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386)
특성흡수 헌터사냥꾼-387화(387/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2부 115화
115. 고객
멜빈은 크리스토퍼의 가명이다.
희망의 날개 단장이기도 하고.
‘설마 박희준에게 인신매매단을 소개해준 게 크리스토퍼였나?’
생각을 읽어보니 확실했다.
박희준은 그동안 크리스토퍼와 교류하고 있었다.
‘공식적인 교류는 아니겠지.’
비공식. 즉, 내통일 가능성이 컸다.
‘이 새끼, 크리스토퍼의 첩자였군.’
처음부터 첩자였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박희준이 혁명에 들어온 건 2년 전이었고 크리스토퍼가 희망의 날개를 장악한 건 최근이었으니.
‘아마 박희준의 성향을 알고 구워삶았겠지.’
돈으로 구워삶았든, 성매매로 구워삶았든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확실한 건 박희준의 기억을 엿봐야 한다는 거야.’
쓸데없이 고문하고 협박하는 것보단 기억을 보는 게 더 쉽고 간단하다.
첩자의 머릿속이라면 도움이 되는 정보가 많을 거다.
“저,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즐거운 파티 보내십시오.”
박희준이 인사하고 떠나려 했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박희준 씨.”
“예?”
최성민이 주변 눈치를 보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신매매단에서 성매매하고 있었죠?”
“……!”
박희준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표정 관리 더럽게 못 하네.’
저건 누가 봐도 들켰다는 표정이지 않은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박희준이 입술을 몇 번이고 달싹거렸다.
“놀라지 마세요. 저도 같은 고객이니까.”
“예?”
“일단 여기 말고 조용한 곳에서 얘기 좀 할까요? 드릴 말씀이 있거든요.”
최성민이 따라오라는 듯 앞장섰지만, 박희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 고민하는 거다.
도망가야 할지, 따라가야 할지.
최성민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뭐 하세요? 할 말 있다니까요?”
“…….”
“멜빈 님의 전언인데…… 안 들으실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박희준의 고민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인신매매단은 물론 멜빈의 이름까지 나왔다.
‘확실해. 최성민 헌터도 나랑 같은 고객이야.’
그제야 안심했는지 박희준의 발이 움직였다.
“아, 예. 갑니다.”
최성민이 속으로 비웃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병신.’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는 박희준을 보고서 최성민이 앞장섰다.
인적이 드문 으슥한 골목으로 녀석을 유인했다.
“멜빈님의 전언이 있다고요?”
“예. 그전에 잠깐 뒤 좀 돌아보세요.”
“네? 뒤는 왜…….”
박희준이 고개를 돌린 그때.
퍽- 털썩-!
최성민이 목덜미를 쳐서 기절시켜버렸다.
“왜긴. 기억을 봐야 하니까 그렇지.”
중얼거린 최성민은 곧장 박희준의 머리를 짚어 기억을 살폈다.
어차피 시간은 많기에 최근 기억부터 찬찬히 살펴봤다.
‘이 자식. 최근에 인신매매단에 들렀었군.’
새벽에 인신매매단을 찾았다가 시체들을 보고서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내 작품을 보고 도망가는 건 이해되는데…….’
여동생이 그런 짓을 당하고 난 뒤에도 인신매매단에 들른 건 이해가 안 됐다.
‘X대가리가 뇌를 지배했구만?’
이후의 기억을 살펴보니 크리스토퍼와 접촉하는 모습도 보였다.
‘기억 속의 박희준이 크리스토퍼에게 멜빈이라고 부르고 있어.’
가명이라는 가설은 이제 확실해졌다.
몇 개의 기억을 더 본 뒤에야 최성민은 상황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크리스토퍼가 먼저 박희준에게 접근해서 정보를 흘렸어. 성매매에 빠져들도록.’
크리스토퍼는 인신매매단을 연결해줬을 뿐, 유혹에 빠진 것은 순전히 박희준이었다.
‘연결해 준 이유야 뻔하지.’
아마 박희준의 약점을 쥐고 흔들기 위해서일 거다.
‘모르긴 몰라도 성매매 장면을 여러 개 녹화해 뒀을 거야.’
고객의 가족도 납치하는 판국에 몰래카메라로 약점을 만들어두지 않았을 리 없다.
‘아마 결정적인 순간 박희준을 배신시켜서 조직에 타격을 입힐 생각이겠지.’
자고로 조직이란 조그만 구멍에도 갈가리 찢어지기 마련.
그냥 찢는 것보다 구멍을 내서 찢는 게 더 쉬운 것처럼 말이다.
‘크리스토퍼 그놈이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군. 남의 조직에 이런 벌레를 만들어놓다니.’
박희준은 조직에 균열을 일으킬만한 벌레다.
성매매 영상을 뿌린다고 협박한다면 충분히 조직을 배신할 놈이다.
‘대충 계획은 다 파악했다.’
최성민이 머리에서 손을 뗐다.
크리스토퍼가 무슨 목적으로 박희준을 꼬드겼는지 파악은 끝났다.
어떻게 해야 녀석의 계획을 무산시킬 수 있는지도 떠올랐다.
‘놈이 박희준을 이용하기 전에…….’
멍한 상태의 박희준을 어깨에 들춰 맨 최성민이 어딘가로 달렸다.
‘내가 먼저 선수를 친다.’
은신을 쓰자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 * *
“으으음…….”
눈을 뜬 박희준이 주변을 둘러봤다.
어딘가 익숙한 공간이다.
‘여, 여긴 회의실이잖아?’
불 켜진 회의실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박희준만이 혼자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왜 여기 앉아 있는 거지?”
기억해 보려 했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 여기에 왔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기억 안 나?”
“히익!”
난데없이 들린 목소리에 박희준이 화들짝 놀랐다.
스르륵-
최성민이 은신을 풀었다.
“미안. 놀라게 할 마음은 없었어.”
“뭐, 뭡니까! 당신?”
“조용해. 누가 듣고 들어오면 어쩌려고.”
“…….”
입을 다물긴 했지만, 박희준은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우선 최성민이 반말하는 것부터 이해 불가였다.
“저한테 왜 반말하는 겁니까?”
“같은 고객이잖아.”
고객이라는 말에 박희준이 기억을 더듬었다.
‘맞아. 나 최성민 헌터를 따라가고 있었지?’
멜빈의 전언이 있다며 따라오라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지만.
“정말 당신도 고객입니까?”
“두말하면 잔소리지. 아직도 의심해?”
“그야…… 고객이라고 이마에 쓰여 있는 건 아니니까…….”
“알았어. 확실하게 증명해 주지.”
최성민이 핸드폰에 적힌 무언가를 보면서 말했다.
“석 달 전, 7월 3일 새벽 12시 30분. 인신매매단에 처음으로 방문했던 날 맞지?”
박희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 맞습니다.”
“그 뒤 일주일인 10일에 두 번째 방문, 또 일주일인 17일에 방문, 다음 달 1일 새벽 2시경 방문…….”
최성민이 박희준의 성매매 기록을 줄줄이 읊었다.
“9일, 14일, 21일, 31일. 그리고 이번 달 8일까지. 여태까지 인신매매단에 총 12회를 방문했어. 그렇지?”
“저, 정확합니다.”
“방문 목적은 12회 전부 성매매였고. 맞나?”
박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이었다.
“이제 믿겠지? 나도 너처럼 인신매매단을 이용해봐서 잘 안다고.”
“그런데 그런 정보들은 어떻게…….”
“멜빈 님에게 부탁하니까 알려주시더라. 나도 멜빈 님 소개로 인신매매단을 알게 된 거거든.”
“아…….”
박희준이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 이상 그의 눈빛에서 의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최성민 헌터님도 저랑 같은 고객이었을 줄은 몰랐네요.”
“나도 몰랐어. 멜빈 님이 말해주기 전까지는.”
“그나저나 멜빈 님의 전언이라는 건?”
“아, 별거 아니야. 최근에 인신매매단에 좋지 않은 일도 생기고 그래서 꼬리가 밟힐 수 있으니까 당분간 이용은 자제하라더라고.”
“아…… 그렇습니까?”
생각보다 싱거운 지령에 박희준이 실망하고 있을 때, 최성민이 대화에 불을 지폈다.
“그나저나 인신매매단에서 성매매한 얘기나 해봐. 어땠어? 좋았냐?”
“하하…… 좋으니까 했겠죠?”
“하긴. 기록 보니까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갔더라.”
“정말 황홀하더라고요. 특히 강제로 하는 게…… 크흠. 제가 그런 쪽을 좋아하는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큭큭, 한 번 맛 들이면 벗어나기 힘든 게 이 바닥이지.”
“맞아요. 흐흐흐.”
같은 인신매매단 고객이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둘은 20분 가까이 대화를 이어갔다.
“저희 은근히 대화가 잘 통하네요.”
“그러게 말이다. 야한 얘기를 해서 그런가?”
“아, 야한 얘기 하니까 자꾸 생각나네요. 또 가고 싶다.”
“참아. 멜빈 님이 당분간 사리라고 했잖아.”
“그래야죠. 혹시 다른 인신매매단 위치 아세요? 제가 이용하던 곳은 망했는지 연락이 안 되더라고요.”
‘직접 목격해 놓고 모른 척은.’
속으로 조소를 날린 최성민이 미소와 함께 말했다.
“알지. 연락처 줄까?”
“오오, 그럼 땡큐죠!”
들뜬 얼굴로 대답하던 박희준에게 최성민이 핸드폰을 보여줬다.
“아, 이 번호예요?”
최성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퍽-!
대답 대신 목덜미를 쳐서 기절시킬 뿐이었다.
“후우. 이런 새끼 장단에 맞춰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네.”
나름대로 주워들은 정보들을 가지고 인신매매단을 이용해본 척 속였지만…….
“역해서 대화할 수가 있어야지.”
한통속인 것처럼 꾸미려니 욕지기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역겨운 새끼.”
그리 말한 최성민이 화분 사이에 숨겨놓은 핸드폰을 꺼냈다.
“어디, 영상은 잘 찍혔나 볼까?”
잘 찍혔다.
그것도 박희준의 모습이 보이게 아주 잘.
‘됐어. 이제 이 녀석의 기억을 지우기만 하면…….’
최성민의 검은 손이 박희준의 머리에 닿았다.
* * *
“헉!”
화들짝 잠에서 깬 박희준이 주위를 둘러봤다.
“여, 여긴……?”
다름 아닌 자신의 차 안이었다.
“크윽…….”
갑작스레 두통이 밀려온다.
목덜미도 왠지 모르게 뻐근하다.
‘내가 왜 여길……?’
잡히지 않는 먹구름처럼 기억이 흐릿하다.
박희준이 두통을 참아내며 최근 기억을 떠올려봤다.
‘그래. 여동생이 혼자 가기 무섭다고 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었지?’
그 이후에 줄곧 차 안에 있었던 건가?
왜 이렇게 기억이 끊긴 느낌이 날까?
‘마치 필름이 끊긴 느낌이야.’
피곤했는지 나도 모르게 깜빡 잠들었나 보다.
피식 웃은 박희준이 상념을 떨쳐버렸다.
떠오르지도 않는 걸 떠올리려 해봤자 머리만 아프다.
차에서 내린 뒤 파티장으로 갔다.
“응? 파티가 벌써 끝났나?”
시간이 남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째 뒷정리 중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뒤늦게 시간을 확인한 박희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벌써 12시라고?’
어느새 2시간이 지나있었다.
‘잠깐, 그럼 2시간 동안 차 안에서 잠이나 자고 있었던 거야?’
깜박 졸았다고 하기엔 어처구니없이 시간을 날려버렸다.
‘설마 치매 같은 건 아니겠지?’
기가 막힌 상황이었지만 다음 날 아침.
박희준은 더욱 기가 막힌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야, 박희준!”
아침부터 난데없이 단장의 불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