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74)
특성흡수 헌터사냥꾼-274화(274/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2부 2화
2. 최성민
눈을 뜨자마자 민도준이 본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여긴…… 병원인가?’
깔끔하고 깨끗한 대학병원이 아닌, 시골 동네에서나 볼 법한 단출하고 다소 지저분한 병실이었다.
‘병원 맞아? 위생 환경이 무슨…….’
그래도 갖출 건 갖췄는지 산소 호흡기에 수액까지 맞고 있었다.
그런데도 민도준은 당황하지 않았다.
혼수상태인 몸에만 빙의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사항이었으니까.
“윽.”
그때 민도준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정보가 물밀 듯이 밀려들어 왔다.
육신이 가지고 있던 생전의 기억들이 새로운 주인에게 전송되는 과정이었다.
이 또한 이미 숙지하고 있던 터라 차분히 눈을 감고 정보들을 받아들였다.
‘이 몸의 이름은 성민이군. 성은 최 씨지만 천민이라 이름만 불려야 하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처럼 세상에는 신분 제도가 도입되어 있었다.
‘군사, 상인, 천민, 노예 순으로 신분이 나뉜 세계라니…….’
그뿐만 아니라 기존의 지구처럼 나라가 수백 개로 나뉘는 것도 아니었다.
웨스트랜드, 이스트랜드, 중립국.
이렇게 세 대륙으로만 갈라져 있었고 민도준이 있는 이곳은 이스트랜드에 속했다.
‘이스트랜드의 국토는 옛 고구려처럼 넓어.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등 온갖 동양인이 섞여서 살고 있고.’
웨스트랜드는 바다 건너에 서양인이 살고 있는 대륙을 지칭했다.
중립국은 말 그대로 중립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였고.
8 영웅은 이런 각 대륙을 지배하는 왕이었다.
‘천민의 몸으로 각 대륙의 왕들을 암살해야 한다니.’
생각할수록 난이도가 미친 것 같았다.
신분이 정해져 있는 만큼 차별도 심할 것이 아닌가?
‘그래도 헌터라서 신분 상승을 꾀할 수는 있겠어.’
헌터는 이 세계에서 중세시대의 귀족과도 같았다.
‘일반인이었다면 꿈도 못 꾸겠지만 헌터가 된 이상 실력 여하에 따라 높은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어.’
각성 비율은 기존과 같은 1,000명 중 1명.
쉽게 될 수 없는 만큼 헌터는 어디를 가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등급이 높았을 경우다.
‘상태창.’
-이름 : 최성민 (만 20세)
-등급 : F
-전투력 : 0 (미측정)
-세계 랭킹 : 1,021,392위
-근력 : 3, 체력 : 3
-순발력 : 3, 마력 : 3
-특성 : 해석(F), 헌터 사냥꾼(EX)
-스킬 : 없음
“…….”
만렙일 때에 비하면 초라한 상태창에 민도준이 할 말을 잃었다.
‘이거 막 각성한 1레벨이랑 다를 바가 없잖아?’
애당초 F급 헌터라서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전투력 0은 너무한다 싶었다.
‘이 특성은 뭐야?’
민도준은 기존에 성민이 갖고 있던 특성의 정보를 열어봤다.
[특성 – 해석]-등급 : F
-설명 : 처음 보는 문자의 뜻을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다.
‘전투에 도움 되는 특성도 아니고…….’
물론 언젠가 해석이 필요한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당장에 도움 되는 건 아니었다.
‘하도 많은 특성 중에 하필이면 이런 게 걸리다니. 각성했다고 좋아하던 기억이 있는데 정말 안타깝군.’
헌터가 됐다고 가족들에게 자랑까지 했었지만 결국 특성은 폐급이나 다름없다는 F급.
민도준의 기억 속에 상심에 빠진 성민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혼수상태에 빠진 원인 또한.
‘남기라는 새끼한테 개 패듯이 맞다가 이 지경이 됐다니…….’
남기는 만만하다는 이유로 성민을 괴롭히는 F급 헌터였다.
‘하긴 이런 왜소한 체격이면 같은 헌터에게 얕보일만하지.’
게다가 성민은 평소에도 말수가 없는 소극적인 성격.
전투력이 0인 것까지 랭킹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만만하게 보였을 것이다.
‘이제는 걱정 마라, 원주인. 내가 이 몸을 차지한 이상 맞고 다니는 일은 없을 테니.’
이제 새로운 차원에서 새로운 몸을 얻었으니 민도준이라는 이름은 버려야 한다.
‘나는 오늘부터 성민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성민이 산소 호흡기와 팔뚝에 꽂힌 주사기를 빼버리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일단 집에 가서 가족들을 안심시키는 게 먼저였다.
그때 벌컥 하고 문이 열렸다.
“서, 성민아?”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성민의 어머니 희선이었다.
“어머니.”
“성민이! 우리 성민이가 깨어나다니!”
믿기지 않는지 몸을 여기저기 만지던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이, 이제 정신이 들어? 몸은 괜찮고?”
참고로 이스트랜드의 공용어는 한국어라 대화에 지장은 없었다.
“네. 저 이제 멀쩡해요.”
“아이고,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두 손을 모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보니 성민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원주인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인가? 진짜 어머니가 아닌데도 가슴이 뭉클하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천민 취급을 받으면서도 식당에 나가 꿋꿋이 일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서일까?
자신이 진짜 아들은 아니었지만, 이왕 가족이 된 거 못했던 아들 노릇을 톡톡히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 일은요? 빠지고 오신 거예요?”
“응? 으응. 너 보려고 잠깐 빠졌어. 조금 있다가 다시 가봐야 해.”
“몸 상하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그, 그래.”
어머니의 표정이 얼떨떨하게 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들과도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않던 성민이었다.
그런 그가 따뜻한 목소리로 생전 안 하던 어머니 걱정을 하니 놀랄 수밖에.
“아연이는요?”
“공장 갔지.”
성민에겐 아연이라는 4살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
‘정상적인 세계라면 고등학교에 진학할 나이겠지만…….’
천민이라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그리고 굳이 다닐 필요도 없었다.
천민이 아무리 공부하며 발버둥 쳐봤자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었으니까.
‘천민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육체적인 노동뿐이야.’
어머니처럼 식당에서 설거지한다던가, 건설 현장에서 잡부로 일한다던가, 아연이처럼 공장을 가는 등.
천민이 하는 일은 거기까지였다.
단순노동 이외의 일을 하면 위법이다.
‘이 몸도 헌터가 되기 전까지는 막노동을 했었지.’
하기 싫어도 해야 했다.
만 16세 이상의 천민은 법적으로 무조건 일해야 했으니까.
‘임금도 남들의 반의반만큼 주면서 부려먹긴 엄청나게 부려먹는단 말이지.’
그것이 성민이 헌터로 각성하자마자 노가다를 때려치운 이유였다.
헌터로 각성하면 적어도 헌터 관리센터에서 편하게 일할 수 있으니까.
‘그래봤자 잡일을 하는 건 여전했지만.’
오히려 동료 헌터들에게 무시당하며 더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결국 남기라는 동료 헌터의 괴롭힘 끝에 이 사달이 난 거고.
“어머니. 제가 왜 혼수상태에 빠졌는지 들으셨어요?”
“들었지.”
“그래요?”
“물건 꺼내려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졌다며.”
“…….”
아무래도 남기 그놈이 책임을 피하고자 거짓말한 모양이다.
“내가 소식 듣고 달려왔을 때 얼마나 놀란 줄 아니? 우리 아들 영영 못 보는 줄 알고 얼마나 가슴 졸였는데…….”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죽지 않아 다행이라고 하셨다.
‘엄밀히 말하면 진짜 성민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신이 말하기로 혼수상태는 외부의 충격에 영혼이 지쳐서 떨어져 나간 현상이라고 한다.
세입자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뛰쳐나오듯이 영혼의 의지가 없으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마디로 빈집이라는 소리지.’
그렇기에 평소에 힘든 삶을 살아왔던 성민의 영혼이 돌아올 가능성은 없었다.
‘내가 신체를 차지한 이상 돌아올 수도 없지만.’
3개월간 혼수상태에 있던 거로 봐서 애초에 돌아올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젠 내가 성민으로 살아가야 해.’
눈앞의 성민이 다른 사람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어머니가 살아줘서 고맙다며 불시에 껴안았다.
“검사는 안 받아봐도 되겠니?”
“네.”
“정말 어디 아픈 데 없어?”
“네. 없어요. 이대로 퇴원해도 될 정도예요.”
어차피 다친 곳도 없지만, 괜히 추가 검사를 받아서 돈을 쓸 바에 한시라도 빨리 퇴실하는 것이 좋았다.
없는 형편을 생각하면 병원비는 만만치 않았으니까.
그렇게 성민은 곧바로 퇴원 절차를 밟은 뒤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찢어진 벽지, 지워지지 않는 곰팡이 등.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이곳 반지하가 바로 성민의 집이었다.
“세 달 만에 집에 오니까 어때?”
“아…… 정감 가고 좋네요.”
“엄마는 다시 일하러 가볼 테니까 좀 쉬고 있어. 배고프면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먹고.”
“네. 다녀오세요.”
다시 일하러 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에 성민은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세 가족이 일해도 반지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편이라니.’
천민이라 상대적으로 임금을 적게 받는 탓이었다.
‘아버지라도 있었으면 좀 나았으려나?’
성민의 가족은 어머니와 여동생뿐이었다.
방랑벽이 있던 아버지는 일찍이 집을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
‘아니야. 그래봤자 천민이라 어쩔 수 없어.’
망할 놈의 신분부터 어떻게 하지 않는 이상 가족들이 반지하를 벗어나긴 힘드리라.
‘성장해서 신분 상승을 꾀해야 해. 그러려면 일단은 막혀 있는 던전부터 활성화돼야 하고.’
현재 세계에서 괴수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차피 8 영웅 때문에 멸망할 거라고 판단한 신이 괴수 공급을 중단시켜버렸으니까.
‘괴수가 없으니 룬이나 아이템의 공급도 중단되고 헌터들의 성장도 멈춰버렸어.’
그러다 보니 현재로선 헌터로 각성해봤자 예전처럼 귀족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없었다.
‘S급 특성이라도 얻으면 모르겠지만 F급으로는 극적인 변화를 꿈꿀 수 없지.’
그것이 성민이 각성한 지 반년이 되어가는데도 아직도 전투력이 0인 이유였다.
‘하지만 이 생활도 이제 끝이다. 보름 뒤에 던전이 활성화되면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
신은 성민을 성장시키기 위해 다시 괴수 차원을 연결하기로 했다.
빙의 전에 골랐던 특성과 무기도 전부 그때 받을 수 있으리라.
‘그 전에…….’
성민이 힐끔 벽시계를 봤다.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30분만 있으면 아연이 퇴근 시간이네?’
집에서 딱히 할 것도 없던 터라 마중 나가기로 했다.
혼수상태에 있던 오빠가 갑자기 멀쩡한 몰골로 나타나면 어떤 기분일까?
‘엄청나게 놀라겠지?’
동생이 다니는 회사 위치는 성민의 기억을 봐서 알기에 찾아가는 데 문제는 없었다.
정작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 왜 이러세요.”
“나랑 술 한잔 먹자니까?”
“저 빨리 집에 가야 해요.”
퇴근하던 아연이가 회사 앞에서 누군가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딱 한 잔만 마시자는데 왜 이렇게 빼시나?”
“저 미성년자라서 술 마시면 안 돼요.”
“그거야 옛날에 있던 법이고. 지금은 만 16세만 넘으면 마실 수 있잖아?”
“그건 상인급부터 가능한 거고, 천민은 만 19세부터예요.”
“아, 이 천한 년이 더럽게 빼네. 뒈질라고.”
“…….”
“야, 내가 뭐 잡아먹어? 술 먹이고 무슨 짓 한데? 엉? 그냥 외로운 사람끼리 마시자는 거 아니야. X팔!”
“그럼 나랑 마실까?”
갑작스러운 제삼자의 목소리에 남자가 인상을 구겼다.
“어떤 새끼가 말하는데 끼어들고 지…….”
남자가 말하다 말고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너, 넌……?”
“잘 있었냐? 남기 X새꺄?”
성민이 반가움에 씩 웃었다.
자신을 혼수상태에 빠뜨린 녀석이 눈앞에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