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436)
특성흡수 헌터사냥꾼-437화(437/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2부 165화
165. 마지막 만찬
명계로 돌아가는 법은 자살뿐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최성민은 선뜻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자살이 무섭거나 두려운 건 아니다.
‘미련이…… 남았다는 건가?’
모든 걸 내려놓고 이승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손길을 주저하게 했다.
‘알고 있어. 돌아가야만 한다는 걸.’
늙어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 순 없다.
명계에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곳에도 가족이 있다.’
어머니와 여동생.
1년도 안 되는 짧은 인연.
비록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짜 가족들이었지만…….
‘그동안 함께 보낸 시간만큼은 진짜야.’
최성민은 그들을 통해 느꼈다.
가족의 온정이라는 것을.
[민도준 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아닙니다.] [얼른 자살하세요. 이렇고 있을 시간이…….] [조금만 더 여유를 주시죠.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얼마나…….] [하루면 됩니다.] [알겠어요. 정말 하루만이에요.] [예.]확답을 들은 데이나가 시스템에서 나갔다.
“…….”
최성민은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상념의 시간을 가졌다.
‘막상 떠날 때가 되니 생각이 많아지는군.’
고민할 건 없다.
가족들과 헤어짐은 기정사실.
처음부터 정해진 결과다.
피식-
최성민이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정이라도 붙었나 보네. 발길이 쉽게 떼어지지 않는 걸 보면.’
마지막으로 가족들의 얼굴이라도 봐야겠다고 여기며, 최성민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아연아. 네 오빠 좀 불러봐라. 오랜만에 같이 저녁 먹게.”
“알았어. 잠깐 기다려, 엄마.”
최아연이 전화를 건 뒤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댔다.
하지만 한참을 걸어도 신호음만 들릴 뿐 받질 않는다.
“오빠, 또 안 받아.”
“또 사냥 나갔나?”
“아니야. 오빠가 이제 사냥 안 나간다고 그랬어. 그럴 필요도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고.”
아들이 랭킹 1위라는 건 정희선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얼굴에는 근심이 걷히지 않았다.
“얘는 뭐 하느라 집에 이렇게 안 들어온다니?”
“다른 일로 바쁘겠지. 세계적인 스타잖아.”
“그러면 뭐 하니? 같이 식사하는 날이 손에 꼽는걸.”
아쉬운 마음에 정희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는데 아들이랑 변변찮은 식사도 못 하니 원…….”
딸과 보내는 시간은 많았지만, 아들은 얼굴 한번 보기가 힘들다.
정희선이 푸념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오늘도 저녁은 둘이서 먹어야겠네.’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부엌으로 돌아가려던 정희선이었지만.
“어머니.”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돌아보니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들의 얼굴이 보인다.
“성민아!”
“저 왔어요.”
반색하던 정희선이 덥석 아들의 손을 붙잡았다.
“뭐 하다가 이제 온 거야? 여태 왜 연락도 안 받았어?”
“협회장이랑 제가 아는 사이잖아요. 이것저것 도와주느라 바빴어요.”
지난 6개월 동안, 최성민은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괜히 가족들 얼굴을 보면 헤어지기가 더 힘들 것 같았으니까.
‘물론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가끔 안부 전화를 하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보는 건 6개월 만에 처음이었다.
어머니가 환대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희선은 금세 웃음기를 지우고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어휴, 내 새끼.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표정이 왜 그래?”
“예? 제 표정이 어떤데요?”
“세상만사 근심을 다 짊어진 표정이잖아.”
“에이, 아니에요.”
최성민이 애써 미소 지었지만, 정희선은 걱정을 떨쳐낼 수 없었다.
눈은 웃고 있지 않았으니까.
“무슨 일 있는 거니?”
“일은요, 무슨. 그런 거 없어요.”
“그럼 오늘 저녁에 어디 안 가지? 오랜만에 같이 식사나 하자. 너 오면 주려고 갈비도 재워놨는데.”
“알았어요.”
“정말이지?”
“네. 오늘은 어디 안 가고 집에 쭉 있을게요.”
거짓말이었다.
단순히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일 뿐, 최성민은 식사만 마치고 떠날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저녁때가 돼서 가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을 때도 최성민의 마음은 복잡했다.
‘어차피 가짜 가족인데……. 그동안 연기를 했을 뿐인데…….’
최성민이 시선을 들어 흰밥 위에 갈비를 얹어주는 어머니를 쳐다봤다.
‘어째서 이렇게 헤어지기가 싫은 거지?’
이유는 통찰력으로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온정을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인가?’
민도준의 부모님은 15살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 쭉 혼자였다가 차예린과 결혼해 자식들을 낳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족했던 부모의 온정을 메꿀 수는 없었다.
‘그 온정을 여기, 최성민의 어머니로부터 채우고 있는 거였어.’
진짜 어머니는 아니지만, 정희선은 자신을 진짜 아들로 여기고 대해줬다.
진짜 어머니로 느껴질 만큼.
‘어머니뿐만이 아니야.’
최성민이 시선을 돌려 갈비를 뜯으며 행복해하고 있는 여동생을 바라봤다.
‘아연이도 나를 친오빠처럼 대해줬어. 나에게 여동생이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물론 그들에게는 자신이 틀림없는 아들이고 오빠다.
그렇기에 가족으로서 당연하게 대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부모와 형제를 잃었던 최성민에겐 값진 경험과 시간이었다.
‘저는 당신들의 진짜 가족이 아닙니다. 그동안 숨겨서 죄송합니다.’
최성민은 속으로나마 그들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저에게 잃어버린 가족의 온기를 느끼게 해줘서.’
진실을 알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진실을 알게 되면 혼란만 느낄 것이다.
‘그렇다고 진짜 최성민의 영혼을 불러올 수도 없으니.’
혼수상태에 처한 진짜 최성민의 영혼은 이미 무저갱의 나락에 빠져있다.
소멸한 건 아니지만 소멸한 거나 마찬가지.
그렇기에 자신이 대신해서 지켜줘야 한다.
뒤늦게 찾은 가족들의 행복을.
“잘 먹었습니다, 어머니.”
“잘 먹었습니다아!”
자식들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수저를 내려놓자 정희선이 웃는다.
“맛있게 먹어주니 고맙구나.”
“진짜 맛있었어, 엄마! 히히!”
“성민이는?”
정희선의 물음에 최성민이 웃으며 답했다.
“여태 먹어본 집밥 중에 제일 맛있었습니다. 어머니.”
“호호, 다행이구나. 그래, 오늘은 자고 간다고?”
“네.”
“그럼 내일 아침도 차려줘야겠네. 일찍 나가는 거 아니지?”
“그렇진 않아요.”
“잘됐네. 내일은 너 좋아하는 된장찌개 해줄 테니 기대하고 있어. 맛있는 반찬 많이 해줄 테니 집에도 자주 좀 들르고.”
“예…….”
최성민이 말끝을 흐렸다.
내일은 오지 않는다.
지금이 마지막 만찬이었기에.
“어머니.”
“왜 그러니?”
“아연아.”
“응? 오빠 왜?”
“잠시만 머리 좀 만져볼게요.”
“머리는 왜?”
“제가 이번에 머리에 손대면 건강한지 확인할 수 있는 스킬을 배워서요.”
자연스러운 거짓말에 가족들은 아무런 눈치도 못 챘다.
“그런 능력도 부릴 줄 아니? 헌터라는 건 정말 신기하구나.”
“엄마, 오빠 랭킹 1위야. 이 정도 능력은 아무것도 아닐걸?”
마냥 신기해하며 머리를 내줄 뿐이었다.
잠시 후 기억이 지워질 거라는 것도 모른 채.
‘최성민에 관한 기억은 모두 지운다.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최성민은 가족들에게서 자신을 지우기로 했다.
명계로 떠나야 하는 그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자살하면 랭킹창에 이름이 없어질 거야. 죽음을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겠지.’
일반인이라고 해도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할 리가 없다.
그렇기에 기억을 지우는 거다.
자신의 자살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분명 슬퍼할 테니까.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지.’
기억을 지우는 건 배려였다.
가족들이 고통스러워할까 봐 아예 기억에서 배제하려는 것이다.
‘이러면 내가 죽어도 가족들이 고통받지 않겠지. 나를 기억조차 못 할 테니까.’
머리에 손을 얹은 최성민이 과거를 훑어 기억을 지웠다.
정희선과 최아연의 기억에서 자신이란 존재를 지웠다.
‘감사했습니다. 그럼 부디 건강하시길.’
작업을 마친 최성민이 멍한 상태에 있는 그들을 남겨두고 사라졌다.
공간 속에서도, 기억 속에서도.
* * *
최성민이 기억을 지운 사람은 가족뿐만이 아니었다.
‘곤히 자고 있군.’
자정이 넘은 시각.
그림자 이동으로 도은정을 찾아간 최성민이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가족들과 접촉한 사람들의 기억까지도 전부 지워야 한다.’
혹시라도 자신의 죽음을 가족들에게 전해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그런다고 가족들이 나란 존재를 기억할 리는 없지만 확실한 게 좋으니까.’
그것이 주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신을 지우는 이유였다.
‘도은정은 됐고, 다음은…….’
도은정에 이어 류종익, 강민찬까지.
최성민의 가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차례차례 지웠다.
‘이제 나는 물론 가족들 또한 기억하지 못하겠지.’
최성민은 마지막으로 한새봄을 떠올리며 그림자 이동을 썼다.
이윽고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 그녀가 보인다.
다른 사람들처럼 머리맡에 다가가 기억을 지울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은신을 풀며 나직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한새봄.”
“으음…….”
뒤척이던 한새봄이 잠결에 눈을 깜빡이다가 깜짝 놀랐다.
검은 가면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거, 검은 가면님?”
상체를 일으킨 한새봄이 잠시 후 얼굴을 붉혔다.
파자마를 입긴 했지만 그렇다고 흠모하는 남자에게 보여줄 만한 차림은 아니었다.
“어, 어떻게 들어오셨…… 아니, 이 밤중엔 무슨 일로 오셨어요?”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하지만, 부탁이 있다.”
부탁이란 말에 한새봄이 정신을 차렸다.
“말씀하세요. 시키는 건 뭐든 할게요.”
“전에 봤던 내 지인의 가족을 기억하겠지?”
“아, 최성민 헌터의 가족들이요?”
검은 가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지켜줬으면 한다.”
“또 추적자가 붙었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마냥 두고 가기엔 안심이 되지 않아서 말이지.”
그 말에 한새봄이 놀란 눈을 떴다.
“어디 가세요?”
“여행 좀 떠날까 한다. 아주 먼 곳으로.”
“가실 거면 저랑 같이…….”
“그건 안 돼. 나조차도 위험한 곳이거든.”
검은 가면조차 위험하다고 하니 한새봄은 더 이상 고집부릴 수 없었다.
“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최성민의 가족들을 지켜줘라. 경호원처럼 바짝 붙어서 지키라는 건 아니고 이따금 신경 써주기만 하면 된다. 그래야 안심이 될 거 같거든.”
“그런 거라면 최성민 헌터가 지키면 되는데 왜…….”
“최성민도 나와 같이 먼 길을 떠날 예정이다. 그러니 믿고 맡길 사람이 너밖에 없음을 이해해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
중얼거리던 한새봄이 활짝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마지막 말에 감격한 모양이었다.
“할 수 있겠지?”
“그럼요! 맡겨만 주세요!”
“그래. 부탁한다.”
최성민이 안심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가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미소를.
* * *
정확히 24시간이 지나자 데이나가 시스템에 나타났다.
[준비됐나요? 민도준 씨?] [예.] [이승에 남긴 미련은 없는 거죠?]잠시 침묵하던 최성민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예. 없습니다.] [그럼 이제 자살해서 명계로 올라오세요.] [올라간 다음은요? 계획이 어떻게 됩니까?] [민도준 씨가 죽어서 명계로 오면 아마 데르키우스가 눈치채고 안내자를 보낼 거예요. 그때 안내자를 제압하고 제가 있는 감옥까지 오셔서 문을 여시면 돼요.]의외로 간단한 계획이었다.
[문을 여는 구체적인 방법은 여기까지 오시면 말씀드릴게요. 지금처럼 연결을 유지하고 있을 테니.]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올라가겠습니다.]자살하기 전, 최성민이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여태껏 아껴두고 있던 불굴의 비약이었다.
1시간 동안 받는 대미지를 95% 감소시키는 사기적인 아이템이지만, 너무 강해져 버린 탓에 그동안 쓸 일이 없었다.
‘앞으로도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런 일에 쓰게 될 줄이야…….’
불굴의 비약에는 고통을 무시하는 옵션 또한 있었다.
그것이 자살하기 전, 최성민이 비약을 꺼낸 이유였다.
플라스크를 입에 갖다 대자 내용물이 저절로 흘러 들어갔다.
[불굴의 비약을 복용했습니다.] [지속 시간 동안 받는 대미지가 95% 감소합니다.] [지속 시간 동안 어떠한 고통도 느낄 수 없습니다.] [남은 시간 : 59분 59초]준비는 끝났다.
드디어 결판을 지을 때가 왔다.
‘이제 명계로 올라가자.’
최성민의 단검이 주저 없이 심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