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Expenses RAW novel - Chapter 72
제72화
이상은 조훤의 어두운 안색을 알아차리고 눈치 빠르게 그녀를 부축했다. 그러고는 따뜻한 차를 세심하게 따라 앞에 갖다 놓았다.
“어머니, 화내지 마세요. 위상홍은 멀쩡하다던데요? 조금 다친 것뿐이에요. 사냥하면서 안 다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이윽고 그녀가 옆에 있던 이송을 바라보았다.
“게다가 오라버니가 저 대신 잘못을 뒤집어써 줬는데, 제가 걱정할 게 뭐가 있어요?”
이송은 대답 없이 시선을 돌렸다.
이상은 계속 듣기 좋은 말만 하며 고양 장공주를 달랬다. 말재주가 뛰어난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상대를 순한 양으로 만들 수 있었다. 더욱이 그녀를 아끼는 조훤이라면,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위가에게서 그녀를 감쌀 터였다. 이상은 조훤을 위로하는 한편 조목조목 분석을 해 나갔다.
“전 처음부터 위상홍이 싫었는데, 두 분이 어떻게든 절 위상홍에게 시집보내려 하신 거잖아요. 애초부터 집안 사이도 안 좋은데 위라는 또 얼마나 독하고 교활한지, 제가 그 집에 시집가는 건 고생하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제가 위씨 집안사람들한테 괴롭힘당하며 살면 좋으시겠어요? 마침 잘됐잖아요. 이렇게 된 김에 이 혼사는 없던 일로 하는 게…….”
위상홍은 그녀보다 한 살이 많았지만, 그녀는 그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은 당당하고 용맹스러운 양욱이지, 종일 누나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약한 인간이 아니었다. 위상홍의 눈에는 오직 누나만 비치는 것 같았다. 그에게 시집가려는 여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그의 누나와 경쟁을 해야 하지 않은가. 정말이지 재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거라고 할 수 있었다.
고양 장공주가 그녀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래서 활을 쐈다는 게야? 다른 사람들이 너에 대해 뭐라고 얘기할지 생각은 해 봤니? 흉악하고 망측하다고 할지도 몰라. 도대체 네 평판은 안중에도 없는 게냐?”
이상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어머니를 부르며 그녀의 무릎에 엎드렸다.
“저도 잘못한 건 알아요……. 근데 위라가 절 속였다고요. 너무 화가 나서 홧김에 그런 거예요.”
다만 위라가 자신을 어떻게 속였는지는 말할 수 없었다. 이상은 대충 얼버무리곤 이송을 바라보았다.
“오라버니도 있잖아요. 오라버니,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송은 대답이 없었다. 가슴의 상처가 꽤 깊었다. 어제 장심산에서는 대충 붕대로 감아 놓기만 했으니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그가 주먹을 꽉 쥔 채 억지로 말했다.
“피곤해서 먼저 가서 좀 쉬겠습니다.”
그러고는 곧장 몸을 돌려 나갔다.
이상은 멍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오라버니의 기분이 안 좋은 줄 알고 얼른 그를 쫓아가며 불렀다.
“오라버니!”
이송은 멈추진 않았지만, 옮기는 발걸음은 매우 느렸다.
결국 이상은 주칠을 한 낭하의 기둥 앞에서 그를 따라잡았다. 그녀는 이송의 앞으로 가서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라버니, 화난 거…….”
그의 가슴팍에 배어나온 핏자국이 보였다. 그녀는 잠시 멈칫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쳤어? 언제 그런 거야? 어제 사냥 끝나고 나서도 아무렇지 않았잖아…….”
곧 뭔가를 떠올렸는지, 그녀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위상홍이야? 아니면 위라? 걔네가 그런 거야?”
그녀가 따져 물을수록, 이송의 머릿속은 복잡할 뿐이었다. 머리도 아픈 데다, 상처의 통증도 심해졌다. 절로 안색이 나빠졌고, 말투도 험악해졌다.
“이상, 어제의 죄는 내가 대신 지고 가지만, 또 이렇게 네 멋대로 굴면, 그때는 네가 알아서 해.”
그는 가슴을 움켜쥔 채 이상을 밀쳐 냈다.
“어디에 얼굴 내밀지 말고 한동안 조용히 집에만 있어. 소문이 좀 잠잠해지면 그때 나가.”
이상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멀어져 가는 이송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그녀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의 말을 새겨들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한편, 고양 장공주는 딸이 너무 안쓰러워 엄한 벌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도 안다고 하지 않았던가. 불당에서 세 시진 동안 무릎을 꿇게 하고 경서를 백 번 베껴 쓰는 벌로 넘어가면 될 것 같았다. 다만, 위가와의 혼사는 성사될 가망이 없어 보였다… 혼인을 못 하는 정도가 아니라 불편한 관계가 되리라.
* * *
영국공부. 위상홍은 보름이 지나서야 차도를 보였다.
위라는 내내 그의 곁을 지켰다. 온갖 귀한 약재를 모아 왔고, 매일 그가 보약 한 그릇을 비우는 걸 보고 나서야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위상홍은 종종 황당한 표정으로 말하곤 했다.
“누나, 난 누나처럼 약하지 않아. 상처도 진즉에 다 나았다고. 이건 그만 먹어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위라는 막무가내로 안 된다고 할 뿐이었다.
“이송도 못 이겼잖아. 이송을 이길 수 있게 되면 그때 그만 먹어.”
이송은 어릴 때부터 무예를 수련해 왔으나 위상홍은 건강을 위해 권법을 조금 배운 게 전부였다. 애초에 상대가 될 수 없었으므로, 그녀의 조건은 너무 가혹한 것이었다. 위상홍은 보약을 계속 마실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조유리가 위라에게 상의할 게 있다며 입궁을 요청했다. 위라는 그제야 상홍을 놓아준 뒤 옷을 갈아입고 궁으로 향했다.
그때, 숭정황제는 인덕전(麟德殿)에서 연회를 베풀고 있었다. 얼마 전 사냥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세 명의 영웅호걸을 초청하여 상을 내리며 격려하는 자리였다. 조개와 조장을 비롯한 황자들과 대신들의 자제 몇 명도 함께 있었다.
조장은 이번 사냥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고, 조개는 그저 구경하며 즐기기만 했다. 어쨌거나 이런 대회는 숭정황제가 소년들의 실력을 평가하기 위한 시합이니 그들이 나서서 실력을 뽐낼 필요는 없었다. 조개는 위라에게 여우 한 마리를 잡아다 줄 계획이었지만, 그녀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 마음을 접었다.
사단용문(四團龍紋)이 새겨진 보라색 상복(常服, 평상복)을 입은 숭정황제는 두 마리 용이 구슬을 갖고 노는 금장식이 있는 익선관(翼善冠, 임금이 정무를 볼 때 쓰던 관)을 썼다. 그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다들 앉으라고 말했다. 좌우에는 조개와 조장이 앉았다.
오늘 조개는 모서리에 금테를 둘리고 이무기 문양을 새긴 진회색 직철을 입었다. 고고한 그의 행동에는 기품이 넘쳤다. 조개보다 일고여덟 살이 어린 조장은 구렁이가 수놓인 검푸른 색 금포를 입고 왕에게 읍하며 예를 갖췄다. 겸허하고 온화한 미소에는 어떤 두려움도 없었다.
양욱은 조개의 아래쪽에, 이송은 조장의 아래쪽에, 그리고 어사대부의 아들은 양욱의 옆에 앉았고,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숭정황제는 양욱을 비롯한 세 사람을 소년 영웅이라 칭하고 그들의 용맹과 기지를 높게 평가했다. 황급히 일어난 세 사람은 겸손을 표하며 과분한 칭찬이라 여겼다. 황제는 그들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궁인에게 준비한 상을 가져오라 해 세 사람에게 각각 하사했다.
세 사람은 무릎을 꿇고 감사히 상을 받은 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이제 춤과 노래를 감상하며 술잔을 주고받는 시간이었다.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무녀가 가는 허리를 뽐내며 몸을 흔들었다.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무녀의 아름다운 몸짓은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그러나 조개는 시선을 떨군 채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잔에 술을 따랐다. 이내 그가 빙렬(氷裂) 문양이 새겨진 청유(靑釉) 술잔을 들고 비스듬히 맞은편에 있는 이송을 바라보았다.
이송은 가슴에 난 상처가 낫지 않아 술을 마실 수 없었다. 게다가 연회가 시작할 때부터 그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았다. 모두가 무녀의 하늘하늘한 춤을 감상하고 있는데, 혼자 턱을 괸 채 어딘가 텅 빈 눈으로 무녀를 보고 있었다.
조개는 궁인을 불러 낮은 목소리로 뭔가를 지시했다. 궁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이송의 뒤로 가서 귓속말로 조개의 말을 전했다.
궁인의 말이 끝나자, 이송은 암담한 눈빛으로 조개를 바라보았다.
조개는 얇은 입술에 미소를 머금은 채 술잔을 들어 한 번에 비우고는, 술잔을 상 위에 엎어 놓았다. ‘나는 다 마셨으니, 넌 맘대로 해라.’라는 뜻이었다.
이송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쩔 수 없이 그도 자신의 잔에 술을 따라 한 번에 비웠다.
한 잔이면 끝인 줄 알았는데, 조개가 그를 골탕 먹일 작정일 줄은 알지 못했다. 한 잔으로 모자라 두 잔, 석 잔… 일곱 잔째 마셨을 때, 가슴의 상처에서는 불이 난 듯했다. 찢어지는 통증이 이어졌지만, 조개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통증을 참으며 대작했다. 두 사람 모두 약이 오른 나머지 상대가 취해 쓰러지기 전까진 관둘 마음이 없었다.
술이 계속 들어가는데도 조개의 얼굴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더 차분하고 느긋한 빛을 띠었다. 그러나 이송은 이미 눈앞이 어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별안간 목구멍에서 비릿한 피 맛이 솟구쳤다. 그는 억지로 꿀꺽 삼킨 후 겨우 한 잔을 더 마셨다. 그러고는 옻칠을 한 나전 평두안에 홱 고꾸라지고 말았다.
* * *
연회가 끝나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갔다.
조개의 발걸음은 침착했다. 온몸에 진동하는 술 냄새를 제외하면, 스무 잔을 넘게 마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단폐(丹陛, 붉은 칠을 한 대궐의 섬돌)에서 내려와 선덕문(宣德門) 쪽으로 향했다.
반면 이송은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마구 비틀거렸다. 궁인이 부축해서야 가까스로 인덕전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맑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 조금이나마 취기를 더는 듯했다.
그가 선덕문 앞에 도착했을 때, 멀리서부터 오던 화려한 마차가 마침 앞에 멈췄다.
위라가 한 손으로 나비와 꽃문양이 잔잔히 수놓인 유군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금루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고개를 든 그녀의 눈이 조개의 시선과 마주쳤다. 다물고 있던 분홍빛 입술이 올라가려던 순간, 조개의 뒤에 있는 이송이 보였다. 위라의 입꼬리가 다시 내려갔다. 그녀는 아예 시선을 돌려 버렸다.
조개가 미소 지으며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어쩐 일로 온 게냐? 유리가 불렀느냐?”
위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말했다.
“저와 상의할 게 있다고 들어오라고 했어요.”
술 냄새를 맡은 그녀가 뒤로 물러서며 코를 막았다.
“술을 드셨나요?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그냥 마시기만 했을까, 들이부었지.
이미 코가 마비된 조개로서는 맡을 수가 없었지만, 질색하는 소녀를 보니 장난기가 피어올랐다.
“왜, 내가 술 마시는 게 싫으냐?”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냄새가 거슬리는 것뿐이었다. 그녀가 코를 막고 있던 손을 내려놓았다.
“제가 싫다고 하면요?”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그럼 앞으로 안 마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