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Expenses RAW novel - Chapter 30
제30화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이를 들은 여양왕이 그를 망나니라 부르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 그러더니 그를 상홍의 앞까지 끌고 와서 내동댕이쳤다.
“내가 조금 전에 뭐라고 했는지 잊었느냐? 여태 사과도 하지 않고 뭐 하느냐?”
비틀거리던 이송이 겨우 제대로 섰다. 그는 상홍을 한번 보고, 위라를 한번 보고 말았다. 그에게는 조금도 사과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어느새 구경꾼들이 흩어지며 태감 몇 명과 영국공부, 그리고 여양왕부 사람들만 남았다. 이지량이 위곤에게 읍하며 송구스럽다는 듯 말했다.
“본왕이 자식을 잘못 키워 대인의 아들을 다치게 했소. 성명 대인께서 너른 아량을 베풀어 내 아들을 용서해 주시오.”
아무 의미도 없는 사과였다. 이미 자신을 ‘본왕’이라고 지칭한 마당에 위곤이 그의 아들을 어찌할 수 있겠는가? 위곤은 표정이 어두웠지만 그래도 예를 갖췄다.
“아이들이야 장난기가 넘치니 치고받고 싸우는 건 늘 있는 일이지요. 왕야께서 자책하실 일이 아닙니다.”
그가 잠시 뜸을 들였다. 아무리 온화한 사람이라도 성질이 있는 법이었다.
“다만, 상홍이 명줄은 한 가닥뿐이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양왕은 빙그레 웃으며 얼른 말했다.
“성명 대인의 말이 참으로 지당하오. 본왕이 돌아가서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겠소.”
이송은 계속 꾸물거리며 상홍에게 사과를 하지 않고 버텼다. 결국, 여양왕이 주먹을 휘두르며 위협하자 그제야 겨우 입술을 비죽거리며 무성의하게 말했다.
“아깐 내가 잘못했어. 널 빠뜨려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근데 어쨌든 너도 멀쩡하니까, 서로 아무 일 없었던 걸로 끝내자.”
위라는 그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쨌든 너도 멀쩡하니까’라니? 안 멀쩡했으면, 모든 게 끝이지 않은가?
여양왕도 이 말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당장이라도 그를 때릴 듯 주먹을 휘두르며 화냈다.
“말을 똑바로 하지 못할까!”
이송을 바라보는 위라의 눈동자에 괴상한 빛이 담겼다. 그녀는 분노가 담겨 있으면서도 새침한 말투로 말했다.
“네가 내 동생 빠뜨렸으니까, 너도 우리가 너 한 번 밀어서 빠뜨리게 해 주면 용서해 줄게.”
위곤이 소리쳤다.
“아라야!”
그러나 그뿐이었다. 어쨌거나 아이들의 일이고, 때로는 어른들이 개입할 수 없는 선도 있었다. 게다가 위라 또한 어린아이니 무슨 말을 해도 그저 ‘어린아이가 생각 없이 내뱉은 말’로 다가왔다.
위곤이 이지량을 힐끔 보니, 이지량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위라의 말이 억지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이송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웃으며 거들먹거렸다.
“그게 뭔 대수라고? 한 번이 아니라 백 번 밀어도 상관없어.”
이송은 자신이 배운 무공을 믿었다. 게다가 수영도 할 줄 알았다. 그는 위라의 말에 위축되기는커녕 재밌겠다고 생각하며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목욕 한번 한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너그러운 자신이 똑같이 따지고들 필요가 있을까?
이지량은 아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날까 봐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지켜보고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원하는 대로 해 주면 진심 어린 사과로 보일 수도 있고, 자신이 세력만 믿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는 기회였으므로,
위라는 자신만만한 이송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웃어 두라지, 웃을 수 있을 때 마음껏 웃는 게 좋을 것이다.
황제와 황후가 올 시간이 거의 다 되었기에, 사람들은 모두 신안루와 임강루로 향했다. 위라가 있는 곳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태액지의 가장자리는 옥돌로 장식되어 있고, 수면까지의 깊이는 대략 한 척 반 정도였다. 위라는 물가에 서서 앞에 있는 이송을 쳐다봤다.
“여기서 밀 거야. 네가 올라오면, 우리 사이에 남은 건 없는 거야.”
그녀는 조금 전 이송의 말을 따라 했다. 앳된 목소리와 말투는 영락없이 아이다웠지만, 표정만큼은 비장했다. 그러나 이송이 보기엔 우스울 따름이라,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빨리해. 안 그러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위라가 그의 가슴을 확 밀쳤다.
이송은 미처 손쓸 틈도 없이 뒤로 기울어졌다.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물속으로 고꾸라졌다.
물은 빠르게 그를 집어삼켰다. 다행히 이송은 물에 빠진 그 순간 곧바로 몸을 틀었다. 숨을 참고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헤엄치기까지 했다. 그가 수면 위로 올라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위라를 쳐다봤다. 여양왕 이지량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리쳤다.
“저 불효막심한 놈, 빨리 올라오너라!”
이송은 양팔을 휘저으며 다가와 뭍으로 나오려 했다. 그러나 손이 석벽에 닿은 순간, 기묘한 기분에 올려다보니 위라가 그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미소 짓고 있었다. 어딘가 찝찝하고 기괴한 미소였다. 어쩐지 함정에 빠진 기분이 들어, 이송이 미간을 찌푸렸다.
“비켜, 이 몸이 올라가야 하니까!”
위라가 고른 지점은 푸른 이끼가 잔뜩 끼어 있어 미끄럽고, 올라오기도 쉽지 않았다. 물론 이송에게는 올라가는 게 일도 아니었다. 한데, 위라가 가느다란 가지를 들고 거기에 버티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나뭇가지로 그의 손등을 마구 찔러 대기 시작했다.
“내려가.”
이송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가 이를 갈았다.
“어디서 감히…….”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위라가 더 힘을 주었다. 나뭇가지가 그의 살을 파고들었다. 그녀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안 내려가?”
이송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얼른 손을 놓았다. 그와 동시에 또다시 물보라를 일으키며 가라앉았다.
자초지종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송이 제대로 올라서지 못해 다시 빠진 줄만 알았다. 아들이 걱정된 이지량이 다급히 호위무사를 불렀다.
“빨리, 빨리 세자를 구해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조개는 한쪽에 서서 위라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볼 만큼 다 본 것일까, 그가 이지량을 제지하고 나섰다.
“왕야께서 방금 말씀하셨잖습니까. 이건 저 아이들의 일입니다. 세자는 자기가 원해서 들어간 것이니, 나오는 것도 알아서 나와야지요. 왕야께선 아들을 믿지 못하십니까?”
정왕이 개입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기에, 이지량은 뻣뻣하게 굳은 채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건 아니지만…….”
조개는 그의 말을 자르며 시선을 물가로 두었다.
“아니라면, 기다려 보시지요.”
이지량은 별수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송은 다른 쪽으로 올라가려 했다. 그러나 태액지를 한 바퀴 돌고 나자 욕지기가 올라왔다. 수면 아래는 온통 수초로 뒤덮여 있었고, 물가로 올라가려면 위라가 서 있는 곳만이 길이었다. 다른 곳으로 나가려 하면 수초에 휘감겨 꼼짝달싹 못 하게 될지도 몰랐다. 저 계집,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이송이 이를 악물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났지만, 숨을 쉴 수 없다는 게 급했다. 물이 입과 코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물을 잔뜩 먹고 나서야 물 위로 올라와 위라를 노려봤다.
“너… 일부러 그런 거지?”
위라가 흰 얼굴 가득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일부러라니? 무슨 말이야?”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맞아. 일부러 그런 거야.’
이송은 이렇게 괘씸한 여자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녀를 당장 눈앞에서 없애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 올라가게 비켜!”
물가에 하나, 물속에 하나. 두 사람의 기세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조금 전에 보여 준 이송의 시건방진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점점 초조해졌다. 그도 그럴 게, 물속에 너무 오래 있었다. 마음이 다급해지니 왼쪽 다리가 욱신거렸다. 쥐가 나려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진 않았다.
어려도 지키고 싶은 체면은 있었다. 무엇보다 이송은 자신보다 두 살이나 어린애에게 지기는 죽어도 싫었다!
위라는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서늘했다.
“난 안 막았는데.”
이송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야 길을 막진 않았지만, 위라 때문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 눈앞의 꼬마가 여섯 살이 맞긴 하단 말인가? 어찌 이토록 영악하게 구는지, 이송은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어디 한번 끝까지 가 보자는 마음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승패가 갈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패자는 당연히 이송이었다. 왼쪽 다리에 쥐가 나면서 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점점 가라앉았다. 연못이 그를 완전히 집어삼킬 때까지, 위라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고, 물가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여양왕은 겉옷을 벗어 던지고 직접 물에 뛰어들어 아들을 건져 올렸다.
“송아, 송아!”
잔뜩 물을 먹은 이송은 숨은 붙어 있었지만, 눈앞이 가물가물했다. 그는 흐린 눈을 떠 위라를 찾았다. 위라가 뿌옇게 번져 보였다. 그녀를 가리키며 한참을 ‘너’라는 말만 반복하던 이송은 고개가 꺾이며 정신을 잃었다.
이송은 상홍을 물에 빠뜨렸고, 위라는 이송을 빠뜨렸다. 이 일은 그렇게 끝난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빚진 것도 없고, 누가 어떻다고 할 자격도 없었다.
여양왕은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상대의 뒤에 정왕이 버티고 있으니 무슨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속으로 삭일 수밖에.
* * *
올해의 탄일 연회도 전처럼 진 황후를 위해 축수한 후, 숭정황제의 명에 따라 태액지 옆에서 연극을 펼쳤다.
무대 위에선 배우가 수수(水袖, 소매 끝에 붙어 있는 흰 명주로 만든 긴 덧소매)를 휘두르며 를 불렀다. 그러나 진 황후가 보기에는 웅얼웅얼하는 발음에 가사마저 어려워 뜻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가뜩이나 익숙지 않은 희곡 감상이었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듣던 진 황후는 결국 중반에 숭정황제에게 인사를 올리고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숭정황제는 오사익선관(烏紗翼善冠)을 쓰고 소매가 넓은 원령포(圓領袍)를 입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원기가 넘쳤고 두 눈에는 젊을 적의 총기가 여전했다. 진 황후가 인사를 올리자 그의 깊은 두 눈은 한없이 자상한 웃음을 머금었다.
“황후가 가면 짐이 혼자 남아 뭐 하겠소? 같이 갑시다.”
“아니옵니다. 신첩은 장생(長生)과 함께 가면 됩니다. 마침 장생에게 할 얘기도 있고요. 폐하께서는 공사가 다망하시니, 대신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심이 어떨는지요.”
진 황후는 면전에서 황제의 뜻을 거절했을 뿐 아니라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아래에 있던 조개에게 말했다.
“자, 이리 와서 부축하거라.”
장생은 조개의 아명이었다. 이름에는 바람이 깃들어 있는 법. 진 황후의 바람은 두 아들이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이었다.
조개도 몸을 일으켜 숭정황제에게 인사를 올리곤 진 황후와 함께 자리를 떴다.
남겨진 황제는 표정 없는 얼굴로 오래도록 용의(龍椅)에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