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Expenses RAW novel - Chapter 220
1: 이송 편 5
위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몰라요.”
이송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지금은?”
위라가 입을 가리고 그를 노려보며 화를 냈다.
“변태 같으니라고!”
결국 이 말을 내뱉고 말았다.
이송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오래전부터 그녀에게 이렇게 하고 싶었다. 입을 맞추는 것 말고도 그가 하고 싶은 건 많았다. 그가 몸을 일으켜 앉더니 도포의 아래쪽을 잘 폈다.
“내 조건을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야. 난 모든 힘을 다해서 널 도울 거고.”
위라가 입술을 오므렸다. 온통 그의 체취가 묻어나 어색한 기분이었다.
“당신한테 시집가기 싫어요.”
이송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향 하나가 다 탈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이송이 방에서 나갔다. 육실에게는 위라가 나가지 못하도록 잘 감시하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며칠 동안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사람을 시켜 알아본 결과, 그는 두 씨의 행적을 파악할 수 있었다. 두 씨는 위라를 찾고 있었다. 만약 두 씨가 보낸 사람들에게 발각된다면, 두 씨는 절대 그녀를 곱게 놔두지 않을 터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송은 위라가 단순히 납치된 것이 아니라, 두 씨가 인신매매 업자에게 위라를 팔아넘긴 사실도 확인했다. 결국 위라 때문에 도망가긴 했지만 말이다.
이번 생은 그가 알던 세상과는 천양지차였다. 너무 많은 일들이 달라져 있었다.
이송이 육실에게 말했다.
“두 시녀를 잡아 와. 쓸 데가 있어.”
금사와 금각이었다. 위라를 시중들었던 시녀이자, 두 씨가 위라를 인신매매 업자에게 팔아넘기는 걸 두 눈 멀쩡히 뜨고 지켜본 증인이었다.
육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송은 잠시 여양왕부로 돌아갔다. 이상과 위상홍의 혼사를 깊게 고민해 보아야 했다. 위라가 가족에게 돌아간다면, 그녀는 영국공부의 다섯째 아가씨가 되는 것이었다. 이상이 영국공부에 시집가게 될 경우, 대부호들은 서로의 딸을 며느리로 맞는 상황을 원치 않았으니 그가 위라와 혼인할 가능성은 사라지게 될 터였다.
그러나 이송이 다시 별원으로 돌아왔을 때, 위라는 떠나고 없었다.
위라를 시중들던 시녀가 무릎 꿇고 빌며 말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부주의했습니다. 아가씨께서 야심한 밤에 제가 잘 때를 틈타 달아나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송의 얼굴에는 그 어떤 표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을 침묵하던 그는 모든 시녀를 물리고 혼자 안에 들어가 누웠다.
위라가 자주 앉아 있던 나한상에 누웠다. 며칠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되짚어 보았다. 한 자락의 꿈을 붙든 것만 같았다. 위라가 떠나고 나자, 오히려 모든 게 선명해졌다. 괘씸한 아가씨는 언제나 그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다. 기회는 더더욱 주지 않았다.
이번 생에는 조개가 없었다. 그가 먼저 그녀를 찾았다. 위상홍을 밀어 물에 빠뜨리지도 않았고, 화살로 그를 쏘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그녀는 여전히 이곳에 머무르고 싶어 하지 않는 걸까?
이송은 머리가 아팠다. 나한상에 누운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다음 날 아침이었다.
한참을 누워 있은 후에야 정신이 맑아졌다. 그는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사람을 보내 영국공부의 상황을 알아보라고 했다. 위라가 영국공부에 가지 않았다는 걸 알고 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혼자였고, 가진 게 없는 그녀가 대체 어딜 간단 말인가?
길에서 무슨 일이라도 당했으면 어쩌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송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하마터면 두 씨의 사람들도 위라를 찾고 있다는 걸 잊을 뻔했다. 찾고 나면 화근을 아예 없애 버리려 할 수도 있었다. 이송이 즉시 방을 나서며 육실을 불렀다.
“당장 모든 호위 무사를 불러라. 위라를 찾는다. 성경성을 모두 뒤져라. 빨리! 찾지 못하면 날 볼 생각은 하지도 말아라!”
그의 표정은 엄했지만 초조함을 숨기지 못했다. 그의 생에서 누군가를 이토록 신경 써 본 적은 처음이었다.
육실은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결국 묻지 못하고 “예.” 하고 대답한 후 나갔다.
호위 무사들은 꼬박 하루를 찾아다녔다. 거리의 백성들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몰래 찾을 수밖에 없다 보니 효과는 미미했다. 저녁이 될 때까지 위라의 소식은 없었다. 이송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가 호위 무사 중 한 사람의 명치를 발로 걷어차며 소리쳤다.
“쓸모없는 것들 같으니라고!”
이송은 도포를 펄럭이며 성큼성큼 문간을 넘었다. 직접 찾아볼 생각이었다.
영국공부 근처의 골목들을 뒤졌지만 아무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늘이 곧 어두워지려 하는데, 위라의 상황은 알 수 없었다. 이송은 이를 악물고 주먹에 힘을 주었다. 뚜둑거리는 소리가 스산하게 울렸다.
“계속 찾아라.”
호위 무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는 골목의 깊고 어두운 곳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호위 무사 하나가 급히 달려와 말했다.
“찾았습니다, 세자!”
그가 고개를 홱 들었다. 까맣고 깊은 눈에 짙은 실핏줄이 번졌다.
* * *
이송이 호위 무사들을 이끌고 도착했을 때, 위라는 의자에 노끈으로 묶인 채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위쟁이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맞은편 팔선의에 앉은 사람은 두 씨였다. 두 사람이 위라를 내려다보았다. 연두색 웃옷과 붉은 치마를 입은 위쟁은 날카로운 비수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시퍼런 빛을 내는 비수를 흔들더니, 웃으며 비꼬았다.
“네가 뭔데 우리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해? 위라야, 넌 십 년 전에 죽었어야 했어. 지금까지 산 것도 행운인 줄 알아. 이렇게 돌아온 용기도 아주 가상하네.”
위라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 집에 왜 내가 못 돌아가?”
“네 집?”
위쟁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눈에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
“네 집인데 어째서 영국공부 사람들은 다 널 모를까? 어머닌 진즉에 죽었고, 아버지도 네가 필요 없다는데, 돌아온들 무슨 의미가 있어?”
위라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쟁이 질투 어린 눈빛으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분명 천한 농부가 기른 아이인데도 그녀는 아름다웠다. 어떤 남루한 옷도 그녀의 미모를 가릴 순 없으리라. 위쟁이 비수를 들어 위라의 얼굴에 갖다 댔다. 눈에 잔인한 기운이 스쳤다.
“네 얼굴이 망가지면, 아버지께서 그래도 널 알아보실까?”
위라는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제야 두려움이 그녀의 얼굴에 깃들었다.
위쟁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손목을 살짝 돌렸다. 이대로 위라의 얼굴을 그을 참이었다.
그때, 나무문이 홱 열리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은 위쟁의 손에서 비수를 빼앗아 멀리 던져 버렸다. 이송이 싸늘한 시선으로 위쟁과 두 씨를 바라보며 지시했다.
“두 사람을 감시해라.”
호위 무사들이 달려들어 위쟁과 두 씨를 빠르게 포위했다.
이송은 위라의 몸에 묶인 노끈을 풀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질 않았지만, 꼭 해야 하는 말은 있었다.
“이제 괜찮다.”
위라는 얼떨떨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정신이 멍했다. 그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의문이었다. 한참 만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제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이송이 멈칫하더니 말했다.
“네가 위험할까 봐 좀 찾아봤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수십 명이 그녀를 종일 찾아다닌 결과였다.
위라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방 안의 다른 두 사람, 위쟁과 두 씨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간 이송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가 조금 전 내던진 비수를 집어 호위 무사에게 주며 말했다.
“저 여자가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똑똑히 봤나?”
호위 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송이 “좋아.” 하고 말한 후 계속 이었다.
“저 여자의 얼굴에 똑같이 해 줘라. 제대로 하지 못했다간 네 목숨이 날아갈 줄 알아라.”
위쟁이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미친 게야? 나는 영국공부의 여섯째 아가씨다. 나에게 그런 짓을 하고도 영국공부의 처벌이 무섭지 않은 게냐?”
위라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던 이송이 고개를 돌렸다. 얇은 입술은 냉랭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무서울 게 뭐지?”
위생은 아연실색했다. 순간, 그가 무시무시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위라와 이송은 방에서 나서자마자 뒤에서 울리는 비명을 들었다. 두 씨의 울음소리도 함께였다.
골목을 나선 후, 이송은 그녀의 앞에서 걸었다. 자신이 가까이 가는 걸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시종일관 세 걸음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 그가 말했다.
“그때의 일은 이미 다 조사했다. 내일 증인을 영국공부에 보낼 거야. 넌 다시 영국공부의 다섯째 아가씨가 될 수 있다. 이상과 위상홍의 혼사도 없던 일이 될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 두 씨와 위쟁도 다시는 널 협박하지 못할 거야. 위곤의 성정이라면, 분명 두 사람에게 중한 벌을 내리겠지…….”
그가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다 더는 할 얘기가 없자 발걸음을 멈추고 위라를 돌아보았다.
“다른 게 더 있나?”
위라가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송이 입을 다물고 생각하다 말했다.
“오늘 밤 갈 곳은 있나?”
위라는 또 고개를 저었다.
그가 말했다.
“그럼 우선 별원에서 자고, 내일 영국공부로 데려다주라고 하겠다.”
이송은 육실에게 위라를 데려다줄 마차를 불러오라고 했다.
이송의 시선은 더 이상 위라를 마주하지 못했다.
“가자.”
그러고는 위라가 마차에 오를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먼저 몸을 돌려 걸어갔다.
위라는 마차 앞에 서서 조용히 이송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그의 뒷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육실이 그녀를 재촉했다.
“아가씨?”
위라는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멈칫하더니 곧장 이송을 향해 걸어갔다.
발소리를 들은 이송이 고개를 돌렸다. 뒷짐을 진 위라가 몇 걸음 앞에 서서 그를 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무슨 일이지?”
위라가 입을 오므렸다.
“절 도와주는 대신, 조건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송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한참이 지나고, 그가 한 글자씩 힘주어 말했다.
“위라야, 무슨 뜻이지?”
위라가 고민 끝에 말했다.
“그 조건, 받아들일게요.”
그는 조금 괴팍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러 보였다. 그리고 뒷모습이 참으로 쓸쓸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의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송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눈이 시큰하게 부어올랐다. 눈앞의 위라가 흐려지려 했다. 그가 갑자기 성큼성큼 위라에게 걸어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두 팔이 그녀를 꼭 감쌌다. 위라는 아파서 몸을 움직였지만 그는 조금도 팔을 풀지 않았다. 이송이 얼굴을 그녀의 얼굴에 댔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과 싸워 온 사람처럼, 잠긴 목소리로 그녀에게 겁을 주었다.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나?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는데.”
위라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당연히 무슨 말인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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