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39)
특성흡수 헌터사냥꾼-239화(239/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239화
239. 짝사랑
한때 신경민이 물은 적이 있다.
-길드장님은 정혜원 헌터의 어디가 좋으세요?
노골적인 질문이었지만 강혁수는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듯 주저 없이 대답했다.
-예쁘잖아. 그리고 강하잖아.
예쁘고 강하다.
좋아하는 이유로는 그거면 됐다.
강혁수의 이상형에도 부합했다.
‘굳이 둘 중에 고르라면 예쁜 여자보단 강한 여자가 더 좋지만.’
특히 강혁수 자신보다 강하면 더욱 좋다.
하지만 랭킹 3위인 그보다 강한 여성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강혁수가 정혜원에게 목을 매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흔치 않은 최상위 여성 랭커.
정혜원은 강혁수의 짝사랑이었다.
‘첫눈에 반했지.’
그녀를 처음 본 건 2년 전이었다.
우연히 A급 던전에서 같이 파티를 했었는데 무투가라는 흔치 않은 직업으로 괴수들을 때려잡는 모습을 보고 단번에 홀려버렸다.
‘그때 이후로 쭉 작업을 걸었지.’
친하게 지내자는 명목으로 번호를 딴 뒤 귀찮아할 정도로 문자를 보냈다.
[혜원 씨, 점심 안 드셨으면 같이 식사나 하실래요? 제가 잘 아는 갈치구이 집이 있는데…….] [혜원 씨, 어반져스 보셨어요? 마지막 시리즈라는데 안 보셨으면 오늘 만날래요?] [혜원 씨, 저희 엠페러 길드에 가입하실래요? 지금 있는 길드보다 2배는 좋은 조건으로 계약해 드릴게요.] [혜원 씨, 보고 싶은데 한 번만 만나주시면 안 돼요? 이러다 얼굴 까먹겠어요.]물론 사적으로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의 저돌적인 구애가 부담스러웠는지 매번 귀찮다는 듯 피하기만 했다.
얼굴을 보는 건 우연히 같은 던전에 걸렸을 때뿐이었다.
그런 날은 강혁수로선 계 탄 날이나 다름없었다.
정혜원에겐 재수 옴 붙은 날일 수 있었겠지만.
-길드장님. 인제 그만 포기하세요. 이만큼 들이댔는데도 안 넘어오는 걸 보면 정혜원 헌터도 관심 없는 거라고요.
신경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혁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열 번 찍어 안 넘어오는 나무가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조건에 맞는 강하고 예쁜 여자가 없었다는 것도 한몫했지만.
‘최고의 파티를 구성하겠다는 꿈을 이루려면 그녀가 필요해.’
강혁수는 강한 헌터와의 인맥을 중요시했다.
자신의 꿈인 최고의 파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파티를 만들 거야. 어떤 괴수든지 간에 모조리 박멸할 수 있는 강력한 파티를.’
그리하여 돈을 벌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괴수들에 대한 원한이 남다른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강함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것이 정혜원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질 줄은 그조차 몰랐지만.
‘강한 그녀라면 내 평생의 배필로 딱이야.’
머릿속으론 이미 결혼해서 애까지 낳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얼굴 한번 보는 것조차 힘든, 일방적인 짝사랑.
그런데 그런 짝사랑이.
‘바로 옆에 있다니…….’
같은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 것이 아닌가?
‘꿈이라도 꾸는 건가?’
이렇게 가까이서 정혜원의 얼굴을 마주하는 건 난생처음이다.
꿈이라고 착각하기에 충분할 상황.
두근두근-
좋아하는 사람과 한 침대에 있다니.
심장이 두근거린다.
‘꿈이라면 깨지 말기를.’
악몽을 꾸는지 찌푸린 얼굴조차 예쁘기 그지없다.
그렇게 한없이 바라보고만 있는데.
벌컥-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보는 동양인 남자였다.
“미안. 내가 좋은 시간을 방해했나?”
중국어로 말한 터라 강혁수는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저놈은……!’
남자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날 공격했던 그놈이다!’
귀갓길에 누군가의 기습으로 정신을 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어렴풋이 습격자의 얼굴을 봤었는데 그놈이 분명했다.
츠으으읏-
강혁수가 즉시 헌터 장비를 착용했다.
한손검과 방패마저 착용하려는 그때.
휘리리릭-
허공에서 나타난 검은 밧줄이 강혁수의 양손을 봉쇄했다.
‘크윽, 이러면 무기를 소환할 수가…….’
손뿐만이 아니라 다리까지 묶여버렸다.
순식간에 사지가 결박당한 상황.
그때였다.
“흐흐, 그 곰 같은 몸으로도 내 어둠의 구속은 끊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별안간 한쪽 구석에서 로브를 입은 중년인이 스르륵 나타났다.
애당초 투명화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모양.
“크윽……!”
속박을 풀기 위해 안간힘을 써봤지만 중년인이 쓴 어둠의 구속을 풀기엔 강혁수의 근력이 많이 모자랐다.
“큭큭, 너 따위가 감히 나 같은 일류 흑마법사의 마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구속을 힘으로 풀기 위해선 시전자의 마력보다 근력이 높아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강혁수의 근력은 흑마법사의 마력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꼼짝도 못 하는 걸 보니 과연 대륙 제일의 흑마법사라는 명성이 허언은 아닌가 보군.”
“흐흐, 말했지 않습니까. 왕년에 사람 여럿 묶어봐서 속박 스킬만큼은 자신 있다고.”
“그래도 한국 랭킹 3위인데 어떻게든 풀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봤자 4,000레벨도 안 되는 버러지입니다. 쥐꼬리만 한 나라의 랭커 따위야 저 혼자서도 다 발라버릴 수 있습니다.”
“하긴 4,000레벨만 10명이 넘는 우리 중국과 한국을 비교할 순 없겠지.”
중국어로 대화해서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습격자와 흑마법사 둘 다 중국인 헌터라는 점이었다.
“자네 한국말도 할 줄 안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그럼 통역 좀 해줘라.”
습격자 헌터의 말을 흑마법사가 통역했다.
“반갑네. 한국의 강혁수 헌터. 보아하니 내 얼굴을 기억하는 모양이군.”
“이 X발새끼……. 날 납치한 게 네놈이냐?”
“저런 버러지 새끼가 감히 진위정 님한테 욕을!”
흑마법사가 발끈했지만 진위정이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난 괜찮으니 통역해. 한 글자도 빠트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어쩔 수 없다는 듯 흑마법사가 통역하자 진위정이 허허 웃었다.
“그래. 욕 나올 만하지. 길 가다가 얻어맞고 기절했는데 눈 떠보니 처음 보는 방에 갇혀 있다면 나라도 욕이 나왔을 거야.”
“여긴 어디냐? 혜원 씨는 왜 여기 있어?”
“혜원? 아, 옆에 있는 여자 말인가? 저 여자도 랭킹 4위였지?”
“묻는 말에 대답해, X발놈아!”
“원, 성질 하고는. 그러다 옆에 있는 여자 깨겠다.”
“괜찮을 겁니다, 진위정 님. 슬립 마법에 소음 차단 마법까지 걸었으니 흔들어 깨우지 않는 이상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말해, 이 X새끼야!”
강혁수가 소리 지르며 도발했지만 진위정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밧줄에 묶인 강혁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소리 지르는 것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좋아하는 여자를 옆에 갖다 놓아도 저런 불손한 태도라니. 쯧쯧. 헛수고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
자신이 정혜원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자 강혁수의 눈이 커졌다.
“너 그걸 어떻게…….”
“내가 아는 게 그뿐인 줄 아나? 네가 최근에 저 여자의 길드에 찾아가고 집까지 스토킹한 것도 알고 있지.”
“…….”
“그렇게 놀란 눈으로 볼 필욘 없다. 몇 주간 미행하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일이니까.”
“날 미행했다고?”
“그래. 네가 정혜원을 스토킹하는 것처럼 말이지. 설마 스토킹이 범죄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아, 아니야. 난 그저 집이 어딘지만 알아보려고…….”
“집을 알아내서 무엇을 할 생각이었지? 밤중에 찾아가서 성폭행이라도 할 생각이었나?”
“뭐? 그런 생각은 추호도…….”
“걱정하지 말게. 그런 수고를 들일 필요 없이 모든 준비를 끝내놨으니까. 오늘은 자네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날이 될 거라고 내 장담하지.”
“그게 무슨 소리…….”
더 이상 할 말은 없다는 듯 진위정이 흑마법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나머지는 너한테 맡기겠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는 들어서 알고 있겠지?”
“걱정 마시고 들어가십시오. 진위백 님께도 안부 전해주시고요.”
“오냐.”
그 말을 끝으로 진위정이 사라졌다.
지켜보던 강혁수의 두 눈이 함지막하게 떠졌다.
‘이 무슨……!’
은신이나 투명화를 쓴 것은 아니었다.
스르륵 하고 사라지는 특유의 모션이 없었기 때문.
반면 지금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그야말로 귀신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진위정이 사라지자 방안에는 흑마법사와 강혁수, 정혜원만이 남았다.
“무슨 스킬을 썼길래 저렇게 깔끔하게 사라질 수 있는 거지?”
강혁수의 물음에 흑마법사가 피식 웃었다.
“텔레포트 처음 보는구나?”
“텔레포트?”
“쌍둥이들이 쓸 수 있는 스킬인데…… 설명하기 귀찮네. 하여간 그런 게 있어.”
“순간 이동을 말하는 건가?”
“그렇지. 널 여기로 데려온 것도 진위정 님이야. 저기 정혜원이란 여자는 쌍둥이 형인 진위백 님이 데려온 거지만.”
“날 왜 데려왔지? 돈이 필요한가?”
“돈? 크크큭…….”
길드를 운영하는 강혁수의 입장에서 내세울 만한 건 돈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물은 것이었건만 상대는 웃기만 한다.
“왜 웃지?”
“너 내 레벨이 몇인지 알아? 4,022야. 중국에서도 랭킹 10위 안에 드는 대륙 제일의 흑마법사라고. 그런 내가 돈이 아쉬워서 이 짓을 하고 있겠냐?”
“그럼 이런 짓을 하는 이유가 뭐지?”
흑마법사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재밌으니까.”
“…….”
“어렸을 때 곤충을 가지고 논 적 있나? 팔다리를 뜯고 발버둥 치는 모습을 관찰하면 참 재미있지. 그것처럼 사람을 납치하고 고문하고 죽이는 건 언제나 그렇듯 흥분된단 말이지. 그래서 끊을 수가 없어. 질리지 않아.”
‘미친 새끼.’
강혁수는 예감했다.
여기서 살아나가기는 틀렸다고.
당장 흑마법사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만 봐도 답이 나왔다.
‘내 상대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손가락에 꼽는 그였지만 중국 랭킹 10위에 비할 바는 못됐다.
‘레벨만 높은 게 아니야. 전투력도 나보다 우위에 있어.’
투명화를 간파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미 결론은 났다.
“날 죽일 셈이냐?”
“뭐? 풉!”
진지하게 물었지만 흑마법사는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은 듯한 반응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나. 납치 후 고문하고 죽이는 걸 즐긴다고.”
“여기가 고문하는 장소로 보여? 침대도 있는 이런 아늑한 방안이?”
확실히 그랬다.
고문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다.
“그럼 뭐냐? 나랑 혜원 씨를 왜 납치한 거지?”
“진위정 님이 한 말 못 들었냐? 오늘 네 인생 최고의 날이 될 거라고.”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기도 전에 흑마법사가 말했다.
“옆에 있는 여자를 강간해. 안 그러면 이 자리에서 둘 다 죽여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