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81)
특성흡수 헌터사냥꾼-181화(181/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181화
181. 흡혈귀의 밤
“하아아암.”
기지개를 켜며 눈을 뜬 홍세연이 주위를 둘러봤다.
졸린 눈으로 깜박이던 그녀의 동공이 순식간에 확장됐다.
“히익!”
낯선 환경에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가 이불을 걷어찼다.
‘여, 여기가 어디지?’
자신은 왜 낯선 곳에서 자는 걸까?
소파에서 벗어나 두리번거리던 그녀에게 민도준이 다가왔다.
“잘 잤어요?”
“헉! 도, 도준 씨?”
당황해하는 그녀를 보자 민도준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설마 기억 안 나는 거예요?”
“네? 뭐, 뭐가요? 그나저나 여긴 어디죠? 혹시 도준 씨 집…….”
“하, 참.”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화를 삭인 민도준이 어제의 일을 설명했다.
“네? 여기가 도준 씨 길드라고요?”
“예. 집에 가라니까 길드장님이 구경하고 싶다고 난리 치지 않았습니까.”
“제, 제가요?”
“…….”
“죄송해요. 일식집에서 술 마신 것까진 기억나는데 그 이후로는…….”
“길드장님은 술 마시면 안 되겠네요. 특히 남자랑은.”
홍세연이 고개를 푹 숙였다.
길드를 구경하고 싶다고 떼쓴 것도 모자라 술에 취해 자 버리다니.
그것도 외간 남자랑.
‘서, 설마 도준 씨가 이상한 짓을 한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하기 무섭게 민도준이 선수를 쳤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저는 이불만 덮어주고 길드장님 털끝만큼도 안 건드렸습니다. 이상한 오해하지 마세요.”
“아, 네…….”
그 말을 듣자 안심이 되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하는 건 왜일까?
‘내, 내가 여자로서의 매력이 없나?’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홍세연이 ‘아차’하고 정신을 차렸다.
“지, 지금이 몇 시죠?”
“오전 8시요.”
“아! 제가 미쳤나 봐요. 도준 씨한테 던전 소개해 놓고 티켓도 예약하지 않았다니…….”
“파일철에 적혀 있는 목적지로 가면 되나요?”
“네, 맞아요.”
“안 그래도 제가 예약했습니다. 모스크바행, 10시 비행기로요.”
“아…… 다행이네요.”
안도의 숨을 내쉬던 홍세연이 거듭 사과를 했다.
“신경 써주지 못해서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어디 가서 술만 마시지 마세요.”
“그, 그럴게요.”
벌게진 얼굴로 대답한 홍세연은 이내 민도준과 함께 사무실을 나왔다.
“바로 공항으로 가시는 거예요?”
“네.”
“짐은 그게 다예요?”
민도준의 손엔 여벌의 옷이 담긴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어차피 던전만 돌고 바로 올 테니 갈아입을 옷만 있으면 되죠, 뭐.”
“그건 그렇죠.”
고개를 끄덕인 홍세연이 택시를 기다리는 민도준에게 말했다.
“괜찮으면 같이 가도 될까요? 길 안내를 맡고 싶은데…….”
“길 잃을까 봐 걱정하시는 거라면 괜찮습니다. 러시아는 몇 번 가봤으니까요.”
“아, 정말요?”
“예. 러시아어도 어느 정도 합니다.”
어느 정도가 아니라 능숙하게 할 줄 알았지만 그것만으로도 홍세연은 놀라는 눈치였다.
“대,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정말 일식집 이후로 아무런 기억도 안 나세요?”
“네. 왜요? 혹시 무슨 일 있었나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녀의 순수한 눈망울을 보니 오버로드 길드에서 찾아온 것도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다.
‘알아봐야 좋을 것 없지.’
곧이어 콜택시가 도착하자 홍세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저한테 연락하시고요.”
“예. 걱정하지 마시고 집에 들어가세요. 아, 가기 전에 꼭 해장하시고요.”
“아, 네…….”
민도준이 택시를 타고 사라지자 홍세연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내 이미지 어떡하지?”
괜히 민도준 따라 술을 마셨다가 못 볼 꼴만 보여줘 버렸다.
“티켓도 미리 못 끊어주고. 괜히 주정 부려서 민폐만 끼치다니…….”
부끄러운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더욱 컸다.
“이걸로는 보답이 안 돼. 다음에 제대로 된 던전을 소개해 줘야겠어.”
다시 한번 민도준을 볼 생각에 그녀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 * *
10시에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러시아로 출발한 민도준이 시트에 몸을 맡겼다.
‘잠이나 더 자두자.’
장장 9시간 동안을 비행기 안에서만 있어야 했으니 지루하지 않으려면 잠이라도 자둬야 했다.
자는 중간에 기내식으로 푸아그라가 나오는 코스 요리를 먹고 다시 잠든 민도준은 9시간에 걸쳐 모스크바에서 가장 크다는 도모데도보 국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9시간 버티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만.’
체력적으론 문제가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여간 힘들지 않을 수 없었다.
‘차라리 유령 늑대를 타고 올 걸 그랬나?’
시속 3,000㎞인 유령 늑대를 탄다면 한국에서 모스크바까지 2시간 만에 갈 수 있을 터.
‘아니야. 몰래 가는 것도 아니고 공식적으로 해외 던전을 공략하러 가는 거니 내 발자취는 남겨놔야지.’
민도준이 입국 수속을 거치고 공항을 나왔다.
‘9시간이나 걸렸는데 여기는 아직 대낮이네.’
시차가 있다 보니 저녁 7시인 한국과 달리 모스크바는 아직 오후 1시밖에 안 됐다.
근처에 있는 공항 택시를 잡아탄 민도준이 유창한 러시아어로 말했다.
“체호프로 가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손님.”
여행객임을 알고 가격을 후려치려던 택시 기사는 현지인 못지않은 발음에 생각을 접어야 했다.
‘못해도 이 동네에서 3년은 살던 사람이다.’
택시 기사가 오해하든 말든 창밖을 보며 풍경을 감상하던 민도준은 1시간에 걸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긴가? 집결지가.’
민도준이 다가가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9명의 헌터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그중 덩치가 제일 큰 외국인이 반색하는 얼굴로 민도준에게 접근했다.
“민도준 헌터님 되십니까?”
“예.”
“반갑습니다. 이번 레이드의 리더를 맡은 안토니 길버트라고 합니다.”
영어로 말하고 있지만 민도준은 상대가 영국인임을 눈치챘다.
발음도 영국식이지만 무엇보다 약점 간파가 보였으니까.
‘레벨은 3,552. 탱커로군.’
“제 레벨은 3,552고요. 파티에서 중간 정도의 레벨이지만 탱커로서 리더를 맡게 되었습니다.”
보통 레벨이 높은 사람이 리더를 맡기 마련이지만 탱커가 존재한다면 탱커에게 일임된다.
아무래도 리더로 활약하기에는 선봉에 서는 탱커가 제격일 테니까.
“아, 혹시 영어를 못하시나요?”
“아니요. 할 줄 압니다.”
“오, 다행이네요. 동양인을 파티원으로 받으면 항상 대화가 통하지 않아 문제였는데 그럴 염려가 없어서 좋네요. 하하핫!”
민도준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파티원들을 쳐다봤다.
‘동양인은 나뿐인가?’
민도준이 다시 길버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에게는 줄곧 궁금한 점이 있었다.
“길버트, 당신은 제 레벨이 낮은 걸 알고도 파티원으로 받아주셨죠. 이유가 뭡니까?”
홍세연이 말하기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 그런 거라고 했지만 그것만으론 충분치 못하다.
“하하, 이유요? 제가 당신의 팬이라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예?”
“너튜브 영상을 봤습니다. 홍대 거리에서 던전 브레이크를 막는 영상 말이죠. 정말 대단한 영상이었죠.”
“아…….”
자신의 무력을 보고 반했다는 얘긴가?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다들 헌터님의 무력을 보고 감탄했겠지만 저는 다른 부분에서 놀랐습니다.”
“어떤……?”
“100마리에 가까운 괴수들이 전부 헌터님을 바라보더군요. 마치 광역 도발에 걸린 것처럼 눈빛이 붉어져서 말이죠.”
유령 늑대의 하울링을 말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탱커로서 부럽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저라면 기껏해야 30마리 정도만 시선을 끌었겠죠.”
길버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광역 도발 스킬. 가지고 계십니까?”
민도준이 고개를 저었다.
“당시엔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갖고 있다고 하면 써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하는 거짓말이었다.
‘있다고 하면 왠지 귀찮은 일을 떠맡길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지.’
아니나 다를까.
길버트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아쉽게 됐군요. 제가 어그로를 놓치면 나머지를 민도준 씨께서 끌어주길 바랐는데…….”
‘이 자식. 나한테 서브 탱커를 시킬 작정이었군.’
도발 스킬이 없다고 하길 다행이었다.
까딱하면 유령 늑대를 보여줄 뻔하지 않았는가?
‘뭐 이런저런 핑계로 거부했겠지만.’
어쨌거나 도발 스킬이 없다는 말에 길버트가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지요. 헌터님은 딜러로서 최선을 다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함께할 멤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민도준은 길버트를 따라 파티원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인사 나누시죠. 이쪽은 이번에 새로 합류한 민도준 헌터. 이쪽은…….”
길버트가 한 명씩 일일이 소개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약점 간파로 필요한 정보가 다 보였으니까.
‘리더를 포함한 9명 전원의 정보가 보인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약점 간파로 보이는 걸 보니 파티원 중에 민도준보다 강한 사람은 없는 듯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인도. 참 다양한 나라에서 모였군.’
웃긴 건 이들 9명 중에 정작 러시아인은 없다는 사실이다.
‘러시아 헌터들도 포기한 던전이라 이건가?’
정원인 10명을 꽉 채워 들어가면 무조건 1명이 사망해서 나온다는 무시무시한 던전이었으니 오죽할까?
‘어쨌거나 눈빛들을 보니 날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모양이야.’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리더님. 이 일본인이 그 힐러 대신 왔다는 헌터입니까?”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에요.”
“어쨌거나. 힐러는 아닌 거죠?”
“예. 딜러 역할로 오셨습니다.”
“딜러라니……. 이러다 남는 경험치도 없겠어요.”
파티에서 탱커와 힐러가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한 명만 있어도 생존율이 월등히 올라가는 탓에 위험한 고레벨 던전에선 필수적으로 채용해야 한다.
그런 마당에 힐러가 들어왔어야 할 자리를 경험치만 차지하는 딜러가 들어왔다?
‘당연히 눈엣가시처럼 보일 수밖에.’
“이봐요. 정말로 레벨이 2,600이에요?”
누군가의 질문에 민도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맙소사……. 내가 이 레벨에 A급이랑 던전을 돌게 될 줄이야.”
“대체 S급 던전 입장권이란 아이템은 왜 있어서…….”
“차라리 힐러면 몰라. 1,000레벨이나 낮은 딜러라니…….”
파티원들이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민도준을 쳐다봤다.
새로 합류하게 될 헌터가 2,600레벨이고 입장권을 써서 던전에 들어온다는 건 사전에 공지 받은 사실.
하지만 그 농담 같던 공지가 사실로 확인되자 입 밖으로 불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민심을 진정시키는 건 리더의 몫이었다.
“자자, 여러분. 헌터님 무안하게 뭐라 하지 마세요. 여기 민도준 헌터님이 비록 레벨은 낮지만 S급 보스도 솔로킬하고 A급 던전 브레이크도 막은 유명한 마검사이십니다. 실력만큼은 검증된 분이라고요.”
“S급 보스를 솔로킬해? 거짓말이겠지…….”
“A급 던전 브레이크를 막는 건 솔직히 쉽잖아?”
“마검사라고? 직업까지 문제구만?”
자신의 변론에도 수군거림이 멈추지 않자 길버트가 당황했다.
반면 당사자인 민도준은 태평한 얼굴이었다.
‘아직 내 인지도가 전 세계까진 퍼지지 않았나 보군.’
다른 걸 다 떠나서 무한의 탑 1위를 찍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런 잡음도 줄어들 테지만 아직 거기까진 모르는 모양이었다.
‘뭐 조만간 알려지겠지.’
사실 민도준으로선 늦게 유명해질수록 더 좋았다.
자신의 행동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테니까.
“자자. 기왕 파티원이 된 거 좋게좋게 생각하고 이만 들어갑시다.”
길버트를 필두로 헌터들이 장비를 착용한 후 던전 앞에 섰다.
[체호프 흡혈귀의 밤 던전]-난이도 : S
-인원 제한 : 최소 3명, 최대 10명
-입장 제한 : 레벨 3,000 이상
-공략 목표 : 제한 시간 내 생존
-실패 페널티 : 없음
-제한 시간 : 48시간
-던전 브레이크까지 남은 시간 : 288시간 31분 21초
“갑시다.”
잠시 후 아홉 명의 S급 헌터와 한 명의 A급 헌터가 포탈 안으로 사라졌다.
* * *
어둠이 자리 잡은 숲속.
그곳에 열 명의 헌터들이 나타났다.
“여긴 언제 들어와도 어둡네.”
몇 번 들어온 경험이 있던 헌터 하나가 으스대며 민도준을 쳐다봤다.
“그쪽은 처음이죠?”
“예.”
“아무렴. 당연히 처음이겠지.”
S급 던전 입장권을 써서 들어왔으니 처음일 수밖에 없었다.
실상은 달랐지만.
‘회귀 전에 수십 번도 공략해 본 나한테 으스대는 꼴이라니…… 우습군.’
회귀자라는 티를 낼 순 없어 속으로만 비웃는 그때.
‘……!’
살기가 감지됐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향한 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