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Expenses RAW novel - Chapter 42
제42화
“아라야, 어디 가는 게냐?”
위라는 위곤이 부르는 소리에도 멈추지 않고 쭉 앞으로 달렸다. 가는 동안 적잖은 시녀들과 부딪히다가 상홍의 처소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제야 위곤이 겨우 위라를 따라잡았다. 난데없이 달려 나가니 위곤은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 보니 상홍을 보러 온 것이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허리를 굽혀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상홍이가 보고 싶은 거였구나. 그게 뭐 그리 급한 일이라고…….”
문득 그의 말이 뚝 멎었다.
위라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쉴 새 없이 굴러떨어지는 눈물방울은 바람에 밀려 얼굴 곳곳으로 번져 나갔다. 어찌나 가여운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버지… 아버지가 우릴 싫어하실까 봐 속상해요.”
위곤은 서둘러 소매로 위라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딸이 우는 모습에 마음이 저미는 듯했다.
“무슨 소릴 하는 게냐? 어찌 너흴 싫어한단 말이냐? 이 아비는 너흴 가장 아끼는데.”
위라가 작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부인이 아기를 낳으면, 아버지는 아기를 예뻐하시고, 우린 싫어하실 거잖아요…….”
위곤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아이의 직감은 가장 정확했다. 그는 딸에게 모든 걸 감췄지만, 사실 그녀는 다 알고 있었다. 평소에 천진난만하기만 하던 작은 아이가 마음속에 이런 생각을 품고 있을 줄이야. 위곤은 웅크려 앉아 위라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럴 리가. 걱정하지 마라. 부인이 아이를 낳더라도 나는 너희를 가장 아낄 거다.”
그때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놀란 상홍이 문을 열고 나왔다. 문 앞에서 훌쩍이고 있는 위라를 보던 상홍의 안색이 대번에 변했다.
“누나?”
위라는 위곤의 어깨에 눈을 비벼 눈물을 닦고는 빨개진 눈으로 상홍을 바라보았다.
“울었어?”
상홍이 다가오며 물었다.
위라는 자신이 운 이유를 말하고 싶지 않았다. 위곤을 속이기 위한 거짓 눈물이었으니까. 그녀가 눈을 비볐다.
“너무 추워서 눈물이 다 나왔네.”
상홍이 어리다 한들 바보는 아니었다. 그가 입술을 비죽거리며 말했다.
“거짓말. 추운데 눈물이 왜 나와?”
위라는 막무가내로 그렇다고 우길 뿐이었다. 상홍은 입술을 오므린 채 위라를 바라보았다. 위라와 다투고 싶진 않으니, 그녀의 억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 *
은행원 안에서는 기진맥진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위곤은 밖에 서 있었다. 넷째 부인도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위라는 목단 문양이 새겨진 빨간색 외투를 두르고 상홍과 소나무 밑에 쪼그려 앉아 눈을 뭉치고 있었다. 둘이 서로 번갈아 가며 눈을 던지는 통에 금세 온몸에 눈을 뒤집어썼다. 날아들던 눈덩이 하나가 위곤의 옆에 서 있던 위쟁의 발치에서 바스러졌다.
위쟁은 충혈된 눈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다가 위곤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버지, 어머니 죽는 거예요?”
위곤은 넷째 부인에게 위라와 상홍을 챙겨 달라고 했다. 저렇게 놀다가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이었다. 뒤늦게 위쟁의 질문을 듣자,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아니다.”
위쟁은 안심이 되었는지 조용히 기다렸다.
방 안에서는 계속 신음이 들려왔다. 힘겨운 출산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엔 높고 날카로운 비명이었는데, 지금은 약하게 헐떡이는 숨소리만이 겨우 들려왔다. 첫째를 낳을 때보다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예정에 없던 조산이었으니 무사히 낳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하늘 저편에 어둠이 깔리고 별이 보일 즈음, 은행원에 새로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산파의 기쁜 목소리가 들렸다.
“낳았습니다. 낳았어요!”
위곤과 넷째 부인이 시선을 교환하며 차례로 방으로 들어갔다.
내실에는 나뭇가지에 앉은 까치가 그려진 사첩 병풍이 둘려 있었다. 그 뒤로 돌아가니, 발보상(拔步狀)에 누워 있는 두 씨가 휘장 너머로 희미하게 보였다. 정신을 잃기라도 한 건지, 그녀에게서는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그때 산파가 위곤을 보았다. 산파는 빙그레 웃으며 ‘다복다남(多福多男)’이라는 글자가 금사로 수놓인 강보를 내밀었다.
“노야, 축하드립니다. 아들이에요. 노야께선 복도 많으시지, 이 아기 좀 보세요…….”
그러나 위곤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산파가 슬쩍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봤다. 여느 아버지와 다른 사내가 서 있었다. 아이를 향한 눈빛에서 기쁨은 한 조각도 찾을 수 없고, 탄생을 원치 않았다는 듯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산파는 얼른 입을 다물고 아이를 안은 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괜한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었다.
위곤은 산파를 지나쳐 침상의 휘장을 걷었다.
종일 시달린 끝에, 두 씨는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볼 기력도 없이 탈진한 것이다. 위곤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 넷째 부인 진 씨에게 말했다.
“형수님, 이 아이는 형수님께서 맡아 주십시오.”
진 씨가 산파에게서 아이를 받아 안았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제가 잘 챙길게요. 절대 이 아이한테 힘든 일은 없을 겁니다.”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된 산파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설마 이 아이를 넷째 마님이 기르시는 건가? 그럼 다섯째 마님은…….
그러나 위곤은 진즉 결정을 내렸다. 성별에 상관없이 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진 씨에게 맡기고, 다섯 살이 되면 넷째 부인의 자식으로 올릴 생각이었다. 이것이 두 씨에게 내리는 벌이었다. 두 씨는 품성이 나빠 아이를 기르기에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위라를 팔아 버리려고 하지 않았던가.
하마터면 가장 사랑하는 딸을 잃을 뻔한 위곤은 두 씨에게도 똑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러니 아이를 이용해 자신의 옆에 있으려 하거나, 아이를 등에 업고 이득을 볼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그 아이는 처음부터 그녀와 아무 인연이 없었다. 그저 그녀의 배 속에서 열 달을 지냈고, 커 가면서 기억도 하지 못하게 되리라. 아이는 진 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진 씨를 친어머니라 여길 것이다. 그리고 두 씨를 숙모님이라고 부를 테지.
시녀가 산파에게 사례금을 건네며 입막음을 위한 돈도 따로 내밀었다. 산파는 이 상황이 의문스러웠지만, 묻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할 줄은 알았다. 그녀는 돈을 받고 얌전히 옆문으로 나갔다.
진 씨가 위곤에게 물었다.
“아이 이름은 정하셨어요? 뭐로 짓는 게 좋을까요?”
영국공부의 자손은 상홍의 대에서는 모두 ‘상(常)’ 자 돌림이었다. 위곤은 고민 끝에 결정했다.
“상미(常彌)라고 부르지요.”
‘미(彌)’ 자에는 메운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 아이로 두 씨의 잘못을 보상한다는 의미였다.
선뜻 받아들인 진 씨는 밖이 어두워진 걸 보고 아이를 안고 나갔다.
“상미는 날을 다 못 채우고 태어나 아직 약할 겁니다. 제가 매원으로 데려가 잘 보살필 테니 걱정하지 마셔요.”
위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 씨라면 그도 안심이었다. 진 씨는 세 아이 모두를 잘 키웠다. 가장 말썽꾸러기인 위상현조차도 중요한 상황에서는 사리 분별을 하고 겸손하며 예의가 발랐다.
위곤은 진 씨를 눈으로 배웅하고 시녀 둘을 불러 두 씨를 잘 보살피라 명했다. 이윽고 그는 위라와 상홍을 데리고 은행원을 떠났다.
다만 위쟁은 두 씨의 옆에 있겠다고 떼를 썼기에, 위곤도 그녀를 그냥 두었다.
* * *
다음 날.
아침 무렵 깨어난 두 씨는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한 아픔을 느꼈다. 전신에 힘이 들어오지도 않았다. 방 안에는 그녀뿐이었다. 시중을 들 시녀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쉰 목소리로 시녀를 불렀다. 잠시 후, 홍아가 들어왔다.
“마님, 일어나셨어요?”
두 씨는 별안간 위화감을 느꼈다. 아주 중요한 걸 놓친 기분이었다. 어지러운 정신으로 생각을 하던 그녀는 마침내 떠올렸다. 이윽고 힘겹게 일어나 앉더니, 홍아를 노려보았다.
“내 아기는? 아들이냐, 딸이냐? 지금 어디 있느냐?”
홍아가 긴장한 듯 두 손을 비볐다. 위곤이 두 씨에게 전하라고 전말을 말해 준 터였다. 그러나 막상 두 씨 앞에 서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홍아가 어렵사리 운을 뗐다.
“도련님이십니다. 안심하세요, 도련님은 건강하십니다…….”
두 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이란 말을 들으니 새벽하늘에 퍼져 오는 빛처럼 희망이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홍아를 재촉했다.
“어디 있느냐? 빨리 데려오너라. 아직 얼굴도 못 봤단 말이다.”
‘아마 못 보실 텐데…….’
홍아는 속으로 중얼거릴 뿐,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난처할 데도 없었다.
결국 두 씨가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멍하니 서서 뭐 하느냐? 내 말이 안 들리는 게냐?”
더는 숨길 수 없다. 한참 뜸을 들이던 홍아는 위곤의 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마님께서 도련님을 낳으신 후, 노야께서 상미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노야께선 도련님을 넷째 마님께 길러 달라고 하셨고, 도련님이 다섯 살이 되시면 넷째 마님의 아이로 이름을 올리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말을 듣는 두 씨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홍아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
“노야께서 말씀하시길, 마님은 앞으로도 은행원에 살게 되실 것이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도련님의 얼굴을 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홍아의 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두 씨는 머리 위에서 벼락이 내리꽂힌 듯 정신이 아득해졌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어찌 다른 사람이 키운단 말인가? 왜 아이를 볼 수 없단 말인가! 사시나무 떨듯 떨던 두 씨가 이불을 젖혔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그녀가 밖으로 뛰어나갔다.
놀란 홍아가 뒤에서 따라 뛰었다.
“마님, 어디 가셔요!”
홍아의 외침은 들리지 않았다. 아니, 두 씨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아이를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열 달 동안 품었던 아이를 낳았는데, 얼굴 한 번 볼 틈도 없이 남에게 보내다니. 위곤이 이리 모진 사람이었던가?
두 씨가 비틀거리며 은행원의 입구에 도달한 순간, 서늘한 칼날이 그녀를 제지했다. 푸른색 무명옷을 입은 호위무사 두 명이 무표정하게 그녀를 보고 있었다.
“부인, 돌아가시지요. 노야께서 은행원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하게 하라 하셨습니다.”
두 씨는 그들을 밀쳐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꼼짝도 하지 않는 그들 앞에서, 두 씨는 악에 받쳤다. 머리가 산발이 된 데다 얇은 속옷 차림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 소리를 질러 댔다.
“위곤을 봐야겠어! 위곤을 만나야겠다고! 내 아들, 아들을 돌려줘……!”
호위무사는 그녀를 흘깃 보더니 냉랭하게 말할 뿐이었다.
“노야께선 한림원에 가셨습니다. 밤에나 돌아오실 겁니다.”
결국, 휘청이던 두 씨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꺽꺽대는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두 씨가 얼굴을 감싸고 통곡을 이어 갔다. 그녀는 이토록 깊고 짙은 절망을 맛본 적이 없었다.
위곤이 이렇게 냉정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아이를 빼앗아 갔을 뿐 아니라 아이를 떠올릴 기회조차 남겨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