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Expenses RAW novel - Chapter 221
2: 황후의 일상
정오가 되자 조금 더웠다. 약한 바람이 창가의 얇은 가림막을 넘어 안으로 들어왔다. 바람에도 후덥지근한 공기가 조금 실려 있었다. 용 문양이 새겨진 나한상 위, 조개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두 손을 배 위에 올리고 얼굴을 찌푸린 채였다. 무슨 꿈을 꾸는지 안색도 좋지 않았다. 미간이 점점 구겨지더니 결국 두 손을 꽉 쥐고 침상을 힘껏 내리쳤다.
“아라야!”
침상에서 큰 소리가 나고, 조개도 그 소리에 잠에서 깼다.
이마는 땀범벅이 되었다. 그가 천천히 침상에서 일어나 앉아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여봐라.”
푸른색 예살을 입은 어린 태감이 다급히 들어와서 두 손을 모아 감추고 공손히 말했다.
“폐하.”
조개가 말했다.
“황후는?”
“폐하, 황후마마께선 태자 전하, 공주마마와 함께 후원의 화원에 계십니다.”
조개는 눈을 내리깔았다. 깊은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가 한참 후에 손을 내저었다.
“가 보거라.”
어린 태감이 곧장 허리를 굽히고 물러갔다. 조개는 주먹을 꽉 쥐었다 다시 풀었다. 그의 까맣고 깊은 눈동자가 한 곳을 응시했다. 조금 전의 그 꿈이 떠올랐다.
그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두려운 악몽이었다.
조희도 없고, 그와 위라가 낳은 딸도 없고, 심지어 조개 자신도 없었다. 어린 위라를 보았다. 그녀가 두 씨에 의해 인신매매 업자에게 팔려 가는 걸 봤고, 그녀가 필사적으로 도망치다 결국 용수촌이라는 곳까지 가게 된 것도 봤다. 그녀가 양부모에 의해 강제로 영혼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가족을 만나기 위해 비틀거리며 성경성까지 가는 것도 보았다…….
조개는 주먹을 쥐었다. 우둑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다음 일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 모든 일 앞에서, 그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말도 할 수 없고, 어떤 형태를 띨 수도 없었다. 그저 이송이 나타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송이 의지할 곳 없는 위라를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녀에게 옷과 음식을 주고, 부귀영화를 주고, 결국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는 모습을 말이다.
조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도 그 감정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꿈속에서 느꼈던 무력감과 분노는 여전히 그를 짙게 휘감았다. 자신의 보물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이 이토록 자신을 무너트릴 줄이야.
조개는 용상에서 내려와 용이 상서로운 구름을 타는 문양이 수놓인 자줏빛 도포를 걸친 후 주경과 양호를 불렀다. 그러고는 창가에 서서 말했다.
“이송의 행적을 알아보거라. 지금 그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겠다.”
주경과 양호는 이제 조개의 어전 호위 무사가 되어 위계가 매우 높아졌다. 평소 다른 일이 없을 때는 조개의 곁에서 지시를 따랐다. 조개는 급히 처리해야 할 은밀한 일이 생기면 무조건 두 사람에게 시켰다.
두 사람은 조개의 지시를 듣자마자 멈칫했다. 이송의 이름은 이미 다른 사람들에겐 잊힌 존재일 터였다. 조개가 언급하지 않았다면 그들도 이송을 잊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주경과 양호는 맡은 바 소임을 다 하는 호위 무사였다. 잠시 의아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조개는 기한을 정해 준 후, 두 사람을 물리고 창가에 한참이나 서 있었다. 문득 위라가 아이들과 후원 화원에 있다고 했던 소태감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발걸음을 돌렸다. 위라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의, 그만의 꼬마 아가씨를 안고 싶었다. 그녀가 이송의 품이 아닌 자신의 품에 안긴 것을 확인해야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팔월의 성경성은 여전히 후덥지근했다. 그래도 한낮이 지나고 해 질 무렵이 다가오면 서늘한 기운이 맴돌곤 했다. 위라는 낮잠을 자지 않을 때는 두 아이를 데리고 무쌍전 뒤편의 화원에서 노는 걸 좋아했다. 거기엔 그네도 있고, 덩굴이 우거진 그늘도 있고, 구불구불 흐르는 시내도 있었다. 조희와 염염도 이곳에서 노는 걸 가장 좋아했다.
조개가 도착했을 때, 위라는 자등 덩굴 밑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품에는 피부가 뽀얗고 부드러운 여자아이가 안겨 있었다.
아이는 나비가 수놓인 분홍색 유군을 입고, 양쪽으로 틀어 올린 머리에는 구슬을 꿴 장식을 묶었다. 고개를 들고 옹알옹알거리며 위라에게 말을 배우고 있었다. 얼굴도 위라와 매우 닮았다. 큰 눈에 작은 코, 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 한 명은 아름답고 어린 부인이었고, 한 명은 작고 사랑스러운 꼬마였다.
위라의 다리 근처에 있는 귀목 량탑에도 아이가 앉아 있었다. 조희는 노반쇄(魯班鎖, 중국 춘추 전국 시대의 유명 발명가 노반이 만든 자물쇠)를 들고 열심히 만지작거리는 중이었다. 그의 손 근처에는 모양이 다른 자물쇠들이 몇 개나 있었다. 매화쇄, 팔각쇄, 이십사쇄 등…….
꼬마는 차분하게 스물네 번 만에 노반쇄 하나를 해체했다가 다시 맞추었다. 다 맞춘 후, 준수한 얼굴을 들고 새카맣고 맑은 큰 눈을 깜박였다. 웃으니 선명한 보조개가 나타났다. 조희가 노반쇄를 위라의 앞에 가져가 말했다.
“모후, 저 다 했어요. 대단하지요?”
태어났을 때는 위라를 빼닮았던 조희는 자라나며 점점 조개의 얼굴을 닮아 가고 있었다.
위라는 그가 들고 있는 노반쇄를 내려다보았다. 만 스무 살이 되었는데도 피부는 여전히 열네다섯 살의 어린 아가씨들과 다를 바 없이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그녀가 조희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정말 대단하구나.”
조희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가 뿌듯한 표정으로 기대하며 말했다.
“부황보다 대단해요?”
세 살이 조금 넘은 조희의 눈에는 부황 조개가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사람이었다. 입술만 움직여도 수많은 대신들과 백성들이 그의 말을 들었다. 그의 말은 하늘과도 같아,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조희는 아버지가 바람과 비를 부를 수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위라가 웃으며 그를 달랬다.
“희아랑 부황은 좀 다른데. 희아도 대단하고, 부황도 대단하지. 하지만 희아는 아직 어리니까, 나중에 크면 부황과 한번 시합해 봐. 그럼 누가 더 대단한지 알 수 있을 거야.”
조희가 얼른 노반쇄를 내려놓고 위라의 다리에 엎드렸다. 한 손으로는 여동생의 통통한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제가 커서 부황보다 대단해지면 동생을 안게 해 주실 거예요?”
위라는 아직 힘이 약한 아들이 염염을 떨어뜨릴까 봐 최대한 안지 못하게 했다. 뜻밖에도 조희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만큼 통통하고 귀여운 동생을 많이 안아 보고 싶었으리라.
위라가 말했다.
“물론이지.”
조희는 신이 났다. 한 아이는 위라의 무릎에 앉아 있고, 다른 아이는 위라의 다리에 엎드려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만 한 살이 된 염염은 간단한 단어만 말할 수 있었다. 얌전한 성격이고 낯을 가려서 다른 사람이 장난을 쳐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부모와 오라버니 앞에서는 잘 웃었다. 지금은 조희가 놀아 주니 촉촉한 눈망울이 반달 모양이 되어 아랫입술을 깨물고 까르르 웃었다.
조희가 염염의 손을 잡고 위라에게 물었다.
“어머니, 동생 데리고 포도 따러 가도 돼요? 포도가 익었잖아요. 동생한테 먹여 주고 싶어요.”
염염은 아직 걷지 못했다. 어른의 손을 잡아야만 아장아장 몇 걸음을 걸을 수 있는 정도였고, 보통은 걷다 말고 위라의 다리에 폭 안겼다. 위라는 불안한 마음에 고민하다 말했다.
“금루와 같이 가렴. 동생이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일 년 전, 위라는 백람을 시집보냈다. 그러나 금루는 절대 가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아직도 위라의 곁에서 시중들고 있었다.
이제 나이가 찼으니 위라도 더는 미룰 수가 없어서 좋은 혼사 자리를 물색해 볼 참이었다. 매번 조개를 따라오는 주경의 눈이 무의식적으로 금루에게 가 닿는 것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금루는 고개를 숙인 채 그를 보지 않았지만, 위라는 이 상황을 마음에 담아 두고 결심을 굳힌 참이었다.
금루가 염염을 안고 조희를 따라 맞은편 포도 덩굴 아래로 걸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 조희는 맞은편 파초 나무 옆에 선 사람을 발견했다. 그가 미소를 거두고 얼른 공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조개의 맞은편에 가서 섰다.
“부황.”
조희는 활발한 장난꾸러기였지만, 속으로는 조개를 조금 무서워했다. 위라의 앞에선 애교를 부리고 뽐내기도 했으나 조개 앞에서는 얌전하고 차분한 아이가 되었다. 조개가 있을 때, 조희는 어머니에게 너무 친근하게 굴 수도 없었다. 그럴 때마다 조개가 살벌한 표정으로 자기를 쳐다봤기 때문이다.
조희는 나중에야 조개가 자신에게 알 수 없는 시선을 보내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가 막 태어났을 때, 어머니가 항상 자기에게만 주의를 기울이자 아버지가 매우 질투했으며 그 화가 아직도 풀리지 않아서 자기만 보면 이런 표정을 짓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조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딜 가는 게냐?”
조희가 앞쪽의 포도 덩굴을 가리켰다.
“동생 데리고 가서 포도 따려고요. 동생이 포도를 좋아해요.”
조개는 금루가 안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상대적으로 염염을 대하는 태도는 훨씬 온화했다.
염염이 위라를 많이 닮아서인지 그는 염염을 자주 안아 주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금루에게서 염염을 받아 품에 안은 다음 그녀의 콧등을 쓸었다. 그러고는 미소 지으며 염염에게 말을 걸었다.
염염은 알아듣지 못하고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아버지” 하고 불렀다. 염염에게서 나는 향긋한 젖내음이 그의 마음에 가득 차 있던 불안을 몰아냈다. 천천히, 마음이 평온해진 조개가 부드럽게 물었다.
“염염이 포도를 좋아한다고?”
염염이 큰 눈을 깜박거리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좋…아. 먹어, 먹어.”
조개가 낮게 웃으며 그녀의 볼에 입을 맞췄다.
“네 어머닐 닮아 아주 먹보구나.”
염염이 작게 “우우.” 소리를 냈다. ‘어머니’라는 말만 알아듣고는 아버지가 웃는 걸 보며 따라 웃었다. 찹쌀 같은 조그만 앞니가 보였다. 그녀가 두 팔을 벌리며 옹알거렸다.
“어머니… 먹보…….”
아버지와 딸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개가 염염을 금루에게 넘기려던 그때, 아래를 내려다보니 또 다른 녀석이 하나 있었다. 조희가 고개를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커다란 두 눈에 기대가 가득 담겨 있었다.
작은 입을 살짝 다문 채 미소 짓는 표정이었다. 동생이 너무 귀여워서 자기도 모르게 따라 웃었던 것 같았다. 조희는 조개의 시선과 마주치자 잠시 멍하니 있다가 얼른 표정을 고치고 차분하게 말했다.
“부황.”
조개도 멈칫하더니 말했다.
“가서 놀아라.”
조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예.” 하고 말하고는 금루와 염염을 데리고 맞은편 포도나무 덩굴로 갔다. 어린 녀석이 감정을 잘 숨기긴 했지만, 조개는 아들의 눈 속에 담긴 갈망을 알아차렸다.
그동안 너무 엄하게 대했나.
조희가 몇 걸음 가기 전에, 조개가 그를 불러 세웠다. 조희는 고개를 돌려 다시 조개의 앞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세요?”
조개가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당부했다.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된다. 배탈이 날 수도 있어.”
예전에 위라도 포도를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집에 돌아가자마자 구토와 설사로 며칠을 앓아누웠던 일이 떠올랐다.
조희의 큰 눈이 반짝이고, 입이 벌어졌다. 깊은 보조개가 나타났다. 그가 다시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조개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 보거라.”
녀석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뛰어갔다. 통통거리며 멀어지는 발걸음이 아주 가벼웠다. 조개는 조희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 짓다가 그제야 위라에게로 걸어갔다. 위라는 자등 덩굴 아래에 앉아 조금 전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었다. 조개가 다가오자 그녀가 애틋하게 말했다.
“희아한테 너무 엄하게 하지 마세요. 아직 어리잖아요. 항상 염염이만 안고 희아는 안 안아 주면 속상해할 거예요.”
조개가 옆에 앉아 그녀를 무릎 위에 앉혔다. 그러고는 큰 손으로 그녀의 작은 손을 감싸며 말했다.
“아들은 엄하게 대해야지.”
그래야 앞으로 훌륭한 남자가 되지 않겠는가.
위라는 동의할 수 없었다. 두 아이 모두 그녀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존재였다. 조개가 이렇게 편파적으로 대하는 건 두고 볼 수 없었다.
“그건 아니에요. 아직 네 살도 되지 않은 아이예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가끔은 그냥 아버지가 자기를 안아 주었으면 하는 건데 항상 엄한 얼굴을 하시니. 보는 제가 다 안타까워요. 계속 이런 식으로 하시면 저 정말 화낼 거예요.”
그러고는 노파심에 한마디 덧붙였다.
“일찍이 독립심을 길러 주고 싶은 마음은 알겠어요. 하지만 너무 이른 것 같지 않아요? 열 살이 되고 나서 하면 안 될까요? 게다가 이젠 별로 어리광도 부리지 않는걸요. 염염이하고 놀 때만 신나 하고요. 유리네 금아(錦兒)가 놀러 왔을 때도 어른처럼 행동하는 걸 봤어요…….”
조유리와 양진은 이 년 전 딸을 낳았다. 아명은 금아였는데, 입궁할 때마다 조희와 같이 놀고 싶어 했다.
조희와 금아의 사이는 아주 좋았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서먹해진 후로 며칠이나 서로 말을 안 하더니 금아도 보름이나 입궁을 하지 않았다.
조희는 말하지 않았지만, 위라는 알 수 있었다. 분명 금아가 보고 싶은데도 치기 어린 마음에 “금아는 왜 안 오냐”라는 말을 하기가 민망했던 것이다.
조개가 뒤에서 위라를 품에 안고 턱을 그녀의 볼에 대며 감미롭게 웃었다.
“알았다. 우리 아라가 하라는 대로 해야지.”
위라가 그를 흘겨보았다.
조개는 그녀가 분명 또 자신이 점잖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는 걸 알아채고 낮게 웃었다. 그가 그녀에게 볼을 비비며 말했다.
“네가 희아만 너무 사랑하고 반년이나 나를 홀대해서 그런 것 아니냐. 내 마음이 아직도 아프다.”
위라가 팔꿈치로 그의 가슴을 찌르며 흘겨보았다.
“왜 이렇게 속이 좁아요? 몇 년이 지난 얘긴데.”
조개는 부인하지 않았다. 어느새 다른 일이 떠오르자 그의 봉안이 어두운 빛으로 가라앉았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너와 관련된 일은… 대범할 수가 없단다.”
위라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소심한 모양새에 이미 적응이 되어 입을 한번 비죽 내밀고는 미소 지었다.
한참이 지났다. 조개는 여전히 그 자세 그대로 위라를 안고 있었다. 팔은 집게처럼 위라를 꽉 안고 놓지 않았다. 위라는 불편해서 몸을 비틀다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더워요. 무슨 일 있어요? 오늘 조금 이상한 것 같아요.”
조개는 여전히 그녀를 놓아주지 않은 채,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라야, 내가 없었다면, 너는 이송과 혼인했을까?”
위라는 그대로 멈춰서 눈을 크게 떴다. 고개를 돌려 조개의 표정을 보려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조개는 말없이 이마를 그녀의 목덜미에 묻었다. 어떤 감정이 치고 올라왔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대신 그녀를 감싼 팔에 점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위라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또 물었다.
“왜 그렇게 물으시냐고요.”
조개는 잠시 침묵하다 꿈에서 본 것들을 위라에게 말해 주었다. 위라는 얘기를 들으며 눈을 크게 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조개가 꿈에서 그녀의 전생을 봤을 줄이야. 그녀가 성경성에 온 후의 일을 제외하면 전생에서 겪었던 모든 일들이 똑같았다.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린 위라가 핵심을 짚었다.
“그래서, 저와 이송이 같이 있는 꿈을 꿨다고요?”
조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했다.
잠시 생각하던 위라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조개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러고는 얼굴을 그의 단단한 가슴에 기댔다.
“저도 꿈을 하나 꿨어요. 들어 볼래요?”
“무슨 꿈인데?”
위라가 흥미진진하게 말했다.
“제 꿈은 오라버니 꿈이랑 비슷해요. 여섯 살 때 계모에 의해 인신매매 업자에게 팔려 갔어요. 열다섯 살 때 용수촌에서 도망쳤고, 그 후에 성경성에 들어갔지요…….”
그녀는 전생을 떠올렸다. 아주 오래된 일이었지만, 조개가 언급해 주었기에 기억이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하지만 이송을 만나지도 않았고, 이송과 혼인하지도 않았어요. 제 꿈에선 이상이 상홍이와의 혼사를 무르기 위해 이송과 함께 상홍이의 앞길을 망쳐 놓았죠. 저는 아버지를 한번 뵙지도 못했고, 위쟁과 두 씨한테 얼굴을 다친 후 죽었어요.”
말을 마친 그녀가 잠시 뜸을 들이다 고개를 들어 조개를 바라보았다.
“꿈속의 제가 너무 불쌍하지 않나요?”
조개가 그녀의 얼굴을 받치며 물었다.
“그래서 일곱 살 때, 나더러 용수촌에 데려가 달라고 한 것이냐?”
위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에 조개를 향한 신뢰가 가득했다.
“확인하고 싶었어요. 꿈속의 풍경과 같은지……. 사실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그녀가 조개의 품에서 손을 모았다. 그를 다독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꿈일 뿐이에요. 꿈속의 일이 어떻게 진짜로 일어나겠어요? 전 오라버니와 혼인했고, 작은 수박과 염염이도 낳았어요. 이번 생은 오라버니와 함께인걸요. 다른 사람과 혼인할 일도 없어요. 오라버니만큼 좋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조개가 그녀의 몸을 돌려 마주 보고 앉게 한 후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댔다.
“다음 생에서도, 그다음 생에서도 너는 내 것이다.”
위라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조개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걸론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그녀의 이를 비틀어 열고 깊게 들어왔다.
위라가 “읍” 하는 소리를 내며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녀가 속눈썹을 팔랑거리며 말했다.
“희아와 염염이가 있는데…….”
조개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안 보인다.”
이어지는 위라의 말은 조개가 집어삼켰다. 두 사람은 그렇게 몸을 밀착하고 격렬한 입맞춤을 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한 사람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조희는 품에 커다란 포도 두 송이를 안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잘 씻어서 아버지와 어머니께 드려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저 앞에 두 사람이 엉켜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입술을 깨문 채 어머니를 반쯤 누르다시피 했다. 아버지는 진귀한 음식을 음미하는 사람처럼, 깊이 몰입해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아들이 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그녀도 빠져들어 있었다.
조희는 잠시 보다가 긴 속눈썹을 팔랑거리며 눈치 빠르게 달아났다.
‘음, 부황과 모후께서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시니 일단 동생이랑 놀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