일었다. 배짱이 꽤나 두둑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겨우 이 정도였다.
“날 가리킨 게 아니라고? 그럼 누굴 가리킨 거지? 위보산, 본인이 뱉은 말은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날 바보로 아느냐? 이렇게 무서워할 거면서 아까는 왜 입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았지?”
위라의 두 눈에는 싸늘한 웃음기가 어렸다. 얼핏 보기엔 화를 다 낸 듯했으나, 이어지는 말은 무시무시했다.
“안하무인에 황실을 모욕하다니. 이것만으로도 널 벌할 죄목은 충분하다. 금루, 이리 와서 따귀 스무 대를 쳐라. 한 대도 빼먹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