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73)
특성흡수 헌터사냥꾼-273화 (2부)(273/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2부 1화
1. 신의 지령
행복한 삶이었다.
후회 없는 삶이었고 성공한 삶이었다.
회귀 후 쿠데타를 막았을뿐더러 차예린과 다시 한번 운명처럼 이어졌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그랬는데…….
‘이승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었다니…….’
명계에 올라와 보니 알겠다.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신님.”
[왜 그러느냐?]“영혼이 되면 예외 없이 기억이 지워지고 소멸당해야 합니까?”
[그러느니라.]소멸.
그것은 영혼에 있어서 죽음과도 같은 것.
명계에 올라오는 모든 영혼은 소멸을 피할 수 없었다.
물론 민도준처럼 예외도 있었지만.
[걱정 말아라. 약속대로 너와 가족들은 대대로 소멸시키지 않을 터이니.]“감사합니다.”
[물론 네가 맡은 일을 성공시켰을 때의 경우이지만.]“…….”
민도준은 가족들을 소멸시키지 않는 대가로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약속했다.
가족과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신이 약속을 지킬 거라는 보장은 없어.’
내색하지 않았지만 민도준은 신을 믿지 않았다.
‘영혼의 생살권을 쥐고 있는 건 신이야. 막말로 약속을 어기만 그만이라고.’
지금은 약속이라는 명목하에 영혼을 소멸시키지 않고 있지만…….
‘언제 돌변할지 몰라.’
신의 기분 여하에 따라 민도준과 가족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소멸당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신과의 약속은 시간 벌이에 불과했다.
사냥을 끝낸 사냥개는 쓸모없어지는 법이니까.
‘그래도 시간을 벌었으니 그동안 대항할 방법을 찾아야 해.’
방법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기에 민도준은 빛의 형상을 따라가며 이것저것 물어봤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
“궁금한 게 있습니다. 신님.”
[말해 보아라.]“신은 한 명뿐입니까?”
[하나의 개체를 말하는 거라면 그러하니라. 내가 유일하지.]“그럼 신님께서 인간과 지구를 창조하신 겁니까?”
[당연하지.]“그런데 왜 세상에 직접적인 개입은 못 하시는 겁니까?”
[신이라고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순 없다. 손댈 수 없는 아크릴박스 안에 곤충을 넣고 지켜보는 것과 같은 이치지.]민도준이 가느다란 눈으로 빛의 형상을 바라봤다.
곤충에 비유하는 것으로 보아 신이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렴풋이 느껴졌다.
[대신 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는 있지. 괴수와 인간의 차원을 연결한다거나 각성자 시스템을 적용한다거나.]“아니면 시간을 돌린다거나 말이죠?”
[그렇지. 그 또한 신이 할 수 있는 일이지.]“그러고 보니 이번에 명계의 안내자를 만났을 때 저를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시간 축을 돌렸으니 당연한 일이지.]“그럼 신님께선 회귀의 영향을 안 받으신 겁니까?”
[시험관 밖에 있는 나야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롭지.]역시 신을 제외한 영혼들만 회귀의 영향을 받는 모양이다.
“저번에 신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시간 축을 돌리느라 모든 에너지를 사용했다고.”
[그랬지.]“지금은 좀 회복하셨습니까?”
[아직도 저번만큼은 회복하지 못했다만 차차 회복될 것이니라.]‘시간이 흐르면 에너지라는 게 충전되는 모양이군.’
게임에서 스킬을 쓰기 위해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라 보면 될 듯싶었다.
[또 궁금한 게 있느냐?]“일전에 권한이 없는 영혼은 촉감을 느낄 수 없다고 하셨지요?”
[그렇다만.]“그럼 명계의 안내자는 권한이 있어서 저를 만질 수 있는 겁니까?”
[그렇다. 명계의 안내자는 너보다 등급이 높거든.]“등급이요?”
[그래. 실제론 영혼의 격을 말하는 거지만 편의상 등급으로 부르고 있지.]“그 등급이라는 건 신님께서 정해주시는 겁니까?”
[그렇다. 모든 영혼은 기본 등급에 속해 있고 상위 등급을 건들 수 없게 되어 있지. 그게 민도준 네가 명계의 안내자를 건들지 못하는 이유다.]‘그렇다면 신은 명계의 안내자보다 더 높은 등급과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소린데…….’
절망적이었다.
명계의 안내자조차 건들지도 못하면서 무슨 수로 신을 상대한단 말인가?
‘아니, 꼭 신을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어. 약속을 지킬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약속을 어긴다면?
그때는 신의 하수인 노릇을 하다가 토사구팽당할 수도 있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지.’
그때 빛의 형상을 따라가던 와중에 푸른 물결이 보였다.
“아름답군요.”
[망각의 샘이니라. 저곳에 들어가면 기억이 지워지고 소멸하지.]“…….”
잿빛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본 색상에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지옥의 문이었다니.
그러고 보니 다른 영혼들이 명계의 안내자에게 이끌려 강제로 들어가고 있었다.
‘다행이다. 나와 가족들은 소멸을 면할 수 있어서.’
물론 민도준이 임무에 실패했을 때는 가차 없이 소멸당하겠지만.
[얼른 따라오거라. 구경할 시간 따윈 없으니.]“아, 예.”
그때 또 한 번 시선을 잡아끄는 장소가 나왔다.
잿빛 안개 속에 황금빛의 문이 있었다.
“저긴 뭐 하는 곳입니까?”
보물 창고 같은 곳일까 생각하며 물어봤지만, 이번에도 기대와는 달랐다.
[감옥이니라. 말 안 듣는 영혼들을 가둬두는 곳이지.]“아…… 그렇습니까.”
김빠진 얼굴로 다시 빛의 형상을 따라가다 보니 검은 물결이 출렁이는 강이 나왔다.
[다 왔다. 저곳에 몸을 던지거라.]“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기 전에 거쳐 가는 통로이니 겁먹을 것 없다.]“다른 차원이요?”
그러고 보니 신이 말했었다.
다른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러 가야 한다고.
[자세한 건 들어가서 설명할 테니 일단 뛰어내리거라.]“아, 예.”
민도준은 시키는 대로 검은 강 속에 몸을 던졌다.
마치 무저갱에 몸을 던진 듯 기분이 묘했지만 실제로 느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공간.
여기서 민도준이 볼 수 있는 거라곤 빛의 형상을 띠고 있는 신뿐이었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느니라.]“다른 차원에서 제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저번에 시킨 것과 비슷한 일이다. 악당을 죽이고 세계의 멸망을 막는 일이지.]“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너는 다른 차원에서 빙의하게 될 거다.]“예? 제 몸이 아니라요?”
[네 육신이라면 이미 흙 속에 파묻혔을 터. 그렇다고 육신을 새로 창조할 수도 없다. 앞서 말했듯이 세상은 내가 개입할 수 없는 실험 상자에 있다. 직접 뭔가를 창조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그렇다는 건…….”
[다른 몸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거지.]“…….”
빙의라니.
말로만 들어봤지 실제로 해보게 될 줄은 몰랐다.
“잠시만요. 설마 괴수의 몸에 들어가거나 하는 건…….”
[그건 걱정하지 마라. 아무리 영혼이라도 저마다 맞는 옷이 있기 마련. 너는 인간의 몸에 빙의하게 될 거다.]“그 말씀은 다른 차원에도 인간이 사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는 겁니까?”
[그래. 네가 빙의하게 될 차원에는 인간이 살고 있다. 그것도 똑같은 지구에서 말이지.]다른 차원에도 지구가 있다니?
“평행 세계입니까?”
[그런 개념도 아는 모양이지?]“예. 소설책에서 나옵니다.”
[동일 선상에서 흘러가는 세계라는 점에선 평행 세계라고 볼 수 있겠지. 나 같은 경우엔 견본 세계라고 부르고 있지만 말이야.]“견본 세계?”
[애당초 지구는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견본 세계와 아닌 세계로. 견본 세계는 무언가를 실행하기 전에 이것저것 테스트하기 위한 세계를 말하지.]“그러니까 또 하나의 지구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네가 사는 지구보다 훨씬 작고 인간도 10억 명밖에 없긴 하지만 똑같은 환경에 비슷한 문명을 이루고 있지.]또 하나의 작은 지구가 있었다는 말에 민도준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 각성 시스템을 만들어 인간에게 적용할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하여 견본 세계에 먼저 테스트할 필요가 있었지.]“게임으로 치면 베타 테스트 같은 거로군요.”
[그렇지.]“어떻게 됐습니까?”
[망해 버렸어.]“…….”
[밸런스 조절을 잘못한 바람에 헌터들의 힘이 너무도 강해져 버렸지. 괴수들은 압도적으로 패배했고 종족의 불균형이 찾아왔다. 심지어 힘에 심취한 헌터들은 권력을 장악하고 세상을 무력으로 통치하기 시작했지.]“……막장이네요.”
[다행히 네가 있던 세계는 이런 시스템의 문제점을 개선해서 적용할 수 있었지만, 견본 세계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었어.]“…….”
[이대로면 괴수들은 전멸하고 인간들도 기어코 멸망의 길을 걷고 말 테지. 하여 던전을 닫아버리고 괴수들의 공급을 중단시켰다. 사실상 견본 세계를 버린 셈이지.]“지금 그런 곳에 저를 보내려는 겁니까?”
[그래. 너 정도의 실력이라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8 영웅을 죽이고 인간들의 멸망을 막을 수 있을 거다. 그리되면 포기했던 견본 세계도 다시금 활성화할 수 있겠지.]‘8 영웅이라…….’
한마디로 다른 차원에 빙의해 지구를 지배하는 8명의 헌터들을 암살하라는 지령이었다.
‘15명에게 복수하고 아담을 죽이는 것보단 쉬워 보인다만…….’
문제는 기존의 힘을 유지할 수 있느냐다.
“다른 몸에 빙의해도 기존의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까?”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하다. 신버전의 데이터를 구버전으로 옮겨 올 수는 없는 법이니.]“그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까?”
민도준이 놀라서 묻자 신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그건 아니다. 영혼에 각인시킨 헌터 사냥꾼 특성만큼은 가지고 시작할 수 있을 거다.]그런다고 걱정이 가시는 건 아니었지만.
“혹시 제가 빙의할 몸이 S급 헌터라도 됩니까?”
[어디 보자. 헌터인 데다 영혼이 빙의하기 적합한 혼수상태에 있는 신체를 찾아보면…… 현재로선 F급 헌터 1명밖에 없군.]민도준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고작 헌터 사냥꾼 특성 하나만 가지고 F급 헌터의 몸에 들어가서 인류를 지배하고 있는 최강의 헌터 8명을 암살하라는 소립니까?”
[그, 그렇지…….]“그게 말이 됩니까? 완전히 미친 난이도잖습니까?”
[물론 이대로 보낼 생각은 없다. 8 영웅을 이길 수 있도록 특혜를 주겠다.]“특성을 더 각인시켜 주십시오.”
[그건 불가능해. 영혼당 각인은 한 번뿐이거든.]“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성장하는데 유리한 정보들을 주지. 암살해야 할 타깃의 특성들과 주요 정보까지.]“…….”
[물론 그걸로 끝이 아니야. 빠르게 강해질 수 있도록 원하는 무기와 특성 하나를 인간 세상에 준비하도록 하지.]“고작 하나요?”
[……이게 시스템상 내 마음대로 퍼줄 수가 없어. 아이템과 특성은 각각 하나씩만 줄 수 있단 말이지.]“…….”
뭔 제약이 이리도 많은지.
민도준은 할 말을 잃었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거잖아?’
F급부터 시작해서 언제 S급이 되고 언제 8 영웅을 암살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잖아?’
이제 와서 안 한다고 하면 신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나와 가족들을 곧장 소멸시킬지도.’
애당초 지령을 성공시켜야 가족들을 소멸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물러설 데가 없다. 무조건 암살을 성공시키는 수밖에.’
목줄을 쥐고 있는 건 신이었기에 민도준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해보도록 하죠.”
[잘 생각했다. 그럼 지금 원하는 특성과 무기를 골라보도록 하지. 참고로 구버전인지라 신버전에 없는 것들이 있을 거야.]신이 특성들이 나열된 시스템창을 보여줬다.
“EX급 특성은 없나요?”
[없다. EX급은 신버전에 와서 생긴 등급이지.]“흠…….”
눈앞에 여러 S급 특성들의 정보가 보였다.
‘이 중에서 단 한 가지만 고를 수 있다고?’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단연코 마검사 특성이 좋겠지만 아쉽게도 구버전에는 없는 특성이었다.
‘그렇다면…….’
민도준이 고민 끝에 하나를 골랐다.
[좋은 걸 선택했군. 자, 이제 무기도 하나 골라보거라.]나열된 무기들의 정보를 보던 민도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신님. 이게 다 구버전의 무기입니까?”
[그렇다만?]“왜 레벨 제한이 없고 등급 제한만 있는 거죠?”
[아, 내가 말 안 했군. 구버전은 참고로 레벨 시스템이 없다. 업적 시스템도 없지.]“네?”
기존 버전은 레벨에 따라 무기를 들 수 있었지만, 구버전의 시스템은 레벨이란 것 자체가 없었다.
“그럼 장비를 착용하거나 던전에 들어갈 때는 등급만 보는 겁니까?”
[그렇지.]F급 장비는 F급 이상만 사용할 수 있고 S급 장비는 S급 이상만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럼 랭킹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랭킹은 오로지 전투력 순으로 표시가 되지.]“등급은요?”
[일정 전투력을 넘어서면 등급이 올라가는 방식이다.]“그럼 경험치는요? 괴수를 잡으면 경험치도 없고 아이템만 드롭되는 겁니까?”
[그렇다. 대신 룬 시스템이라는 게 있지.]룬은 괴수를 잡으면 나오는 일종의 아이템으로서 획득하면 자동으로 스탯이 올라간다고 한다.
‘레벨이 아닌 룬으로 스탯을 상승시키는 방식이군.’
어떤 괴수가 어떤 룬을 주는지에 대한 설명까지 들은 민도준이 무기를 선택했다.
[오호. 그걸 골랐구만.]“예. 아무래도 S급에 착용할 수 있는 무기를 고르는 것보단 이게 낫겠더라고요.”
[잘 골랐군. 그럼 지금 선택한 특성과 무기는 빙의하고 나서 보름 뒤에 임시로 만든 비밀 던전에 넣어서 주도록 하지. 당장에 줄 순 없으니까 말이야.]“알겠습니다.”
신은 마지막으로 암살에 필요한 정보와 성장에 필요한 정보, 기타 유용한 정보들까지 알려줬다.
[다 외웠나?]“예. 다 외웠습니다.”
[……빠르군. 그럼 이제 빙의할 준비가 되었느냐?]민도준이 심호흡을 한 뒤에 대답했다.
“되었습니다.”
[좋다. 바로 빙의를 진행하도록 하지. 반드시 8 영웅을 죽여서 멸망을 막도록.]안 그래도 그럴 거다.
차예린과 가족들을 지켜야 하니까.
“예. 보내주십시오.”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눈앞이 환해졌고 민도준은 이내 새로운 세상에서 눈을 떴다.
‘성민’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