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79)
특성흡수 헌터사냥꾼-179화(179/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179화
179. 새벽의 비즈니스
이제 막 자정이 넘은 시각.
그런데도 강남역 10번 출구는 사람들로 붐볐다.
원체 사람이 많이 다니는 상권인 데다 불타는 금요일이었기 때문.
혈기왕성한 20대들이 밤을 새우기 위해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야, 오늘 날밤 까는 거다?”
“흐흐, 당연하지.”
“아는 여자 있으면 불러. 같이 술 먹자고 해.”
“야, 내가 여자가 어딨어.”
“야야, 저기 좀 봐봐.”
청년들의 시선이 역 앞에 서 있던 여성에게 향했다.
“존나 이쁘다. 그치?”
“오, 진짜. 완전 내 스타일인데?”
“같이 술 먹자고 해 볼까?”
“누구 기다리고 있는 거 같은데?”
“아무렴 어때. 남자가 용기가 있어야지.”
헌팅을 시도하기로 마음먹은 청년들이 여성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저기요.”
“네?”
“혹시 시간 있으세요?”
무슨 의미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여성에게 청년이 자신 있게 말했다.
“괜찮으면 같이 술이나 먹으러 갈래요? 저희가 사드릴게요.”
“아, 아니에요. 지금 누구 기다리는 중이라…….”
“남자친구예요?”
그 말에 여성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 그건 아닌데…….”
“그럼 같이 못 놀 것도 없잖아요.”
“맞아요. 그냥 약속 취소하고 저희랑 놀아요.”
“아…….”
딱 잘라 거절하지도 못하고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기다리던 남자가 나타났다.
“도, 도준 씨.”
민도준이 홍세연에게 눈인사를 한 뒤 청년들을 훑어봤다.
걸어오면서 얼핏 대화를 들었기에 어떤 상황인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너희 뭐야?”
“이 자식이 언제 봤다고 반말……!”
청년들이 호기롭게 외쳤지만 그것도 잠시.
“가라.”
민도준의 살기 어린 눈빛을 마주하자 금세 꼬리를 내리고 돌아섰다.
‘허, 헌터다.’
일반인이 헌터를 구분할 방법은 없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잘못 걸리면 죽는다.’
눈앞의 남자는 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최상위 포식자임을.
“잠깐.”
“예?”
“가기 전에 사과는 하고 가야지.”
“죄, 죄송합니다.”
“나 말고 여기 여성분한테 말이야.”
청년들이 홍세연을 향해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제 꺼져.”
청년들이 사라지자 민도준이 한숨을 쉬며 홍세연을 쳐다봤다.
“길드장님. 싫으면 싫다. 왜 아무 말도 못 하고 계세요.”
“아, 그러게요. 바보같이……. 너무 당황했나 봐요.”
“설마 쟤네 따라 술 마시러 가려던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헌터님 만나려고 이렇게 부랴부랴 꾸미고 왔…….”
말하고 보니 부끄러웠는지 홍세연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반면 민도준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이러지 말고 어디 조용한 곳에 들어가서 얘기하죠.”
“아, 혹시 회 좋아하세요?”
“회요? 좋죠.”
“제가 급히 예약해 둔 집이 있거든요. 이쪽으로 오세요.”
홍세연을 따라 먹자골목을 걷자 일본식 술집이 나왔다.
“여기예요.”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이 예약된 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뭐 드실래요? 제가 대접하는 거니까 드시고 싶은 거로 고르세요.”
홍세연이 메뉴판을 양보하자 민도준이 별로 고민하지도 않고 회와 튀김 요리가 들어간 세트 메뉴를 시켰다.
그러다가 뒤늦게 세트 메뉴에 술이 포함된 걸 발견했다.
“어? 이거 술도 나오나 보네요.”
“아, 알고 시키신 거 아니셨어요?”
“네. 딱히 술 마실 생각은 없던지라…….”
“제가 취소해 달라고 말하고 올게요.”
일어서려는 홍세연을 민도준이 말렸다.
“됐어요. 오랜만에 마셔보죠, 뭐.”
“그런데 헌터도 술에 취하나요?”
홍세연의 물음에 민도준이 피식 웃었다.
일반인으로서 궁금했나 보다.
“그럼요. 헌터라고 술에 취하지 않는 건 아니죠. 알코올 해독 특성이 있다면 모를까.”
“그런 특성도 있어요?”
“글쎄요. 들어본 적은 없네요.”
모른 척했지만 사실 민도준이 가진 특성 중 하나가 알코올 해독이었다.
[특성 – 해독]-등급 : B
-설명 : 몸에 들어온 모든 독성 물질을 해독시킨다.
‘이젠 취하고 싶어도 취하지 못하게 된 건가?’
백사 길드원을 죽여서 얻은 특성 중 하나였다.
“아까는 고마웠어요, 도준 씨.”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고 보니 도준 씨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 많네요.”
“뭐 얼마나 많다고.”
“많죠. 과거에 저희 길드원도 구해주셨지, 덕분에 남성 혐오 이미지도 어느 정도 개선됐지……. 지금은 이민지 헌터 때문에 이미지가 다 깎여나갔지만요.”
국내의 유일한 S급 서포터로 백련 길드의 주축이나 다름없던 이민지.
그녀의 엽기적인 범행은 남성 혐오 이미지에서 벗어나 수면 위로 부상하던 길드를 다시금 밑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이민지 때문에 애꿎은 길드가 피해를 보는군.’
물론 민도준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사건이 드러날 일도 없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민지의 잘못이잖아?’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자신의 개입으로 벌어진 일이기에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하니까 언제 한 번 이미지 좀 다시 개선해줘야겠군,’
잠시 후 주문한 음식과 술이 나오고 두 사람이 잔을 부딪쳤다.
[해로운 성분이 감지되었습니다.] [자동으로 해독합니다.]사케를 마시던 민도준은 역시 취하기는 글렀다며 내심 고개를 저었고.
“으으, 써.”
홍세연은 술이 쓴지 잔을 놓자마자 안주를 집어 먹었다.
“길드장님.”
“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어떨까요.”
“아아. 네.”
홍세연이 뭔가를 준비했는지 가져온 지퍼백에서 파일철을 꺼냈다.
“이거 받으세요.”
“이게 뭐죠?”
“던전에 대해 정리한 파일이에요.”
파일철에는 던전의 위치와 그에 관련된 기사가 스크랩되어 있었다.
“전 세계에 흡혈귀의 밤 던전이 다섯 군데가 있는데요. 현재 도준 씨가 가려는 러시아는 그중에서도 사건·사고가 가장 자주 일어난 던전이에요.”
“사건·사고요?”
“네. 거기 스크랩한 기사를 보면 아시겠지만 다른 나라의 던전과 달리 오직 러시아에서만 매번 사망자가 나오고 있어요. 그것도 정기적으로 말이에요.”
기사에는 다른 나라의 던전과 비교한 통계 자료가 있었는데 유독 러시아의 던전만이 사망자 수가 높았다.
“10명이 들어가면 1명은 꼭 죽어 나오는군요.”
“네. 다른 나라는 전원 생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러시아는 그렇지 않아요. 나라는 달라도 똑같은 흡혈귀의 밤 던전인데 이상하죠?”
“확실히 그렇네요.”
매번 공략해서 던전 브레이크는 막고 있지만 사망자가 한 명씩은 꼭 나온다니.
누가 봐도 수상하기 짝이 없다.
“이유는 밝혀진 바 없지만 꺼림칙하지 않을 수 없죠. 그래서 웬만한 S급 헌터들은 흡혈귀의 밤에 들어가더라도 러시아 쪽은 가지 않아요. 지금 모인 파티도 결성되기까지는 일주일이 걸렸다더군요.”
“흠. 그래서 제가 수락하는 즉시 들어갈 수 있다고 한 거군요.”
“네. 대기자가 있는 다른 곳과 달리 러시아는 널널한 상태니까요.”
현재 전 세계의 S급 헌터는 500여 명.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지만 그렇다고 러시아 던전의 지원자가 늘어나지는 않았다.
S급 헌터도 사람이었기에 위험한 곳은 들어가고 싶지 않은 탓이다.
“러시아로선 난감하죠. 자기네 나라 던전이 헌터들 사이에서 위험하다고 소문나버렸으니.”
“흠.”
“러시아에선 이러다가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팀을 구하는데 이렇게 시간이 걸린다면 확실히 위험하겠네요.”
S급 던전의 브레이크 타임은 480시간, 즉 20일이다.
얼핏 보면 여유로워 보이지만 S급 10명을 모집하는데 일주일이 걸리는 러시아로선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기분일 거다.
“이런 위험한 곳인데도 도준 씨는 지원하실 의향이 있나요?”
“네. 하겠습니다.”
하루빨리 S급 던전 입장권을 써야 하는 민도준으로선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왜 유독 러시아만 사망자가 발생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생의 민도준이 처음 흡혈귀의 밤에 발을 들인 건 3,500레벨로 경력 7년 차가 될 때쯤.
‘그때 들어간 러시아 던전은 아무런 이상도 없었단 말이지.’
지금은 고작 경력 2년 차였으니 러시아가 당시엔 이런 상황이었는지도 몰랐다.
“알겠습니다. S급 던전의 보스도 홀로 격파한 도준 씨라면 걱정할 것은 없겠죠. 러시아 측에는 바로 문자 넣겠습니다. 그쪽은 지금 시각으론 초저녁일 테니까요.”
홍세연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된 겁니까?”
“네. 내일 오전에 준비되는 대로 바로 가시면 됩니다.”
“그쪽에선 제 레벨을 알고서 수락한 거 맞죠?”
“그럼요. 도준 씨가 현재 2,600레벨이라는 것도 알고 S급 던전 입장권으로 들어가려는 것도 아는걸요.”
“그런데도 흔쾌히 받아들이겠다는 게 좀 의아하네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니까요. 아, 그렇다고 헌터님이 찬밥이라는 소리는 절대 아니고요!”
자기가 말해 놓고 당황하는 홍세연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랑 있을 때는 이렇게 말을 잘하면서 아까 그 청년들 앞에선 왜 그랬대?’
얼핏 보면 허술해 보이다가도 던전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프로페셔널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길드장의 위치에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한잔하시죠.”
비즈니스를 끝낸 둘은 새벽 2시까지 먹고 마시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계산할게요. 도준…… 어맛.”
비틀거리는 홍세연을 붙잡은 민도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몇 잔 마셨다고 이렇게 취했어요?”
“헤헿…… 석 잔?”
홍세연의 얼굴은 세 병은 마신 것처럼 벌게져 있었다.
“못 마시면 못 마신다고 얘기하시지…….”
민도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기 계세요. 제가 계산하고 올게요.”
“아, 아앗! 안 돼요! 제, 제가 할 거예요!”
다급히 민도준을 막아선 홍세연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카운터까지 다가가 기어코 계산을 끝냈다.
“집이 어디예요? 데려다줄게요.”
“집이요? 흐으으음…… 이대로 헤어지긴…… 아쉬운데…… 헤헤.”
대답은 하지 않고 난데없이 헤벌쭉 웃는 그녀를 보며 민도준이 이마를 짚었다.
‘술 마셔서 그런 건지 원…….’
민도준이 다시 한번 말했다.
“집이 어디냐고요.”
“글쎄요. 헤헤.”
“장난치지 말고요.”
“도준 씨는 흐음. 집이 어디죠?”
“말하기 싫은데요.”
“그럼 어디로 가실 거죠?”
“글쎄요.”
“아! 도준 씨 근처에 길드 사무실 있죠? 저, 거기 가 보고 싶은데.”
“다음에 찾아오세요.”
“그러지 말고 가요. 네? 구경해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도준 씨이이…….”
“아니, 이 새벽에 외간 남자랑 어딜 가겠다는 겁니까? 무섭지도 않으세요?”
“네? 왜요? 왜 무서워해야 하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설명하길 포기한 민도준이 앞장섰다.
“갑시다. 가.”
“와! 수호 길드 구경하러 간다!”
들떠있는 그녀를 뒤로하고 민도준이 근처에 있는 자신의 길드로 걸음을 옮겼다.
“가, 같이 가요.”
비틀거리며 쫓아오는 걸 두고 볼 수 없던 민도준이 다시 한숨을 쉬며 그녀를 부축했다.
‘이거 사무실 소파에서 재우든가 해야지 원…….’
일단 재우고 아침에 술이 깨면 자신의 행태를 반성하진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길드 사무실로 데려갔는데.
‘응?’
웬 정장 차림의 외국인이 문 앞에 앉아있었다.
“Mr.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