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Expenses RAW novel - Chapter 2
제2화
위라는 턱을 괴고 울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그녀는 모든 걸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티 내지 않았고, 금루 또한 위라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위라가 금루를 향해 팔을 벌렸다.
“언니, 신발 갈아 신을래. 아라(阿蘿, 위라의 애칭) 신발이 다 젖었어.”
이렇게 어여쁜 꼬마 아가씨의 부탁을 금루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아마 위라가 말하지 않아도 금루는 기꺼이 신을 바꿔 주었을 것이다.
“그럼요. 같이 들어가요, 신발 바꿔 드릴게요.”
금루는 그녀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서 침상에 앉혔다. 그녀는 익숙하게 축축한 신과 말(襪)을 벗기고 수건으로 백옥 같은 발을 깨끗이 닦아 주었다. 그러고는 금사로 두약 무늬가 수놓인 신을 신기면서도 재차 당부했다. 아마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탓이리라.
“다음엔 이렇게 비에 젖으시면 안 돼요. 노야(老爺)께서 아시면 걱정하세요…….”
위라가 두 손으로 침상 끝을 짚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느 노야?”
그 말에 금루는 화들짝 놀랐다.
“당연히 오, 오노야(五老爺)이시죠! 왜 그런 질문을 하세요?”
오노야는 그녀의 아버지였으니, 당연히 그녀를 끔찍이 아낄 터… 아가씨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위라가 눈을 깜박거렸다.
“날 걱정하신다면서 왜 나 보러 안 오셔?”
금루는 금각에게 행인두부를 가져오게 한 다음, 한 숟갈을 떠서 위라의 입에 넣어 주었다.
“오늘 아침에 왔다 가셨어요. 주무실 때라 모르셨던 거예요. 아가씨께서 다 나으면, 마님께 얘기해서 호국사에 기도하러 가실 때 데려가라고 하실 거라던데…….”
오늘이 삼월 초이틀이니, 내일이 바로 호국사에 가는 날이다. 이는 두 씨가 위라를 인신매매 업자에게 팔아넘기려 했던 날이기도 했다.
위라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녀는 소매 안에서 작은 주먹을 꼭 쥐었다. 마음속 파도가 세차게 출렁였지만, 여전히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으로 얌전히 행인두부 한 그릇을 다 먹었다. 금루가 비단 수건으로 입을 닦아 주자, 그녀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언니, 나 아픈데, 내일 안 가면 안 돼?”
금루는 위라가 조금 전 비를 맞아 몸이 얼어 이런 말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몸을 따뜻하게 녹일 수 있도록 얼른 따뜻한 물을 가져오라고 밖에다 지시했다. 이제 막 다 나았는데, 금세 다시 아파선 안 될 일이었다.
“사흘 전에 벌써 정해진 거예요. 노야께서도 허락하셨고요. 마님께서 아가씨 건강 때문에 일부러 간다고 하신 건데… 안 가고 싶다고 안 가실 수 있을까요?”
위라는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시녀들이 따뜻한 물을 가져왔다. 금루와 시녀 둘이 복숭아나무 사첩 병풍 뒤에서 물을 퍼 담고 있는데, 갑자기 방 안에서 자기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금루가 황급히 병풍 앞으로 뛰쳐나왔다. 깨진 자기 뒤에 위라가 서 있었다. 그녀의 작은 손은 바닥에서 튀어 오른 파편에 긁혀 상처가 났다.
다행히 피만 살짝 났을 뿐,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금루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비단 수건으로 상처를 감싸려 했다. 그러나 위라가 먼저 제 피를 핥고는 고개를 들어 말했다.
“내가 잘못해서 그릇 깨뜨렸어.”
그릇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그게 어찌 위라와 비교가 되겠는가.
금루는 허리를 굽혀 위라를 안아 올렸다. 바닥에 흩뿌려진 그릇 파편에서 그녀를 멀리 옮겨 놓은 다음, 시녀 둘에게 바닥을 청소하라 일렀다. 금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 다치진 않으셨어요? 아픈 덴 없고요?”
위라는 고개를 저으며 금루의 목을 꼭 안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 탓에 금루는 그녀의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를 보지 못했다. 위라의 긴 속눈썹이 내리깔리며 눈 밑에 그늘이 만들어졌다. 이는 두 마리의 호랑나비처럼, 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피할 수 없다면 가야지. 두 씨가 벼르고 있는데 그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 되니 말이야.’
그녀는 더는 아무것도 모르는 예전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앞으로 두 씨에게 갚아 주어야 할 것이 무척이나 많았다.
* * *
다음 날, 정말 위라의 말대로 보름 동안 내리던 봄비가 그쳤다. 맑고 아름다운 햇빛이 영국공부의 뜰 안까지 들어왔고, 햇빛에 나뭇잎의 그림자가 바닥을 까맣게 물들였다.
송원(松園)의 시녀들은 주인을 시중드는 일이 끝나자마자 잠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 얼른 오색 줄을 들고 와 뜰에서 줄넘기를 하기 시작했다. 분홍색 윗도리에 푸른색 치마를 입은 시녀들은 줄을 넘으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다들 몸놀림이 경쾌했다.
그 중엔 실력이 대단한 시녀도 있었는데 그녀는 줄을 넘는 동시에 건자(毽子)를 찼다. 건자를 공중으로 차올린 다음, 줄 밑에서 몸을 돌리고 긴 다리를 뒤로 뻗으며 안정적으로 건자를 받아 냈다. 하인들은 다 같이 탄성을 질렀다.
이는 영국공부에서 하인들을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평소 자신에게 맡겨진 일만 잘하면 주인에게 허락받고 이따금 노는 것은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시녀들이 신나게 줄넘기하던 그때, 갑자기 오동나무 아래에서 험상궂은 가면을 쓴 작은 여자아이가 불쑥 튀어나와 그들을 향해 팔을 뻗었다.
“우어어엉!”
몇몇 시녀가 깜짝 놀라서 펄쩍 뛰었다. 겁이 많은 시녀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기까지 했다.
순간 가면 뒤에서 낭랑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배를 잡고 깔깔거리던 위라는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앉은 시녀를 가리켰다.
“금각 언니, 겁쟁이!”
금각은 천천히 일어나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었다. 조금 창피했다.
“아가씨, 또 장난이 시작되셨군요…….”
여자아이가 머리 뒤의 줄을 풀고 가면을 벗자 반짝반짝 빛나는 까만 눈동자와 작고 오뚝한 콧날, 그리고 부드러운 분홍빛 입술과 하얗고 매끈한 얼굴이 드러났다.
아이는 금사로 감꼭지 문양이 수놓인 연두색 유군(襦裙, 치마)을 입고 웃음을 함빡 머금은 채 오동나무 아래 서 있었다. 오동나무 꽃잎이 틀어 올린 아이의 머리 위로 하늘하늘 떨어졌다. 아이는 여전히 웃음기를 숨기지 못한 채 허리춤에 손을 얹고 물었다.
“내가 이 가면으로 장난친 게 벌써 몇 번짼데 아직도 놀라다니, 내가 너무한 거야, 아니면 언니들이 바보 같은 거야?”
여섯 살밖에 안 된 아이는 유달리 말주변이 뛰어났다. 막무가내로 억지 부릴 때는 아무도 당해 내지 못할 정도였다. 금각은 말문이 막혀서 얼굴이 새빨개진 채 달아났다.
위라는 처마 밑에 서 있었다. 마치 예전의 자신을 본 것 같았다. 이는 옛날에나 했을 법한,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그녀는 그날의 풍경을 생생히 기억했다. 가면을 쓰고 시녀들을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있을 때, 아버지와 두 씨가 왔다. 두 씨는 자신을 잘 구슬려 위쟁은 집에 남겨두고, 자신만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때부터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어야 했다.
두 씨는 위쟁을 끔찍이 아껴서 언제나 옆에 끼고 다녔다. 그런데 어째서 상사일 같은 떠들썩한 날 왜 위쟁을 두고 나왔을까?
‘다 계획이 되어 있었던 거야.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아셨을까? 내가 두 씨에게 죽을 뻔했을 때, 아버지는 어떤 반응이었을까?’
위라가 알 방법은 없었지만 사실이 어떻든 아버지가 미웠다. 너무 일찍 후처를 들인 것도 미웠고, 자신의 생모가 누구인지 알려 주지 않는 것도 미웠다. 하지만 가장 미운 것은 독하고 악랄한 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르게 한 것이다.
그녀는 두 손을 번쩍 들어 험상궂은 가면을 계단에 내던졌다. 가면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두 동강 났다. 뜰에 있던 하인들은 소리에 깜짝 놀라 하던 일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속이 후련했다. 뛰어 올라가서 마구 밟기까지 했다. 가면이 산산이 부서진 후에야 발을 멈췄다. 이것은 아버지가 상원절(上元節, 음력 정월 대보름)에 준 가면이었다. 그녀는 재미있는 걸 좋아했기에 가면을 아주 맘에 들어 했다. 툭하면 들고 나와 하인들을 놀라게 하며 보물처럼 여겼다. 그러나 이제 더는 갖고 있기가 싫었다. 망가뜨리고 싶었다.
“아라야, 가면은 왜 버리느냐?”
뒤에서 엄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위라가 고개를 돌렸다. 멀지 않은 낭하 아래, 아버지 위곤과 계모 두 씨가 서 있었다.
조금 전의 그 목소리는 위곤이었다. 댓잎 문양이 새겨진 짙은 자줏빛 직철(直裰)을 입은 위곤은 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눈동자 깊은 곳에 딸을 향한 사랑이 들어 있었다. 그가 앞으로 걸어왔다.
“내가 준 가면을 제일 좋아하지 않았더냐?”
위라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더니 마치 그의 말을 못 들은 것처럼 또다시 가면을 밟았다. 위곤이 허리를 굽혀 딸을 안아 들고는 웃으며 말했다.
“누가 우리 아라를 화나게 한 것이야? 이 아비에게 말해 보거라. 아주 혼을 내 줄 테니.”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두 씨가 있었다. 그녀는 금사로 연꽃을 수놓은 배자 속에 짧은 상의와 따뜻한 연보랏빛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보석 장식을 하고 있었다. 인자하게 미소 짓던 얼굴은 위곤이 위라를 예뻐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차갑게 굳어 버렸다. 위곤의 어깨에 기대고 있던 위라는 그녀의 표정이 변하는 걸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모르던 위라였다면, 봤다 해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두 씨의 위선과 가식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위라는 위곤의 어깨에 사랑스럽게 얼굴을 비비며 귀여운 목소리로 애처롭게 투덜거렸다.
“아라가 아픈데 아버지께선 어찌 와 보시지도 않아요? 아버지는 아라를 예뻐하지 않아…….”
‘그래서 이러는 거였구나.’
위곤이 어찌 그녀를 예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가 아플 때 머리맡을 밤새워 지키다 그녀가 깨고 나서야 자리를 뜬 것도 다 그녀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요 어린 것이 제가 잠들었을 때 아버지가 몇 번이나 찾아갔는지는 모르고, 잠에서 깼을 때 보이지 않은 것만 기억하는구나. 위곤이 한숨을 쉬었다.
“이 아비가 잘못했구나. 우리 아라를 보러 더 많이 갔어야 했는데. 가면을 던질 만도 하구나. 다 이 아비 잘못이다.”
위라가 고개를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 씨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져 있었다.
‘아버지가 이렇게나 나를 아끼니 위기감이라도 느껴진 걸까? 위쟁이 받아야 할 사랑을 빼앗길까 봐? 그래서 한시라도 지체할세라 나를 팔아 버린 게 아닐까?
그러고 보면 아버지가 위쟁보다 날 훨씬 아끼시는 것 같긴 하네. 왜일까? 둘 다 아버지의 딸인데, 뭐가 다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