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Expenses RAW novel - Chapter 207
제207화
오후가 되어 영국공부에 갔을 때, 양옥용은 지친 얼굴로 침상에 누워 산후조리를 하고 있었다. 위라는 그녀를 방해하기 미안해서 몇 마디만 나누고 얼른 방을 빠져나왔다. 양옥용이 낳은 딸은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예뻤다. 위라가 조심스럽게 아기를 안은 순간, 아기는 촉촉하고 맑은 눈을 뜨며 깨더니 작은 입을 벌리고 울기 시작했다.
위상인이 딸을 안았다. 그는 익숙하다는 듯 한 손으론 목을, 다른 손으론 허리를 받치고 달랬다. 금세 울음을 그친 아기를 보며, 위상인이 미소를 지었다.
“겁이 많아서 말이다. 낯설어서 그럴 게다.”
잔잔하게 말하는 위상인의 얼굴에는 부모가 된 기쁨이 서려 있었다.
위라가 웃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축하금과 은색 점이 찍힌 남색 장명쇄를 선물한 후, 오래 머물지 않고 정왕부로 돌아갔다.
* * *
태교에만 전념하다 보니, 위라를 둘러싼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어느새 조유리와 양진의 혼인날이 다가온 것이다.
초여름이라 날은 그리 뜨겁지 않았다. 위라는 접련화(蝶戀花) 문양이 수놓인 붉은색 비단 웃옷에 붉은색 주름치마를 입고 커다란 배를 내민 채 입궁했다.
진화전에 도착하니, 조유리는 두 마리의 난새와 꽃이 새겨진 놋거울 앞에 앉아 봉황 장식을 한 관을 쓰고 아름다운 수를 놓은 천을 걸치고 있었다. 모든 준비를 끝낸 그녀의 검은 머리칼과 붉은 입술이 도드라졌다. 조유리는 위라를 보더니 눈을 깜빡거리다 웃으며 말했다.
“새언니, 안 오는 줄 알았는데.”
위라가 말했다.
“오늘 네가 시집가는 날인데 어떻게 안 와?”
조유리가 위라의 배를 보며 말했다.
“곧 출산이잖아. 한번 나오는 게 얼마나 위험한데. 집에 있는 게 그래도 안전하지.”
위라는 이제 일곱 달이 넘었다. 배가 많이 불러 보이긴 해도 출산은 아직 이른 시기였다. 위라가 그녀를 흘겨보며 놀리듯 말했다.
“신부는 혼례식 날 울어야 한다는데, 너는 기분이 좋아 보인다? 모후께서 보시면 얼마나 속상하실까?”
그 말에 조유리의 표정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그녀는 딱딱한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금세 입꼬리가 올라가곤 했다. 그녀가 하소연했다.
“곧 양진 오라버니한테 시집간다는 생각만 하면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날아갈 것 같은데, 어떻게 눈물이 나오겠어!”
위라는 이렇게 솔직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얼마 후, 화려하게 차려입은 진 황후가 화려한 차림을 하고 들어왔다. 밖에서는 꽃가마가 공주의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 황후는 못내 아쉬웠다. 고생하며 키운 딸이 이제 자신의 품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결국 진 황후가 눈물을 보이자, 조유리는 깜짝 놀랐다. 이윽고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눈물이 나오겠냐고 하더니, 눈물을 줄줄 흘리며 꺼이꺼이 울었다.
추 마마가 두 사람을 겨우 진정시키고 황급히 조유리의 화장을 고친 다음 그녀를 꽃가마에 태웠다.
신부를 맞이하러 온 일행은 진즉부터 궁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꽃가마가 나오자 풍악을 울리며 양부(楊府)로 향했다. 성경성의 서남쪽에 있는 양부까지 가려면 성경성의 반을 돌아야 했다. 어느새 길 양쪽에는 구경하러 나온 백성들이 즐비했다. 숭정황제가 가장 아끼는 공주가 시집을 간다고 하니 사람들도 덩달아 기뻐했다.
조유리는 꽃가마에 앉아 옥여의를 들고 있었다. 한참 흔들흔들하더니, 마차가 드디어 멈춰 섰다. 그녀는 붉은 비단의 한쪽 끝을 잡고 양진의 뒤를 따라 양부로 들어갔다. 양진은 부모가 없었고, 먼 친척뻘인 할머니의 형제만 한 분 계셨다. 두 사람은 천지신명과 웃어른들께 절했다. 그 후 조유리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신방으로 보내졌다.
신방은 붉은 휘장, 붉은 촛불, 붉은 이불, 온통 상서로운 붉은색으로 가득했다. 양진이 옥여의로 금장식이 된 개두를 올렸을 때, 조유리의 얼굴도 새빨갰다.
언제나 무표정하던 양진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그는 조유리를 바라보느라 자신이 웃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듯했다. 수모가 옆에서 합근주를 마시라고 재촉한 후에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몇몇 부인이 옆에서 놀리듯 말했다.
“신랑 눈에서 아주 불이 나네요. 우리 공주님이 예쁘시긴 하지요.”
조유리가 눈을 내리깔았다. 얼굴은 더 이상 붉어질 수 없을 정도로 새빨갰다.
부인들이 조유리 옆에 앉아 말동무를 해 주었다. 조유리는 조용히 앉아 있다가 가끔씩 한두 마디를 했다. 얼마 후, 부인들이 모두 나가고 조유리는 시녀와 함께 남겨졌다. 시녀 운재가 조용히 물었다.
“마마, 지금 씻고 옷을 갈아입으시렵니까?”
조유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조금 있다가.”
그녀는 양진을 기다리고 싶었다.
운재가 또 물었다.
“종일 아무것도 못 드셨는데, 먹을 것을 좀 가져올까요?”
배가 너무 고파서인지, 조유리는 이제 배고프다는 느낌도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운재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조유리는 침상 머리맡의 꽃이 조각된 틀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눅진한 피로감에 금세 잠이 들었다.
손님들을 접대하고 돌아온 양진이 그 모습을 마주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아가씨가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그녀의 얼굴에 옅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붉은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고, 희미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양진은 허리를 굽혀 조유리와 얼굴을 가까이했다. 한동안 그녀를 빤히 응시하던 그가 얇은 입술을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에 맞추고 가볍게 빨았다.
조유리는 그제야 천천히 눈을 떴다. 양진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양진이 그대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더니, 원앙이 수놓인 붉은색 비단 이불 위에 눕혀 주었다.
양진이 그녀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마마, 드디어 제 여자가 되셨습니다.”
조유리의 귓불이 달아올랐다. 술을 마셔서인지 양진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녀를 ‘마마’라고 부르긴 했지만 그녀에 대한 태도는 예전처럼 깍듯하지 않았다.
“양진, 일단 나 좀 일으켜 줘…….”
조유리가 말했다. 아직 옷도 갈아입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양진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간절하고도 경건하게, 그녀의 입술을 훑었다. 그와 동시에 타는 듯한 손이 혼례복 아래로 들어왔다.
* * *
위라의 허리는 날로 굵어졌다. 가늘고 아름답던 허리는 진즉에 자취를 감췄다. 둥그렇게 솟아오른 배는 말할 것도 없고, 얼굴마저 동그랗게 변했다. 가슴도 작은 복숭아에서 희고 부드러운 커다란 찐빵처럼 변했다.
조유리와 양진이 함께 궁으로 온다고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절대 집에서 나오지 않았을 터였다. 이런 모습으로는 도저히 누구를 만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외출하기 전 거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볼수록 자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위라가 배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 수박아, 널 낳고 나면, 무조건 나 자신을 가꿀 거야.”
조개가 옆에서 낮게 웃었다. 위라의 한탄하는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러웠기 때문일 터였다. 그가 다가가 그녀를 안고 귓불을 깨물며 말했다.
“어떤 모습이 되든 우리 아라는 영원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일 게다.”
“안 돼요.”
위라가 그를 밀쳐 내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해이해진다고요. 이건 일시적인 거예요. 아이를 낳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거라고요. 아이를 낳고 나면 다시 날씬해질 거예요.”
조개가 미소 지으며 그녀를 응시했다.
“하지만 난 정말 진심이다.”
그에게 있어 그의 아가씨는 영원히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특히 지금 잔뜩 나온 그녀의 동그란 배는 더욱 아름다웠다. 작은 몸속에 두 사람의 아이를 품고 있다니, 그 곡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선이었다.
위라가 그를 흘겨보았다.
“말만 번지르르하지.”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도 감미로웠다.
위라는 조개의 말이 감언이설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걸 진지하게 여기지 않고 그냥 듣고 넘겼다. 황궁으로 가는 길, 위라는 배에 대고 속삭였다.
작은 수박아, 이 엄마가 널 위해 이렇게 많은 희생을 했으니, 너도 꼭 무탈하게 태어나렴. 날 그만 괴롭히고 말이야.
양옥용의 얘기로는 아이를 낳을 때 고통이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소양전. 조유리와 양진은 일찌감치 와 있었다.
조유리는 등나무 문양이 새겨진 자단목 나한상에 앉아 화려하고 커다란 감청색 영침에 기대어 있었다. 그녀는 숨을 죽인 채 숭정황제와 진 황후 앞에 선 양진을 지켜보았다. 금사로 곡수 문양이 수놓인 붉은색 금포를 입은 양진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는 황제와 황후의 질문에 흐트러짐 없이 공손하게 답했다.
양진은 평소와 똑같이 차분한 모습이었지만, 조유리의 기분은 조금 복잡했다. 혼인을 하고 그의 본성을 알고 난 뒤 이런 모습을 보니 참으로 사람이 달라 보였다.
첫날밤, 양진은 혼례복도 미처 갈아입지 못한 조유리를 침상에 눕혔다.
그는 조유리의 손목을 꽉 잡고 홀린 듯 그녀의 귓불을 깨물며 ‘마마’ 하고 불렀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잠긴 목소리로 “유리야.” 하고 불렀다. 그녀는 그의 몸 아래에서 잔뜩 웅크린 채 격렬한 입맞춤 세례를 받았다.
양진이 몸속으로 들어올 때 그녀는 너무 아파서 눈물방울이 굴러떨어질 지경이었다. 양진의 어깨를 깨물고는 흐느끼며 아프다고 말했다. 양진은 그녀가 참기 힘들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녀의 뺨에 흘러내린 눈물을 핥으면서 멈추지 않고 거칠게 그녀를 비집고 들어갔다.
조유리는 반 시진을 훌쩍거리느라 얼굴이 온통 빨개졌다. 애처롭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반 시진 후, 양진은 축 늘어진 조유리를 안고 정실로 들어갔다. 운재가 방 정리를 하러 궁녀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엉망진창이 된 침상과 짜면 물이 떨어질 것 같은 이불을 본 운재의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숭정황제는 양진에게 며칠의 휴가를 주었다. 양진은 어디도 가지 않고 조유리와 함께 사흘 밤낮을 방에만 있었다. 먹거나, 마시거나, 누가 문을 두드리는 일 외에는 아무도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았다. 조유리는 양진이 이렇게 힘이 넘치는 사람인 줄 몰랐다. 오랫동안 참았던 욕망을 혼인 후 몽땅 쏟아내려는 것 같았다.
신방 곳곳에 두 사람의 흔적이 남았다. 창가와 책상도 예외는 아니었다. 양진은 밥 먹을 때조차 그녀와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그녀에게 밥을 먹여 주며 딱 달라붙어 있었다. 조유리는 이 사흘이 빨리 간 것 같기도 했고, 천천히 간 것 같기도 했다. 황제와 황후에게 인사를 드려야 하지 않았더라면, 양진은 오늘도 그녀를 방에서 내보내 주지 않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