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75)
특성흡수 헌터사냥꾼-275화(275/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2부 3화
3. 오남기
10년 전.
남기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다.
1,000명 중 1명만 선택받는다는 헌터로 각성했으니까.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천민에서 벗어날 수 있어!’
아무리 실력이 없다 해도 꾸준히 괴수를 잡으면 누구라도 상위 헌터가 될 수 있다.
‘S급, A급은 바라지도 않아. E급만 돼도 천민 취급을 받지 않을 테니까.’
그 때문에 천민들 사이에서 헌터는 신분을 상승시킬 유일한 기회였다.
성공의 보증수표나 다름없던 것.
거기다 특성까지 좋으면 성장은 한층 더 빨라진다.
‘좋았어! 특성도 B급으로 나쁘지 않아!’
이제는 성장할 일만 남았다며 기쁜 마음으로 뿔토끼 던전을 돌고 있었건만…….
[잠시 후 10분 뒤에 던전이 봉인됩니다.] [던전에 있던 각성자들은 원래 세계로 강제 귀환됩니다.]애석하게도 하늘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던전이 봉인되며 강제로 쫓겨난 것이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자신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헌터들이 던전 밖으로 튕겨 나왔으니까.
‘조금 있으면 다시 열리겠지.’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다려봤지만 웬걸.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던전의 봉인은 풀리지 않았다.
사실상 괴수의 공급이 중단되며 헌터들의 성장도 멈춘 것이다.
‘이, 이럴 순 없어. 난 고작 뿔토끼 던전밖에 돌아보지 못했다고!’
던전을 공략해 본 것도 아니었다.
뿔토끼 몇 마리를 잡은 와중에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막차를 타기는커녕 버스 뒤에 잠깐 매달렸다가 떨어진 꼴.
그렇게 신분 상승의 꿈은 사라졌다.
그것이 남기의 전투력이 0이 아닌 이유였다.
10년째 F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고.
‘X팔. 전투력이 200이면 뭐해. 천민인 건 변함없는데.’
매일 같이 화가 났다.
아예 맛을 보지 못했다면 모를까 이제 막 성장을 만끽하려던 찰나에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내가 먹은 건 고작 체력 룬 1개라고.’
그래도 체력 룬 하나를 먹어서인지 각성하기 전보다는 덜 지쳤다.
그런다고 화가 풀리는 건 아니었지만.
“야 이, X 같은 신입 새끼야.”
퍽! 퍽!
“일 그따위로밖에 못하냐?”
퍽! 퍽-!
그때부터였는지 모른다.
자기 밑으로 들어오는 F급 헌터들한테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한 것은.
그러다 보니 남기는 어느새 F급 헌터들 사이에서 군기 대장으로 불렸다.
실제로 헌터 관리센터에서 신입 헌터들을 지도하는 일을 맡기도 했고.
‘그럼 뭐해. 10년이 지나도 폐급들을 관리하는 건 똑같은데.’
경력이 높아서 봉급이 오르긴 했지만 그래봤자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 정도.
‘이게 다 천민이라서 그런 거야.’
신분 상승은 꿈도 꿀 수 없는 영원한 F급, 폐급 헌터라는 데엔 변함이 없었다.
‘개 같은 세상!’
그런 탓에 남기는 최근에 들어온 성민이라는 헌터를 복날 개 잡듯이 패고 다녔다.
별의별 명분을 다 들어가며.
“너 이 새끼 내가 하라는 거 왜 안 했어? 어?”
“그게 시간이…….”
퍼억-!
“시간이 없으면 만들면 되잖아, 이 X새끼야.”
“죄, 죄송합…….”
퍼억-!
“어디서 이런 병신 새끼가 들어와 가지고.”
성민은 원체 소심한 데다 말투도 어눌해서 괴롭히기 딱 좋았다.
특성도 F급이라 들었고 전투력도 0이라 그런지 더할 나위 없이 만만했다.
같은 천민 신분이었지만 동질감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천민 중에서도 급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였기에.
“이 X팔 새끼야. 아직도 일 못 끝냈어? 내가 퇴근 전까지 끝내라고 했지?”
“죄, 죄송합…….”
“가뜩이나 상사한테 깨져서 기분도 X 같은데. 넌 오늘 뒈질 줄 알아라.”
남기는 성민을 신나게 팼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일까?
조금 과하다고 생각하던 찰나, 일이 터지고 말았다.
구타를 당하던 성민이 결국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다.
“아…… X 됐네. 어떡하지?”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그저 책임을 피하기에 급급했을 뿐.
그랬기에 한 단계 신분이 높은 직장 상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관리자님. 저 이제 어떡하죠?”
“야, 걱정 마. 고작 천민 하나 의식불명 된 거 가지고.”
천민인 남기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지만, 관리자는 그런 걸 신경 쓸 위인이 아니었다.
“위에다가는 물건 꺼내려다 사다리에서 떨어진 거로 보고할게. 병원에도 입조심하라고 말해둘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저,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대신 물 좋은 곳에서 언제 한번 거하게 접대해야 한다?”
“그,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접대 한 번에 몇 달 월급이 깨지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른 척했다간 평생을 괴롭힘당할 테니.
“그리고 이참에 그 새끼 상태 확인할 겸 병문안이나 다녀와라. 그래도 동료 직원이 그 지경이 됐는데 얼굴 비추는 척이라도 해야지.”
남기는 직장 상사의 말대로 마음에도 없는 병문안을 하러 갔다.
그러다 본 사람이 성민의 여동생, 아연이었다.
‘그 새끼한테 이런 여동생이 있었어? X나 예쁘네.’
아연이 마음에 든 남기는 틈틈이 그녀의 공장을 찾아가 대시했다.
혼수상태에 누워 있는 성민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방해꾼이 없어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되면 관리자님께도 소개해 줘야겠어.’
접대하기엔 돈이 많이 드니 성민의 동생으로 퉁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별의별 이유로 그녀는 거리를 뒀고 결국 3개월 동안 한 번도 이렇다 할 만남을 갖지 못했다.
‘오늘은 반드시 저년 자빠뜨린다.’
그런 각오로 여느 때처럼 공장에서 아연을 꼬시는데 이게 웬걸?
혼수상태에 있어야 할 성민이 떡하니 나타난 것이 아닌가?
‘X팔, 어떻게 된 거야?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죽은 듯이 누워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남기가 당황했지만 그보다도 더욱 놀란 건 녀석이 했던 말이었다.
“내 귀가 잘못됐나? 조금 전에 욕을 들은 것 같은데?”
“응. 제대로 들은 거 맞아.”
“뭐?”
여유로운 성민의 반응에 남기는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내 욕했다고 인정하는 거냐?”
“그렇다니까, 이 병신아.”
“뭐?”
설마 했는데 똑똑히 보았다.
자신을 향해 이죽거리며 욕하는 성민의 모습을.
‘저 소심한 놈이 욕을 해?’
두 눈을 뜨고도 믿기지 않았다.
“야. 다시 말해봐.”
“잘 안 들리냐, X발 새끼야? 귓구멍 좀 뚫어줘?”
“이, 이 미친 새끼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더니 정신 나갔냐?”
얼굴이 붉어진 남기가 당장이라도 때릴 것처럼 성민의 앞에 섰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성민은 움츠러들지도 눈빛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 모습에 남기는 순간 다른 사람이 앞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목소리며 얼굴이며 분명 내가 아는 찐따 새끼가 맞는데?’
눈빛이며 기세며, 여러모로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그래봤자 상대는 전투력 0의 폐급.
‘난 전투력 200이라고.’
싸우게 된다면 자신 있었다.
애초에 혼수상태에 빠질 정도로 처맞던 녀석이기도 했으니.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만의 착각이었다.
실제로는 전투력 200이나 0이나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1,000,009위 – 오남기 (만 30세) – 전투력 200 (F급)
미리 랭킹 시스템으로 전투력을 확인한 성민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전투력 200 정도야 쉽게 이길 수 있지.’
굳이 무기를 꺼낼 필요도 없었다.
저렙들 사이에서는 무엇보다 선빵이 중요했으니까.
그 사실을 알기에 성민은 남기가 예측 못 할 타이밍에 주먹을 날렸다.
퍼억-!
“컥!”
기습적인 스트레이트를 맞고 휘청거리던 남기는 이후 안면에 두 번째 주먹을 허용했다.
퍼억-! 퍼억-!
세 번째 주먹까지 맞고 나서야 남기가 뒤로 쓰러졌다.
그러자 기회라는 듯 잽싸게 위로 올라탄 성민이 주먹을 망치처럼 내려쳤다.
뻐억- 뻐억- 뻐억-!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속 공격에 남기는 이렇다 할 저항도 못 했다.
정확히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그저 앞니가 부러지고 코가 주저앉을 때까지 속절없이 맞을 뿐이었다.
“후우.”
언제까지고 때릴 것 같던 성민의 주먹질이 비로소 멈췄다.
남기가 의식을 잃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구경꾼들이 제법 모여 있었다.
대부분이 공장에서 퇴근하던 사람들.
그중에는 동생인 아연도 있었다.
“오, 오빠…….”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동생의 손목을 성민이 잡아끌었다.
“가자. 가면서 이야기하자.”
남매는 그대로 집을 향해 걸었다.
남기라는 쓰레기는 길바닥에 내버려 둔 채로.
* * *
“혼수상태에 있던 오빠가 갑자기 나타나서 놀랐지?”
“어떻게 된 거야?”
성민은 아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몇 시간 전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났고 놀라게 해줄 생각으로 공장에 찾아갔다가 그 광경을 보게 된 거라고.
“내 동생한테 추근대는 꼴을 보니 참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오빠 회사 동료인데 너무 심하게 때린 거 아니야?”
“그 새끼는 나한테 더 심한 짓도 했는걸.”
성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진실을 아연에게 털어놓았다.
“호, 혼수상태에 빠진 게 애초에 그 사람 때문이었다고?”
“응. 사다리에서 떨어졌다고 들었지? 그거 위에서 덮으려고 꾸민 개소리야. 뭐, 천민 하나 죽어 나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세상이긴 하지만.”
“…….”
몰랐던 사실에 충격을 받았는지 아연이 넋 놓고 있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개 같은 새끼네.”
“엉?”
“아, 아니야. 그나저나 여태까지 왜 말하지 않았어. 그 사람한테 괴롭힘당하고 있다고.”
“말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잖아.”
“그래도 가족인데…….”
애당초 이 몸의 원주인은 힘든 일이 있어도 털어놓는 성격이 아니었다.
아마 평생을 괴롭힘당했어도 가족에게 입도 벙끗하지 않았으리라.
‘이제는 달라져야지.’
새롭게 태어난 성민이 서운해하는 동생을 향해 미소 지었다.
“미안. 앞으로는 고민 있으면 가족들이랑 상의한다고 약속할게.”
“정말이지?”
“응.”
‘고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뒷말을 삼킨 성민은 앞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연의 눈엔 지금도 충분히 달라 보였지만.
‘마치 다른 사람이 눈앞에 있는 기분이야.’
과묵하고 소심하던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말투에서 자신감과 여유로움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거기다 군더더기 없는 싸움 실력까지.
‘오빠가 이렇게 잘 싸우는 줄은 몰랐어.’
여태 괴롭힘당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오빠. 그 새끼, 아니. 그 사람 그렇게 놔둬도 괜찮아?”
“걱정 마. 같은 천민끼리 싸운다고 신경 쓸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그게 아니라 같은 회사라며. 나중에 마주칠 텐데 괜찮겠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먼저 집에 들어가 있어.”
“응? 왜?”
“난 어디 좀 들릴 데가 있거든. 먼저 저녁 먹고 있어.”
성민은 아연을 집까지 바래다준 뒤에 발길을 돌렸다.
‘이대로 끝내면 섭섭하지.’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남기와 싸웠던 그 방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