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Expenses RAW novel - Chapter 56
제56화
잘생긴 소년은 어느덧 준수하고 건장한 남자가 되었다. 너른 옷을 입고 큰 띠를 두른 그는 부드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지녔으며, 목소리는 물이 흐르듯 편안했다. 그는 예전에 마차에서 그랬던 것처럼, 상냥하게 위라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우리 아라, 정말 사랑받으며 자란 태가 나는구나.” 하고 말했다.
위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기다렸어? 벌써 왔는 줄 모르고 좀 꾸물거렸는데, 화난 거 아니지?”
송휘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어찌 그녀에게 화를 내겠는가. 한 번도 그녀에게 화가 난 적이 없었다.
해가 저물고,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거리는 분명 시끌벅적할 터였다. 그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어서 출발하자.”
위라와 위쟁은 마차에 타고, 송휘와 상홍은 마차 옆에서 말을 타고 갔다. 그들은 성경성에서 가장 큰 서시(西市)로 향했다.
서시에서는 연등회가 한창이었다. 곳곳에 매달린 꽃등은 가지각색이었고, 셀 수도 없이 많은 빛을 뿌리며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는 완연한 축제 분위기였다. 등에 수수께끼 문답을 써넣는 놀이, 인형극, 높은 나무다리를 타는 춤, 꽃등 밝히기 등 여러 가지 행사가 어우러졌다.
위라 일행이 도착했을 때, 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밤이 되면 추울까 싶어 옷 한 벌을 더 챙겼으나, 위라는 아무래도 괜히 가져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달아오른 거리에 있으면 전혀 추울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차에서 담비 피풍을 벗었다.
그녀의 옅은 남색 웃옷에는 하늘에 걸린 달이 새겨져 있었다. 미색 비단 치마를 두르고 허리를 명주 끈으로 묶었는데, 가는 허리가 드러나자 위쟁마저 훑어볼 정도였다.
마차에서 내린 후 위쟁이 제안했다.
“우리 연등회 먼저 볼 거지? 그런 다음 수수께끼 하러 가 보자. 재밌을 것 같아.”
송휘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옆에 있던 위라를 보았다.
“아라는 어디 가 보고 싶어?”
위라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난 송휘 오라버니가 가자는 대로.”
송휘의 눈빛이 더욱 따스해졌다. 꽃등의 부드러운 빛이 송휘의 두 눈을 비추자,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듯 담긴 자상함이 엿보였다.
“그럼 먼저 연등회부터 보자. 그다음에 인형극도 보고, 꽃등도 밝히고.”
위라가 좋다고 말하며 그와 함께 앞서 걸었다.
상홍과 위쟁은 두 사람 뒤에서 걸었다. 걷는 내내 상홍의 시선은 송휘의 뒤통수에 꽂혀 있었다. 뒤통수에 구멍이라도 낼 작정인 듯싶었다. 입술을 비죽거리던 그는 문득 옆에서 파는 상원절 튀김을 보더니 한 봉지 사서 위라에게 내밀었다.
“누나, 이것 좀 먹어 봐.”
위라는 튀김을 받아 들고 대나무 꼬챙이로 하나를 콕 찍어 입에 넣었다. 바삭하고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상원절 튀김은 겉에 설탕을 발랐고 안에 팥이 들어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은 달콤했지만 너무 뜨거웠다. 이런 간식을 먹는 건 처음이기에, 위라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너무 뜨겁잖아.”
상홍은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죄책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사자마자 위라에게 주고 자신은 먹어 보지 않았으니 얼마나 뜨거운지 알 리가 없었다. 다만 위라가 뜨겁다고 하자 얼른 그녀의 입가에 손을 갖다 댔다.
“뱉어. 먹지 마.”
거리에서 음식을 뱉는 건 교양 없는 행동이었다. 위라는 너무 뜨거웠지만 억지로 튀김을 삼켰다. 입을 가린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혀가 다 데었어.”
그 말에 상홍은 더욱 속이 상해서 튀김 봉지를 보기도 싫어졌다. 그는 위라의 혀를 살피려 했고, 위라는 보여 주기 싫다며 티격태격했다. 그러는 동안 송휘는 한쪽으로 밀려났다.
궁형 돌다리 너머에서는 연등회가 한창이었다.
다리 어귀에 서서 바라보니 거리 전체가 눈부신 꽃등으로 가득했다. 거리의 끝까지 이어진 꽃등이 은하수처럼 빛났다. 사람들은 하늘의 별빛이 땅에 흩뿌려진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에 푹 빠져들었다. 꽃등에는 다양한 수수께끼가 쓰여 있었는데, 상품이 걸린 만큼 꽃등 아래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하나같이 답을 고심하는 얼굴이었다.
위쟁도 송휘와 함께 수수께끼를 맞히고 싶었다. 그러나 송휘는 옆에서 상원절 튀김을 먹고 있는 위라를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가서 해 봐, 우린 여기서 기다릴게.”
그러고는 자상하게도 덧붙였다.
“두우(杜宇)랑 같이 가. 안에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멀리 가면 안 돼.”
두우는 송휘의 시중을 든 지 서너 해가 된 시종이었다. 절로 위쟁의 볼이 부풀었다. 두우와 함께 간들 뭘 한단 말인가? 그녀가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은 송휘인데 말이다.
송휘는 눈치가 없는 건지 그녀가 뭐라고 하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짜증이 치민 위쟁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들의 옆에 남았다.
마지막 튀김을 상홍에게 먹여 준 위라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 수수께끼 하러 안 갔어?”
위쟁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
“가기 싫어졌어.”
그녀는 천천히 ‘아’ 하고는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저기 가서 인형극이랑 그림자극 보자. 아까 봤는데, 마술이랑 칼 묘기도 하는 것 같더라고. 재미있겠지? 어때?”
마지막 질문은 상홍과 송휘에게 한 것이었다.
상홍은 당연히 찬성이었다. 그는 언제나 누나의 말대로 했으니, 그녀가 보고 싶다면 당연히 갈 작정이었다. 송휘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 보자.”
위쟁이 입술을 오므렸다.
자신이 수수께끼 풀러 가자고 할 때는 아무도 안 가더니, 위라가 인형극을 보자고 하자마자 쪼르르 쫓아가는 건 뭐란 말인가?
기분이 나빠진 위쟁은 굳은 얼굴로 세 사람 뒤를 따라갔다. 위라의 뒷모습을 보는 그녀의 눈에 기이한 빛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위라가 말한 곳은 수수께끼를 맞히는 곳보다 훨씬 붐볐다.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특히 마술 공연을 하는 곳은 안팎으로 사람이 가득 차 출입이 불가능했다. 위라가 아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사람 사라지는 마술 보고 싶었는데…….”
송휘가 맞은편 찻집에 올라가서 보자고 제안했지만, 위라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건 가까이에서 봐야 제맛이지, 멀찍이 건물에서 보면 무슨 재미란 말인가. 그래도 문제 될 건 없었다. 마술 말고도 볼 건 많았으니까. 그녀가 상홍을 끌고 맞은편의 불 뿜는 묘기를 보러 가려는데, 뒤에서 높은 나무다리를 탄 사람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소매 끝에 흰 명주로 만든 덧소매를 흩날리는 춤을 추며 천천히 걸었다. 분명히 크게 흔들거리고 있는데도 움직임은 안정적이었고, 전혀 넘어질 기미가 안 보였다. 심지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안고 돌기까지 했다.
기다란 나무다리가 왔다 갔다 하니 행인들은 하나둘 뒤로 물러났다.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거리는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서로 이리저리 밀리자 저절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위라도 사람들에게 떠밀려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갔다. 얼른 고개를 돌려 보니 상홍, 송휘와 꽤나 멀어져 버렸다. 되돌아가려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세차게 부딪히는 바람에 앞사람의 등에 부딪히고 말았다.
앞사람이 고개를 돌렸을 때, 위라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길고 맑은 목과 아름다운 옆얼굴을 마주하자, 앞사람은 그대로 멈춰 버렸다. 길 가던 것도 잊은 모양이었다.
마침 상홍과 송휘가 그녀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위라에게 부딪힌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을 빼곡히 둘러쌌고, 어느 틈엔가 남자와 위라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두 사람이 거의 붙다시피 했을 때, 그는 팔로 그녀의 뒤에 있는 벽을 짚고 버텼다. 문득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이윽고 한껏 악문 음성이 흘러나왔다.
“위라?”
그녀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쳤을 때, 거리의 꽃등이 환하게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위라가 그를 알아본 건 눈 밑에 있는 제비 꼬리 모양의 점 때문이었다. 몇 년이 흘렀는데도 그 점은 여전했다. 오색찬란한 등불 아래서 그 점을 보니 단번에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하지만 대수로운 일도 아니라는 듯, 위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송?”
소년의 준수했던 얼굴은 남자다워졌다. 일 년 내내 무술 연습을 한 덕분에 이목구비는 강인하고 또렷해졌고, 피부는 건강하게 그을렸다. 맑은 눈에는 오만함과 거친 느낌 외에도 다른 것이 깃든 듯했다.
높은 나무다리를 타는 사람들의 행렬이 멀어지자, 수선스럽던 구경꾼들도 점점 흩어졌다. 그러나 그는 위라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가며 그녀의 눈을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그래, 나다.”
이 말은 꾹 다문 잇새로 나온 말이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그녀를 얼마나 증오하고 원망하는지, 이송은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녀에게 떠밀려 태액지에 빠진 일과 조개에게 묶여 화살받이가 되었던 일은 그에게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가 물에 빠져 발버둥 칠 때, 그녀는 어땠던가. 둑 위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에 담긴 경멸을 숨기지는 못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들 위라의 사랑스러운 외모에 속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녀가 얼마나 교활하고 음흉한지 아는 사람은 그뿐이었다!
한데 그 괘씸한 계집아이는 너무나 아름다운 아가씨가 되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추악한 얼굴이 되어야 마땅하잖은가! 이렇게 아름다운 얼굴은 얘랑은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송은 입술을 오므렸다. 그녀가 혹여 가면을 쓴 건 아닌지 확인해 보려고 다른 쪽 손을 드는데, 손이 그녀의 턱에 닿기도 전에 옆에서 주먹이 날아들었다. 그는 민첩하게 피하며 위라를 놓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위상홍이 서둘러 위라를 감싸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누나, 저 사람이 누나 괴롭혔어?”
두 사람은 꽤나 닮았으니, 어릴 때는 이송이 그들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자라나며 하나는 놀랄 만큼 아름다운 미인이 되었고, 하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준수한 소년이 되었다. 이송은 위가의 인물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외모는 성경성이 아니라 대량 전체에서도 비길 자가 없을 것 같았다.
위라가 고개를 저었다. 일행이 안도의 한숨을 쉬자마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날 모욕했어.”
이송은 갑자기 목구멍이 턱 막혀 왔다. 순간 숨 쉬는 법도 잊었다.
‘내가 널 모욕했다고? 도대체 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