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360)
특성흡수 헌터사냥꾼-361화(361/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2부 89화
89. 구출
원래 최성민은 한새봄의 최근 기억만 지우고 말 생각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영상이 펼쳐져 있으니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알아볼까? 조직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니.’
그런 생각으로 영상을 뒤져봤다.
이내 그녀가 납치당하던 장면을 찾을 수 있었다.
‘할머니의 짐을 들어주다가 납치당했군.’
할머니를 이용해 방심을 유도하는 건 흔한 납치 수법 중 하나였다.
‘인과관계가 있었던 게 아니야.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하기야 인신매매단이 대상을 가려서 납치할 리는 없다.
‘그저 미끼를 던질 뿐이지.’
낚싯줄에 어떤 물고기가 걸릴지는 인신매매하는 놈들도 모른다.
‘그러다 한 번 된통 당한 적이 있었지.’
미끼에 걸린 게 상어인 줄 모르고 낚아챈 바람에 오히려 역으로 당한 적이 있다.
그때부터 인신매매단은 헌터들을 대동하기 시작했다.
한새봄은 그런 헌터에 의해 제압당한 것이다.
‘D급이니까 C급 헌터 둘을 이기긴 아무래도 힘들었겠지.’
납치된 한새봄은 별장으로 옮겨졌다.
처음엔 다른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철창에 갇혔었다.
거기서 이틀 동안 물만 먹고 지내다가 고문실로 옮겨졌다.
그 이후는 지금 보는 바와 같다.
족쇄에 묶여 아이템을 내놓으라는 협박을 받았다가 강간당할 뻔했다.
‘그러니까 납치된 지 나흘째에 내가 나타난 거군.’
이미 알고 있거나 특별한 것 없는 기억들이었지만 도움 되는 정보도 있었다.
‘응? 저건?’
철창에 있던 한새봄이 고문실로 이동될 당시.
그녀가 우연히 본 남자가 있었다.
카키색의 점퍼를 입은 남자로, 팔뚝에 익숙한 마크가 보인다.
‘반란군?’
최성민이 다시 한번 그 장면을 돌려봤다.
남자가 나타나는 순간 화면을 멈췄다.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지만 누군지 모르겠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적어도 지금 죽인 놈들 중엔 없었다.
‘여기 머물다가 떠난 작업자인가? 아니면 고객?’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인신매매단을 방문했고 반란군 점퍼를 입고 있다는 점은 확실했다.
‘도은정의 반란군이 인신매매단과 연관이 있다?’
안 좋은 쪽으로 연관이 있다면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설마 범죄에 가담한 건 아니겠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두 조직 간에 연관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용하기에 따라 쓸만한 정보였다.
또 괜찮은 정보가 있나 싶어 기억을 뒤져봤다.
그러다 보니 한새봄이 두 달 전에 각성한 것은 물론 S급 특성을 받은 사실까지 알 수 있었다.
‘역시 특성에 재능까지 있으니 두 달 만에 D급을 찍는군.’
대영웅들이 직속 부하로서 탐을 낼 만한 인재였다.
‘됐어. 이 이상 볼만한 기억은 없군.’
이제 본래 목적으로 돌아와 최근 기억을 지우기로 했다.
‘여기 있군. 최근 기억.’
관리인으로 변신한 자신이 들어오더니 진학도를 죽인다.
이윽고 은신이 해제되며 검은 가면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변신이 풀리는 장면을 목격한 게 맞았어. 그렇지 않고서야 기억에 남을 리 없으니.’
기억 삭제 능력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변신이 들통나도 쉽게 지울 수 있으니.
‘내가 관리인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최근 기억까지 모조리 지우면 되겠어.’
그리되면 검은 가면은 물론 진학도를 죽인 장면조차도 사라지고 만다.
한새봄으로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순간 진학도가 죽은 게 된다.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상관없어. 변신할 수 있다는 것만 안 들키면 돼.’
계획대로 기억을 삭제했다.
눈을 뜨고 머리에서 손을 뗐다.
한새봄을 보니 눈빛이 흐리멍덩하다.
기억 삭제의 여파로 멍한 상태가 된 것이다.
‘1분만 지나면 정신을 차리겠지.’
그동안 최성민은 검은 가면의 모습으로 대기했다.
본모습을 보여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으음.”
1분이 지나니 한새봄이 눈을 깜빡인다.
정신을 차린 모양.
그러다 최성민이 앞에 있는 걸 보고 흠칫거렸다.
-이, 이 사람은 누구지?
좀 전에 봤음에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니 제대로 삭제된 모양.
-설마 날 고문하려고 온…….
가면을 써서 그런지 첫인상이 좋지 않다.
“경계할 것 없다. 구해주러 온 거다.”
-거짓말.
사실을 말해도 믿지 않는다.
행동으로 보여주기로 한 최성민이 족쇄에 손가락을 걸었다.
티잉-
한새봄이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다른 쪽 족쇄에도 손가락을 걸었다.
티잉-
별로 힘주지 않았는데도 쉽게 끊어진다.
발목의 족쇄까지 전부 제거하고 나서야 한새봄이 경계심을 풀었다.
괴물 보듯 쳐다보는 건 덤이었다.
‘하긴 현재 근력만 12,000이 넘었으니…….’
불균형한 힘을 쓰지 않는 평소엔 근력이 높다.
괴물처럼 쳐다봐도 양심상 반박할 수 없었다.
“따라와라. 탈출을 도와주지.”
최성민이 돌아서 고문실을 나갔다.
잠시 얼떨떨한 얼굴로 상황을 살피던 한새봄도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놀란 눈으로 멈춰 섰다.
진학도의 시체를 발견한 것이다.
‘어, 언제 죽었지?’
애써 기억을 떠올리려 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저기…… 가면……님?”
한새봄의 부름에 최성민이 돌아봤다.
“무슨 일이지?”
“이 사람…… 혹시 가면 님이 죽이셨나요?”
“그래. 내가 죽였다.”
상처를 보니 목을 단칼에 찌른 모양.
‘기억에 없는 걸 보니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죽인 건가?’
의문은 있었지만 한새봄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걸로 검은 가면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자신을 희롱하던 변태를 죽여주고 속박에서 구해줬으니.
“빨리 가자. 이럴 시간 없다.”
검은 가면이 움직이자 한새봄이 놓칠세라 얼른 뒤따랐다.
가기 전에 진학도의 시체에 침을 뱉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철컥- 끼이익-
고문실 문이 열리자마자 한새봄은 인상을 찡그렸다.
갑작스레 빛이 새어 들어와서가 아니었다.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냄새 때문이었다.
‘이건 설마…… 피 냄새?’
코를 막으며 복도로 나간 한새봄은 순간 기절할 뻔했다.
“헉…….”
말도 못 할 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열 구의 시체들. 피로 물든 바닥.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그사이를 지나가는 검은 가면.
한새봄은 직감적으로 누구의 짓인지 깨달았다.
“가, 가면 님이…… 이런 건가요?”
“그래.”
피로 범벅이었지만 시체들의 상태가 비교적 깔끔하다.
전부 단칼에 죽였다는 의미.
시체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면면을 확인하던 한새봄이 놀란 눈초리가 됐다.
전부 안면이 있는 얼굴들이었다.
“설마 조직원들만 골라서 죽인 건가요?”
“그래. 인신매매에 가담한 놈들은 전부 시체가 됐으니 안심해도 된다.”
그제야 한새봄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죽어도 싼 녀석들이 죽은 것이었다.
“이쪽으로.”
검은 가면이 안내하는 대로 움직이던 그녀는 이윽고 어디로 가는지 파악했다.
“안채로 가시는 거예요? 붙잡힌 사람들 풀어주러?”
“그렇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한새봄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구해주려 하다니…….’
검은 가면을 보는 한새봄의 눈에서 존경의 빛이 새어 나왔다.
경계심이라곤 일절 찾아볼 수 없는 눈빛이었다.
검은 가면과 한새봄이 다다른 곳은 안채의 지하실.
커다란 철창 안에 열아홉 명의 사람이 감금되어 있었다.
‘정말 다 죽었는지 감시자도 없어.’
한새봄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최성민은 철창의 자물쇠를 가볍게 뜯어냈다.
티잉-!
문을 연 최성민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나오셔도 안전합니다.”
하지만 수상한 가면을 쓴 채로 말해봤자 들을 리가 없다.
머뭇거리는 사람들을 보다 못한 한새봄이 앞으로 나섰다.
“이분은 여러분을 구하러 오신 헌터님이에요. 경계하실 필요 없어요. 별장에 있던 조직원들도 전부 죽고 없으니 걱정 말고 나오세요.”
“조직원들이…… 죽었다고?”
“저분이 죽인 거야?”
“정말로 우리를 구하러…….”
한새봄의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경계 어린 눈빛이 한층 누그러들었다.
이윽고 하나둘 철창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19명 전원을 지상으로 올려보낼 수 있었다.
승합차가 있는 주차장까지 무탈하게 도착하고 나서야, 사람들의 눈에서 동요가 일었다.
“저, 정말 아무도 없잖아?”
“우리 풀려난 거야? 정말로?”
“이 차만 타면 탈출할 수 있어! 집에 갈 수 있다고!”
최성민은 시체에서 미리 챙긴 차 키를 사람들에게 건네줬다.
“차를 타고 산길을 내려가면 진입로가 나올 겁니다. 도로로 이어지는 길이니, 도시로 가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구해준 은혜는 평생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최성민에게 감사를 표했다.
드르륵-
사람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승합차에 올랐다.
차는 네 대나 있었기에 자리가 부족할 일은 없었다.
최성민이 저마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에게 다가가 당부했다.
“사람들을 모두 내려주고 나면 차는 버리세요. 추적당할 우려가 있으니 절대 집 앞에 주차해 두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검은 가면님!”
어색한 호칭에 최성민이 움찔했다.
‘검은 가면이라…….’
항상 이름으로 불리다가 가면이라 불리니 낯선 기분이었다.
19명의 사람이 세 대에 나눠서 타자, 남은 한 대는 자연히 최성민의 몫이 됐다.
이제 가볼까 싶어서 운전석에 오르는데 누군가 조수석에 올라탄다.
한새봄이었다.
“같이 가요, 가면님.”
“…….”
혼자만 탈 거라고 쫓아내기도 뭐 했기에 고개를 끄덕인 뒤 시동을 걸었다.
이윽고 차들이 하나둘 산길을 내려갔다.
악몽 같던 나날들은 이걸로 끝났다.
* * *
“…….”
“…….”
어색한 침묵이 차 안을 맴돌았다.
최성민은 운전에만 열중했고, 한새봄은 이따금 고개를 돌려 검은 가면을 보곤 했다.
“저기…… 통성명이 늦었지만 제 이름은 한새봄이에요. D급 헌터고요.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
“가면 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말할 것 같나?”
“……아니요.”
정체를 밝힐 거였으면 가면도 쓰지 않았겠지.
그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한새봄은 못내 아쉬웠다.
“은인의 이름은 알고 싶었는데…… 그럼 그냥 가면 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볼 일은 없을 테니.”
“아…….”
한새봄은 더 이상 최성민을 경계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망의 눈으로 보는가 하면, 헤어지기 아쉬워서 이렇듯 고양이 같은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혹시 조수 필요하지 않으세요?”
“……무슨 뜻이냐?”
“계속 이렇게 활동하실 생각 아니세요? 범죄자들 처단하면서요.”
“…….”
“그런 거라면 옆에서 제가 도와드릴게요. 혼자선 힘들잖아요. 운전이라던가 아니면 밥이라도 차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집 주소나 불러라.”
“그냥 저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고아로 자라서 부모님도 없어요.”
“안 돼.”
최성민의 어조는 단호했다.
“처음 보는 날 따르겠다고? 뭘 믿고?”
“절 구해주셨잖아요. 믿음은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닌가요?”
“어쨌거나 조수는 필요 없다. 나 혼자서도 충분해. 같이 지내면서 정체를 밝힐 생각도 없고.”
“정체는 안 밝히셔도 돼요. 그냥 저 필요할 때만 불러주시면…….”
“그렇다면 평생 부를 일이 없겠군. 필요가 없으니까.”
“…….”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한새봄이 풀죽은 얼굴이 되었다.
“정 날 도와주고 싶으면 더 강해져라. 보니까 재능도 있는 것 같은데.”
“네? 정말 그래 보여요?”
‘나답지 않게 말실수를 했군.’
초면일 텐데 마치 잘 아는 것처럼 말해버렸다.
전부터 재능 있다고 느꼈던 생각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것이다.
그런다고 문제 될 건 없었지만.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벌써 D급에 오른 걸 보면 재능 있다고 할 수 있지.”
“아…… 역시 눈썰미도 보통이 아니시네요.”
별거 아닌데도 띄워주는 걸 보면 어지간히 눈에 들고 싶은 모양이었다.
“제가 더 강해져서 발목 잡지 않을 정도가 되면 조수로 받아주시겠다는 거죠?”
“받아주는 게 아니라, 생각은 해보겠다는 거지.”
“알겠어요. 가면 님이 시키는 대로 더 강해질게요. 지금보다 더 강해져서 꼭 인정받을 거예요.”
‘겨우 떨쳐냈군.’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마지막까지 안심하기엔 일렀다.
“그러니까 번호 좀 알려주세요. 나중에 연락할 수단은 있어야 하잖아요?”
‘이게 목적이었나?’
최성민은 고개를 저으며 끝까지 철벽을 쳤다.
“안 돼.”
“힝…….”
“대신 집 주소를 알려주면 나중에 필요할 때 찾아가도록 하지.”
“정말요?”
언제 그랬냐는 듯 화색이 된 한새봄이 주먹을 쥐며 기뻐했다.
“그러니 당장은 성장에만 집중해라. 전투력 갱신 때마다 지켜볼 테니.”
‘또 구해주게 만들지 말고.’
뒷말은 삼켰다.
또 만날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