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400)
특성흡수 헌터사냥꾼-401화(401/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2부 129화
129. 처형식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은 크리스토퍼가 이맛살을 구겼다.
‘뭐? 처형식? 게다가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검은 가면의 실력이 어떤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전투력 300만인 자신이 허무하게 질 거란 생각은 안 들었다.
‘전투력 400만인 피터 필즈조차도 내 앞에서 저런 소리는 못 해.’
크리스토퍼의 특성은 성기사.
언데드나 유령, 악마형을 상대로 대미지가 2배 증가하는 특성으로, 대인전에서는 효용가치가 없는 편.
‘하지만 그것 말고도 기본적으로 무기에 신성력을 부여할 수 있지.’
신성력을 부여하면 무기의 공격력이 20% 증가한다.
‘게다가 기본 패시브로 받는 대미지도 50%나 줄어들지.’
안 그래도 탱커인 그가 받는 대미지를 절반이나 감소시킨다면?
‘전투력이 100만이나 높은 피터라도 날 상대하기가 쉽진 않다고.’
그야말로 거목을 상대하는 기분일 것이다.
“양성소에서 내 부하들을 죽인 게 네놈 맞냐?”
크리스토퍼의 물음에, 최성민은 부정하지 않았다.
“물론. 이름이 핸리, 타일러, 마이클이었나?”
이름까지 알고 있자 크리스토퍼가 내심 놀랐다.
‘정보력이 보통은 넘는 녀석이야.’
놀라거나 말거나 최성민이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셋이서 류종익 단장님을 칠 계획을 짜고 있길래 가차 없이 멱을 따버렸지.”
“비겁하게 기습을 했다는 얘기군.”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S급 부하들이 어쩌다 죽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난전이라 방심했겠지. 사전에 정보를 쥐고 있던 검은 가면이 그 틈을 노린 거고.’
정보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기습이었으니 쉽게 당했을 터.
‘단검을 들고 있는 걸 보니 암살자일 가능성이 크겠군.’
특이한 점은 한 손이 아니라 양손에 단검을 들었다는 점이지만 걱정할 건 없었다.
암살자는 탱커에게 있어서 가장 손쉬운 상대였으니.
‘놈의 대미지가 아무리 높은들, 내 방어력을 뚫진 못해.’
특성으로 50%의 대미지를 감소시키는 데다 전설 세트는 물론 탱킹에 적합한 아이템들로 완전 무장을 했다.
‘최강의 네임드 보스, 카르뮤가스의 공격도 버텨낸 사람이 바로 나야. 고작 암살자 따위에게 밀릴 리가 없지.’
한 가지 걸리는 점이라면 상대 역시 전설의 갑옷을 입고 있다는 점이다.
‘갑옷빨을 믿고서 저렇게 나대는 건가? 아니면 전투력이 높아서?’
크리스토퍼는 검은 가면이 자신과 대등한 실력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나올 수가 없지.‘
모르긴 몰라도 전투력이 300만은 넘을 거다.
자기한테 정면으로 맞설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암살자가 기습은 안 하고 정면 대결을 유도한다라…….’
크리스토퍼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돋았다.
‘내가 어지간히도 얕보인 모양이구나.’
자존심이 상했다.
비록 8 영웅 중에서도 전투력은 중위권에 속하지만, 그는 다름 아닌 탱커.
탱커가 이 정도 전투력을 지녔다면 방어 능력만큼은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날 얕본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주지.’
크리스토퍼는 자신했다.
마음만 먹으면 검은 가면을 피떡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암살자 따위는 별거 아니야. 뒤만 잡히지 않으면 돼.’
암살자의 전매특허인 [은신-그림자밟기-목 긋기] 콤보는 탱커인 그라도 무시할 수 없다.
비정한 마음이라는 패시브 스킬이 방어력을 무시해 버리니까.
‘그래봤자 한 번이야. 한 번의 공격만 넘기면 그다음은 문제없어.’
어차피 전설의 투구가 있었기에 죽음의 일격을 받아도 죽지는 않을 터.
‘날다람쥐 같은 몸놀림만 어떻게 할 수 있다면 암살자 따위야 죽이는 건 일도 아니지.’
탱커인 그가 순발력이 높은 암살자를 맞추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체력이 낮으니 금세 지치겠지.’
아무리 순발력이 높아도 지치면 소용없다.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질 테니까.
‘버티기만 하면 기회는 온다.’
체력이 빠질 때까지 버틴 뒤 역습을 가하겠다는 작전.
탱커인 그로선 버티는 것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덤벼라, 애송아.”
크리스토퍼가 금빛 해머와 붉은색 방패를 들었다.
옆에 있던 류종익이 침을 꿀꺽 삼켰다.
‘위압감이 엄청나다.’
마치 철옹성이 눈앞에 있는 것 같은 위압감.
제삼자가 느끼기에도 저런데 직접 마주하고 있는 검은 가면은 어떤 느낌일까?
그런 생각에 쳐다본 검은 가면은 아무런 준비 자세도 없이 단검을 늘어뜨린 채 서 있을 뿐이었다.
‘전투력 300만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미세한 떨림조차 없다.’
표정도 읽을 수 없어서 어떤 마음인지 쉬이 짐작할 수 없었다.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는 것이 마치 그림자 같아.’
그런 느낌을 받은 건 크리스토퍼도 마찬가지였다.
‘이 녀석…… 같은 암살자인 프랭크와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군.’
전투력 360만의 대영웅, 프랭크 라슨.
암살자 중에서도 탑이라 불리는 그 녀석과 비슷할 줄 알았는데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프랭크는 거칠고 투박한 야생마 스타일인 반면, 이 녀석은 여유로우면서도 차분한 모습이야.’
여태껏 상대해 본 암살자들과는 다른 느낌.
그렇다고 긴장하지는 않았다.
‘분위기 좀 잡는다고 뭐가 달라질 리는 없지.’
암살자의 공격 패턴이야 뻔하니까.
‘첫 타만 조심하면 돼. 첫 타만.’
방패를 든 채로 크리스토퍼가 노려보는 순간.
스르륵-
검은 가면의 모습이 사라졌다.
은신을 쓴 것이다.
그런데 어디에 있는지 감지가 되지 않는다.
‘나보다 전투력이 높다고?’
그 사실에 크리스토퍼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래 봐야 많이 차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고작 1 차이여도 감지할 수 없는 게 은신이었으니.
‘분명 내 뒤로 들어오겠지.’
은신은 쿨타임이 긴 스킬이다.
그렇기에 전투 중에 쓸 기회는 단 한 번.
암살자는 은신을 공격용으로도 쓸 수 있고 도주기로도 사용할 수 있지만.
‘그걸 시작부터 썼다는 건…….’
공격용으로 써서 단번에 끝내겠다는 뜻.
‘아마 그림자밟기 후, 목 긋기 콤보를 쓰겠지.’
국민 콤보라 불리는 그것을 쓸 거라 예상하며 크리스토퍼가 뒤를 돌았다.
‘굳건한 의지!’
순간 크리스토퍼의 신체가 황금빛에 둘러싸였다.
6초간 디버프는 물론 받는 모든 피해를 50% 막아주는 탱커용 버프가 발동됐다.
‘이거면 방어력이 뚫리더라도 막을 수 있어.’
그렇게 예상했건만.
푸욱-
크리스토퍼의 어깻죽지에 단검이 박혔다.
검은 가면의 단검이 갑옷을 뚫고 들어온 것이다.
“끄……!”
통증이 전해지기 무섭게.
서걱-!
해머를 들고 있던 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끄, 끄아아악!”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이 어깨 부근에서 전해졌다.
‘X발…… 어떻게 된 거지? 첫 타를 못 막다니……!’
은신 후 공격이라 방어력을 무시할 거라는 건 예상했다.
하지만 팔을 자를 정도의 대미지가 들어올 거라는 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패시브로 50%, 버프로 50%, 곱 연산을 하면 총 75%의 대미지를 막아낼 수 있었는데……?’
예상 밖의 대미지에 당황하는 사이, 검은 가면이 이쪽을 돌아봤다.
곧장 공격하지 않고 느긋하게 쳐다보는 걸 보니 배알이 뒤틀린다.
‘X발 새끼. 여전히 여유만만한 거 봐라?’
팔이 잘렸으니 이미 승부는 났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크리스토퍼의 생각은 달랐다.
‘아직 안 끝났어. 방패로 버티다가 공격하면 돼.’
탱커라도 공격 스킬 한두 개는 갖고 있는 법.
방패를 든 팔로 버티고 버티다가 놈의 체력이 빠졌을 때 쉴드 프레셔라는 스킬로 역공하면?
충분히 역전이 가능하다.
‘어차피 검은 가면은 은신을 이미 써버린 상태. 방금처럼 방어력을 무시한 공격은 이제 사용할 수 없어.’
은신을 다시 쓰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테니 그때까지 방어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된다.
크리스토퍼가 방패를 세우며 거북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그 모습에 최성민이 가면 밖으로 웃음을 흘렸다.
“방어에 집중하다가 기회를 노리겠다는 거군. 내가 체력이 빠지고 느려지는 틈을 노리는 건가?”
“…….”
정곡을 찔리자 크리스토퍼의 안면 근육이 씰룩였다.
“한쪽 팔로 가능하겠어? 가뜩이나 피도 흘리고 있는데.”
“이까짓 고통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체력 스탯이 높으면 이런 점이 좋지. 그리고 이 방패가 얼마나 단단한지 모르는 모양인데, 무려 카르뮤가스라는 네임드 보스를 죽이고서 나온 아이템이라고.”
“레드 드래곤의 붉은 방패 말이군.”
크리스토퍼의 눈이 커졌다.
방패를 알아보는 사람은 레이드에 참전한 대영웅들 말고는 처음이었다.
“네가 어떻게 그걸……?”
“나도 가져본 적이 있어서 말이지.”
“어디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그래서, 버틸 수 있다고?”
스르륵-
최성민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한번 버텨봐.”
“…….”
크리스토퍼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은신은 좀 전에 쓰지 않았나?’
분명 은신을 쓰는 걸 봤는데 몇 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쓰다니…….
‘설마 쿨타임 없는 은신이라고?’
놀라고 있을 틈은 없었다.
어디선가 단검이 찔러 들어왔으니까.
푸욱- 푸욱!
“크윽……!”
허벅지와 옆구리에 단검이 박힌 크리스토퍼가 방패를 휘둘렀다.
부웅-!
보기 좋게 헛방질.
순발력이 낮은 그로서는 검은 가면의 옷깃조차 스칠 수 없었다.
‘젠장, 은신을 쓰는 탓에 어디서 공격이 들어오는지 예측할 수 있어야지…….’
그렇다고 방패로 막기에도 역부족이었다.
단검이 종잇장처럼 장비들을 뚫고 들어왔으니까.
‘미친……. 은신을 무한정 쓰니까 방템을 둘러도 소용이 없잖아!’
은신에 쿨타임이 없다는 예상은 맞았다.
검은 가면은 보란 듯이 은신과 공격을 반복하며 신출귀몰한 모습을 보였다.
‘저걸 어떻게 이기라고!’
깜빡깜빡 점멸하는 것이 마치 허깨비를 상대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푹- 푹-
크리스토퍼의 몸에 상처가 늘어갔다.
탱커의 자랑인 방어력이 무용지물이 됐으니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
게다가 대미지는 또 어찌나 센지 평타처럼 보이는데도 한 방 한 방이 스킬에 맞는 것처럼 아프다.
‘400만…… 아니, 최소 500만은 넘는 실력자다.’
검은 가면이 여유를 부린 것도 이제야 이해가 됐다.
하지만 한가지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이 새끼, 왜 바로 죽이지 않는 거지? 천천히 갖고 놀다 죽일 셈인가?’
상대는 무슨 생각인지 급소를 피해서 공격하고 있었다.
‘어차피 모든 공격이 방어력 무시라서 얼마든지 목을 벨 수 있을 텐데 어째서?’
이유는 모르지만, 크리스토퍼는 이를 기회로 여겼다.
‘잘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겠어.’
온몸에 단검 자국이 난 크리스토퍼가 시선을 돌렸다.
다름 아닌 한쪽 구석에서 가만히 구경하고 있는 류종익에게로.
‘저 새끼를 공격해서 잠깐이라도 검은 가면의 시선을 돌린다.’
그 틈에 쉴드 차지를 이용해 빠르게 도망치겠다는 작전이었다.
‘쉴드 부메랑!’
부우우웅-!
붉은 방패가 거세게 회전하며 류종익을 향해 날아갔다.
제대로 맞으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회심의 공격.
그 기습에, 류종익은 놀란 나머지 대처할 생각도 못 했다.
‘지금이야! 이 틈에 빨리 도망쳐야……!’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검은 가면이 류종익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터.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도망칠 기회는 없다.
크리스토퍼가 고통을 참으며 발을 내디뎠다.
전신이 상처투성이였음에도 살고자 하는 의지로 걸음을 뗐다.
그때였다.
티잉-!
뭔가가 튕겨 나가는 소리에 크리스토퍼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된 일인지 자신의 방패가 바닥에 처박혀있고 류종익은 처음처럼 멀쩡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뭐야? 내 공격이 막혔어?’
아무리 탱커라지만 자신의 전투력은 300만이 넘는다.
고작 전투력 100만의 갓 S급 따위가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물론 크리스토퍼는 몰랐다.
생각을 읽고 공격을 예측한 검은 가면이 류종익에게 수호자의 권능 버프를 걸어줬다는 것을.
‘아차, 이러고 있을 틈이 없…….’
“어딜 가려고.”
크리스토퍼의 목에 쇠붙이의 감촉이 느껴졌다.
검은 가면에게 등 뒤를 내주고 말았다.
“일대일 대결에 다른 사람을 휘말리게 하다니. 좀 더 갖고 놀까 했는데 위험해서 안 되겠어. 슬슬 끝내자.”
완패였다.
크리스토퍼는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살려둘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착각이었는지.
“살고 싶으면 살려줄게.”
검은 가면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첩자가 누군지 알려주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