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0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107화(107/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107화
107. 말단의 생활
민도준은 애당초 장석현을 살려둘 마음이 없었다.
‘레벨이 낮다곤 해도 어쨌거나 흑해 길드원이니까.’
흑해 길드는 암살자 길드다.
입단 테스트 때 사람을 죽인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
놈들에게 자비는 없었다.
‘특성이 들어왔었지?’
레벨이 낮더라도 특성이 높을 수 있기에 살짝 기대했지만.
[특성 – 하급 저항]-등급 : F
-설명 : 모든 속성에 대한 저항력이 5% 증가한다.
‘…….’
여태까지 얻은 특성 중에서 가장 초라하기 그지없는 특성에 할 말을 잃었다.
‘말단에 있을 만하군…….’
그래도 계획대로 놈의 모습으로 변장했으니 아쉬움은 털어버렸다.
‘선생님을 미행하는 이유나 앞으로의 계획을 알고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정보는 얻지 못했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었다.
‘미행하는 놈이 한 명 더 남아 있으니 그놈한테 물어보면 돼.’
미행은 애초에 두 명이었다.
250레벨짜리와 400레벨짜리.
그중 정보가 없어 보이는 250레벨짜리를 노린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나랑 체격이 같은 건 이놈이니까.’
체격이 같아서 변장하기 좋다는 게 이유였다.
‘400레벨짜리는 체격도 안 맞는 데다 정보를 불지 않을지도 몰라.’
말단일수록 협박에 굴하기 쉬우니 250레벨짜리를 노린 것이다.
비록 가진 정보는 없었지만.
‘이제부터 놈인 척 위장해서 정보를 얻으면 돼.’
그렇기에 민도준은 지금 흑해 길드원처럼 보여야 했다.
화장실을 나와 자연스럽게 황의철을 감시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선생님,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은근슬쩍 황의철을 쳐다보던 민도준이 핸드폰을 들었다.
죽은 흑해 길드원의 핸드폰이었다.
‘정보라면 여기에 들어 있겠지.’
주소록, 통화기록, 사진, 메모, 문자, 메신저 내역 등.
정보를 얻기 위해 낱낱이 살폈다.
‘이름은 장석현이군. 예상대로 말단 길드원이고.’
한참 살펴보는 와중에 문자가 왔다.
[야, 내가 빨리 갔다 오라고 했냐 안 했냐? 뒤질래?]보아하니 400레벨짜리 길드원의 문자였다.
‘이름도 김영훈 선배라고 저장돼 있군.’
약점 간파로 봤던 이름과 같았다.
‘어딘가에서 날 보고 있는 모양이야.’
프로라면 모른 척해야 하지만 민도준이 연기해야 할 역할은 멋모르는 말단 길드원.
이리저리 두리번거린 끝에 김영훈의 위치를 찾아냈다.
그러자 또 문자가 날아왔다.
민도준이 답장을 보냈다.
[에고, 죄송해요, 선배님.] [3개월 된 새끼가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몰라?] [시정하겠습니다.] [똥쟁이 새끼. 감시나 잘해.]장석현의 말투를 따라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자 내용을 봤으니까.
‘정보가 더 필요해.’
민도준이 이어서 문자 내역들을 읽어갔다.
틈틈이 황의철을 감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 읽은 민도준의 얼굴에 실망감이 떠올랐다.
‘도움 될 만한 정보는 없군.’
핸드폰 속에는 이렇다 할 핵심 정보가 없었다.
미행하는 이유를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황.
‘그렇다면 계획대로 정보를 얻는 수밖에.’
[선배님.] [뭐야?] [저 사람 며칠까지 미행해야 돼요?] [새끼가. 내가 어떻게 알아? 위에서 그만하라 할 때까지 해야지.] [왜 미행하는 건데요?] [이 자식이 별걸 다 궁금해하네. 우리가 언제 이유를 알고 미행했냐? 잡담하지 말고 감시나 신경 써.]문자를 보내던 민도준이 내심 아쉬워했다.
‘저 녀석도 미행하는 이유는 모르는 건가?’
감시원들에겐 필요한 정보 이외엔 알려주지 않는 모양.
‘이대로라면 정보를 얻기가 힘들다.’
변장을 그만둘까 하다가 생각을 고쳤다.
‘일단은 현 상황을 유지해야 돼. 새로운 지령이 떨어질 때까지는.’
장석현으로 위장한 민도준이 미행을 이어갔다.
황의철과 가족들은 놀이공원의 야간 퍼레이드까지 보고 나서야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에 가려나 보다. 따라와.]문자를 본 민도준이 선배라는 길드원에게 다가갔다.
한나절 내내 남처럼 대하던 두 사람이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선배 김영훈이 민도준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야,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실수해? 감시 좀 똑바로 하자. 알겠냐?”
“네…….”
목소리가 달랐지만 작게 말한 탓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얼굴은 판박이였기에 들킬 염려는 없었다.
“따라와.”
민도준이 김영훈을 따라 주차장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차에 올라탄 두 사람이 미행을 이어갔다.
김영훈이 운전하는 동안 민도준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의심받을까 봐 그런 것이었는데 원래 둘 사이에 대화는 없었는지 김영훈도 별말이 없었다.
“다 왔다.”
황의철의 목적지는 예상대로 집이었다.
길목에 차를 주차하고 다시 미행을 하려는데 김영훈이 말했다.
“아침 6시에 교대해 줄 테니까 그때까지 잘 지켜봐. 졸지 말고 똑바로 감시해.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네, 선배님.”
자러 갈 시간인지 김영훈이 차를 타고 사라졌다.
‘아침까지 감시하라고?’
혼자 남은 민도준이 황의철이 들어간 아파트를 올려다봤다.
‘어쩔 수 없지.’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감시하는 수밖에 없었다.
똑바로 감시하는지 감독하러 올 수도 있었기에.
밤새 황의철의 집을 지켜보니 어느덧 아침이 됐다.
6시가 조금 넘어서야 김영훈이 나타났다.
어제와는 완전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었다.
“교대다. 10시까지 자고 와라. 똑같은 옷 입고 오거나 1분이라도 늦게 오면 뒤진다.”
“네, 선배님.”
10시면 4시간밖에 못 잔다.
‘이게 뭔 고생이람.’
말단의 생활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민도준이었다.
* * *
황의철을 미행한 지 사흘째.
‘이 짓도 더는 못 해 먹겠네.’
민도준이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닌 게 아니라 황의철이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
‘온종일 아파트 입구만 바라보고 있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헌터라 그런지 몸이 고되진 않았지만 문제는 할 일 없이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도 아까웠다.
‘내일이 다연이 생일일 텐데…….’
딸 생일 때 가겠다고 미리 말해놨건만, 이렇게 미행하다가는 약속을 깨야 할 판이다.
[야.] [네, 선배님.] [오늘은 갈 데가 있다. 차로 와.]선배의 부름에 민도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지?’
여태 황의철의 집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건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아우. 혹시 모르니 선생님을 지키고 있어라.’
[컹!]위험한 상황이 생길까 봐 유령 늑대를 황의철의 집 앞에 대기시켰다.
소환수와 거리가 멀어지면 다른 지시는 내릴 수 없지만 선생님을 지키라는 명령만큼은 수행할 것이다.
“왔냐? 타라.”
조수석에 앉은 민도준이 김영훈과 함께 어딘가로 향했다.
목적지가 궁금했던지라 조심스레 물었다.
“선배님, 어디로 가는…….”
“가보면 알아, 새꺄.”
“감시가 빌 텐데 이래도 되는 건지…….”
“시키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할 것이지 뭔 잔말이 많아? 뒤질래?”
“…….”
주눅 든 표정을 연기한 민도준은 이후로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에.
‘밤낮으로 감시하던 인원을 이렇게 철수시킨다고? 그럼 선생님은 누가 감시하는 거지?’
점점 멀어지는 황의철과의 거리에 민도준의 마음에 불안이 싹텄다.
‘아우를 남기긴 했지만 그래 봐야 선생님보다 약해.’
애당초 A급 헌터인 황의철을 걱정한다는 게 웃긴 일이었으나 흑해 길드에 노려지는 만큼 안심할 수는 없었다.
‘흑해 길드의 마스터가 나설지도 모를 일이야.’
흑해 길드장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황의철을 살해할 정도의 강자라는 사실.
‘내 복수의 대상이기도 하고.’
일단은 어떤 상황인지도 파악이 안 됐으니 섣부른 행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어디로 가는지는 곧 있으면 알게 되겠지.’
1시간 정도 달리던 차가 도심을 벗어나 산골짜기로 들어섰다.
산중에 차를 세운 김영훈이 먼저 내리며 말했다.
“따라와.”
김영훈을 따라 산길을 올랐다.
나무들을 지나 깊숙이 들어가니 산장 하나가 보였다.
그곳엔 선객 한 명이 마중 나와 있었는데 약점 간파로 떠오른 정보를 보니 같은 흑해 길드원이었다.
‘저놈은 레벨이 좀 높네.’
산장에 있는 놈은 750레벨로 B급이었다.
‘B급이면 은신을 사용할 수 있는 고급 인력 아닌가?’
흑해 길드가 정확히 어떤 체계로 돌아가는지는 모르지만 은신 사용자라면 암살과 같은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을 터.
‘적어도 감시나 하는 이놈보단 많은 정보를 알고 있겠지.’
그 말은 달리 말하면 빼먹을 정보도 많다는 뜻이었기에 민도준은 내심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선배님, 저희 왔습니다.”
“영훈이 왔냐? 우리 막내 석현이도.”
김영훈이 깍듯이 인사하자 민도준도 눈치껏 허리를 굽혔다.
“들어와라.”
두 사람이 B급 길드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소파와 테이블이 있는 휴식 공간이 나왔지만 길드원이 안내하는 곳은 따로 있었다.
끼익-
“먼저 들어가.”
지하로 통하는 비밀 문을 열면서 하는 소리였다.
김영훈과 민도준이 말없이 지하실로 향했다.
영문도 모른 채 계단을 내려가던 민도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피 냄새가 나는군.’
지하실은 생각보다 넓었다.
그런데도 여기저기서 피 냄새가 진동했다.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 만하군.’
이곳에서 못해도 수십 명은 살해했으리라.
때문에 민도준은 곧이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석현아.”
“네, 선배님.”
“미안하다.”
“예?”
그 말만 남긴 김영훈이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더니 지하실 입구를 막았다.
이윽고 김영훈 대신 B급 길드원이 앞으로 나섰다.
츠으으읏-
갑자기 단검을 소환하는 길드원의 모습에 민도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영훈아, 잘 지켜봐. 너도 짬 차면 이렇게 해야 되니까.”
“네, 선배님.”
B급 길드원은 민도준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단검을 들며 살기를 뿌리고 있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예상한 일이었다.
먼저 들어가라고 했을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민도준은 알면서도 겁먹은 표정을 연기했다.
“서, 선배님!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칼은 왜……!”
“막내야, 너무 겁먹지 마라. 고통 없이 보내줄 테니.”
“제, 제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시는 거예요?”
“딱히 네가 잘못한 건 없어. 단지 우리 길드에 너처럼 약한 놈은 필요 없어서 그래. 그것뿐이다.”
단검을 겨눈 채 길드원이 다가오자 민도준이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잘못했어요. 제가 더 열심히 할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열심히 한다고 네 특성이 S급으로 바뀌는 건 아니잖아. F급은 영원한 F급 아니냐?”
“이, 이럴 거면 저를 왜 길드원으로 받아들이신 거예요?”
“이용하고 버리기 좋으니까. 살인 멸구하기 좋다 이 말이지. 게다가 F급 특성이라 죽여도 아깝지 않고.”
“…….”
“그리고 우리는 원래 신입 잘 안 받아. 신삥은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이지.”
길드원의 단검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제 궁금한 건 없어?”
“왜 하필 오늘이에요?”
“하! 이게 묻는다고 진짜 물어보네?”
어이없다는 웃음을 짓던 길드원이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친절하게 대답해 주니까 우스워 보이냐?”
그가 눈앞에서 단검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였다.
“네 눈엔 이게 보이지도 않나 봐?”
“보여.”
탁-
한순간에 단검을 뺏은 민도준이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탱그랑-
“이제 연극은 집어치울게.”
민도준의 가면이 일그러졌다.
“말로만 해선 정보를 줄 것 같지 않으니.”
그의 얼굴이 40대 아저씨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