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75)
특성흡수 헌터사냥꾼-175화(175/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175화
175. 사신
지이이잉-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고 있던 허지평은 집중을 깨는 문자 소리에 이맛살을 구겨야 했다.
‘이 시간엔 누구도 방해하지 말라고 했거늘.’
허지평이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자신의 시간을 방해한 놈이 누구인지 확인한 뒤 죽도록 패주리라.
하지만 그런 생각은 문자를 보자마자 달아나버렸다.
[之]심플한 문자였다.
그러나 백사 길드에서 쓰이는 의미는 절대 간단하지 않았다.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였으니까.
게다가 문자를 보낸 이도 문제였다.
‘천리승이 보낸 문자다!’
백사 길드의 이인자나 다름없는 천리승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
‘임무가 틀어진 건가?’
천리승은 현재 암살 임무를 위해 한국에 가 있는 상태.
문제가 생겼다면 타깃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생겼을 확률이 높았다.
‘설마 흑해 길드장 그놈이……?’
타깃이 생각보다 강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고?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든 허지평이 랭킹 시스템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리 검색해 봐도 천리승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랭킹에서 지워졌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헌터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이런 제기랄 빵즈 새끼!”
콰직-!
주먹질 한 방에 옆에 있던 협탁이 산산조각이 났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내 사람을 건드려?’
허지평이 분노로 이를 갈았다.
이번엔 그냥 건드린 것도 아니고 죽였다.
마을 하나를 몰살시킨다 해도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지 않았다.
‘죽인다. 그 흑해 길드 마스터라는 새끼는 내 손으로 반드시 죽여버린다!’
타깃의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 대문 앞에 걸어놓아야 비로소 분이 풀릴 듯싶다.
‘그런데 아무리 방심했기로서니 천리승이 당하다니……?’
길드에서도 최고의 암살자로 칭송받는 천리승이 한국의 암살자 길드에 당했다?
‘우리 중국이 그깟 한국놈들한테 밀렸단 말인가?’
대기업이 하청 업체 따위에 밀릴 수야 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인정할 수 없다.
‘필시 함정에 빠졌겠지. 일대일로 붙었을 리도 없고.’
허지평은 천리승이 굉장히 불리한 조건에서 기습당했다고 생각했다.
정면 대결로 죽었을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나저나 리승이가 죽었는데 문자가 오다니.’
죽기 전에 보낸 문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확인해 보면 알겠지.’
허지평이 답신을 보냈다.
[급한 일이 생겼으니 본거지로 돌아오너라.]만약 이 문자에 대한 답이 온다면 상대는 천리승의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유령이 문자를 보낼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답장은 금방 왔다.
[알겠습니다. 보스.]쾅-!
분노를 참지 못한 허지평이 협탁 잔해를 걷어찼다.
“이 같잖은 흑해 마스터 놈! 감히 천리승인 척 문자를 보내다니!”
랭킹을 확인할 거라는 생각까진 하지 않았는지 상대는 뻔뻔하게도 천리승을 연기했다.
‘잠깐만, 놈이 굳이 천리승의 핸드폰을 가지고 답장을 보냈다는 건?’
아직은 천리승의 죽음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왜일까?’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해서일까? 그도 아니면?
‘불시에 우리 길드를 습격하기 위해서?’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간이라면 백사 길드를 건들 생각 따윈 하지 않겠지만 상대는 미개한 한국인이다.
‘제정신이었다면 우리 길드를 두 번이나 건들진 않았겠지.’
먼저 거래를 끊고 전설의 보검을 꿀꺽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흑해 길드가 백사 길드를 얼마나 얕보고 있는지를.
‘천리승의 문자로 안심시킨 뒤 불시에 우리 길드를 습격할 가능성도 있어. 본거지의 위치는 아마 천리승을 고문해서 알아냈겠지.’
놈들이 천리승을 곱게 죽였을 리 없다.
온갖 고문으로 정보를 캐낸 뒤에 죽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리승이가 배신한 건 아닐 거야.’
배신했다면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문자를 보낼 리도 없다.
‘그건 죽기 직전에 보낸 일종의 경고 문자가 아닐까?’
그렇다면 본거지의 위치도 일부러 알려줬을 가능성이 크다.
‘미리 대비하고 있다가 잡아먹으라는 뜻이겠지.’
흑해 길드에서 정말로 습격하러 올지는 모르겠지만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다.
“여봐라!”
허지평이 밖에 있던 길드원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길드원을 전원 소집하도록.”
“저, 전부 말입니까?”
“그래.”
“명을 받들겠습니다.”
길드원이 고개를 숙인 뒤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초저녁부터 왜 소집령을 내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스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어.’
느낌상 뭔가 문제가 터졌음은 알 수 있었다.
* * *
보스의 소집령이 떨어진 지 3시간.
각지에 떨어져 있던 길드원들이 전부 모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다 모였나?”
“예. 해외에 있는 갈 형님을 제외하고는 전부 모였습니다.”
“52명 전부 말이냐?”
“예.”
“갈지훙도 불렀겠지?”
“네. 가장 빠른 비행기 편으로 오겠다고 했습니다.”
“좋아.”
백사 길드원 52명 전원이 모였다.
모두 A급 16명, B급 36명으로 마을 하나쯤은 가볍게 괴멸시킬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자리에 모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보스께서 왜 갑자기 우릴 부르신 거지?”
“급히 모이라고 해서 부랴부랴 오긴 했다만…….”
“또 어느 촌구석에서 마을을 터실 계획이신가 보지.”
“저번에 털었는데 또?”
“듣기론 오늘 기분이 매우 안 좋으시다던데?”
“음, 그런 거라면 이해가 되는군.”
“흐흐, 난 마을 사람들 죽일 때가 가장 좋더라.”
“난 마지막에 여자들 갖고 놀 때.”
“솔직히 둘 다 좋잖아, 이것들아!”
“그건 그렇지.”
“큭큭큭큭큭.”
길드원들이 이런저런 잡담을 하고 있을 때 허지평이 외쳤다.
“조용!”
좌중이 찬물을 끼얹듯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내가 갑자기 모이라고 한 이유가 궁금할 테지.”
허지평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쟁을 위해서다.”
“전쟁……?”
좌중이 술렁이는 가운데, 허지평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조금 있으면 한국의 흑해 길드가 우리를 치러 올 것이다. 몇 명이 올지는 모른다. 20명 일수도, 50명 일수도, 그도 아니면 100명 일수도 있다. 우리는 놈들의 습격에 대비해야 한다.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예고 없는 출정식에 다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길드원들은 금세 수긍하고 전의를 다졌다.
언제까지고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하리라 생각한 길드원은 없었다.
애당초 이런 대규모 싸움을 기대하고 들어온 이들도 있었다.
“상대는 한국에서 최고라 불리는 암살자 길드다. 다들 자신 있느냐?”
“몇 명이 쳐들어와도 이길 자신 있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빵즈 따위는 스킬 없이도 이길 수 있습니다!”
“저희 길드는 저희 손으로 지킬 테니 걱정 마십시오!”
부하들의 대답을 들은 허지평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사기는 이 정도면 충분하군.’
굳이 일장 연설하여 더 끌어올릴 필요는 없겠다.
‘언제든지 와봐라. 우리 길드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마.’
길드원들이 각자 무기를 손에 쥐며 흑해 길드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이는 자.
첫 대규모 전투에 설레는 자.
벌써 피를 볼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자 등.
저마다 표정은 달랐지만 내심 긴장하고 있는 건 똑같았다.
상대의 병력이 어느 정도인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병력은 알 수 없지만 이거 하나는 예상할 수 있다.’
생각 외로 치열한 접전이 벌어질 거라는 것.
하지만 그런 기대와 달리.
“어? 왔다!”
“적이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사람은 고작 한 명이었다.
“저 새끼 뭐야?”
“꼴랑 한 명이라고?”
“더 없어?”
뒤이어 오겠지 싶어 정체불명의 남자가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봤지만 기대와 달리 더 이상 나타나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 씨.”
“뭐 이런…….”
기다린 게 무색하게 공허함과 허탈감이 좌중을 지배했다.
허지평의 심정도 부하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 병력이 모여 있는 이곳에 혼자서 나타나다니. 미친 건가?’
물론 시퍼런 검을 들고서 주저 없이 걸어오는 걸 보면 범상치 않은 상대라는 건 알겠다.
‘아마 흑해 길드 마스터겠지. 하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B급 이상의 쟁쟁한 헌터들이다. 제아무리 S급 헌터라도 이 정도 병력은 상대하기 힘들지.’
더구나 3,800레벨인 자신까지 가세한다면 승부는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는 상황.
그렇기에 허지평은 상대가 잘못을 빌거나 협상하러 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길드원의 목이 떨어지는 걸 보기 전까지였지만.
툭- 투툭-
상대의 베기 한 번에 세 명의 목이 잘려나갔다.
웬만한 헌터는 눈으로 좇기도 힘든 속도.
“저, 저, 개새끼가!”
다시 한번 번뜩임과 동시에 머리통이 튀어 오르자.
“죽여!”
“X발, 빵즈 새끼!”
“와아아아!”
그제야 길드원들이 동료의 복수를 위해 달려들었다.
“자, 잠깐!”
왠지 불길한 예감을 느낀 허지평이 뒤늦게 소리를 질러봤지만.
“으아아!”
“죽여어어어!”
함성에 파묻혀 아무도 듣지 못했다.
서걱- 서걱-!
투둑- 툭툭-
학살이 벌어졌다.
일반적으로 학살이라 함은 머릿수가 많은 쪽이 적은 쪽을 공격할 때 붙는 말이었지만.
스걱- 스걱-!
툭- 투툭-
지금 같은 상황에선 반대로 쓰이고 있었다.
“이, 이런 X발!”
허지평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10명이나 죽어버리다니!’
혼자라고 만만히 봤었는데 상대는 생각보다 고수였다.
‘모르긴 몰라도 S급 헌터다! 나랑 맞먹는!’
빗발치는 공격을 피하며 정확하게 목만 베어 넘기는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길드원이 전부 달려들어도 저놈은 막을 수 없다. 내가 아니면!’
허지평이 창을 고쳐 쥐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헛!’
즈위이이잉!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검은색의 광선을 보고 잽싸게 몸을 던져야 했다.
콰콰콰콰쾅-!
흙먼지가 일며 허지평이 피한 자리가 쑥대밭이 됐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애당초 광선의 목표는 허지평이 아니었다.
“헉! 부, 부하들이……?”
광선을 피하지 못한 길드원들이 대거 목숨을 잃었다.
얼추 열댓 명 정도 되는 인원들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흑해 길드 마스터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서걱- 스걱-!
머리통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피를 흩뿌렸다.
B급이든 A급이든 검 짓 한 번에 죽는 건 마찬가지였다.
쌔애애애앵-!
가끔 바람의 칼날이 나타나 가로막는 길드원을 사정없이 찢어발겼지만.
콰콰콰콰쾅!
그보다 무서운 것은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검은 광선이었다.
멈칫-
허리를 숙여 또다시 광선을 피한 허지평이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불필요한 희생을 막기 위해 놈에게 달려가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다…… 죽었다고?”
허지평이 주위를 둘러봤다.
전투를 시작한 지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백사 길드원 중에 서 있는 사람이라곤 자기밖에 없었다.
흙먼지로 가득한 주변은 온통 시체뿐이었다.
“하하…… 하하하.”
하도 어처구니가 없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내가 잘못 생각했군.’
처음 상대를 봤을 때 협상 따위나 하러 온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우리 길드를 괴멸시키러 온 거였어.’
허지평이 고개를 들었다.
흙먼지를 뚫고서 걸어오는 인영이 마치 죽음의 사신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