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389)
특성흡수 헌터사냥꾼-390화(390/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2부 118화
118. 굴러들어온 떡
협회장실에 들어선 최성민은 뜻밖의 손님을 마주하게 됐다.
“곽민철?”
미성의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곳엔 금발의 여성이 있었다.
‘멜리사 라모스?’
만 나이 33세.
웨스트랜드의 4 영웅 중 말단.
8 영웅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홍일점.
그녀가 눈앞에 있었다.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응?”
벌떡 일어선 그녀가 움직이자 곁에 있던 사내들이 따라 움직였다.
실로 벽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덩치의 사내들을 보며 최성민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이 녀석들이 멜리사를 호위하는 녀석들.’
멜리사는 전투력이 200만으로 웨스트랜드에서 가장 약한 대영웅이지만.
‘항상 그림자처럼 호위들이 붙어 있다지.’
통칭, 배리어.
그들이 지금 보는 네 명의 덩치들이었다.
‘하나같이 전투력이 150만을 넘는 S급 헌터들이다.’
분별하는 눈을 통해 보였다.
멜리사가 데리고 다니는 호위가 단순히 몸빵용이 아니라는 것을.
“협회장이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워도 돼?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짜증 난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는 멜리사를 보며 최성민이 취할 태도는 하나였다.
“죄, 죄송합니다. 멜리사 님.”
머리를 숙이며 약자의 태도를 보이는 것.
그것이 웨스트랜드의 대영웅에게 곽민철이 취해야 할 태도였다.
어디까지나 전투력이 높은 건 멜리사 쪽이니까.
아무리 동료이자 8 영웅이라고 포장해도 서로 간에 서열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봐, 곽민철. 우리 구면이지?”
곽민철을 연기하는 최성민으로선 초면이다.
만난 기억도 없고.
하지만 이미 사전 조사를 다 끝내놨기에 뭐라 답해야 할지는 분명했다.
“……예. 구면입니다.”
“몇 번 봤더라? 예전에 보스 레이드 할 때 한두 번 마주쳤나? 화상 회의 때 두어 번 마주치고?”
지난 10년 동안 마주친 적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
그만큼 곽민철과 멜리사 간에는 교류가 적었다.
같은 8 영웅이지만 대륙이 다르니 그도 당연했다.
“우리가 어쩌다 얼굴만 봤지, 이렇게 대화 나누는 것도 처음이고 친한 사이가 아니라는 건 알아.”
“…….”
“하지만 그렇다고 온종일 연락을 씹어버리면 내가 기분이 나쁘지 않겠어?”
“죄송합니다.”
“연락도 안 되고 한참을 기다렸잖아. 어디서 뭐 하다 이제 온 거야?”
“던전 좀 돌고 왔습니다.”
“던전? 그래서 여태 통화가 안 된 거구나?”
이유를 들었지만, 멜리사는 여전히 아니꼬운 표정이었다.
“그런데 무슨 A급 던전을 온종일 돌아? 전투력 180만이면 반나절도 안 돼서 컷할 수 있을 텐데?”
“…….”
“너 일부러 내 전화 씹은 거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던전 돌고 왔다는 놈이 옷에 먼지 하나 묻어있지도 않고.”
“제가 들어간 곳은 S급 던전입니다.”
“S급?”
멜리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루 만에 돌 수 있는 S급 던전이 있나?”
“칠흑의 성이라고 있습니다.”
“거길 다녀왔다고?”
칠흑의 성은 멜리사와 호위들이 들어가도 공략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짜증 나게 자꾸 거짓말이네.”
“정말입니다.”
“너 말이야. 내가 얼마나 지랄 같은 성격인지 아직 모르지?”
안다.
멜리사의 성격이 얼마나 집요하고 까탈스러운지.
그렇기에 여기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죄송합니다.”
최성민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멜리사 님의 심기를 거스르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시지요.”
“…….”
지금은 진지하게 사과해야 할 타이밍이다.
자신의 말의 거짓이건 말건 해명해 봐야 소용없다.
‘이년이 듣고 싶은 말은 사과일 테니.’
사과를 듣기 전까지 멜리사는 자신을 달달 볶을 것이다.
그럴 바엔 고개를 숙이며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는 것이 차라리 낫다.
“제법 눈치는 빠르네? 판단 좋았어.”
멜리사는 남자들을 항상 자신의 발밑에 두고 싶어 하는 성격이다.
건장한 남성을 호위로 부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앉아. 할 얘기가 많으니까.”
“마실 거라도 내올까요? 자몽 주스? 오렌지 주스?”
“자몽 주스가 있어?”
“물론입니다.”
“내가 자몽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대?”
“몰랐습니다. 그냥 여러 가질 준비해 둘 뿐이죠.”
“자몽 주스 내와 봐. 호위들도 마시게 캔 커피 같은 것도 좀 가져오고.”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밖에서 대기하던 비서에게 마실 것을 시키던 최성민이 입술을 잘근 씹었다.
‘난데없이 멜리사가 찾아올 줄이야…….’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다.
대영웅이 둘이나 죽었으니 웨스트랜드에서도 대책 회의를 했을 터.
놈들의 성격상 곽민철이 혼자서 이스트랜드를 지배하게 두진 않을 것이다.
‘알고 있었어. 하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지. 더구나 멜리사를 보낼 줄도 몰랐고.’
예상치 못한 변수.
하지만 변수라고 꼭 부정적인 상황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씨익-
최성민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먹잇감이 알아서 굴러들어왔구나.’
대영웅을 암살해야 하는 최성민에게는 굴러들어온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사실을 멜리사는 전혀 모르고 있겠지만.
‘일단은 비위 좀 맞춰주며 정보 좀 얻어야겠어.’
비서가 준비한 음료를 받아든 최성민이 직접 멜리사 앞에 놓았다.
탁-
“여기 있습니다. 멜리사 님. 다른 호위들 것도 가져왔습니다.”
“그래. 얘들아, 캔 커피 하나씩 가져가서 먹어.”
“감사합니다. 주인님.”
호위들이 캔 커피를 챙겨가는 와중에 멜리사의 생각을 읽어봤다.
‘호위들을 무슨 애완견 정도로 생각하고 있군.’
권력에 취한 대영웅들은 하나같이 생각하는 게 이 모양이다.
“으음, 맛있어.”
“멜리사 님? 하실 말씀이란 게……?”
“방해하지 말고 좀 기다려줄래? 모처럼의 휴식인데 짜증 나게 일 얘기나 하라고?”
“죄송합니다.”
고개 숙여 사과한 최성민이 뻣뻣한 자세로 말없이 기다렸다.
둘 사이엔 오직 주스 마시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러던 멜리사가 입을 연 것은 주스를 거의 다 마셨을 때였다.
“말 잘 듣네. 얌전히 기다렸으니 얘기해 줄게. 내가 온 목적을.”
후루룹 주스를 마무리한 그녀가 컵을 내려놓았다.
“이스트랜드의 전권을 나한테 넘겨.”
“예? 그게 무슨…….”
“협회장 자리를 나한테 내놓으라고. 이제부터 이스트랜드는 내가 지배할 테니까.”
최성민이 여전히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멜리사가 픽 웃음을 흘렸다.
“뭘 놀라고 그래? 그럼 이 커다란 땅덩어리를 너 혼자 독차지할 생각이었어? 뭐, 웨스트랜드에 비하면 X도 아닌 크기지만.”
“저, 저는 그럼 뭐하고요?”
“뭐하긴. 넌 보조로 내 옆에서 잡무들을 처리해야지. 안 그래도 비서실장 자리가 빈다며? 네가 차지하면 딱이겠네.”
“…….”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최성민의 속내는 달랐다.
‘역시 이렇게 나오는 건가?’
대영웅 둘이 죽은 이상 이렇게 되는 것은 기정사실.
곽민철 혼자 관리하도록 둘 것 같지 않았다.
“다른 영웅들도 아는 겁니까……?”
“참나, 그럼 나 혼자 독단으로 결정하고 왔을까 봐? 당연히 알고 있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성재 님이 결정하신 사안이야. 불평하려거든 그분께 직접 말해보던가.”
“…….”
대영웅들 사이에서 우성재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다.
그의 말이 곧 법이고 정의이며 규칙이다.
우성재에게 반기를 드는 건 법을 어기는 거나 다름없다.
“우성재 님이 하신 말씀이라면…… 알겠습니다. 전권을 위임하도록 하죠.”
“잘 생각했어. 내일부터 인수인계하도록 하고 절차가 끝나면 그때부턴 내가 공식적으로 협회장이 되는 거야. 비서실장 자리도 남아있으니 한번 생각해 보고.”
“…….”
“뭐야, 그 표정은? 설마 나한테 반항하려는 건 아니지?”
“아닙니다. 그냥 멍 때렸을 뿐입니다. 반항은요, 무슨.”
“하긴 전투력도 180만밖에 안 되는 네가 그런 생각을 했을 리가 없지.”
멜리사의 전투력은 200만으로 별 차이는 나지 않았지만, 문제는 호위들이었다.
“혹시라도 반항을 꿈꿨다면 꿈으로만 그쳐. 너 따위가 내 호위들을 뚫을 방법은 없으니까.”
“명심하겠습니다.”
150만 전투력의 호위들은 괜히 배리어란 호칭이 붙는 게 아니었다.
‘멜리사의 특성은 아군이 받는 피해를 99% 줄여주는 특성. 이를 이용하면 호위들은 그야말로 무적이 된다.’
호위들이 작정하고 멜리사를 둘러싼다면 뚫을 방법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나저나 곽민철.”
“예.”
“이스트랜드의 대영웅이 둘이나 죽은 건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아무런 보고도 하지 않았지?”
멜리사가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답 여하에 따라 곽민철을 처분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성민 역시 지금이 중요한 타이밍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응? 몰라?”
“예. 다른 분들처럼 저도 랭킹창을 본 후에야 알았습니다. 송치현과 코고가 죽었다는 것을…….”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믿든 안 믿든 저는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표정은 물론 목소리마저도 진중했다.
거짓말이라고 보기 힘든 모습에 멜리사의 눈매가 좁아졌다.
‘이걸 믿어야 해, 말아야 해?’
연기인지 아닌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다른 대영웅들조차 속였던 그였으니까.
“아무리 말단 중의 말단이라지만 그래도 둘 다 대영웅으로 추앙받던 놈들이야. 그런 놈들이 갑자기 죽을 이유가 뭐가 있어?”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둘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뭐야? 그럼 서로 싸우다가 공멸하기라도 했다는 거야?”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그렇게 볼 수밖에요.”
골똘히 생각하던 멜리사가 단서를 찾고자 이것저것 물어봤다.
시체는 발견하지 못했는지,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게 언제인지 등등.
그러나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려고 해도 이렇다 할 증거가 없었다.
‘정말 이 녀석 말대로 둘이 싸우다 죽은 건가……?’
이유를 알아내라는 우성재의 지시가 있었기에 대충 조사할 수가 없었다.
‘일단 지금 들은 거라도 보고해 보자.’
멜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니 가봐.”
“예, 그럼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주십시오.”
탁-
곽민철이 물러나자 멜리사가 핸드폰을 들었다.
우성재에게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 * *
협회장실을 나온 최성민은 고민 중이었다.
‘멜리사. 저걸 어떻게 해야 할까?’
내일 인수인계를 마치면 영락없이 협회장 자리를 내줘야 한다.
‘협회장 자리를 위임받았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순간 곽민철의 생명은 끝이야.’
인수인계야 하루 정도면 끝나는 일이었기에 더는 끌 시간이 없다.
이대로 멜리사가 이스트랜드를 집어삼키도록 놔둘 수 없다.
‘죽여야 해. 해가 뜨기 전에.’
뒷수습이 문제지만 생각해둔 방법이 있다.
지이잉- 지이잉-
곽민철의 핸드폰이 울리자 최성민이 받았다.
“예.”
-나야. 할 말 있으니 협회장실로 와봐.
“금방 가겠습니다.”
이윽고 전화를 끊은 최성민이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