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4)
특성흡수 헌터사냥꾼-24화(24/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24화
24. VR 시합
“재밌겠네. 우리 길드의 유망주와 역대급 신인의 시합이라니!”
길드장 최석만이 씨익 웃었다.
기대된다는 표정.
반면 현수아는 민도준을 걱정하고 있었다.
‘저러다 지면 어쩌시려고…….’
정태식은 길드 내에서 VR 훈련을 잘하기로 유명했으니까.
하지만 민도준은 걱정하지 않았다.
‘고작 애들 놀음 따위.’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상황에선 무조건 이겨야 했다.
정태식을 지금보다 더 열 받게 만들려면.
“민도준 씨, VR 훈련은 해 보셨나요?”
“아니요.”
“하긴, 길드에만 구비되어 있으니.”
최석만은 민도준의 말을 믿었지만 사실은 거짓말이다.
회귀 전에 해 본 경험이 있었다.
‘패턴이 너무 단순해서 금방 흥미를 잃었지만.’
그래서일까.
“수아, 네가 헌터님한테 사용법 좀 알려드려.”
“네!”
현수아가 헬멧 착용법부터 일일이 설명하는데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어떻게 하는지 아셨죠? 도준 씨?”
“네. 쉽네요.”
“흥.”
정태식이 그런 민도준을 속으로 비웃었다.
‘언제까지 오만할 수 있나 보자. 콧대를 아주 눌러버릴 테니.’
두 사람이 헬멧을 쓰고 준비를 완료하자 최석만이 말했다.
“자, 다들 준비됐습니까? 각자 기록을 재서 가장 빨리 괴수 20마리를 잡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괴수는 뭐로 할까?”
“타란튤라로 하죠.”
정태식의 대답에 현수아가 눈을 크게 떴다.
“난이도를 너무 높게 잡은 거 아냐?”
“이 정도는 돼야지.”
“이러면 불공평하지! 민도준 씨는 오늘 처음이신데!”
“내가 시합하자고 했어? 그리고 애들 장난 같다잖아. 이 정돈 눈 감고도 깨겠지.”
정태식이 이죽거렸지만 민도준은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원하는 대로 하세요. 어차피 유흥거리일 뿐인데요, 뭘.”
물러서지 않는 그를 정태식이 한껏 비웃었다.
‘크크크, 멍청한 새끼.’
타란튤라는 500레벨쯤에 잡을 수 있는 C급 괴수.
그중에서도 상대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한 괴수다.
450레벨인 정태식은 VR 훈련을 항상 타란튤라로 설정한다.
가장 자신 있는 괴수인 것이다.
‘너 따위가 하루에 수십 번도 훈련하는 나한테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자신만만해하는 정태식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냥 시합하면 재미없으니 이렇게 하죠. 진 사람이 이긴 사람한테 형님이라 부르기. 어때요?”
“그럽시다.”
‘흐흐, 병신.’
넙죽 수락하는 민도준이 우스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끝나고 나면 존나게 갈궈 주마.’
결과가 나오고 비웃어도 늦지 않으니까.
최석만이 말했다.
“룰은 간단합니다. 기록을 재서 타란튤라 20마리를 더 빨리 잡은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기본 설정에 따라 무기는 도검이고 신체 스펙은 똑같이 500레벨로 설정. 스킬은 당연히 사용 금지입니다. 자, 들어가서 준비!”
두 사람이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시작!”
버튼을 작동시키자 순식간에 환경이 바뀌었다.
어두컴컴한 동굴 속.
주변 360도를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촉감은 없지만 화면만큼은 실제 던전에 들어온 느낌.
손에는 VR 전용 목검을 쥐고 있었는데 화면에는 실제 도검으로 나타났다.
‘평소 하던 대로만 하면 돼.’
정태식이 침착하게 도검을 세우고 기다렸다.
잠시 후 나타난 타란튤라.
“하아압!”
게임이 시작됐다.
* * *
최석만과 현수아가 모니터로 두 사람을 관전했다.
“수아, 넌 누가 이길 거 같아?”
“아무래도 태식이가 유리하겠지만…… 그래도 민도준 씨가 이길 것 같아요.”
“이유는?”
“그냥 느낌이 그래요.”
“느낌으로 판단해선 안 되지. 현실을 봐야지.”
최석만이 혀를 차더니 확신하듯 말했다.
“난 태식이가 100 퍼 이길 거라고 본다. 민도준 헌터는 사람 잘못 골랐어.”
“그래도 민도준 씨는 기갑 맨티스도 홀로 잡으셨는데…….”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VR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이 하루에 수십 번씩 훈련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
“태식이도 우리 길드 유망주야. 기갑 맨티스 따윈 혼자 잡을 수 있다고.”
“근데 민도준 씨는 레벨이 낮았잖…….”
“난 솔직히 태식이가 이겼으면 좋겠어.”
최석만이 약간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길드의 자존심인 데다 무엇보다 민도준 헌터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거든. 콧대를 좀 눌러줬음 좋겠어.”
그러면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VR 훈련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데 뭘 안다고 말이야. 쯧, 내가 큰돈 주고 설치한 건데 돈 낭비했다는 거야, 뭐야?”
“다들 여기서 뭐 하세요?”
그때 매니저 배성훈이 둘 사이에 나타났다.
“시합 구경한다.”
“시합이요?”
길드장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배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길드 유망주와 역대급 헌터의 시합이라. 재밌겠네요.”
“오빠는 누가 이길 거 같아? 길드장님은 태식이가 이길 것 같다는데.”
“나도 태식이한테 한 표.”
“왜?”
“실전에서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VR에선 기본 능력이 똑같거든. 같은 조건이라면 당연히 많이 해 본 태식이가 유리하겠지.”
“하하! 그렇지? 그런데 네 여친은 민도준 헌터가 이길 거라더라. VR이라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초짜인데 말이야.”
배성훈이 이해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현수아를 쳐다봤다.
“정말 민도준 헌터가 이길 거 같아?”
“그냥 느낌이 그렇다구.”
“오빠가 웬만하면 편들어주고 싶지만 이건 결과가 너무도 분명해서 뭐라…….”
그때였다.
부스가 열리더니 누군가 나왔다.
민도준이었다.
그가 헬멧을 벗자 최석만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왜 벌써 나오셨어요? 20마리는 잡고 나오셔야…….”
“다 잡았습니다만.”
그 말에 뒤늦게 모니터를 주시하니 결과가 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20마리를 3분 46초 만에?”
최석만은 물론이고 배성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모니터만 쳐다봤다.
“정태식 씨는 아직이에요?”
민도준이 부스 앞의 모니터를 쳐다봤다.
이제 막 4마리를 잡았다는 알림이 떠올랐다.
* * *
“흐아압!”
마지막 남은 타란튤라의 공격을 피하며 정태식이 검을 내질렀다.
키에에엑!
[20마리 처치 성공!] [처치 시간 17분 21초] [사용자 정태식 님이 신기록을 달성하였습니다!]정태식의 이전 기록은 18분 12초.
무려 1분 가까이 단축했다.
“좋았어!”
아마 길드 내에서도 최고 기록이 아닐까 싶다.
“후욱, 후욱.”
거친 숨을 내쉬며 정태식이 부스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의 표정은 어쩐지 멍해 있었다.
“봤어요? 제 기록?”
“어? 어어…….”
얼떨떨한 길드장의 반응에 정태식의 기분이 한껏 올라갔다.
“그렇게 놀랐어요? 고작 1분 단축한 건데 놀랄 것까지야. 이 정도는 껌…….”
별거 아니라는 듯 거들먹거리던 정태식이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민도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뭐야? 그쪽은 왜 벌써 나왔어요?”
“보면 몰라요? 깼으니까 나왔죠.”
그러면서 민도준이 턱짓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정태식이 뒤늦게 민도준의 결과를 확인했다.
“뭐, 뭐야? 3분 46초?”
말도 안 되는 결과에 그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기다리느라 지겨워 죽는 줄 알았네.”
민도준이 하품하는 시늉을 하자 정태식이 휙 돌아봤다.
그러곤 죽일 듯이 눈을 부라렸다.
“X발, 당신 VR 처음 아니지.”
“뭔 발? 이 사람이 미쳤나.”
“야, 정태식!”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길드장이 나섰다.
“왜 갑자기 욕을 하고 그래?”
“하지만 길드장님!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 3분대라니. 뭔가 오류가 난 게 분명하다고요!”
“오류는 무슨! 네가 진 거야. 그냥 인정해!”
“저 새끼가 분명 무슨 수작을 걸었을…….”
“저 새끼라니. 이제부터 형님이라고 불러야지.”
그리 말한 민도준이 다시 한번 요구했다.
“약속은 약속이잖아? 형님이라고 해 봐.”
“뭐? 이 새ㄲ…….”
“어허! 어딜 형님한테.”
“…….”
부글거리는 심정으로 노려보던 정태식이 마지못해 중얼거렸다.
“형…… 님.”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형님.”
“그래. 흐흐흐.”
재미있다는 듯 대놓고 비웃던 민도준이 돈 가방을 챙기며 최석만에게 말했다.
“길드장님.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가시게요?”
“네. 재미있게 잘 놀다 갑니다.”
“저어, 계약은……?”
“거절하겠습니다. 시설은 괜찮은데 이런 애들 장난 같은 걸 훈련이라고 하는 게 저랑 안 맞네요. 그리고.”
민도준이 정태식을 쳐다보며 말했다.
“커리큘럼에 인성 교육도 포함시켜야겠어요. 자기 자신을 주체 못 하고 대뜸 욕질하는 헌터가 유망주라니, 어이가 없네요.”
“…….”
정태식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럼 이만.”
“허, 헌터님!”
밖으로 나가는 민도준을 뒤따라가던 최석만이 잠시 후 혼자서 돌아왔다.
“야, 정태식!!!”
“…….”
“너 때문에 X발! 민도준 헌터도 놓치고 길드 이미지도 망가지고. 이게 뭐야, 이 새끼야!!!”
“아, X발.”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정태식이 입술을 깨물며 화를 삭였다.
“후우…… 아닙니다.”
“하아, 이놈 이제야 성깔 나오는구만? 내가 그동안 이런 놈을 밀어줬다니……. 어휴, 진짜 그분 말대로 인성 교육이라도 해야 하나? 쯧.”
그렇게 온갖 핀잔을 들은 정태식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 X새끼 이름이 민도준이었지?’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이가 빠득 갈렸다.
근래에 이렇게까지 분노를 느낀 적이 없었다.
‘X발, 내가 기필코 그 새끼 모가지 따버린다.’
살의를 느낄 정도의 감정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 * *
그날 저녁.
정태식이 심각한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냐?
“형님, 저 태식입니다.”
-알아, 새끼야. 왜 전화했냐고.
“제가 형님한테 전화할 일이 그거 말고 뭐가 있겠습니까?”
-또 한탕 하자고?
“예. 꼭 좀 죽이고 싶은 새끼가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뒷일은? 감당할 수 있겠냐?
“그 새끼 뒤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길드도 없는 새끼예요.”
-그래?
잠시 통화 너머에서 침묵이 흐르고.
-알았다. 도와주마.
“감사합니다, 형님.”
계획이 성사됐다.
-대신 조건은 저번이랑 동일하다. 내가 7할, 네가 3할.
“알겠습니다. 저는 그 새끼한테 복수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자세한 건 이따 얘기하자. 끊는다.
통화를 끝낸 정태식이 씨익 웃었다.
‘흐흐흐, 넌 뒤졌어.’
벌써부터 살려달라고 비는 놈의 얼굴이 눈앞에 선했다.
‘그러게 날 건들지 말았어야지.’
잠시 후 정태식이 훈련 중이던 현수아를 찾아갔다.
“무슨 일이야?”
현수아가 경계 어린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오전에 있었던 일로 그의 진정한 인성을 봐버린 탓이다.
‘X발, 이미지 다 깎였네.’
속으로 욕을 삼킨 정태식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 별건 아니고. 너 그 민도준이라는 사람이랑 친해? 아는 사이 같던데.”
“그건 왜 물어봐?”
“아니, 내가 좀 무례하게 굴었잖아. 욕도 좀 하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려고 하는데 연락처를 모르겠네?”
“나도 몰라. 안다고 해도 알려줄 마음도 없고.”
정태식의 눈썹이 꿈틀댔다.
‘이 X발련이!’
같은 길드원에게도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속이 부글거렸지만 참았다.
“그래? 알았어.”
쿨하게 돌아선 그가 걸음을 옮기며 이를 갈았다.
‘민도준 그 새끼를 처리하고 나면 네년 차례다!’
정태식은 다른 사람을 찾았다.
매니저 배성훈이었다.
“형, 혹시 민도준 씨 연락처 아세요?”
“응? 알지. 왜?”
“미안하다고 사과하려고요. 저 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응. 기다려 봐.”
배성훈에게서 연락처를 얻는 건 쉬웠다.
“고마워요, 형.”
집으로 돌아온 정태식이 민도준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플래티넘 길드의 정태식이라고 합니다. 오전에 있었던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말이 헛나왔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사과의 의미로 경험치 쩔 좀 해 드릴까 하는데 시간 괜찮으신지요?]문자를 본 민도준이 피식 웃었다.
‘대뜸 이렇게 보낸다고? 어이없군.’
보통 사람 같으면 경험치 쩔이고 뭐고 경계부터 하겠지만.
[알겠습니다. 날짜 잡으시죠.]민도준은 고민할 것도 없이 냉큼 받아먹었다.
‘계획대로군.’
정태식이 이렇게 나오기를 바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