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Expenses RAW novel - Chapter 25
제25화
위라는 닭고기 표고버섯 죽을 조심스레 한 입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앞니가 빠진 후로는 만두를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생에서는 궁에 들어갈 일이 없었으니, 진 황후를 본 적도 없었다. 진 황후는 도량이 넓고 행동이 비범하며 단정하고 대범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녀는 숭정황제와 함께 전장에서 싸우기도 했다. 이렇게 훌륭한 여인을 두고, 황제는 어째서 영 귀비만 총애하는 걸까?
위라의 관심은 대량의 여장군이었던 진 황후에게 있었다.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그러나 진 황후가 조개의 모친이라는 걸 떠올린 순간, 흥미가 조금 가셨다. 그녀는 아직도 조개가 자신을 비웃은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도 앞니가 빠진 적이 있을 텐데 굳이 남의 입을 벌려 보다니,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자신을 놀리는 게 재밌단 말인가? 위라는 그가 정말 시답잖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입을 앙다물었다.
* * *
진 황후의 탄일은 오월 초여드렛날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황제와 황후의 불화가 깊어지더니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인지 연회도 이전만큼 성대하지 않았다.
연회는 황궁 태액지(太液池) 옆의 신안루(新雁樓)와 임강루(臨江樓)에서 열렸는데, 산과 물이 인접한 두 누대(樓臺)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지붕의 오지기와는 눈부시게 반짝였고, 치문(鴟吻, 용마루나 지붕골의 끝에 얹는 새 머리 형상의 기와)이 양 끝에 똬리를 틀었다.
높이 들린 추녀와 붉은 용마루를 쓴 청기와도 눈길을 끌었다. 멀리서 보면 신선들이 노닐 듯 아득한 느낌을 주었지만, 가까이서 보면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용과 봉황으로 황궁의 위엄을 살리고 있었다. 부조된 용은 위에서, 봉황은 아래에서 색색의 구름과 안개를 휘감은 채 날았다.
두 누대는 각각 조정 대신들과 관료들을 맞이했다. 위곤은 아이들을 직접 신안루 아래에 데려다준 후에도 마음이 놓이질 않아 넷째 부인 진 씨에게 얘기했다.
“아이들 좀 부탁드립니다……. 혹시 상황이 여의치 않으시면 어멈을 불러도 괜찮습니다.”
이미 아들만 셋을 데려온 진 씨는 위라, 위쟁, 그리고 위상홍까지 챙기려니 정신이 없었다. 원래 이런 자리에 올 때는 두 씨가 함께 와야 했다. 그러나 위곤은 두 씨를 집에 홀로 남겨 두었다. 위곤의 뒤에 위쟁이 바짝 붙어 있었다. 어머니도 오지 못했고, 나이도 어리니 황궁의 위엄에 주눅이 든 탓이었다.
진 씨는 아이들을 챙기며 상냥하게 웃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안심하고 맡겨 놓고 가세요.”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했기에, 누대 앞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태감들과 시녀들만 바삐 오가며 과일과 요깃거리들을 날랐다. 위곤은 진 씨와 세 어멈을 바라보았다. 세 아이 모두 자기의 유모가 함께 왔으니 별일 없을 터였다. 위곤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임강루로 향했다.
진 씨는 멀어지는 위곤을 보며 가벼운 탄식을 흘렸다.
두 씨는 그에게 좋은 배필이 아니었다. 비록 아들과 딸이 옆에 있다 한들, 진정으로 그의 손을 잡고 걸어갈 한 사람의 자리는 텅 비어 있지 않은가. 그 자리에 강묘란이 있었더라면, 두 씨의 자리는 애초부터 생겨나지도 않았을 터였다.
진 씨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들을 누각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녀의 주변은 너무도 시끌벅적했다. 아이가 여섯이니 한 사람이 한마디만 해도 다른 사람 목소리가 파묻혔다. 옆에 있던 첫째 부인이 웃으며 물었다.
“괜찮겠는가? 힘에 부치면 아라와 상홍이는 내가 보겠네.”
진 씨가 미소 지으며 완곡히 거절했다.
“평소에도 아라와 상홍이는 제가 보살폈으니, 오늘도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위쟁이 진 씨의 손을 홱 뿌리치더니 앞에 있던 셋째 부인 류 씨에게 달려갔다.
“셋째 백모님한테 갈 거예요!”
위쟁에게 덥석 붙잡힌 류 씨가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더니 금세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진 씨에게 웃어 보인 후 위쟁을 데리고 올라갔다. 류 씨는 두 씨와 가까운 사이였으므로 위쟁에게도 자상했다. 그래서 위쟁은 셋째 백모를 가까이할지언정 넷째 백모에게는 살갑게 굴지 않았다.
진 씨는 멈칫했으나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녀는 위쟁이 뿌리친 손으로 상홍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상냥히 말했다.
“우리도 올라가자.”
신안루는 삼 층으로 되어 있었고, 그중 일 층은 난간에 기대어 감상하는 곳이었다. 사방에 병풍과 벽화가 세워져 있고, 네 귀퉁이에는 각각 화조문(花鳥紋)이 그려진 법랑 병이 놓여 있었다.
정동 쪽에는 팔보유리탑(八寶琉璃榻)이 있고, 그 위에는 꽃장식이 된 선홍색의 영침(迎枕)이 있었다. 진 황후가 오면 앉게 될 자리였다. 이 층과 삼 층의 정중앙에는 주칠이 된 작은 나전 탁자가 있고, 그 위에 해바라기 씨, 땅콩, 복숭아 등 과일과 간식을 올려 두었다.
위라는 진 씨를 따라 들어갔다. 안에는 자색 비단 반비(半臂, 소매가 없거나 짧은 옷)와 아름답게 장식한 담황색 비단 치마를 입은 여자아이가 땅콩을 까며 앉아 있었다. 아이의 앞에는 땅콩 껍데기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지만, 아이는 땅콩을 먹는 데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과연,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앞에는 기러기 떼 모양으로 붉은 땅콩이 널려 있었다. 얼굴도 눈도 동그란 아이가 웃자 양 볼에 보조개가 선명하게 파였다.
위라는 그녀의 옆에 있던 시녀가 그녀를 둘째 아가씨라 부르는 걸 들었다. 어느 집의 규수인지 추측해 보려는데, 저 앞에서 양옥용이 그녀를 불렀다.
양옥용은 금사가 수놓인 담녹색 짧은 상의와 월백색 비단 치마를 입었다. 머리는 동그랗게 틀어 올렸다.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한 양옥용은 정성스럽게 꾸민 덕분에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는 낮은 평상에 앉아 부조로 조각된 홍목(紅木) 팔걸이를 잡고 밖을 보다가 맞은편을 가리켰다. 양옥용의 얼굴 가득 흥미진진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아라야, 저기 봐. 여기서 저쪽이 보여.”
위라가 그녀의 옆에 앉아 보니, 맞은편 임강루가 보였다. 임강루는 신안루처럼 삼 면을 푸른 휘장으로 가린 대신 사방을 뚫어 놓았다. 두 누대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아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잘 보였다.
딱히 할 일이 없는 양옥용은 아는 사람을 찾아내는 데 집중했다. 아버지도 있고, 오라버니도 있고, 사촌들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가 한 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라야, 저 사람 너희 첫째 오라버니 아니야?”
위라는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태액지 옆에 정말로 오라버니가 있었다. 위상인은 바퀴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의 맞은편에는 헐렁한 옷을 입고 넓은 띠를 두른 소년이 서 있었다. 뒷짐을 진 소년은 그녀들을 등지고 있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위라는 고개를 끄덕거리다 순간 멈칫했다.
이 시점의 양옥용은 위상인을 몇 번 본 적이 없고, 보더라도 약간의 동정심만 가지고 있을 터였다. 위라는 전생에서의 그들을 떠올리며 턱을 괴었다. 지금부터 말려야 하나? 전생에서 양옥용이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감정의 싹을 잘라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토록 진심을 다해도 아무런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게 좋을 터였다.
위라는 양옥용을 끌어당긴 다음 홍매란(紅梅蘭) 문양의 둥근 접시에 담긴 땅콩을 한 움큼 집어 건넸다.
“저기까지는 너무 멀어서 잘 안 보이네……. 그만 보고 땅콩이나 먹자.”
땅콩을 받은 양옥용이 하나를 까서 입에 넣으려던 그때, 맞은편에서 뚫어질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주칠을 한 작은 탁자 뒤에 있던 여자아이가 그녀를 빤히 보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양옥용이 눈을 깜빡거리다가 껍질을 깐 땅콩을 건넸다.
“너도 먹을래?”
상대방은 땅콩을 먹고 싶은 게 아니었다. 땅콩을 놓아 만든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가 아직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위라가 접시의 땅콩을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땅콩이 부족해진 것이다. 여자아이는 잔뜩 화가 나서 앞에 있던 땅콩을 싹 밀어 버렸다. 한참 만든 도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가 입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
“안 해, 안 한다고!”
여자아이는 진국공부(鎭國公府)의 둘째 아가씨, 고청양(高晴陽)이었다. 나이는 여섯 살로 위라, 양옥용과 동갑이었다. 진국공 부인은 진 황후의 여동생으로, 슬하에 딸만 둘이었다. 첫째는 고단양으로, 올해 열네 살이었지만 최고의 미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아들이 없다고 해도, 친정과 진 황후 덕분에 진국공 부인의 지위는 안정적이었다. 그동안 진국공이 들인 첩실은 하나뿐이었고, 그 첩이 아들을 낳더라도 진국공 부인의 슬하에서 키워야 했다.
고청양이 화를 냈지만 양옥용은 다른 사람처럼 달래 주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땅콩 더 먹을 거야?”
고청양이 콧방귀를 뀌었다.
“아니.”
양옥용은 비단 손수건에 땅콩을 담았다. 그녀가 먹으려는 건 줄 알고 고청양이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는데, 양옥용이 말했다.
“아라야, 이거 뒤에 있던 새끼 고양이 주자. 올 때 보니까 고양이가 많더라고. 되게 예뻐. 바로 뒤에 있어.”
어차피 이 누대에선 할 일도 없었고, 진 황후가 언제 올는지도 알 수 없었다. 위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던 진 씨에게 물었다.
“백모님, 내려가서 놀다 와도 돼요?”
정릉후부 사람과 얘기를 나누던 진 씨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위라의 표정이 너무도 간절했고, 이미 내려가서 노는 아이들도 많으니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아 어멈 둘도 함께 보내며 위라에게 당부했다.
“멀리 가진 말아라. 금방 돌아와야 한다.”
위라가 활짝 웃으며 ‘네’ 하고 명랑하게 대답했다.
분이 안 풀린 고청양은 씩씩거리며 위라와 양옥용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탁자 위의 땅콩을 던져 버리려는데 누군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상홍이었다. 상홍은 굳은 얼굴에 떠오른 까만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 마.”
처음 보는 아이였지만, 고청양은 무심결에 물었다.
“뭘 하지 마?”
상홍은 대답 대신 열심히 고청양의 손을 펴서 그 안에 든 땅콩을 하나하나 집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더니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위라를 따라 내려갔다. 잠시 멍해졌던 고청양이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알고 보니 저 남자아이도 한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