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6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267화(267/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267화
267. 마음의 정리
민도준은 신과 약속했다.
복수를 끝내면 자살하기로.
‘내가 왜 그랬지?’
자신이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약속이었다.
[자, 얼른 자살해야지? 약속했잖느냐?]“……꼭 그래야만 합니까?”
[이제 와서 말 바꿀 셈이냐?]“이유가 궁금해서 그럽니다.”
[내가 회귀 전에 말하지 않았나? 아담을 죽이고 복수를 끝낸 순간, 너는 괴물이 되어 있을 거라고.]사실이었다.
수많은 헌터들을 죽여서 특성을 먹어치운 민도준은 적의 처지에선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마지막 테스트에서 그림자 헌터가 입은 대미지를 보니 장난 아니더군. 지금 전투력이 5천만을 넘었지?]“그렇습니다.”
[지금 세계 랭킹 2위의 전투력이 몇인 줄 아나?]‘신경민의 전투력이라면…….’
[500만도 안 돼.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차이지. 게다가 성장이 끝난 것도 아니야. 특성을 흡수하면 그야말로 무한대로 강해질 수 있으니.]“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겠습니다.”
[네 말을 어떻게 믿지? 당장 네 배필이 위험에 처하면 또다시 복수라는 명목으로 죽일 것이 아닌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민도준, 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위험하다. 밸런스 파괴의 주범이야.]“그래서 사전에 그런 약속을…….”
[인류를 구해준 것은 고맙지만 약속은 약속이잖느냐? 원하는 대로 복수도 끝냈으니 이제 그만 명계로 올라오거라.]“…….”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무거운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는 모습이 마치 직원을 갈구는 상사 같았다.
‘상사한테 찍히면 회사 생활하기 힘들지.’
더구나 눈앞의 신은 상사를 뛰어넘는 사장.
민도준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쉬운 일일 리가 없다.
특히 지금처럼 평화를 되찾고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상태에선 더더욱.
‘예린이를 살리겠다는 목적은 달성했으니 미련 없이 자살할 수 있어야 하건만…….’
막상 행복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끝내야 한다 생각하니 미련이 남았다.
‘과연 예린이는 나 없이도 행복하게 살까?’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 행복을 이어갈 수 있을까?
[어서 자살하거라.]“신님…….”
[왜 그러느냐?]“생각할 시간 좀 주십시오.”
[그래. 힘들게 찾은 평화이니만큼 미련을 버리기가 쉽진 않겠지.]이해한다는 듯 말하던 신이 큰맘 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다.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주마. 대신 빨리 결정해야 하느니라.]* * *
“안녕하십니까, 현장에 나와 있는 김익현 기자입니다. 제 앞에는 지금 보라색의 포탈이 있는데요.”
카메라가 잠시 포탈을 비췄다가 돌아왔다.
“보라색은 시청자 여러분도 알다시피 누군가가 들어갔다는 뜻이죠. 그 말은 나라를 구한 영웅, 민도준 헌터가 EX급 던전에 들어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국민을 위협으로부터 또다시 구해주기 위해!”
“민도준! 민도준!”
앵글이 이번엔 던전 주변을 비췄다.
민도준을 응원하러 온 수많은 팬이 카메라에 잡혔다.
“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민도준 헌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저도 응원하는 입장에서 무사히 나왔으면 하는 바람…… 어?”
기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봤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포, 포탈이…….”
“포탈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제한 시간이 남아있는데 포탈이 사라진다는 건 한 가지를 의미한다.
“던전을 클리어했다!”
보통의 던전은 공략이 끝나도 포탈이 사라지지 않는다.
원래대로 푸른색으로 돌아오며 다음 도전자를 받을 뿐.
그러나 일회성 던전일 경우 클리어 즉시 포탈은 사라지고 만다.
클리어하지 못하면?
바로 포탈이 붉은색을 띠며 던전 브레이크가 진행되겠지만 다행히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포탈 자체가 사라졌으니 말이다.
“E, EX급 던전은 일회성 던전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민도준 헌터가 공략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민도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 어떻게 된 걸까요? 진즉에 나왔어야 할 민도준 헌터가 20분째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뭐야? 안 나온 거야?”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팬들이 웅성거리면서 기다렸지만 끝내 민도준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 * *
늦은 밤.
적막한 거실에 홀로 앉아있던 차예린이 벽시계를 쳐다봤다.
“오빠가 늦네…….”
TV를 통해 던전이 사라졌다는 소식은 진즉에 들었다.
공략을 끝내고 나왔어야 할 민도준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 역시.
“어디 있어, 오빠. 나 할 말 있는데…….”
차예린이 배를 문질렀다.
“나 임신했단 말이야.”
민도준이 무사히 돌아오면 말할 생각이었건만 어째서인지 던전이 사라지고도 6시간째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공략에 실패했다거나 죽은 건 아니었다.
랭킹에는 이름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수호 길드에서 연락이 왔었으니까.
“공략도 끝냈으면서 왜 빨리 집에 안 들어오는 거야. 사람 불안하게…….”
전화도 안 받으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렇게 민도준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차에.
딩동-
별안간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지? 이 시간에?”
민도준일 거란 생각은 안 했다.
상식적으로 자기 집에 들어오는데 초인종을 누를 리는 없으니까.
“어? 경민 씨네?”
월패드를 보던 차예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이 시간에는 어쩐 일이시지?”
자정이 다가오는 시각에 집을 찾아오다니.
그것도 혼자서.
일단 인터폰을 누른 차예린이 반기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경민 씨.”
-아, 예린 씨 계셨군요.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차예린은 주저 없이 문 열림 버튼을 눌렀다.
인터폰으로 대화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으니.
신경민과 친하지는 않지만 모르는 사람도 아니다.
‘세계 랭킹 2위인 데다 오빠네 길드원이니.’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어주자 마당을 걸어오는 신경민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예린 씨. 밤늦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 별말씀을.”
“일단 안에서 얘기해도 될까요?”
“네, 들어오세요.”
집안으로 들어온 신경민이 두리번거리다가 소파에 앉았다.
“뭐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아닙니다. 그나저나 길드장님은요?”
“아직 안 왔네요.”
“아직도요?”
놀라는 신경민을 향해 차예린이 말했다.
“오빠 때문에 오신 거예요?”
“예. 곧 있으면 다른 길드원들도 올 겁니다.”
예고한 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초인종이 울렸다.
길드원들이 찾아온 것이다.
“실례하겠습니다.”
문을 열어주자 정혜원, 현수아, 황다연 등.
여성 멤버들이 줄줄이 인사하며 들어왔다.
차예린은 이 상황이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다들 우리 집엔 무슨 일이세요?”
“어? 길드장님한테 못 들으셨어요?”
“길드장님이 할 말 있으니 집으로 모이라고 했는데…….”
“저희 오빠가요?”
온종일 통화 한 번 하지 못했던 차예린으로선 금시초문이었다.
“저는 받은 연락이 없는데…… 전화해도 받지 않고…….”
“한 30분 전인가? 경민 씨한테 소집하라고 말하고 끊었대요.”
“그런데 아직도 안 왔다니…….”
“저희가 너무 일찍 왔나 보네요.”
차예린이 눈을 흘겼다.
길드원들을 집으로 불러놓고 정작 자신에겐 아무 말도 없다니.
“정말 통화한 거 맞아요?”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묻는 찰나.
철컥-
현관문이 열리며 민도준이 들어왔다.
“오셨다.”
“길드장님!”
다들 반색하며 쳐다봤지만 민도준에게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은 차예린이었다.
“오빠! 어떻게 된 거야? 종일 연락도 받지 않고! 걱정했잖아!”
“미안. 혼자서 생각할 게 있었어.”
“오빠가 길드원들 집으로 부른 거야?”
민도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미리 얘기 못 해서 미안해. 그럴 정신이 없었어.”
“무슨 일로 불렀는데?”
“중대 발표 좀 하려고.”
“발표요?”
좌중의 시선을 모은 민도준이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저 오늘부로 헌터 생활 접고 은퇴하기로 했습니다.”
“은퇴요?”
깜짝 발표에 길드원들이 놀랐다.
차예린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어, 그, 그럼 길드는……?”
“길드야 나 없어도 잘 굴러가잖아?”
“그러면…… 완전히 괴수 사냥에서 손을 떼겠다고?”
민도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차예린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무리 세계 랭킹 1위인 데다 최고 레벨이라곤 하지만 헌터 일이 안전하다고 볼 순 없는 법.
돈도 평생을 다 쓰지 못할 만큼 벌었으면서 괴수 사냥에 나서는 민도준이 여간 걱정스럽지 않던 차예린이었다.
“오빠, 그 말 정말이지? 이제 더 이상 괴수 안 잡을 거지?”
“응.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면 몰라도 웬만하면 일상생활에 전념하려고. 예린이 너도 안 좋아했으니.”
“정말 잘 생각했어, 오빠!”
둘만의 시간이 늘어났다는 점은 차예린에게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이었다.
길드원들도 그런 민도준의 의견을 존중했다.
“저희는 길드장님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존중하겠습니다.”
“10년이나 활동하신 데다 만렙도 찍으셨으니 은퇴하셔도 누가 뭐라 못하죠.”
“게다가 나라를 구한 것도 모자라 EX급 던전까지 클리어하셨으니…….”
“근데 한편으론 길드장님과 파티 맺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왠지 아쉬운데요?”
“그동안 저희를 위해 고생하셨으니까 이제 놔드리자고요.”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지만 길드원들이 고개를 주억이며 수긍했다.
“그럼 나 이제 세계 랭킹 1위 될 수 있는 건가?”
“그건 길드장님이 살아계시는 한, 평생 불가능할 듯요.”
“아…….”
신경민이 축 처진 모습을 보이자 민도준이 웃으며 어깨를 두들겼다.
“제가 은퇴하면 사실상 랭킹 1위는 신경민 씨죠. 사람들도 다 인정하고 받아들일 거예요.”
“후후, 그렇죠?”
다시 기운을 차리는 신경민이었지만 사실 랭킹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걸 서로가 알고 있었다.
그렇게 가장 먼저 은퇴 소식을 전한 민도준은 길드원들과 웃으면서 대화하다가 자정이 되기 전에 집으로 돌려보냈다.
단둘이 남은 차예린과 민도준.
차예린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오빠. 근데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말했잖아. 생각할 게 있다고.”
“무슨 생각?”
“…….”
민도준의 얼굴에 근심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그런 게 있어. 그나저나 말해봐.”
“뭘?”
“무사히 돌아오면 할 말 있다고 했잖아.”
“아, 그거?”
기분이 좋아졌는지 차예린이 배시시 웃었다.
“뭔데? 기쁜 소식이야?”
“응. 오빠 이제 아빠야.”
“뭐?”
“나 아기 가졌다구.”
그 말에 민도준이 놀라다가 얼굴 한가득 미소지었다.
“하하, 정말? 정말 내가 아빠가 된다고?”
언젠가 소식을 들으리라 생각하곤 있었지만 그날이 오늘일 줄은 몰랐다.
기대했던 대로 기뻐하는 민도준의 모습에 차예린도 덩달아 미소 지었다.
“예린아.”
“응?”
“나도 할 말 있어.”
“뭔데?”
“진즉에 해야 했을 말인데…….”
뜸을 들이던 민도준이 용기 있게 말했다.
“우리 결혼하자.”
이번에는 차예린이 놀랐다.
애를 가져서 하는 말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은 민도준이 준비했다는 듯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으니까.
“이, 이건…….”
그것은 결혼 예물로도 쓰인다는 금강석 반지였다.
“너 주려고 10년 전부터 갖고 있던 아이템이야. 받아.”
“오빠…….”
10년 전이면 서로 알지도 못하던 사이.
당연히 농담으로 받아들인 차예린이었지만 민도준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랑 결혼해 줄래?”
민도준의 정식 프러포즈에 차예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응……. 좋아.”
기쁨의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