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302)
특성흡수 헌터사냥꾼-303화(303/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2부 31화
31. 출세
‘어떤 새끼가 감히……!’
양조영은 즉시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제도 모르고 대화에 끼어든 놈의 면상을 파악한 뒤 크게 야단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양조영의 생각은 대상의 얼굴을 보자마자 씻은 듯이 사라졌다.
‘헉……. 대, 대영웅 송치현?’
아무리 협회에 영향력이 있다는 양조영조차 8 영웅을 만난 적은 없다.
한마디로 첫 만남인 셈.
그런데도 얼굴을 아는 건 협회에서 행하는 주입식 교육 덕분이었다.
“미, 미천한 몸이 하늘 같은 대영웅님을 뵙습니다!”
양조영이 선창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협회의 헌터가 처음 대영웅을 보면 취해야 하는 예법이었다.
그러자 최성민도 대영웅 앞에서 같은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협회의 헌터는 아니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 대영웅님을 뵙습니다.”
갑자기 아들인 최성민이 부복하자 눈치를 보던 어머니와 여동생도 똑같이 따라 했다.
“그만 일어들 나세요.”
송치현의 명령에 양조영부터 최성민과 가족들까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대영웅이 무슨 볼일로 여길 나타난 거지?’
양조영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최성민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양조영과 다른 점이라면 알면서도 생각을 조정하며 모른 척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대영웅이라는 호칭 옆에 님 자를 붙이며 깍듯하게 대했다는 점이다.
‘생각할 때조차 존칭을 붙이다니. 마음에 드는 놈이야.’
송치현이 최성민을 보며 미소 지었다.
반면 양조영은 행동과 달리 생각할 때 대영웅을 반말로 부르고 있었다.
겉과 속이 다른 부류는 송치현이 가장 싫어하는 부류였다.
첫 만남부터 송치현에게 찍힌 줄도 모르고 양조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영웅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혹시 저를 찾아오신 거라면…….”
“네가 누군데?”
“예? 아…….”
당연히 자신을 찾아왔다고 생각했던 양조영이 당황했다.
“저, 저는 협회 소속의 B급 헌터 양조영이라고 합니다.”
“양조영? 아아, 들어본 거 같다. 네가 양백두 비서실장의 막내아들이지?”
“그, 그렇습니다! 알아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양조영이 고개를 숙였지만 한 번 어긋난 첫인상은 바로잡기 힘들었다.
송치현은 대영웅이라는 호칭과 달리 속이 좁은 인물이었으니까.
“비서실장의 사생아가 여긴 웬일이냐?”
“…….”
순간 양조영은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사생아라는 단어는 그에게 평생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콤플렉스이자 약점이었으니까.
“왜 대답이 없어?”
“아…… 죄송하지만 뭐라고 하셨는지…….”
“방금 한 말도 기억 못 해? 여긴 무슨 일이냐고.”
“티, 팀원에게 전할 말이 있어서 들렀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알아듣겠냐? 자세히 말 안 해?”
송치현은 곽민철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양조영에게 풀겠다는 듯 눈알을 부라렸다.
힘으로도 권력으로도 한참 아래인 양조영으로선 긴장한 기색으로 자세한 사정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최성민이란 헌터가 네가 만든 팀의 멤버다?”
“그, 그렇습니다. 제가 훈련소 때 눈여겨보다가 직접 영입했었습니다.”
“그딴 건 관심 없고, 이 녀석한테 한 제안이 뭔데?”
어째서 밉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양조영은 조금 전에 최성민에게 했던 제안을 그대로 말해줘야 했다.
“4 대 6 비율에 D급 아이템 선물이라……. 그걸로 이 녀석의 발목을 잡으려 했다 이거지?”
“발목을 잡기보단 손을 내밀었다는 표현이…….”
“아이 씨, 어쨌든 그게 그거잖아.”
“그,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거보다 더 좋은 조건을 걸어야겠네?”
“예?”
놀라는 양조영을 뒤로하고 송치현이 최성민을 바라봤다.
“최성민 헌터.”
“옙!”
“너한테 제안 하나 하마.”
“말씀하십시오.”
바짝 긴장한 상태로 쳐다보는 와중에 송치현이 말했다.
“내 밑으로 들어와라.”
“예?”
생각지도 못한 말이라는 듯 되묻자 송치현이 다시 말했다.
“나한테 충성을 맹세하고 직속 부하가 되면 너한테 감독관 자리를 내어주마. 최근에 D급 감독관이 죽어서 자리가 하나 비었거든.”
“아…….”
“어때? 이 정도면 양조영 저 녀석이 말한 보상보다 더 크지 않나?”
확실히 그랬다.
협회의 D급 감독관은 이전 세계에 비하면 청와대의 공무원이나 마찬가지.
위험하게 던전에서 사냥하지 않고 그냥 어슬렁거리며 감독만 해도 비율에 따라 수당이 떨어진다.
즉, 천만 원 단위의 봉급을 받으며 평생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꿀 같은 자리.
그런 자리를 내어준다는 건 분명 혹할만한 일이었으나 최성민에겐 메리트가 없었다.
돈은 많이 벌어도 성장할 기회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최성민은 알고 있었다.
감독관은 명목상 데려다 놓기 위한 자리이고 실상은 자신을 충성심 높은 부하로 성장시키려는 송치현의 속셈을.
그렇기에 거절할 생각은 없었지만 최성민은 모르는 척 연기해야 했다.
-대, 대영웅님께서 처음 보는 내게 왜 이런 제안을……?
생각을 읽은 송치현이 짐짓 모른 체하며 말했다.
“내가 왜 이런 제안을 하는지 궁금할 테지.”
“솔직히 그렇습니다…….”
“네 녀석의 무력을 높이 평가해서다. 내가 실력 있는 부하를 좋아해서 말이야.”
실력만 있어서는 안 된다.
겉과 속이 같아서 생각을 읽기 쉬워야 하고 충성도도 있어야 한다.
다행히도 최성민은 그러한 여건을 모두 갖춘 상태였다.
-내 실력은 어떻게 아시는 거지? 아…… 혹시 전투력이 많이 올라서?
최성민의 생각을 읽던 송치현이 씩 미소지었다.
‘역시 이 녀석은 생각을 읽기 편해서 좋단 말이야.’
송치현은 이곳에 오기 전, 최성민의 이름과 얼굴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구면이었기 때문이다.
‘저번에 노리카네 지고로의 죽음을 조사했을 때 봤던 녀석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그 당시 생각이 단순하고 상사에 대한 충성심도 엿보여서 부하로 두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마주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알고 보니 실력마저 출중한 놈이었단 말이지?’
최성민의 실력이 등급에 비해 월등하다는 걸 알았지만 감독관을 죽였다는 생각 따윈 들지 않았다.
‘저번에 조사했을 때 녀석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마음의 소리를 누구보다 진실로 믿는 송치현으로선 최성민을 반역자로 보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권력에 순응하는 부하로 삼기 좋은 순종적인 헌터로 보일 뿐.
그렇기에 이번에 영입하고자 하는 헌터가 최성민이라는 걸 알았을 때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원하는 부하를 얻었으니 말이야.’
송치현은 이미 최성민을 자신의 부하로 확정 짓고 있었다.
아무리 8 영웅 중에서 말단이라 해도 한 대륙의 통수권자.
‘그런 내 제안을 거절할 리는 없겠지.’
결과야 불 보듯 뻔했지만, 송치현은 명목상 최성민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내 밑으로 들어올 건지, 아니면 저 사생아의 팀에서 썩고 있을 건지. 선택해라.”
‘X발, 왜 자꾸 사생아인 거 밝히고 지랄인지 모르겠네.’
자꾸만 사생아를 언급하자 양조영이 속으로 욕했다.
물론 송치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 듣고 있었지만.
“저는…….”
최성민은 대답하기 전에 양조영의 눈치를 한 번 봤다.
의도된 그 눈짓에 송치현이 즉시 생각을 읽었다.
-양조영 헌터님한텐 미안하지만 이건 흔치 않은 기회야. 무려 존경하는 대영웅님 밑에서 일할 기회라고.
이걸로 답은 나왔다.
들어볼 것도 없었지만 송치현은 명목상으로라도 최성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는 대영웅님 밑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정말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알았다. 이제 나에게 충성을 맹세해라. 그리하면 내가 앞으로 그만한 보상을 내리리라.”
“충성의 서약은 어찌하는지…….”
“그냥 무릎 꿇고 맹세하면 된다.”
최성민이 즉시 부복하며 말했다.
“저 최성민이 대영웅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래. 좋다. 내일 오전 8시에 협회 앞으로 나와라. 내가 직접 널 감독관의 자리에 임명해주마.”
“감사합니다, 대영웅님.”
대답을 들은 송치현이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집을 나갔다.
이것으로 볼일은 다 끝났다는 듯.
“…….”
양조영이 멍한 눈초리로 송치현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봤다.
‘최성민을 이렇게 뺏기다니…….’
눈 뜨고 코베인 격이었지만 그로선 어쩔 수 없었다.
자신에게 대영웅과 경쟁할 깜냥이라곤 없었기에.
양조영이 곁눈질로 최성민을 쳐다봤다.
자신 대신 대영웅에게 붙은 것이 아니꼬웠지만, 이 역시 어쩔 수 없었다.
자신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최성민과 똑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까.
‘그래도 실망이네. 조금의 의리라도 있을 줄 알았건만…….’
화풀이라도 할까 떠올려도 봤지만 양조영은 이내 생각을 지웠다.
최성민은 이제부터 송치현의 비호 아래에 있는 사람.
그를 건들었다간 도리어 자신이 화를 당할지 모른다.
‘그런데 원래 직속 부하를 고를 때 대영웅이 직접 나서기도 하나?’
이해가 안 됐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기…… 죄송합니다. 양조영 헌터님.”
최성민이 미안해하자 양조영이 잠시 노려보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 밖으로 나갔다.
한마디만 남기며.
“넌 이제 팀 크러쉬에서 퇴출이다.”
아무래도 양조영에게 단단히 찍힌 모양.
그런데도 최성민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씰룩이고 있었다.
‘계획대로 송치현의 밑에 들어갔다.’
최성민은 빙의 전부터 곽민철과 송치현의 상하 관계를 알고 있었다.
‘엄청나게 싫어하더라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그렇기에 송치현이 세력을 키우기 위해 인재를 구한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그걸 알기에 여태까지 엘리트로서 폭풍 성장해 왔던 거지. 놈에게 컨택 받기 위해서.’
그 결과, 계획대로 송치현의 직속 부하로 들어갈 수 있었고 암살에도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되었다.
‘역시 첫인상을 좋게 심어두길 잘했어.’
처음 송치현이 복면을 쓰고 조사하러 왔을 때 좋은 인상을 심어두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일이 쉽게 풀리진 않았으리라.
‘비록 양조영의 화를 사게 됐지만 어쩔 수 없지.’
번복할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최성민은 고민 없이 송치현을 선택할 거다.
양조영 따위의 B급 헌터가 8 영웅에 비빌 수준은 아니었으니.
‘그런데 양조영이 양백두의 아들이었을 줄은 나도 몰랐어.’
빙의 전에 최성민은 8 영웅에 대한 모든 것을 조사했다.
거기엔 당연히 곽민철도 있었고 그를 조사하면서 자연히 양백두 비서실장이 협회의 실세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됐다.
‘하지만 양백두의 가족관계까진 파악하지 못했어.’
더구나 사생아였다니 최성민이 모를 법도 했다.
‘양조영 라인을 탔었어도 나름 괜찮았을 것 같지만, 송치현을 공략하기에는 이게 더 확실한 방법이긴 하지.’
이제 엄연히 송치현의 직속 부하가 되었으니 내일부터 협회의 감독관으로 출근하게 된다.
‘팀 크러쉬와 마주칠 일은 앞으로 없겠군.’
그때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가족들이 최성민에게 다가왔다.
“성민아, 아까 그분이 정말로 대영웅님이니?”
“네, 맞아요.”
“근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니? 네가 아까 무릎 꿇고 하던 건 또 뭐고?”
“충성의 서약이에요. 평생을 대영웅님 밑에서 보좌하겠다는 맹세죠.”
“보좌한다고? 그게 무슨 뜻이니?”
“무슨 뜻이긴요.”
최성민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출세했다는 뜻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