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69)
특성흡수 헌터사냥꾼-269화 (1부 완결)(269/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269화
269. 100년 후
주름진 얼굴의 민도준이 천장을 바라봤다.
‘이곳은 병실인가?’
눈 깜박할 사이에 장소가 바뀐 걸 보니 또 쓰러진 모양이다.
‘근래에 자꾸 이러는군.’
몸이 쇠약해졌는지 요즘 들어 힘이 없다.
‘그나마 치매는 걸리지 않아서 다행이군.’
치매에 걸리면 답도 없다.
그동안 이룬 것들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셈이니.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민도준이 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20대 후반의 젊은 남녀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귀여운 증손주들. 증조할아버지 보러 왔느냐?”
“다 큰 애한테 귀엽다니요. 할아버지도 참…….”
환갑이 넘은 손주의 말에 민도준이 씨익 웃었다.
“너도 내 나이 돼봐라. 100살 차이나면 다 귀엽게 보이지, 뭘.”
“제가 어떻게 할아버지처럼 오래 살아요. 헌터도 아닌데…….”
손주의 말에 민도준이 잠시 지난 세월을 추억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민도준이 차예린과 결혼한 지 올해로 100년.
한평생을 함께 살겠다고 백년가약을 맺었지만 약속은 지킬 수 없었다.
‘예린이가 살아 있었더라면 말 그대로 백년해로를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올해로 131세인 민도준과 달리 차예린은 100세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우리 귀여운 증손주들 좀 보고 갔으면 좋았을 것을…….’
아쉽게도 손주의 자식들을 못 보고 가버린 차예린이었지만 일반인치곤 오래 산 편이었다.
민도준이 60 먹은 손주에게 물었다.
“수호는? 건강히 잘 있느냐?”
“아버지야 잘 있지요. 헌터니까요.”
헌터들은 수명이 일반인보다 긴 편이었다.
그래봤자 30년 정도 더 사는 것뿐이었지만 그래도 민도준처럼 증손주들이 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호 나이가 몇이지?”
“작년에 100세가 넘으셨어요.”
헌터는 만 20살에 각성해서 30~40대면 전성기를 찍지만 50대가 넘어가면 점점 기력을 잃는다.
때문에 60세가 넘는 헌터는 존재하지 않았고 대부분이 40대가 되기 전에 은퇴하는 실정이었다.
민도준의 아들인 수호도 헌터가 됐지만 진즉에 은퇴했다.
“100세가 넘었는데 정정하단 말이냐?”
“네.”
“근데 왜 같이 안 왔느냐?”
“고모가 매우 아프다고 해서 그쪽 병원에 가 계세요.”
“서연이가?”
차예린은 아들 민수호를 낳고 2년 뒤에 딸 민서연을 낳았다.
“많이 아프다느냐?”
“예. 좀 심각하다고 해서 저는 여기 남기고 아버지는 그쪽으로 가셨어요.”
“에휴…….”
민도준이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다.
서연이는 일반인인지라 수호와 다르게 정정하지 못하다.
‘마음 같아선 치유의 권능으로 회복시키고 싶지만 소용이 없으니 원!’
특성으로 외상의 치유는 가능하지만, 질병과 노화는 권능이 통하지 않았다.
민도준이 괜히 병실에 누워 오늘내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만렙인 그 역시도 노화를 막을 수는 없었다.
‘체력 스탯이 높으면 뭐하나? 나이 들수록 기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는걸.’
그래도 헌터라서 아직 버티고는 있지만 민도준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임종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수호에게 영상통화 걸어라. 마지막으로 자식들 얼굴 좀 보고 싶구나.”
“아, 알겠어요.”
손주가 즉시 아버지인 수호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아들, 무슨 일이냐?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해서요. 잠시만요.”
손주가 보여준 스마트폰 화면에는 100살 넘은 노인이 있었다.
하나뿐인 아들, 수호였다.
“아들아.”
-아, 아버지. 괜찮으세요?
“난 괜찮다. 서연이는 어떻냐?”
곧이어 앵글이 돌아가더니 초췌한 안색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노파의 모습이 잡혔다.
-보다시피 안 좋아요.
“그렇구나…….”
-아버지는 어떠세요? 괜찮으신 거 맞아요?
“……수호야.”
-예. 아버지.
“내 자식으로 태어나줘서 고맙구나.”
-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서연이한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저런 상태이니 어떻게 전할 수가 없구나. 나중에 만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만.”
-아버지. 지금…….
“가만히 듣기나 해라. 내 마지막 유언이니.”
-…….
“넌 모르겠지만 난 네 엄마를 구하기 위해 시간도 거슬러갔단다.”
-……!
영상 속의 민수호가 눈을 크게 떴다.
이런 상황에 농담하실 분이 아니라는 건 그동안 아버지 민도준을 겪어봐서 잘 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소리다.”
-아버지…….
“너와 서연이. 네 엄마, 그리고 손주들과 증손주들까지.”
-…….
“모두 아빠가 지켜주마. 고통받지 않고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도록.”
민수호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다만 한가지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어머니인 차예린과 자식들을 끔찍이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 가족 모두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거라.”
그 말을 끝으로 민도준의 눈이 감겼다.
* * *
-아버지! 아버지!
‘어디서 수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하지만 민도준의 시선에 보인 것은 잿빛 안개로 가득한 명계였다.
‘결국, 죽었구나.’
후회 없는 삶이었다.
차예린과 달콤한 신혼생활을 누리고, 수호와 서연이를 낳아 키우고, 손주들은 물론 증손주들이 커가는 모습까지.
살 만큼 살면서 볼 거 다 보다가 기력이 쇠하여 죽고 말았다.
‘9,999레벨 헌터도 세월 앞에선 어쩔 수 없구만.’
그때였다.
[여기 계셨군요? 민도준 씨.]금발 머리의 서양인이 나타난 것은.
[안녕하십니까? 저는 명계의 안…….]“안내자, 에이라. 맞지?”
에이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떻게 제 이름을……?]‘역시 명계의 안내자도 회귀의 영향을 받은 모양이군.’
시간을 돌려서 그런지 에이라는 민도준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만 벙쩌있고 신님께 안내나 하시죠.”
[그, 그건 또 어떻게……!]명계에 오자마자 신이 자신을 찾을 거라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약속한 바가 있었으니까.
“얼른요. 신께서 기다리고 계시잖아요.”
[아, 알겠습니다.]얼른 데려가라는 듯 팔을 내어주는 민도준을 보며 에이라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럼 출발하겠습니다.]곧이어 민도준의 손을 잡은 에이라가 빠른 속도로 달렸다.
* * *
죽음은 평등하다.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누구나 명계로 오게 된다.
그리고 영혼이라면 누구나 망각의 샘에 들어가 기억이 지워지고 소멸한다.
하지만 여기, 민도준만큼은 예외다.
아직은.
[다시 만났구나. 민도준이여.]“신님.”
빛의 형상.
신, 데르키우스가 눈앞에 있었다.
[EX급 던전에서 대화하고 꼬박 100년 만이군.]“그렇네요.”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그 말은 제가 빨리 죽기를 바랐다는 소리입니까?”
[그게 그렇게 되나? 하하하하핫!]민도준이 눈을 흘겼다.
신의 웃음소리는 처음 듣는다.
‘신도 감정이 있는 걸까?’
피식 웃은 민도준이 맞장구쳤다.
“이럴 줄 알았으면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지 말고 적당히 살다가 죽는 건데 말입니다.”
[크크,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기는. 네가 죽는 모습은 위에서 이미 보았다.]“…….”
[죽기 전에 자식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하다니. 감동적이더군.]“뭐, 그게 부모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영원히 지켜주겠다……. 뭐 그런 말도 하던데…….]“약속했으니까요.”
민도준이 지난 과거를 돌이켜봤다.
* * *
EX급 던전에서 나오기 전.
한참의 고민 끝에 민도준이 신에게 말했다.
“약속은 지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뭐라? 그럼 자살하지 않겠다는 말이냐?]“예.”
[네놈이 정녕……!]“신님. 저에게 고마운 마음은 없으십니까?”
[뭐라?]“제가 성공하지 못했으면 인간은 멸망하고 신님은 곤란한 처지에 처하셨겠죠.”
[그래서? 내가 너에게 감사의 대가라도 줘야 한다는 말이냐?]“그럼요. 신님은 저에게 빚을 지신 거니까요.”
[회귀라는 기회를 줬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는 게냐?]“회귀 좋죠. 그런데 이용 목적이 사라졌다고 가장 행복한 순간에 자살하라는 건 좀 아니죠.”
[약속하지 않았느냐? 너도 분명 동의한 부분…….]“인간 세상에 그런 말이 있죠.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라고.”
[…….]“물론 저는 막무가내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겁니다.”
[성공했으니 보상을 달라는 거냐?]“예. 실패했으면 몰라도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몇십 명도 아니고 무려 수십억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회귀로 퉁치기엔 너무 보상이 약하지 않습니까?”
[그래. 듣고 보니 네 말도 일리가 있구나. 그럼 어디 한번 말해 보아라. 무슨 보상을 원하는지.]“별거 아닙니다. 자살하기로 한 약속, 없던 일로 해주십시오.”
[그럼 벽에 똥칠하며 죽을 때까지 살겠다?]“예. 지금 이 행복을 쭉 유지하고 싶습니다. 대신 헌터 직에서 은퇴하고 능력은 일절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괴수 사냥은 물론이고 범죄자를 죽이는 일도 그만두겠습니다. 이 정도면 합리적인 제안 아닙니까?”
[흠…….]“대신 우리 가족이 위험할 땐 힘을 쓸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 정도는 허용 가능한 부분이라고 봅니다만…….”
[좋다. 그 정도는 눈감아주도록 하지. 그리 어려운 부탁도 아니니.]“감사합니다.”
[흥, 감사하긴 이르다. 그래봤자 죽으면 어차피 기억이 지워지고 소멸할 몸. 네가 바라는 행복은 이승에 있을 때나 마음껏 만끽하도록.]“신님. 말이 나와서 말인데…… 영혼의 소멸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겁니까?”
[그렇다. 육신이 없는 영혼은 이용가치가 없는 폐기물이다. 물론 내 재량으로 예외는 있을 수 있겠지만,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면 소멸시키는 수밖에. 너도 에이라에게 들어서 알고 있을 터인데?]“알죠. 그래서 말인데…… 신님께 새로운 제안을 할까 합니다.”
[제안?]“저와 가족들의 영혼을 거두어 주십시오.”
[거두어 달라니? 소멸시키지 말라는 얘기냐?]“그렇습니다. 저와 차예린의 영혼은 물론 앞으로 생길 가족들까지. 전부 신께서 지켜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시면…….”
민도준이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신님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네가 뭘 할 수 있다고?]“에이라처럼 안내자로 쓰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승사자 자리는 꽉 찼다. 행여나 자리가 난다 해도 다른 영혼을 쓰면 돼. 저승사자가 되겠다는 애들은 차고도 넘치니까.]“그럼 다른 일에 쓰시던가요.”
[무슨 일.]“잘 생각해 보면 써먹을 데가 있을 겁니다.”
[…….]신이 고민하는지 침묵을 지키자 민도준도 가만히 눈치를 봤다.
[생각해 보니 써먹을 데가 있을 것 같군.]“그럼 제 제안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러지.]* * *
던전에서의 대화를 떠올린 민도준이 말했다.
“그때의 약속은 기억하시지요? 저와 가족들의 영혼을 소멸시키지 않겠다고.”
[물론이다. 민도준이여.]“약속을 지키셨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의심이 많은 건지 꼼꼼한 건지……. 알았다. 이쪽으로 불러오지.]잠시 후 에이라가 누군가를 데려왔다.
“오, 오빠?”
먼저 죽었던 차예린이었다.
“예린아!”
31년 전에 죽은 차예린의 영혼이 소멸하지 않고 살아있었다.
[이제 믿겠느냐? 난 약속은 지키는 신이니라.]“감사합니다.”
“오, 오빠! 오빠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차예린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영혼이라 그런지 손이 그대로 얼굴을 통과했으니까.
“영혼끼리도 만지는 건 불가능합니까?”
[그렇다. 권한이 없는 영혼들은 어떤 촉감도 느낄 수가 없지. 물론 권한을 상승시키면 가능은 하다만…….]“상승시켜 주십시오.”
[그 전에 민도준, 너는 나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느냐?]“……무슨 일입니까?”
[저번에 시킨 것과 비슷한 일이다. 다른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지.]민도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또 누군가를 죽이는 일인가?’
자세한 임무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신의 말을 따라야 했다.
자신이 약속을 지켜야 뒤이어 올라올 가족들도 구원받을 수 있으니까.
[시간이 없으니 재회의 기쁨은 뒤로 미루도록. 이번에도 성공하면 마음껏 만질 수 있게 해줄 테니까. 후후후.]“……알겠습니다. 가시죠.”
“오빠, 어디가? 어디 가는데?”
민도준이 불안한 표정의 차예린을 돌아봤다.
“여기 신님이랑 약속한 게 있거든.”
“약속? 무슨 약속인데?”
“걱정 말고 기다리고 있어. 금방 돌아올 테니까.”
“오빠? 오빠!”
어차피 영혼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소멸만 되지 않으면 영원히 함께할 수 있으리라.
‘혹시 몰라. 신이 동전 뒤집듯 약속을 어길지도.’
겉으로는 따르는 척하고 있었지만 민도준은 신을 믿지 않았다.
‘두고 봐. 내가 어떻게 해서든 우리 가족이 안전할 방법을 찾을 테니까.’
신 따위에 소멸하지 않고 가족들과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민도준이 바라는 진정한 행복이었다.
-1부 완결-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8개월의 연재 끝에 드디어 1부가 끝났습니다.
어? 왜 완결이 아니라 1부 완결이냐고요?
원래는 차예린의 영혼을 구하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짓고 차기작을 준비할 생각이었습니다.
민도준은 다른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운을 남기며 떠나고요.
근데 막상 쓰고 보니 스토리상 완벽한 해피엔딩이라고 볼 순 없겠더라고요.
신이라는 절대자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끝났으니까요.
하여 여기서 1부를 마무리하고 2부를 기획하기로 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하는 분들도 계시고 환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렇게 된 거 끝까지 최선을 다해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1부의 외전은 오늘 올라온 게 끝입니다.
더 쓰다가는 2부의 연재가 늦어질 것 같아 짧게 준비해 봤습니다.
그럼 저는 약 2주간의 준비 끝에, 8월 31일 월요일에 연참과 함께 2부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동안 응원해주시고 함께 호흡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2부에선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잘 준비해오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