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434)
특성흡수 헌터사냥꾼-435화(435/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2부 163화
163. 류종익의 선택
곽민철은 자신의 딸을 죽인 원수다.
그렇기에 류종익은 몇 번이고 다짐했었다.
힘들 때마다, 나약해질 때마다,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품에서 죽어간 딸의 온기를 떠올리며 다짐했다.
반드시 복수를 완성하겠다고.
반드시 곽민철을 자신의 손으로 찢어 죽이겠다고.
그랬기에 곽민철을 보자마자 살의가 솟구쳤다.
‘녀석이 대처하기 전에 먼저……!’
목을 꿰뚫을 기세로 검을 내질렀다.
기습이었지만 비겁하다고 볼 순 없었다.
격차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곽민철을 죽여야 할 명분 또한 충분했다.
그럴진대.
“…….”
류종익의 검은 곽민철의 코앞에서 멈췄다.
그의 행동에 제동이 걸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아무런 방어 자세도 취하지 않았어.’
막지도, 피하지도, 장비를 착용하지도 않았다.
눈을 질끈 감기는커녕 순진무구한 눈으로 멀뚱멀뚱 쳐다만 볼 따름이었다.
‘내 공격이 막을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빠르진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막을 생각 자체가 없었다고 보는 게 맞으리라.
‘어째서?’
의문을 이어갈 새는 없었다.
곽민철이 반격했기 때문은 아니다.
“으, 으아아아앙!”
갑작스레 울음을 터트렸기 때문이었다.
“무, 무슨…….”
류종익이 당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향해 비웃거나 분노하는 상황은 예상했어도 곽민철이 우는 전개는 예상치 못했으니까.
“곽민철. 무슨 수작…….”
“으아아아아앙!”
“지금 뭐 하는 거…….”
“으아아아아아아아앙!”
“연기는 집어치…….”
“으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앙!”
눈물, 콧물, 입에는 침까지 흘리며 애처럼 울어 젖히자 류종익이 입을 다물었다.
‘연기가 아니다. 진짜로 우는 거야.’
상처를 입진 않았으니 놀라서 우는 거일 텐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뭐지? 왜 갑자기 애처럼 퇴화했지?’
아무리 봐도 자신이 아는 곽민철이 분명한데 지금은 덩치만 큰 어린애나 다름없어 보인다.
의문으로 가득 찬 그때, 류종익이 간과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곽민철은 이곳에 갇혀 있었잖아? 어째서?’
자신이 만든 감옥에 자신이 갇혀 있다?
게다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듯 유아틱한 행동까지 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내가 모르는?’
류종익으로선 통 알 수 없는 노릇.
그때였다.
“궁금하십니까?”
검은 가면의 뒤로 누군가 나타났다.
“최성민…… 헌터?”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었기에 류종익이 의아해했다.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저흴 미행하신 겁니까?”
“그렇다고 봐야죠.”
“왜요?”
“마무리를 지어야 하거든요.”
“곽민철 때문입니까? 저는 검은 가면 님이랑 단둘이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검은 가면이라…….”
최성민이 피식 웃더니 아이템을 장착했다.
츠으으읏-
그의 얼굴이 검은 가면으로 뒤덮인다.
“이거 말씀이십니까?”
“거, 검은 가면……?”
류종익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검은 가면이…… 둘?”
“아니요. 이쪽은 제가 세운 대타입니다. 가면은 주문 제작으로 만든 모조품이고요.”
최성민이 보란 듯이 가면을 해제했다.
착용과 해제를 반복하는 걸 보면 아이템이 분명하다.
반면 검은 가면은 여전히 벗지 않은 채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최성민 헌터의 말이 사실입니까? 검은 가면님?”
“예. 저는 오늘 하루 최성민 님의 대타로 나왔을 뿐, 여태껏 검은 가면으로 활동해 오신 분은 최성민 님이십니다.”
검은 가면이 직접 인정하니 류종익으로선 믿을 수밖에 없었다.
보고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설마 설마 했는데 최성민 헌터가 검은 가면이었을 줄이야…….”
“그래도 거의 예측하셨더군요. 막판에 대타를 세우지 않았더라면 계속 의심하셨겠죠.”
“이제 와서 정체를 밝히는 이유가 뭡니까? 이 사람은 누구고요?”
최성민이 힐끔 검은 가면을 쳐다봤다.
차마 대타로 세운 사람이 우성재라는 걸 밝힐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겠지.’
아마도 대영웅들과 짜고 자신을 농락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자의 정체는 밝힐 수 없습니다.”
“…….”
“다만 제가 이러는 이유는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뭐죠?”
“단장님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선택이라니?”
최성민의 시선이 곽민철에게 향했다.
“저 녀석이 왜 저렇게 됐는지 아십니까?”
류종익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기억을 지웠기 때문입니다.”
“예?”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반문했지만, 최성민은 친절하게도 다시 한번 말해줬다.
“제가 곽민철을 제압하고 녀석의 기억을 지웠습니다. 먹고 자고 싸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못 하도록 모조리 지워버렸죠.”
“…….”
류종익의 시선이 게슴츠레하게 변했다.
믿기 어렵다는 반응.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최성민은 의연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입니다. 저에겐 기억을 지우는 특성이 있고, 그걸 이용해 그 사람의 과거를 볼 수도 있습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특성이…….”
“어제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저택에서 추적자와 싸우셨지요?”
류종익이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게 싸웠던 만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때 단장님은 추적자에게 한 번 죽으셨습니다.”
“예? 제가요?”
“눈을 떴을 때 자리에 핏물이 가득했지요? 왜 그런지 의아하지 않으셨습니까?”
“확실히 의아했지요…….”
류종익은 부정하지 않았다.
이 문제로 강민찬과 의논하기도 했으니.
“제가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이미 추적자에게 살해당한 뒤였습니다.”
“분명 기절했다고…….”
“당연히 거짓말이었지요.”
“…….”
“생명의 비약이라고 죽은 자를 살리는 아이템이 있습니다. 마침 여분이 있어 그걸로 단장님과 강민찬 대장을 살리고 기억을 지운 겁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지 못 하게 하려는 나름의 배려였지요.”
“…….”
사람을 살리는 아이템이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허무맹랑한 소리 같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공교롭게도 정황이 맞아떨어졌으니까.
“그럼 기억이 끊긴 듯한 느낌을 받은 게 기억을 지워서……?”
“맞습니다.”
“아…….”
당시 가졌던 의문이 모두 풀렸지만, 완전히 믿지는 못했다.
증거가 없었으니까.
최성민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어서 말했다.
“기억을 보는 과정에서 저는 단장님의 과거를 엿봤습니다.”
“제 과거를……?”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일을 겪으셨더군요.”
“…….”
“어째서 혁명이란 단체를 만들었는지, 어째서 곽민철을 죽이는 것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저도 한때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있거든요.”
“정말로 제 과거를 엿본 겁니까?”
“예. 그때 곽민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은비가 죽진 않았을까 후회하고 계시죠?”
류종익의 동공이 커졌다.
“오히려 거절한 게 잘하신 겁니다. 제안을 받고 곽민철의 직속 부하로 들어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토사구팽당했을 테니까요.”
최성민의 말을 들은 류종익은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
“확실히…… 과거를 볼 수 있으신 모양이군요.”
“보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기억을 지울 수도 있죠.”
“믿겠습니다. 기억을 지우는 것도, 사람을 살리는 아이템이 있다는 것도.”
믿는다고 했지만, 류종익의 눈에서 경계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저에게 이런 중요한 정보를 밝히시는 거죠?”
“그야 기억을 지우면 그만이니까요.”
“어차피 지울 거면 이렇게 밝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겁니까?”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기회를 드리려는 겁니다. 곽민철을 직접 죽일 기회를.”
“기회……?”
“선택하십시오. 기억을 잃은 곽민철을 죽일지 말지를.”
“…….”
류종익의 시선이 곽민철에게 향했다.
울다가 지쳐서 벌게진 눈으로 쳐다보는 곽민철이 보인다.
‘솔직히 지금의 곽민철을 죽이기는 쉬워.’
죽음을 각오하고 이 자리에 왔건만 기다리고 있는 건 기억을 잃은 곽민철이었다.
그것도 아무런 저항도 못 하는, 돌잡이 아기보다 못한 지능이 되어버린 곽민철 말이다.
‘그저 검을 찌르면 죽는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간단하게 죽일 수 있다.
‘그토록 바라던 복수가 눈앞에 있어.’
그런데.
그럴 텐데.
‘왜…… 왜 난 망설이고 있는 거지?’
류종익의 손이 떨리자 검도 따라 흔들렸다.
“모, 못하겠습니다.”
류종익이 들었던 검을 내렸다.
대놓고 먹으라고 멍석을 깔아줬지만 먹지를 못한다.
그 모습에 최성민이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예상대로군.’
최성민은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어느 정도 예상했다.
‘류종익의 성격상 저항 못 하는 상대를 죽이기란 쉽지 않겠지.’
아무리 자신의 딸을 죽였다 해도 곽민철은 지금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
냉혈한이 아니고서야 검을 들기가 쉽진 않을 거다.
‘그래도 조금은 반전이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군.’
최성민은 류종익을 통해서 알고 싶었다.
과연 복수하려는 상대가 기억을 잃는다면?
복수를 그대로 진행할까?
기억이 없는 걸 알면서도 죽이려고 들까?
‘나는 죽였지. 아주 가차 없이 죽였지.’
민도준이었던 시절, 오직 복수만을 위해 움직이고 전진했었다.
회귀 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상대에게 이유를 붙여 죽였다.
‘물론 죽어 마땅한 이유였지. 내가 죽인 건 하나같이 범죄자들이었으니까.’
범죄자이지만 복수에 관련된 개인적인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딱 지금의 곽민철과 일치했다.
류종익은 당시의 민도준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었고.
그렇기에 궁금했다.
류종익 또한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인지를.
‘하지만 아니었군.’
기억하지 못하면 복수 또한 의미가 없다.
류종익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모질지 못하다는 거겠지. 나와는 성향이 완전히 다르다는 거겠고.’
류종익이 복수를 원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최성민은 동질감을 느꼈었다.
똑같이 소중한 사람을 잃어봤고 똑같이 복수를 꿈꾸고 있었기에.
그래서 그에게 곽민철을 죽일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호기심에 지켜봤다.
자신과 같은 상황이라면 류종익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를.
‘결과는 예상대로야. 나랑 정반대의 성향이다.’
최성민이 진정으로 알고 싶은 부분이 여기에 있었다.
‘나랑 성향이 정반대라면…… 믿고 협회장을 맡길 수 있겠어.’
곽민철을 죽이고 쿠데타가 끝나면 협회장의 자리가 비게 된다.
그 자리는 좋든 싫든 누군가는 앉아야 한다.
그리고 그 공은 류종익이 차지할 공산이 크다.
‘사실 검은 가면의 공이 크긴 하지만 아무래도 정체를 숨긴 채로 협회장 노릇을 할 수는 없으니.’
무엇보다 최성민은 더 이상 검은 가면 행세를 할 수 없다.
명계로 돌아가서 데르키우스와 결판을 지어야 했기에.
‘검은 가면은 슬슬 은퇴해야지.’
그렇기에 협회장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류종익 같은 선한 사람이 차지하면 안심이지.’
만약, 류종익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었다면?
복수에 미친 살인귀처럼 곽민철을 기어코 죽였다면?
‘그때는…… 카르마가 100이 된 류종익을 정신 지배했겠지.’
정신 지배해서 올바른 명령만 수행하는 기계로 만들어 협회장 자리에 앉혔을지 모른다.
믿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복수를 멈춘 류종익이라면 믿을 수 있다.
안심하고 협회장을 맡길 수 있다.
“정말 복수하지 않으실 겁니까?”
“예…… 안 합니다. 아니, 못합니다. 기억도 못 하는 사람을 죽일 수는…….”
최성민이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론 곽민철을 죽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흡족해하며.
“전 분명 복수할 기회를 줬습니다?”
“알겠…….”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최성민의 손이 움직였다.
아니, 움직인 줄도 몰랐다.
류종익은 그저 단검이 곽민철의 이마에 명중하는 것만 목격했을 뿐이다.
“아…….”
“약속대로 단장님이 실패하셨으니 곽민철은 제가 처리했습니다.”
“…….”
그 무감정한 말투에 류종익이 말을 잇지 못했다.
속으로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지만 최성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도 날 냉혈한이라고 생각하겠지.’
아무래도 상관없다.
저항도 하지 못한 채로 죽은 곽민철이었지만 불쌍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의 기준에 기억을 지웠다고 저질렀던 죄까지 지워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단장님.”
“…….”
“단장님?”
“예?”
멍하니 있던 류종익이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이제부터 단장님의 기억을 지울 겁니다.”
“아…….”
“너무 걱정은 마세요. 곽민철을 봤던 최근의 기억만 지울 테니.”
그리 말한 최성민이 류종익의 머리에 손을 댔다.
“이대로 잠시만 가만히 계시죠.”
“얼마나……?”
“10초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