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398)
특성흡수 헌터사냥꾼-399화(399/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2부 127화
127. 혁명을 찾아온 두 사람
류종익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희망의 날개 단장님이 오셨다고?’
마중 나가려고 문 앞으로 다가가는 그때, 작전실로 들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웨스트랜드 반란군의 단장, 멜빈 에르난데스였다.
“다들 여기 계셨군요.”
“메, 멜빈 님?”
당황하는 류종익을 향해 크리스토퍼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반갑습니다. 류종익 단장님. 이렇게 마주하는 건 두 번째인가요?”
“연락도 없이 여긴 어떻게……?”
“하하, 불쑥 찾아와서 불편하셨나요?”
“아, 아닙니다.”
솔직한 말로 불편했지만, 류종익은 크리스토퍼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먼저 손을 내밀어준 유일한 동맹군인 데다 전투력도 자신보다 20만이 더 높다.
무엇보다 대의를 성사시키기 위해선 희망의 날개 측의 도움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고마우면서도 어려운 존재였다.
“당장 만나 뵙고 싶은데 메일로 연락하기엔 답답해서 말이죠. 갑자기 찾아와서 불편했다면 죄송합니다.”
“괘, 괜찮습니다. 일단 이쪽으로 오시지요.”
류종익은 크리스토퍼를 상석으로 이끌었다.
작전실에 있던 나머지 단원들은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눈치껏 빠져주었다.
이윽고 작전실에 둘만 남자 류종익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급히 찾아오신 이유가……?”
“첩보를 들었거든요.”
“첩보요?”
“단장님께서 협회장이 나오는 동영상을 입수했다는 첩보 말입니다.”
“……!”
류종익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그걸 어떻게……!”
“새벽에 헌터 양성소를 터셨죠? 소장실에서 물건을 입수했고요.”
“…….”
놀라던 류종익의 표정이 이내 싸늘해졌다.
크리스토퍼가 말하는 것들은 외부인이 알아선 안 되는 고급 정보.
첩자와 내통한 게 아니고서야 알 도리가 없다.
“아이고, 살기 좀 거두시죠. 무섭습니다.”
“……어떻게 아는 겁니까?”
“별거 아닙니다. 헌터 양성소가 습격받았다는 건 어느 정도의 정보력만 있으면 알 수 있는 사실이죠. 동영상에 관해선 양성소의 소장을 협박해서 알아낼 수 있었고요.”
“그걸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알아낸 겁니까?”
“제가 행동력이 좀 빠르거든요.”
결국 자체적으로 조사해서 알아냈다는 소리.
류종익으로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오해했나 보군요.”
“하하, 오해가 풀렸다면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무슨 오해를 했길래 그렇게 살벌한 눈빛으로 보신 건지…….”
“내부에 첩자가 있다는 걸 알아버려서요. 저도 모르게 날을 세웠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저런…… 첩자라니. 그것참 골치 아프겠네요.”
걱정하는 연기를 하던 크리스토퍼가 속으로 미소 지었다.
‘다행히 남일우가 발각되진 않은 모양이군.’
첩자가 들키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이용하면 될 일.
여차하면 남일우를 죽이고 꼬리를 자를 생각이었던 크리스토퍼가 목숨을 유보하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협회장이 나오는 동영상 말인데…… 저도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내용은 소장을 협박해서 대충 들었지만 직접 보면 앞으로의 작전을 구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요.”
“물론입니다. 잠시만요.”
노트북을 가져온 류종익이 품 안에서 목숨처럼 간직하고 있던 USB를 꺼냈다.
“한 번 보시죠.”
영상이 재생됐다.
누가 봐도 곽민철로 보이는 사내가 살인을 저지르는 영상이었다.
“흐음…….”
영상이 끝나고 나자 크리스토퍼는 난감함을 감추기 위해 애써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이게 인터넷에 퍼지면 곽민철의 이미지는 끝이야.’
여차하면 전국적으로 데모와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아무리 힘이 우선시되는 사회라지만 사람이란 혼자 살 수 없는 법.
대영웅이라고 여론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
“혹시 이 영상을 어딘가에 공유하거나 복사하셨습니까?”
“아니요. 영상은 양성소에서 가져온 그대로입니다. 뭔가를 할 새도 없었거든요.”
“그럼 나중에는 공유할 생각이 있다는……?”
류종익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저만 보기엔 아까운 영상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용할지는 차차 생각해봐야겠습니다만 언젠가는 시민들에게 공유해야죠. 그들도 지도자의 민낯이 어떤지는 알 권리가 있으니까요.”
“……참 좋은 생각이시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크리스토퍼는 당장이라도 류종익에게서 USB를 뺏고 싶었다.
‘참자. 힘으로 뺏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니.’
크리스토퍼는 되도록 힘보다는 지능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싶었다.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서 궁지로 몰아넣은 다음 완벽하게 말살해야 해.’
정체를 들키지 않은 채로 혁명과 희망의 날개를 한 곳으로 몰아 죽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스파이 노릇을 하며 단장의 자리를 꿰찬 것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이성 친구인 민철이 불리해질 수 있는 일이었다.
‘민철을 도와주기 위해선 동영상을 뺏어야 해.’
고심하는 척 턱을 매만지던 크리스토퍼가 넌지시 말했다.
“단장님. 이 동영상 말입니다.”
“예.”
“조작이 아니라고 확신하실 수 있으십니까?”
“조작……이요?”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안 되는 게 없지요. 이런 살인 영상 정도는 딥페이크 기술로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법입니다.”
“설마요……. 양성소의 소장이 개인 금고에 소중히 보관해 놓은 영상인데 조작일 리가…….”
“그건 확인해보기 전까지 모르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죠.”
류종익이 인정하는 순간, 크리스토퍼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올라갔다.
‘인정했다 이거지?’
그 모습을 류종익은 보지 못했다.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저한테 동영상을 넘기시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고 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런 쪽으로 유능한 전문가를 알고 있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단, 파일을 복사하거나 건든 흔적이 없어야 합니다. 발견한 상태 그대로 가져다줘야 조작인지 아닌지 제대로 알 수 있거든요.”
“아…….”
복사해서 줄 생각이었던 류종익으로선 난감한 상황이었다.
‘어쩌지? USB를 넘겨야 하나?’
이런 쪽으로는 아는 것이 없던 터라 도움을 받으면 좋긴 하다.
하지만 귀중한 영상인 만큼 넘기기가 좀 그랬다.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멜빈과는 고작 두 번밖에 만나지 않은 사이야. 믿을 수 있을까?’
동맹군이지만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
대답이 나오지 않자 크리스토퍼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제가 못 미더우신 모양이군요.”
“으음, 그렇다기보다는…….”
차마 말은 못 하고 우물쭈물하는 류종익을 보며 크리스토퍼가 사람 좋게 웃었다.
“괜찮습니다. 전부 이해합니다. 내부에 첩자도 나오는 상황인데 이런 중요한 물건을 선뜻 맡길 순 없겠지요.”
크리스토퍼는 하하 웃으며 대인배처럼 굴었다.
“못 미더우시면 맡기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저는 단지 검증 과정에 도움을 드리고자 했을 뿐입니다. 다른 믿음직한 전문가가 있다면 그분에게 맡기는 게 훨씬 낫겠지요.”
“아, 아닙니다. 저도 이런 쪽의 전문가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럼 저한테 맡기시겠습니까?”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욕심 없는 모습에 안심이 된 걸까?
류종익은 의심을 거뒀다.
‘멜빈 님이라면 믿을 수 있겠지. 한배를 탄 사람이라는 건 확실하니.’
류종익이 노트북에서 USB를 빼냈다.
“여깄습니다.”
“복사본이 없다는 건 확실하겠지요?”
“물론입니다. 영상을 보기만 했을 뿐 다른 조작은 안 했습니다.”
“다행이네요. 최대한 원본 그대로여야 검사의 정확도가 높아지거든요.”
USB를 받아든 크리스토퍼가 씨익 웃었다.
‘큭큭, 호구 새끼. 이 중요한 물건을 몇 번 보지도 않은 나한테 넘기다니.’
아무래도 단장이라는 지위가 있으니 배신할 거라는 생각을 못 하는 모양이다.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부터가 호구 인증이지.’
속으로 실컷 비웃어준 크리스토퍼가 USB를 품 안에 넣었다.
‘이걸로 민철이 곤란해질 일은 없겠어. 우리 사이도 전보다 더욱 돈독해질 거고.’
친구라서 도와준 것도 있지만 사심이 있던 것도 사실.
이번 기회에 크리스토퍼는 민철과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었다.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빨리 분석을 맡겨야 하니.”
“아, 그러십시오.”
“분석이 끝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고개를 숙인 크리스토퍼가 USB를 챙겨서 빠져나가려던 그때.
벌컥-!
작전실 문이 열리더니 단원 한 명이 들어왔다.
멜빈이 들어왔을 때처럼 다급한 안색으로.
“다, 단장님!”
“또 무슨 일입니까?”
“와, 왔습니다.”
“또 누가요?”
누군지 묻기 무섭게 작전실로 한 사람이 더 들어왔다.
검은 가면을 쓴, 의문의 사내였다.
“거, 검은 가면……!”
류종익은 크리스토퍼가 찾아왔을 때보다 더 놀랐다.
인신매매단을 괴멸시킨 것은 물론 작전 중에 나타나 범죄자 헌터들을 학살하고 사라진 베일에 싸인 존재.
설마하니 그가 혁명을 찾아올 줄은 몰랐다.
“류종익 단장님 되십니까?”
검은 가면의 말에 류종익이 놀랐다.
이름뿐만 아니라 단장이라는 직함까지 알고 있다.
그 말은 자신의 조직이 어떤 곳인지도 안다는 뜻.
류종익의 시선이 차갑게 식었다.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시는지……?”
“헌터 양성소에서 우연히 그쪽 단원들을 발견하고 은신으로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이름뿐만 아니라 무슨 목적으로 기습했는지, 어떤 조직인지도 알게 됐죠. 몰래 엿들은 점은 사과드립니다.”
“그, 그럼 여기를 찾아온 것도…….”
“예. 기습 후 돌아가는 단원들을 미행했습니다.”
“아…….”
검은 가면의 실력이 S급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한다는 건 전투를 봐서 익히 알고 있는 사실.
은신으로 들키지 않고 모든 대화를 엿들었을 것이다.
‘조직의 정체는 물론 거점까지도 들키고 말았어.’
S급 헌터에게 들키기가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니…….
류종익은 허탈함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허락 없이 미행해서 죄송합니다만 전해드릴 것이 있어서요.”
그리 말한 검은 가면이 류종익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USB였다.
“이게 뭡니까?”
“그 안에 깜짝 놀랄 만한 동영상이 들어있습니다.”
“무슨 동영상이길래…….”
“어떤 영상인지는 지금 즉시 확인해보시죠.”
뜬금없이 동영상을 건네주다니.
류종익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제가 이걸 왜 봐야 하죠? 이상한 영상 아닙니까?”
“장담하건대 안 보시면 후회하실 겁니다. 조직의 미래에 엄청나게 도움 되는 영상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류종익은 고민됐다.
‘난데없이 찾아와서 동영상을 보라고 하다니.’
과연 검은 가면의 말을 믿어도 되는지.
‘이름도, 얼굴도 밝히지 않은 사람의 말을 믿어야 할까?’
솔직한 말로 옆에 있는 희망의 날개 단장이 훨씬 더 믿음직스러웠다.
하지만.
“알겠습니다. 속는 셈 치고 보도록 하죠.”
류종익은 검은 가면으로부터 USB를 받아들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조직의 미래에 엄청나게 도움이 되는 영상이라고?’
게다가 안 보면 후회할 거라고 엄포까지 놓았으니 안 볼 수가 있나.
‘비록 오늘 처음 봤지만, 그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순 없어.’
조직 내에서 검은 가면의 평판은 상당히 좋다.
인신매매단을 단신으로 쳐부순 것은 물론 범죄자 소탕까지.
최근에는 도은정을 구해준 일화까지 퍼져 정의의 사도라는 이미지가 박혀 있다.
‘여태까지의 행동만 봐도 이 사람의 신용은 보증된 셈이야.’
게다가 말투며 목소리며 진중하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이런 일로 농담할 사람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류종익이 USB를 꽂으려는 그때였다.
옆에서 목석처럼 지켜보고 있던 크리스토퍼가 입을 열었다.
“저는 이제 가보겠습니다. 둘이서 대화 나누십시오.”
“아, 붙잡아둬서 죄송합니다. 살펴 가십시오.”
류종익이 미안하다는 얼굴로 인사했다.
검은 가면과 대화하느라 그를 보내는 것도 잊고 있었다.
크리스토퍼가 가기 전에 힐끔 검은 가면을 쳐다봤다.
‘내 부하들을 죽이고 작전을 망친 게 이 녀석인가?’
크리스토퍼는 첩자에게서 들었다.
검은 가면이 자신의 작전을 망친 주범이라는 것을.
‘개 같은 새끼. 네놈에게 진 빚은 다음에 꼭 갚아주마.’
지금은 급한 일이 있어 피하지만 언젠가 다시 본다면 그때는 해머로 대가리를 부숴주리라.
그러한 마음으로 검은 가면을 지나치려는 찰나.
턱-
검은 가면이 어깨를 붙잡았다.
“가기 전에 같이 동영상 한 번 보시죠. 재미있을 겁니다.”
“……뭐요?”
크리스토퍼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런 관련도 없는 자신을 붙잡아 동영상이나 보자고 하다니.
류종익도 당황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바빠서 그럴 시간 없습니다.”
그리 말하며 빼려고 했지만.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주 놀랄만한 동영상이거든요.”
“그런 건 당신이나 보시던가.”
“저만 보기 아까워서요.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꼭 봐주셨으면 합니다.”
검은 가면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러자 없던 궁금증마저 생겼다.
‘대체 무슨 영상이길래 나한테까지 이러는 거야?’
하도 저러니 류종익도 검은 가면을 거들었다.
“멜빈 님. 그러지 말고 같이 한번 보시죠. 어떤 영상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으음…… 오래 걸리지 않는다면야…….”
결국 크리스토퍼는 떠나기 전에 동영상을 보기로 했다.
솔직히 안 좋은 느낌이 들었지만 궁금해서라도 봐야겠다.
하지만 동영상을 본 즉시 크리스토퍼는 깨달았다.
작전실을 떠나지 않은 건 일생일대의 실수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