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320)
특성흡수 헌터사냥꾼-321화(321/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2부 49화
49. 허윤지의 부탁
낯익은 사람의 등장에 최성민의 눈이 커졌다.
‘허솔지?’
언니인 허윤지만 나오는 줄 알았더니 아연이 친구도 같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학교 쉬는 날이라고 했지?’
아침에 깨우려고 했더니 졸리다며 뒹굴뒹굴하던 동생이 생각났다.
“아, 안녕하세요. 허솔지라고 해요. 저번에 한 번 뵀었죠?”
“응. 아연이 친구니까 말 편하게 해도 되지?”
“네네.”
“옆에는 누구?”
“아, 저희 언니예요. 언니, 인사해.”
“말 안 해도 하려고 했거든?”
까칠하게 받아친 여성이 최성민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허윤지예요.”
“최성민입니다.”
간단하게 통성명하고 나자 허솔지가 끼어들었다.
“그럼 두 분 식사 맛있게 하세요. 전 이만 가볼게요.”
“응? 벌써 가게?”
“네. 애초에 주선자라서 잠깐 따라 나온 거예요. 소개만 해주고 바로 갈 생각이었어요. 두 분 얘기하시는데 방해할 순 없으니…….”
“알겠으니 얼른 가, 얼른.”
허윤지가 손을 휘저으며 빨리 보내려 하자 최성민이 의아해했다.
‘단둘이 무슨 얘길 하려고 동생을 저렇게 보내려는 거지?’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였기에 최성민이 인사하고 가려던 허솔지를 붙들었다.
“이왕 왔으니까 같이 식사하는 게 어때?”
“예? 하, 하지만 제가 있으면 방해가…….”
“그냥 식사 자리인데 방해될 게 어딨어.”
그리 말하자 허윤지가 고개를 저으며 끼어들었다.
“아니야. 넌 방해되니까 얼른 집에 가. 나 최성민 씨랑 긴히 할 얘기 있단 말이야.”
“아…… 그럼 난 빠지는 게 좋겠네.”
하지만 최성민은 허솔지를 놔줄 생각이 없었다.
‘초장부터 저 여자가 원하는 대로 하게 놔둘 순 없지.’
부서는 다르지만 같은 팀장급이었으니 기세 싸움에서 이길 필요가 있었다.
“그냥 셋이서 맛있게 식사하죠. 즐겁게 식사하려고 모인 자리에서 무슨 국가기밀급 대화를 나눌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최성민 씨한테 따로 할 말이…….”
“그런 거라면 나중에 따로 시간 내서 해도 되잖아요. 지금은 좋은 의미로 만났으니만큼 다 같이 식사하면 좋을 거 같은데.”
“음…….”
잠시 고민하던 허윤지가 졌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다 같이 먹죠.”
기세 싸움에선 최성민이 이겼다.
‘이걸로 내가 만만치 않다는 걸 느꼈겠지.’
허윤지의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아쉬운 사람은 허윤지라는 걸 눈치챘으니까.
‘나랑 단독으로 대화하길 원하는 걸 보면 뭔가 부탁할 거라도 있는 모양이야.’
뭔진 몰라도 상대의 페이스에 끌려다닐 생각은 없었다.
“가죠. 근처에 유명한 한정식집이 있어요.”
최성민은 두 자매를 따라 가까운 한정식집으로 들어갔다.
대화하기 좋게 방으로 안내받은 세 사람이 외투를 벗고 자리에 앉았다.
“메뉴는 어떤 걸로 드릴까요?”
“특급 정식으로 3인 주세요.”
메뉴를 고를 틈도 주지 않고 주문을 마친 허윤지가 최성민을 보며 양해를 구했다.
“맘대로 주문했는데 괜찮죠?”
“네, 사주시는 거니 저야 뭐든 좋죠.”
“여기는 특급 정식이 제일 맛있거든요. 가장 비싼 메뉴이기도 하고.”
“몇 번 오셨나 봐요?”
“가끔 장관님이랑 들렀었죠.”
“어떤 장관님이요?”
“조사부 장관님이요. 아, 그러고 보니 제가 깜빡하고 말 안 했네요.”
허윤지가 자신의 부서와 직급을 밝혔다.
“전 조사부에서 팀장을 맡고 있어요. 헌터 관리부 2팀에서 일하고 계시죠?”
“알고 계시네요.”
“입사한 지 이틀 만에 팀장 자리를 꿰찼다는 이야긴 유명하니까요. 최성민 씨가 대영웅님 직속 부하라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걸요?”
“딱히 숨길 만한 일은 아니니까요.”
“제가 아는 건 그뿐만이 아니에요. 훈련소에 입소한 지 일주일 만에 E급 찍고 양조영 헌터님 눈에 띄어서 팀 크러쉬에 들어갔죠? 그러다 감독관 사망 사고에 휘말려 조사까지 받았고요.”
“그런 것까지 알고 계시다니…….”
“제가 폼으로 팀장 자리에 앉아 있는 건 아니거든요.”
“언니, 설마 최성민 씨를 조사한 거야?”
동생이 나무라듯 말하자 허윤지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럼 안 되니?”
“초면에 실례잖아.”
“명색이 조사부 팀장인데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하아…….”
한숨과 함께 잠시 대화가 끊겼다.
어색한 분위기.
“언니…….”
“알아, 안다고.”
조용한 목소리로 신경질 내던 허윤지가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죄송해요, 최성민 씨. 멋대로 조사해서. 기분 나쁘셨나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리고…… 일전에 저희 동생을 위해 힘써주신 점 감사드려요.”
“제가 한 건 별로 없습니다.”
“알아요. 일은 대영웅님이 처리하셨죠. 그래도 최성민 씨 아니었으면 동생은 멍청하게 지금도 빵 심부름이나 하고 있었을 거예요.”
“언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는 듯 동생이 쳐다봤지만 허윤지는 개의치 않았다.
“동생이 많이 물러요. 기껏 신분 상승시켜놨더니 아직도 천민처럼 굴고 있죠.”
“언니! 그런 얘길 왜 여기서…….”
“말 나온 김에 하는 거야. 내가 볼 때 네 성격이 얼마나 답답한 줄 알아?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잡아먹히는 게 세상 이치야.”
“그러니까 왜 굳이 여기서 이러는 건데? 내 욕하려거든 집에 가서 실컷 해도 되잖아. 최성민 씨가 뭐라고 생각하시겠어?”
“뭐라고 생각하긴, 내 말에 공감하시겠지. 최성민 씨도 저랑 같은 헌터니까 아시잖아요. 세상 험난한 거.”
“알죠.”
“거봐. 안다잖…….”
“그런데.”
최성민이 허윤지의 말에 반박했다.
“동생분이 그런 말 들을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요.”
“네?”
“제가 볼 때 동생분은 충분히 강하거든요.”
최성민은 안다.
허솔지가 자신의 동생을 지켜주기 위해 심부름하고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허윤지로선 어이없을 따름이었다.
“얘가 강하다고요? 어딜 봐서요?”
“괴롭힘을 당한다고 꼭 약하다고 볼 순 없죠. 육체적인 면만 가지고는 강함을 규정할 수 없으니까요.”
“무슨 소린지…….”
말이 통하지 않자 최성민이 자세한 내막을 설명했다.
“아, 그래서 심부름을…….”
“원래 남을 헐뜯고 괴롭히는 것보다 남을 지키는 게 더 어려운 법이죠. 그런 면에서 동생분은 충분히 강하다고 봅니다. 조사부에 있으시다면서 자세한 내막은 못 들으셨나 봐요.”
“…….”
허윤지가 한 방 먹은 듯 멍한 표정을 짓는 사이, 음식들이 들어왔다.
말없이 식사하다 보니 침묵이 이어졌다.
허솔지는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듯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허솔지가 밖으로 나가자 최성민이 운을 뗐다.
“이제 슬슬 말해보시죠.”
“뭐를요?”
“목적이 있어서 저를 만나자고 한 거 아닙니까.”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동생과 그리 친해 보이지도 않는데 보답을 하겠다고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보답은 핑계고 누가 봐도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죠.”
“……눈치가 빠르시네요.”
“제가 뭐 도와줄 건 없을 테고…… 대영웅님의 권력이 필요한 겁니까?”
허윤지가 놀랐다는 듯 눈동자를 키웠다.
“거기까지 짐작하시다니……. 괜히 대영웅님에게 이쁨 받고 계신 게 아니었군요.”
“제가 이쁨 받고 있다고요?”
“그럼요. 그렇지 않고서야 입사한 지 이틀 만에 팀장 자리에 앉히고 개인적인 일로 학교에 권력을 사용할 리가 없죠. 아무리 직속 부하라 해도 그런 특혜는 힘들다고요.”
최성민도 느끼고 있었다.
대영웅이 자신에게만 특혜를 베풀고 있다는 것을.
자신을 온전히 성장시키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을.
‘하지만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팀장이란 사람이 이 정도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역시 조사부 팀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본론이 뭡니까?”
“최성민 씨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부탁이요?”
허윤지가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줬다.
“혹시 이렇게 생긴 마크를 본 적 있으신가요?”
흰색 방패에 푸른 칼날 두 개가 교차한 마크였다.
최성민이 고개를 저으며 솔직하게 말했다.
“모르겠습니다만.”
“지난 3년간 저희 팀에서 조사하던 범죄 조직의 마크입니다. 지금은 조사부 장관님의 명령으로 중단됐지만요.”
“이걸 보여주는 이유가?”
“장관님은 손 떼라고 했지만 저는 아직 미련을 못 버렸거든요. 3년이나 추적해 오던 범죄 조직을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하루아침에 없던 일로 하라니 어디 쉽겠습니까?”
아쉬운 표정으로 말하던 허윤지가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대영웅님의 권력이 필요합니다. 분명 대영웅님의 말 한마디면 장관님도 마음을 돌리고 어쩔 수 없이 재수사를 지시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
“도와주십시오. 최성민 씨. 중단되었던 조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대영웅님께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최성민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거절하겠습니다.”
“예? 어째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대영웅님의 권력은 그렇게 막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이쁨 받는다고 하더라도 선을 넘으면 그걸로 끝이죠.”
“…….”
“그리고 두 번째. 저는 아무런 이득도 없이 남을 도와줄 만큼 성인군자가 아닙니다.”
“보상이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정도의 금액으로…….”
“금전적인 보상은 필요 없습니다. 돈을 원했다면 이럴 시간에 던전 감독이나 하면서 뇌물을 받아먹고 있었겠죠.”
“그, 그럼 원하는 게 무엇인지…….”
최성민이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표정으로.
“원하는 건 없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허윤지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게 없다는 뜻이었지만.
“그, 그런…….”
감독관들이 돈에 환장한다는 걸 알고서 막연히 금전적인 보상만 생각하고 있던 허윤지다.
그렇기에 돈에 관심 없다는 말은 그녀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이제 어쩌지?’
부탁이 거절당했을 경우를 염두에 둬야 했건만, 무슨 자신감인지 허윤지는 이후를 생각해두지 않았다.
“최성민 씨.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면…….”
“몇 번을 물어도 제 대답은 같습니다.”
“…….”
그때 마침 화장실에 갔던 허솔지가 돌아왔다.
“…….”
분위기가 이상한 걸 감지했는지 말없이 자리에 앉은 그녀가 두 사람의 눈치를 봤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최성민이었다.
“그럼 얘기는 이걸로 끝났으니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겠습니다.”
“어? 벌써 가시게요?”
“식사도 대충 끝냈고 뭉그적거릴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허솔지에게 웃어 보인 최성민이 허윤지에게도 작별인사를 건넸다.
“식사 맛있었습니다. 언제 또 뵐 수 있으면 뵙죠.”
“그래요…….”
두 사람만 남겨두고 식당을 빠져나온 최성민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대영웅님.”
-최성민? 갑자기 무슨 일이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말입니다.”
-말만 해라. 들어줄 수 있는 건 다 들어주마.
“오늘 하루만 솔로잉할 수 있게 허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평일에는 파티로 사냥하고 주말에는 솔로잉하기로 하지 않았나? 왜 굳이 욕심을 부리는 거지? 그것도 오늘 하루만이라니?
최성민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오늘 하루면 B급으로 승급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