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02)
특성흡수 헌터사냥꾼-102화(102/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102화
102. 도망쳤다니
도망쳤다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저, 정말로 도망친 걸까요?”
안초희가 설마 하며 되물었지만 김지훈도 믿을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멀리 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들어가 봤는데 아무도 안 보이더라고요.”
“더 멀리 간 건…….”
“상식적으로 화장실 가는데 그렇게 멀리 가진 않을 거 아녜요.”
“그렇다면…….”
생각나는 가능성은 하나뿐.
“도망친 거겠죠.”
보스가 무서워서 도망쳤다고 밖엔 생각할 수 없었다.
안초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못 움직이는 나도 싸울 마음을 먹었는데…….’
두 다리 멀쩡한 헌터가 화장실을 핑계로 도망가 버렸다.
물론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멀리서 봤음에도 보스의 위압감에 손발이 후들거릴 정도였으니까.
다리만 괜찮았다면 자신도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굳게 마음을 먹고 지팡이를 들었다.
동료들을 죽인 복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도준 씨라고 했나? 그분 레벨은 낮으시지만 되게 덤덤해 보여서 이럴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저도 그래요. 도준 씨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보스에 겁먹을 만한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김지훈도 심적인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만큼 민도준에게 건 기대가 컸기 때문이리라.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건지…… 뭔가 뒤통수 맞은 기분이네요.”
“……이제 어떡하죠?”
김지훈이 대답 대신 한숨을 쉬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 * *
파티원들이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민도준은 왔던 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급한 용무 때문이 아니다.
화장실은 그저 자리를 피하기 위한 핑계였다.
그렇다고 파티원들의 생각처럼 보스가 무서워서 도망치는 것도 아니었다.
회귀 전에 수차례나 잡아본 보스 따위 무서울 턱이 없었다.
‘전장의 화신 버프를 쌓아야 해.’
그가 이러는 건 다름 아닌 특성의 버프 효과를 받기 위해서였다.
스탯을 최대 50%나 증가시켜주는 전장의 화신 특성 버프.
그 버프의 유무 차이가 얼마나 큰지 경험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버프 없이 싸우면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민도준은 웬만하면 압도적인 힘으로 보스를 잡을 생각이었다.
그래야 대부분의 기여도를 가져가고 보상을 모두 독식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현재의 상태론 검은 빛깔 왕지네를 이기기란 무리였다.
‘물론 모든 능력을 발휘하면 이길 수는 있지.’
유령 늑대, 반사, 광폭화, 마법 제어 등등.
모든 필살기를 사용하면 이기는 거야 어렵지 않다.
그는 이미 S급에 필적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모든 능력을 발휘했을 때의 경우.
‘되도록이면 힘은 숨기는 게 좋지.’
굳이 100%의 힘을 발휘해서 눈에 띌 필요는 없다.
김지훈의 의도를 알면서 같이 던전에 들어온 것도 이런 이유였다.
일정량의 힘을 숨길 생각이니까.
‘실력을 보여주긴 할 거다. 하지만 모든 걸 보여주진 않겠어.’
유령 늑대, 반사, 마법 제어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능력은 쓰지 않을 생각이다.
그런 힘을 보여주면 여기저기 소문이 퍼지고 결국엔 복수의 대상의 귀에도 들어갈 테니.
‘하지만 전장의 화신이나 광폭화 같은 효과는 겉으로도 티가 나지 않지.’
그 말인즉슨 눈치 볼 것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뜻.
‘그러면 다른 능력을 쓰지 않고도 보스를 압도할 수 있어.’
민도준이 전장의 화신 버프를 쌓으려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능력을 보여준다는 리스크 없이도 보스를 사냥할 수 있을 테니까.
‘거대 지네 50마리만 잡으면 돼.’
하지만 아까부터 동굴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앞서 들어온 소망 길드원들이 모두 잡은 탓이지만 걱정할 건 없었다.
‘지네 굴로 가면 되니까.’
갈림길에 마련된 비밀 공동.
100마리 넘게 모여 있는 그곳이라면 충분히 버프를 쌓고도 남을 것이다.
‘50마리만 잡고 돌아가면 돼.’
그 와중에 보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도 문제 될 건 없었다.
‘아우에게 냄새를 맡게 했으니.’
굳이 보스를 본 뒤에 되돌아가는 것도 추적 스킬을 걸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10분을 달렸을 때 갈림길이 나왔다.
비밀 공동이 있는 여섯 번째 길로 들어가 벽면의 공간을 열었다.
통로를 통해 들어가니 어김없이 널찍한 공동이 나왔다.
‘바글바글하네.’
말 그대로 바글바글, 거대 지네들이 몰려 있었다.
역시 지네가 안 보인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50마리 정도야 껌이지.’
유령 검을 꺼낸 민도준이 지네 무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 * *
“…….”
“…….”
침묵 속에서 시간만 흘렀다.
김지훈이 공략창을 보며 몇 분이 흘렀는지 확인했다.
“30분 지났네요…….”
“…….”
그럼에도 민도준은 나타나지 않았다.
화장실을 간다던 사람이 30분이나 안 나타난다?
괴수에게 기습을 당했거나 도망쳤거나, 둘 중 하나다.
‘혹시 또 전에 봤던 그리마에게 습격을 당했나 싶어 랭킹창도 확인해 봤지만…….’
민도준의 이름은 랭킹에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
그 말은 아직 살아 있다는 의미.
“하아…….”
진짜로 도망쳤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보스 공략은 이대로 포기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
안초희의 말에도 김지훈은 고민을 거듭했다.
눈앞에 있는 보스를 놓치기엔 너무 아까웠다.
‘둘이서 보스를 잡아봐?’
원래의 목적은 민도준의 실력을 드러내는 것이었지만 그것도 다 끝났다.
보스가 무서워서 도망친 헌터의 실력 따위는 볼 필요도 없었다.
‘민도준 헌터는 우리 엠페러 길드에 어울릴 만한 재목이 아니야.’
실력 테스트는 볼 것도 없고, 결국엔 보스를 잡을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데 그것이 문제였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서포터를 데리고 과연 잡을 수 있을지…….’
그렇다고 보스를 포기하고 시간만 축내기엔 아까운 것이 사실.
보스라는 과실이 탐이 나는 건 민도준뿐만이 아니었다.
‘나 혼자서는 이길 수 없어.’
과거에 보스를 사냥해 본 경험이 있다곤 하지만 어디까지나 여섯 명이서 잡았던 것.
2,000레벨이 넘는 자신이라도 혼자서 보스를 잡기란 무리였다.
‘민도준 헌터만 있었어도 잡는 건데…….’
레벨이 높은 서포터보다는 오히려 레벨이 낮은 딜러가 더 도움이 된다.
서포터의 상태 이상 마법은 보스처럼 면역력이 강한 상대에겐 소용이 없었으니까.
‘차라리 딜러와 합심해서 빠르게 죽이는 게 낫지.’
하지만 민도준이 없는 마당에 그것도 불가능.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길드원이라도 데려올걸…….’
민도준에겐 다들 바쁘다고 말했지만 실은 그를 회유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다른 길드원들도 데려오려면 얼마든지 데려올 수 있었다.
‘도준 씨를 테스트하겠다고 못 들어오게 한 게 보스를 놓치는 상황으로 이어질 줄이야…… 하아.’
김지훈이 통한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스 공략은…… 포기하도록 하죠.”
아무리 생각해도 둘이서 잡는 건 무리였다.
그것도 이런 서포터를 데리고서는.
김지훈이 아까워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반면 안초희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동료들의 복수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상대하기 무서웠던 게 사실이었다.
“그럼 이만 돌아갈까요?”
“…….”
자신을 업어달라는 말을 돌려 말했지만 김지훈은 반응이 없었다.
보스가 있는 방향을 빤히 쳐다보고만 있을 뿐.
“왜 그러세…….”
따라서 고개를 돌린 안초희가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다름 아니라 보스가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
아무래도 들킨 모양이다.
“도망쳐야 되요!”
김지훈이 재빨리 안초희를 들쳐업었다.
“꺄악!”
빠른 속도로 달리는 그때.
타다다다다다다닷!
검은 빛깔 왕지네가 엄청난 속도로 기어왔다.
100미터란 간격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젠장!”
바로 뒤까지 따라오자 김지훈이 안초희를 안고 옆으로 굴렀다.
콰아앙!
“꺄아악!”
왕지네가 벽에 부딪히자 김지훈이 그녀를 놓았다.
“잠시만 여기 계세요!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네?!”
안초희를 내버려 둔 김지훈이 한손검을 꺼냈다.
‘보스를 따돌리는 건 불가능해. 이렇게 된 이상 싸우는 수밖에 없다.’
서포터를 미끼로 던지면 도망칠 수는 있었지만 김지훈은 그런 쓰레기가 아니었다.
‘혼자 잡아보는 거야.’
보스에게 달려간 그가 스킬을 퍼부었다.
‘소드 템페스트!’
까앙! 까앙! 까앙!
‘회심의 일격!’
까앙!
‘필사의 일격!’
까아앙!
현란하게 움직이며 스킬을 모두 적중시켰다.
그것도 왕지네의 머리에.
하지만 2,043레벨의 공격에도 왕지네의 머리엔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전에 잡았을 땐 쉽게 상처 났는데?’
콰아앙!
왕지네의 머리가 김지훈이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아슬아슬하게 피한 김지훈이 식은땀을 흘렸다.
순발력이 1,000을 넘겼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위험했으리라.
김지훈이 다시 한번 머리를 노렸다.
캉캉캉캉!
일반 지네라면 조각났어야 할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쇳덩이를 치는 것처럼 단단한 느낌이야.’
베는 맛도 없었다.
콰아앙!
왕지네의 머리를 간발의 차로 피한 김지훈은 공격이 먹히지 않자 당혹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근력이 낮은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패시브 효과로 근력이 이미 1,600을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결코 적지 않은 수치였건만 놈은 자신의 공격이 간지럽지도 않은 모양이다.
콰아앙!
다시 한번 공격을 피하고 반격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머리는 단단했다.
이전에 상대했을 때완 너무도 달랐다.
“헉, 헉…….”
공격도 먹히지 않는데 설상가상으로 체력도 떨어져 갔다.
‘젠장! 체력 스탯을 너무 등한시했나?’
김지훈의 체력 스탯은 700 정도.
근력과 순발력이 1,000이 넘는 것에 비하면 낮은 축에 속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근력 좀 줄이고 체력이나 찍어둘걸…….’
나중에야 밝혀지지만 근력, 순발력, 체력의 밸런스가 맞지 않으면 스킬 사용 시 금방 지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스킬을 남발한 김지훈이 벌써부터 지친 데엔 이유가 있었다.
‘이길 수…… 있을까?’
상처라도 났다면 희망이라도 가졌겠지마는.
‘이건 뭐,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니…….’
답도 없다.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도망이라도 쳐야 해.’
하지만 이대로 자기만 도망쳤다간 근방에 있는 서포터가 위험해진다.
‘일단 초희 씨가 없는 쪽으로 유인한 뒤에 도망쳐야겠어.’
콰아앙!
공격을 피한 김지훈이 조금씩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보스를 유인했다.
이따금 반격하며 어그로를 유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금만 더.’
이대로 보스가 따라온다면 안초희도 살고 자신도 살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보스의 공격을 피하는데.
콰아앙!
“커헉!”
둔해진 움직임 때문에 보스의 공격을 완전히 피하지 못한 김지훈이 허공을 날더니 바닥을 굴렀다.
‘크으윽…… 머리에 살짝 스쳤을 뿐인데 이 정도 대미지라니…….’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왕지네가 머리 아래에 있는 독침을 김지훈에게 겨눴다.
그대로 꿰뚫어 먹잇감을 죽일 심산이었다.
‘……끝났나.’
김지훈이 삶을 포기하는 그때였다.
퍼어엉!
화염이 지네의 머리에 정확히 적중했다.
어디서 날아왔나 쳐다보니 안초희가 지팡이를 겨누고 있었다.
화가 난 왕지네가 그대로 머리를 돌려 안초희에게 기어갔다.
김지훈을 도와주려던 그 행동이 명을 재촉하고 말았다.
“초희 씨!”
안초희는 빠른 속도로 기어오는 보스를 향해 스킬들을 퍼부었다.
[스킬이 실패했습니다.] [스킬이 실패했습니다.] [스킬이 실패했습니다.]일반 지네에겐 잘만 걸리던 상태 이상 마법들이 모조리 실패해 버렸다.
그래도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김지훈이 도망칠 시간을 벌었으니까.
‘이 틈에 빨리 도망가요.’
안초희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초희 씨!”
안초희가 김지훈을 보며 싱긋 웃더니 초탈한 사람처럼 눈을 감았다.
차마 자신의 죽음을 목도할 자신이 없었다.
‘이걸로 된 거야.’
길드원들이 모두 죽고 혼자 살아남았다.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어쩐지 가슴 한구석에 죄의식처럼 남아 있었다.
그들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것 같았기에.
그런데 김지훈이라는 남자가 또다시 희생하려고 한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지금의 무모한 행동은 그에 대한 보답이었다.
‘……꼭 살아남으세요.’
그녀가 입을 꽉 다물었다.
죽음이 지척까지 다가온 것이 느껴진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그녀의 몸이 높이 떠올랐다가 내려왔다.
“어……?”
정신을 차려보니 누군가 자신을 안고 있었다.
도망갔던 그 헌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