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Expenses RAW novel - Chapter 86
제86화
송 씨의 울음은 길게 이어졌다. 그녀는 흐느끼면서도 이노야의 잘못을 하나하나 나열했다. 생각할수록 자신의 처지가 가여워 견딜 수 없었다.
“설마 내가 그년의 딸이 시집가는 데 혼수까지 마련해 줘야 하는 건 아니겠지…….”
진 씨가 옆에서 위로를 건넸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울면 뭐 한답니까? 어떻게든 이겨 낼 생각을 하셔야지요……. 아주버님께서는 지금 그 딸을 시집보내고 싶으신 거 아닙니까. 형님은 죽원의 안방마님이시니, 그 딸이 어디로 시집가든 그건 형님이 상관할 바가 아니지요.”
몇 마디 말로 송 씨의 기분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그녀의 귀에는 어떤 말도 들어오지 않았고, 한동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위라는 조용히 송 씨를 지켜보다 밖으로 나갔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 전생에선 영국공부에 없었으니 집안의 일들은 모르는 게 많았고,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도 알 방법이 없었다.
* * *
보름 후, 이노야 위성은 첩의 딸을 영국공부로 데려왔다. 그 바람에 죽원은 또다시 한바탕 난리가 났다.
국공부의 여인들 모두 첩의 딸이 오는 것을 원치 않았으나, 다른 가정의 일에 참견하기도 민망했다. 여인들은 하고 싶은 말은 마음속에 묻어 두고 조용히 지켜만 보았다. 진 씨만이 하루가 멀다고 죽원을 찾아가 위성을 말려 보라며 송 씨를 타일렀다. 그러다 진 씨가 크게 몸살이 났고, 더는 죽원에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그녀는 위라를 불렀다. 송 씨가 흥분하면 말릴 수 있도록, 위라를 죽원으로 보낸 것이다.
죽원의 정당(正堂)은 아무 소리도 없이 고요했다. 낯선 느낌이었다. 위라가 안을 둘러보니, 담황색 비단옷을 입은 소녀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름다운 얼굴, 가냘픈 몸매, 가느다란 허리. 딱 봐도 강남 수향에서 자란 사람의 태가 났다.
발소리가 들은 소녀가 고개를 들어 위라를 쳐다보았다. 새카만 두 눈동자는 깜짝 놀란 새처럼 불안이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얼마나 영리한지는 알 수 없었다.
‘둘째 백부님이 밖에서 데려온 딸인가 보군.’
위라의 시선이 소녀의 얼굴에 아주 잠깐 머물렀지만, 곧 태연하게 고개를 돌려 정당 뒤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시녀에게 물으니, 둘째 부인은 정방에 있다는 답을 들었다. 그녀는 정방으로 향했다.
낭하에는 아무도 없었다. 감창(檻窓) 아래로 걸어 입구에 다다르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남의 말을 엿듣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왔건만, 익숙한 이름이 들린 것 같았다. 그녀는 잠시 멈칫했지만, 무언가에 이끌린 듯 감창 아래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둘째 백모 송 씨와 셋째 백모 류 씨였다.
류 씨의 목소리는 끊어질 듯하면서도 희미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남자들이란 누구나 저열한 근성이 있어요. 자기를 단속할 줄을 모른다니까요. 조금만 잘해 줘도 아주 좋다고 따라다니니, 원.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화는 그만 내시고 이제 잊어버리세요…….”
송 씨는 울고 있는지 흐느끼는 목소리였다.
“나는 뭐 안 잊어버리고 싶은 줄 아나? 노야한테 너무 실망해서 그렇지. 이렇게 오래 쌓아 온 부부의 정이 한순간에…….”
류 씨가 그녀의 말을 끊으며 공감한다는 듯 말했다.
“부부의 정이 뭐 그리 대단한 건가요? 제가 삼노야한테 시집온 지가 언젠데, 노야가 절 어떻게 대했는지 아시잖아요?”
류 씨는 한숨을 푹 쉬더니 분을 냈다.
“노야 마음속엔 강묘란만 있었지, 저는 안중에도 없었다고요. 제게는 늘 찬바람이 쌩쌩 불었죠. 하지만 지난 세월을 제가 어떻게 버텼겠어요? 형님도 마찬가지예요. 조용히 아이들 키우며 살다 보면, 언젠가는 아주버님께서 형님의 진가를 알아보는 날이 올 거예요.”
송 씨는 여전히 우느라 말을 할 수 없는 듯했다.
류 씨는 자신의 속상한 과거를 떠올리자 괴로웠는지 계속 말을 이었다.
“애초에 두 씨와 손잡지 않았다면… 강묘란은 아직도 여기에 있었을 거예요. 강묘란이 있으면 영국공부는 조용할 날이 없었겠죠.”
감창 아래에 선 위라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류 씨는 강묘란과 위성의 첩 동(董) 씨를 비교하고 있었다. 동 씨는 떳떳하지 못한 신분이었지만 강묘란은 위곤이 정식으로 맞이한 부인인데, 어찌 감히 비교가 되겠는가?
게다가 방금 류 씨는 두 씨와 손잡고 강묘란을 내쫓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강묘란이, 살아 있다는 뜻일까?
류 씨의 말이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았다. 위라는 조용히 감창 아래를 빠져나와 송원으로 돌아왔다.
강묘란은 죽은 게 아니고, 류 씨와 두 씨가 쫓아낸 것이었다. 죽지 않았다면, 어째서 한 번도 자신과 상홍을 보러 오지 않았을까? 전생에서 자신이 두 씨에 의해 팔려 가고 상홍이 위쟁과 이송에게 괴롭힘당하는 동안, 그녀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로 간 걸까? 아예 죽어 버리지?
위라는 자신이 그녀를 원망하고 미워한다는 걸 인정했다. 무슨 사정이 있었다 한들, 그녀를 용서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때의 진실은 알고 싶었다. 류 씨와 두 씨가 무슨 짓을 했길래, 그녀가 그토록 모진 마음을 먹고 자신과 상홍을 떠났을까? 이 일을 제대로 밝혀내지 않는다면 마음속 응어리가 되어 단단히 속앓이를 할 터였다.
문득 위라는 서재의 그림을 떠올렸다. 그림을 보면 작은 단서라도 찾지 않을까 싶었다. 막 나가려는데, 앞뜰에서 시녀가 들어와 말했다.
“아가씨, 평원후 아가씨께서 찾아오셨어요. 전청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양옥용이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거지?
위라는 의아해하며 전청으로 향했다.
양옥용은 두메밤나무 관모의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위라가 오는 걸 보더니 얼른 다가와 팔짱을 끼며 빙그레 웃었다.
“아라야, 나 오늘 과자 사러 팔진방에 갈 건데, 같이 갈래?”
위라는 마음이 심란해서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기대로 부푼 양옥용의 눈을 보니 선뜻 말이 나오질 않았다. 결국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 * *
서쪽 대로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늘 북적거렸다. 팔진방은 그 중간쯤에 자리 잡고 있었다.
팔진방의 과자는 맛이 훌륭해서 매일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마차에서 내린 위라와 양옥용이 팔진방으로 들어갔다. 과자가 진열된 곳 앞에 사복(四福) 여의 문양이 수놓인 감청색 금포를 입은 소년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을 등지고 있어, 소년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과자를 사러 오는 손님은 대부분 소녀들인지라, 소년은 안에 있던 소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게다가 외모까지 멋있었다. 그를 훔쳐보는 소녀들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다.
소년이 고개를 돌리더니 복숭아와 말린 장미로 만든 과자, 채소과와 잣으로 만든 과자를 가리켰다.
“이거 두 개요.”
위라는 마침내 그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그는 오황자 조장이었다.
주인이 과자를 포장하는 사이, 그는 정과와 꿀떡도 몇 개 더 주문했다. 옆에 있던 호위무사가 계산을 끝낸 후 상점에서 나갈 참이었다.
고개를 돌린 조장이 뒤에 있던 위라와 양옥용을 발견했다.
상원절에 이송을 대신해 송휘 일행을 비취루에 데려갔던 터라, 그는 위라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웃어 보였다.
“위가의 넷째 아가씨도 여기서 과자 사는 걸 좋아하나 보군?”
위라가 고개를 저으며 옆에 있던 양옥용을 끌었다.
“옥용이를 따라온 겁니다.”
그녀가 조장이 들고 있는 유지 봉투를 보고 미소 지으며 물었다.
“오황… 오 공자께서도 달콤한 간식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조장도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일이 있어 나온 김에 들른 것이다. 내가 먹을 건 아니고, 임랑에게 주려고.”
그러고 보니 그와 조임랑은 친남매였다. 위라는 하마터면 이 사실을 잊을 뻔했다.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 더는 묻지 않고 양옥용을 끌어 한쪽으로 세웠다. 분명한 의도가 담긴 행동이었다.
그녀 옆으로 지나가던 조장은 갑자기 생각난 듯, 고개를 돌려 웃으며 물었다.
“듣자 하니 영국공부에서 최근에 천불사에 갔다던데, 마침 그때 둘째 형님도 가셨었거든. 넷째 아가씨께서 혹시 마주치셨는지 모르겠네?”
조개를 언급한 순간, 위라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녀는 그날 조개가 미복 차림으로 외출했다고 말한 게 떠올랐다. 그렇다면 자신의 행방을 알리고 싶지 않았으리라. 그녀가 천천히 시선을 돌리며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청망 주지 스님을 뵙고 싶어 갔던 것이라, 다른 사람은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오 공자님의 물음에는 답을 못 드릴 것 같습니다.”
싸늘하게 돌변한 그녀의 태도에 조장은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으며 사과했다.
“내가 실례를 했군.”
그는 위라에게 인사를 한 후 궁으로 가는 화려한 마차에 올랐다.
조장이 나가는 걸 보자마자 양옥용이 참지 못하고 속닥거렸다.
“저 사람은…….”
조장은 아직 자신만의 처소가 따로 없고 궁에서 살고 있었으니, 양옥용이 그의 얼굴을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더군다나 남녀가 유별하여 궁에서 연회가 열려도 나뉘어 앉았으므로 조장은 물론 조개의 얼굴도 몇 번 본 적이 없었다.
위라는 다시 상점에 가득한 과자로 시선을 돌리며 태연하게 말했다.
“조개의 동생이야, 다섯째 아들.”
양옥용은 바로 이해했다. 조개가 이황자였으니, 그의 동생이라면 오황자가 아닌가. 그녀는 드디어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놀란 가슴을 토닥였다.
“입 다물고 있길 천만다행이네.”
위라가 미소 지으며 그녀를 놀렸다.
“무슨 말이 하고 싶었는데?”
그녀가 고개를 움츠리며 말했다.
“단 걸 그렇게 많이 먹으면 이가 아플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조장에 대한 얘기를 끝내고 진지하게 과자를 고르기 시작했다.
양옥용은 위상인에게 줄 ‘설화과’라는 사탕만 살 생각이었으나, 막상 보니 간식들이 하나같이 귀여운 모양새라 전부 사고 싶었다.
그녀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위상인에게 줄 설화과와 다른 과자 두 가지, 위라에게 줄 과자 너덧 가지, 그리고 자기가 먹을 몇 가지를 더 골랐다. 팔진방을 나서는 그녀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 *
마차는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조장이 가림막을 걷고 푸른 무명옷의 호위무사에게 물었다.
“그날 둘째 형님이 천불사에 가서 청망 주지를 만났다고 했지? 뭘 물어봤는지 알아냈나?”
말을 탄 호위무사가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인 무능하여, 자세한 내막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조장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드러났다. 청망 주지는 득도한 고승이니, 필시 조개가 조정의 정세에 관한 의견을 구했을 터였다. 만약 청망 주지가 그에게 현명한 길을 제시하여 그가 큰 깨달음을 얻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입지가 곤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