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Expenses RAW novel - Chapter 44
제44화
십이월 초사흗날은 위상미가 태어난 지 꼭 한 달이 되는 날이자 영국공 위장춘의 생일이었다.
올해는 마침 위장춘의 환갑이었다. 위장춘은 태부인 나 씨와 의논한 끝에 위상미의 만월연(滿月宴, 태어난 지 한 달째 되는 날을 축하하는 잔치)을 겸해 성대한 잔치를 열기로 했다.
영국공부는 많은 사람을 초대했다. 조정 대신도 있었고, 대갓집의 귀족들도 있었다. 모두 영국공부와 관계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잔치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영국공부 앞은 벌써 화려한 마차들이 줄지어 늘어서며 북새통을 이루었다. 자연히 일대가 떠들썩했다.
손님들은 문지기의 안내를 받아 전청으로 갔다. 여자 권속들은 낭하를 거쳐 후원의 화청에 도착했다.
오시(午時) 무렵, 영국공이 초대한 손님들이 거의 다 왔다. 아직 안 온 손님은 한 명뿐이었다.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잔치를 시작하려는데, 하인이 들어와 소식을 전했다.
“국공야, 정왕야께서 오셨습니다.”
* * *
연두색 바탕에 꽃무늬가 있는 소오와 흰 비단 치마를 입은 위라는 여우 털로 만든 새하얀 외투를 두르고, 머리는 하나로 묶어 틀어 올렸다. 멀리서 보면 소담하고 깨끗한 눈덩이처럼 보였다. 그녀는 송원에서 나와 화청으로 갔다. 화청에는 이미 많은 부인들이 와 있었고, 첫째 백모와 넷째 백모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첫째 백모는 엄하고 점잖은 여인이었다. 태부인은 몸이 좋지 않아 영국공부의 재정 관리를 그녀에게 맡겼는데, 일 처리가 체계적이고 상벌이 분명해 하인들이 잘 따랐다. 태부인은 그런 그녀가 마음에 들었고, 최근에는 거의 모든 일을 넘기다시피 했다.
화청에는 여인들이 많았다. 첫째 부인은 그녀들에게 일일이 안부를 묻고 인사했다. 시녀에게는 차와 간식을 내오라고 하며 손님들을 빈틈없이 챙겼다.
백보감(百寶嵌, 다양한 보석과 진귀한 돌을 새겨 넣어 장식한 것) 화조문 병풍 뒤에서는 넷째 부인 진 씨가 여섯째 도련님 위상미를 안고 있었다. 사람들은 위상미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태어난 지 한 달이 지나니 위상미는 살이 올랐고, 이목구비도 또렷해졌다. 쪼글쪼글한 원숭이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눈은 두 씨를 닮았고, 코와 입은 위곤을 닮았다. 나름 잘생긴 얼굴이었다.
활발하고 겁이 없는 위상미는 낯선 사람을 봐도 울거나 떼쓰지 않고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냈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위쟁이었다. 그녀가 가까이 오기만 해도 곧바로 대성통곡을 했다. 갓 태어났을 때 위쟁이 자신을 불편하게 안았던 걸 아직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반대로 위라는 매우 좋아했다. 어디부터가 잘못됐는지, 위상미는 위라만 보면 방긋방긋 웃고 두 팔을 벌려 옹알거리며 그녀를 불렀다. 그리고 그녀의 손가락을 입에 무는 것도 좋아했다. 위라는 그가 싫었다. 그가 오물거렸던 손가락을 몇 번이나 씻었다. 하지만 손가락을 물지 못하게 하면 위상미는 울곤 했다.
아기들은 다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하는 건가. 아니면 두 씨의 아들이라 특별히 더 싫은 것일까.
그녀의 생각을 전혀 모르는 위상미는 위라를 보자마자 반짝이는 눈으로 옹알거렸다.
위라는 무의식적으로 살짝 물러나며 두 손을 뒤로 숨겼다.
진 씨는 웃음을 터뜨리며 위라에게 손짓했다.
“상미 못 본 지 며칠 됐지? 자, 동생 좀 보렴…….”
위라가 딸랑이처럼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쟤가 제 손가락 먹을 거예요.”
진 씨가 웃으며 설명했다.
“아라를 좋아해서 그런 거야.”
날 왜 좋아해? 내가 잘해 준 적도 없는데?
의문이 샘솟았지만, 위라는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 위상미를 바라보았다. 오므린 분홍빛 입술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오늘은 위상미의 만월연이었으니, 여인들의 관심은 온통 그에게 쏠려 있었다. 사람들은 영국공부에 도련님이 태어났고, 그 도련님이 위곤의 자식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계속 넷째 부인이 아이를 안고 있고, 다섯째 부인은 안 보이는 걸까?
진 씨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동서는 아이를 낳고 몸이 계속 안 좋아서 지금까지 누워 지내고 있습니다. 후원에서 요양 중이라 아무래도 인사를 못 드릴 것 같아요.”
그 말에 여인들은 단박에 이해한다는 표정을 보였다. 그들 대부분이 출산 경험이 있었으므로. 어떤 사람은 산후조리에 도움이 되는 비법을 사람들과 공유하기도 했다.
진 씨는 미소를 띤 채 듣기만 할 뿐이었다.
* * *
양옥용이 낮은 자단목 의자 뒤로 위라를 데려가서는 물었다.
“네 계모가 낳은 아들이지?”
양옥용은 평원후 부인을 따라왔다. 평원후 부인 견란(甄瀾)은 강묘란과 절친한 친구 사이였으니, 단순히 만월연이었다면 오지 않았을 터였다. 영국공의 생신을 모른 척할 수는 없어 왔지만, 그녀는 두 씨가 낳은 아이를 냉담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홍목 매괴의(玫瑰椅)에 앉은 그녀의 얼굴에선 어떤 기쁨의 빛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위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응’ 하고 대답했다.
양옥용은 진 씨의 품에 안긴 아이를 쳐다보다가 마음과는 다른 말을 했다.
“너무 못생겼다.”
양옥용은 두 씨가 저지른 일을 몰랐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에 계모는 무조건 악랄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나쁜 사람이었다. 양옥용의 말은 그런 편견에서 비롯된 얘기였다.
위라도 반박하지 않았다. 묵인이라고 볼 수 있었다.
부인들이 돌아가며 위상미를 한 번씩 안아 보았다. 그녀들은 위상미에게 덕담을 한두 마디씩 해 주었고, 미리 준비한 선물을 꺼내기도 했다. 아이는 지금 진 씨가 키우고 있었으니 선물을 받아 두는 것도 진 씨의 몫이었다. 그녀는 먼저 시녀에게 선물을 받으라고 하며 위상미를 품에 안고 웃었다.
“상미를 대신해 부인들께 감사드립니다.”
아기에게 주는 선물은 값비쌀 필요가 없고, 마음만 전하면 되는 거였다. 선물들은 대부분 옥패나 은으로 만든 기린 장명쇄 등 천편일률적인 물건들이었다.
평원후 부인은 선물을 준비하지도, 아이를 안아 보지도 않았다. 그저 공손하게 ‘축하드립니다’라고 한마디만 할 뿐이었다.
진 씨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질책이 아닌, 이해의 눈빛이었다.
다행히 사람이 많아서 아무도 이쪽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얼마 후, 전청에서 사람이 왔다. 영국공이 잔치를 시작하라고 명했으니 모두 전청으로 오라는 소식이었다.
부인들은 일어나 태부인과 첫째 부인을 따라 전청으로 향했지만, 진 씨와 평원후 부인은 가지 않았다.
여전히 매괴의에 앉아 있는 견란은 차분한 분위기에 귀티가 흐르는 사람이었다. 보아하니 진 씨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진 씨는 그녀를 상대할 겨를이 없었다. 견란에게 이제 그만 가도 괜찮다고 말하려던 차에, 바깥에서 누군가 시녀를 따라 급히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두 씨가 능화문을 붙잡고 섰다. 연보랏빛 비단 대금 소오와 흰색 주름치마를 입고, 머리는 위로 높이 틀어 올렸다. 신경 써서 꾸민 티가 났지만, 눈 아래의 어두운 그늘과 귓가의 흰머리를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진 씨가 안고 있는 강보를 충혈된 눈으로 응시했다.
처음으로 보는 자신의 아이가 남의 품에 안겨 있었다. 아이는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 그 모습이 두 씨의 심장을 도려내는 칼과 같았다. 그녀는 고통스러움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내 아이가 이렇게 생겼었구나. 눈썹은 조금 옅고, 눈은 크고, 입은 조금 작고…….
한 달이 어떻게 흘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고통의 나날이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계속 자신을 타일렀다. 얼마 안 있으면 상미를 볼 수 있다, 내 아이를 안아 볼 수 있다. 그렇게 지금까지 버텨 왔다.
아이를 보니, 자신이 기다린 한 달이 너무도 값지게 느껴졌다.
결국 두 씨는 다짜고짜 진 씨에게 달려들었다. 진 씨의 저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를 홱 빼앗아 갔다. 그녀는 상미를 안고 강보를 젖혀 상미의 눈썹, 눈, 코를 보았다… 그렇게 보고 있으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상미야, 내가 네 어미란다. 이 어미를 좀 봐 주렴…….”
위상미는 두 씨를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엔 호기심 어린 새카맣고 큰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러다 그녀의 팔에 점점 힘이 들어가니 아픔이 느껴진 모양이었다. 게다가 두 씨의 눈물이 상미의 보드라운 얼굴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상미는 실성한 듯한 그녀의 모습에 놀라 입을 일그러뜨리며 크게 울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감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위상미는 두 씨가 낳은 아이였지만, 태어나자마자 진 씨와 살았고 진 씨와 떨어진 적이 없었다. 위상미가 친모를 알아보지 못하고 진 씨에게만 애착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당황한 두 씨가 아들을 안고 달래기 시작했다.
“울지 마. 상미야, 착하지… 네가 울면 이 어미가 마음이 아파…….”
소용없었다. 위상미는 더 심하게 울면서 진 씨를 향해 팔을 뻗었다. 두 씨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진 씨는 평원후 부인이 옆에 있는 것도 잊고 두 씨를 타일렀다.
“동서, 상미가 자네를 낯설어하는 것 같네. 일단 아이를 이리 주게.”
이 말에 자극이 되었는지, 두 씨가 냉큼 한 발 물러서며 강보를 더 꽉 안았다.
“내가 친모인데, 어찌 낯설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러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안 줄 거예요. 꿈도 꾸지 마세요!”
그녀는 언제든 위상미를 안고 도망칠 준비를 하려는지, 한 걸음씩 문가로 다가가고 있었다.
한 달 내내 그리던 아이를 막상 보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한 번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상미를 데려가 직접 키우고 싶었다. 다른 누구에게도 아이를 뺏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위상미는 그녀의 품에서 목이 쉬도록 울며 진 씨를 찾으려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워, 두 씨는 괴롭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단호하게 아기의 손을 누르며 말했다.
“상미야, 똑바로 봐. 네 엄마는 나야… 널 낳은 사람은 나라고. 널 낳느라 종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왜 다른 사람을 찾는 거니?”
이제 막 한 달이 된 아기가 무엇을 알겠는가? 그저 편한 것과 무서운 것만 알 뿐, 누가 낳았는지와 같은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진 씨가 문밖의 어멈에게 눈짓했다. 두 씨가 돌아서자마자 어멈 넷이 그녀를 둘러싸 길을 막았다.
두 씨의 마음이 바뀔 거란 걸 예상했던 위곤은 미리 손을 써 놓았다. 네 명의 어멈은 두 씨를 막으려고 보낸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