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440)
특성흡수 헌터사냥꾼-441화(441/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2부 169화
169. 환영 감옥
“헉, 헉…….”
데르키우스는 뛰고 또 뛰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내가 한낱 인간 따위를 피해 도망치고 있다니…….’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환영 감옥에 갇힌 이상 민도준이 갑이고 신이다.
‘탈출해야 해. 이 빌어먹을 감옥에서.’
환영 감옥은 범위가 정해져 있는 기술.
‘일정 영역을 벗어난다면 분명 환영에서 벗어날 수 있을…….’
“어림도 없지.”
순간 귓전에서 들린 목소리에 데르키우스가 기겁하며 돌아섰다.
동시에.
서걱-!
“끄흐으으으읏!”
하나 남은 팔마저 잘리고 말았다.
“어딜 가려고.”
“으, 으아아아!”
데르키우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다소 볼썽사나웠지만, 체면을 차릴 새가 없었다.
‘아파, 아프다고!’
후끈거리는 끔찍한 고통이 잘린 단면에서 느껴졌다.
살기 위해서 뛴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헉헉, 헉헉!”
오직 두 다리만 이용해 타조처럼 뜀박질하던 데르키우스가 숨을 헐떡였다.
‘더, 더 이상은 무리야.’
잠깐 뒤돌아봤지만, 민도준은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쫓아오지 않는지 의문을 가질 틈은 없었다.
‘빨리 벗어나야 해. 이 빌어먹을 환영에서……!’
그런다면 이 끔찍한 고통도 없어지리라.
오직 그런 희망을 품고 다시금 달리려 했지만.
“어?”
데르키우스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다란 벽이 길을 막고 있었기에.
‘저, 저런 벽이 언제부터 있었지?’
휙-
데르키우스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던 새하얀 벽이 퇴로를 막고 있었다.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어느 쪽을 봐도 벽으로 틀어막혀 있었다.
저런 것이 언제 생겼는지는 모른다.
사방이 꽉 막힌 공간에 갇혀버렸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이런 XX 같은…….”
“신도 욕이란 걸 할 줄 아나 보지?”
고개를 돌린 곳엔 언제 나타났는지 민도준이 서 있었다.
여유로우면서도 한심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아니, 신이 아니라 초월자 나부랭이인가?”
“야 이, 개 XX야!”
“내 앞에선 온갖 근엄한 척은 다 하더니 알고 보니 욕쟁이 초월자였군.”
“너 이 새끼! 인간 주제에!”
“꽁지가 빠져라 도망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으르렁거리다니…….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딱 그짝이군.”
“이 쥐새끼가! 빨리 환영을 해제하지 못할까아!”
“팔도 없는 주제에 기세는 대단하군. 좋아.”
딱-!
민도준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벽이 사라지고 드넓은 초원이 나타났다.
“나랑 일대일로 싸워서 이긴다면 환영을 풀어준다고 약속하지.”
“이 개새끼! 팔도 없는데 그걸 말이라고…….”
“팔은 만들어줬잖아?”
“……!”
고개를 돌려보니 데르키우스의 양팔은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손에는 청룡언월도까지 쥐어져 있었다.
몸에는 아킬레우스의 황금 갑옷에 에기르의 투구 등, EX급 장비들로 치장되어 있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우성재가 쓰던 걸로 준비해 봤어. 최고급 장비들이니 불만 없지?”
“이놈이 지금 장난하나? 이런 걸 준다고 내가 쓸 수 있을 리가…….”
“그럼 시작한다?”
민도준은 다짜고짜 엑스칼리버를 거두고 스킬을 사용했다.
화르르륵-
죽음의 불길이 허공에서 나타나더니 쏜살같이 쇄도했다.
“헉!”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데르키우스가 뒤늦게 언월도를 들어서 막으려 했다.
그래봤자 불길은 데르키우스의 온몸을 휘감을 뿐이었지만.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민도준의 헬파이어가 생살을 태웠다.
타들어 가는 고통을 산 채로 느낀 데르키우스가 정신을 잃을뻔할 때쯤.
“끄아아…… 어어……?”
녹아내리던 헌터 장비가 복구되고 벗겨진 피부가 재생됐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헬파이어를 맞기 전으로.
“고작 헬파이어 한 방에 그렇게 비명 지르면 어떡해?”
“너 이 새끼…….”
“의외로 깡다구는 있네. 아직도 눈빛이 살아 있는 걸 보면.”
피식 웃은 민도준이었지만 데르키우스는 그 모습에 오싹함을 느꼈다.
“고문하는 재미가 있겠어?”
“너 이 자식…….”
당황하는 것도 잠시.
민도준이 뜻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아우, 물어.”
그 말뜻을 파악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난데없이 어깨가 뜯겨나가는 고통이 느껴졌으니까.
콰드득-!
“끄어어억!”
고통보다는 소름 끼치는 소리에 더 놀란 데르키우스가 뒤를 돌아봤다.
보통의 늑대보다 다섯 배는 더 커다란 늑대가 이를 드러내며 쳐다보고 있었다.
‘저, 저놈은 민도준이 데리고 다니던 소환수잖아?’
천리안으로 본 적은 있지만 이름까지는 몰랐다.
“아우, 죽지 않을 정도로 사지를 뜯어버려.”
[컹컹!]힘차게 대답한 아우가 즉시 데르키우스에게 달려들었다.
콰득-!
“으아아악!”
팔 한 짝이 뜯겨나가자 그제야 위기감을 느낀 데르키우스가 청룡언월도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이 개새끼가! 저리 안 꺼져?”
하지만 전투 경험도 없는 인간의 눈먼 공격을 맞을 정도로, 아우는 녹록지 않았다.
콰직-! 콰작-! 콰드득!
“끄허어어어어…….”
순식간에 사지가 뜯겨나갔고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됐다.
핏물이 바닥을 적시며 불덩이 같던 몸에서 오한이 찾아들었다.
데르키우스의 눈동자 옆으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나, 나는 이대로 죽는 건가?’
여태껏 죽는다는 감정이 어떤 건지 느껴보지 못했다.
고통은 물론 두려움조차도 없는 나날이었다.
그렇기에 망각의 샘에 들어가는 영혼들이 살려달라고 울부짖어도 어떤 느낌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어.’
이제는 어디 가서 말할 수 있다.
죽음이라는 감정이 어떤 건지를.
어떤 느낌인지를.
“뭘 벌써 죽으려고 그래?”
찬물을 끼얹는 목소리에 죽음을 기다리던 데르키우스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이제 시작인데. 안 그래?”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몸이 또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
좋은 꿈을 꾸다가 깨면 이런 기분일까?
절망이 눈 앞을 가렸다.
“이번엔 한 번이라도 좀 피해 보라고.”
민도준이 킬킬 웃더니 팔을 들어 올린다.
“거스트 블레이드.”
열 개의 바람의 칼날이 좌우로 늘어서더니 하나씩 순차적으로 날아들었다.
서걱- 스걱-
“크흑, 아아악!”
바람의 칼날이 지나갈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데르키우스의 입에서 연달아 비명이 터져 나온다.
“크헉, 어억, 아앗, 카하악……!”
열 번의 공격이 모두 끝났을 때 데르키우스는 살아도 산 상태가 아니었다.
다리가 모두 잘리고 더듬이만 움직이는 벌레처럼 죽지 못한 채로 허공을 응시할 따름이었다.
팟-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몸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은 상대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민도준이 아닌, 최성민으로.
“마검사에게 죽어봤으니 암살자에게도 죽어봐야지 않겠어?”
키득거리는 최성민을 보며 데르키우스가 이를 갈았다.
“저런 악마 같은 새…… 컥!”
단검 투척이 단숨에 데르키우스의 미간에 명중했다.
그대로 죽는가 싶었지만, 순식간에 살아 있는 상태로 돌아왔다.
“어디 몇 번이나 죽어야 그 말투가 고쳐지는지 시험해 보자고.”
최성민의 손속에 자비는 없었다.
가슴이 꿰뚫리고, 머리가 쪼개졌다.
고문이라곤 하지 않겠다는 듯 단칼에 죽였다.
그때마다 데르키우스는 부활했다.
‘누가 암살자 아니랄까 봐…… 컥!’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그저 탄생과 죽음을 무수히 반복할 뿐이었다.
그렇게 수십, 수백, 수천 번을 반복했을 때.
데르키우스는 이 고통이 언제쯤 끝날까 생각했다.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실제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에겐 영겁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일어나.”
“…….”
“정신 차리고, 일어나라고.”
“…….”
최성민의 목소리에 데르키우스가 슬그머니 눈을 떴다.
일말의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 공허한 눈초리.
최성민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단번에 알았다.
“죽여줘?”
그 말에 아이러니하게도 데르키우스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예……. 죽고 싶습니다. 죽여주십시오.”
“이제야 좀 마음에 드는 대답을 하네. 말투도 달라졌고.”
씨익 웃음 짓던 최성민이었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죽여줄 생각은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 설치한 환영 감옥이 아니다.
“죽여줄게. 아니, 죽이진 않고 환영 감옥에서 풀어주지.”
“저, 정말입니까?”
“대신 나랑 계약서 쓰면.”
“계약서…… 요?”
엘시스의 기능 중엔 [계약서 쓰기]가 있다.
서로의 동의하에 정해둔 약속을 지켜야 하는 계약으로, 어겼을 때도 정해둔 페널티를 받도록 할 수 있다.
즉,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도록 하는, 일종의 금제였다.
구두로 약속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셈이다.
“저랑 무슨 계약을…….”
“별거 아니야. 네가 가진 디바인 포스를 내놓기만 하면 돼.”
“얼마나……?”
“전부.”
데르키우스가 할 말을 잃었다.
‘내가 100년 넘게 모아놓은 30억의 디바인 포스를 전부 내놓아야 한다고?’
어이가 없었지만, 최성민의 표정은 진지했다.
농담 따위가 아니다.
“그 대신 환영 감옥을 풀어준다고 약속하지. 어때?”
“…….”
선심 쓰듯 말하는 모습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싫어?”
“…….”
“싫으면 아까 하던 거 계속해야지 뭐. 설마 지쳐서 포기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내가 한 근성 하거든.”
입꼬리를 올린 최성민이 독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디바인 포스를 모조리 넘기겠다고 말할 때까지 죽여줄게. 천 번이든, 만 번이든.”
그건 협박이었다.
가진 걸 내놓지 않으면 영원히 고통을 주겠다는 협박.
데르키우스로선 선택지가 없었다.
‘살기 위해선…… 줘야 한다.’
눈빛을 보아하니 빈말이 아니었다.
거절한다면 정말로 환영 감옥에서 영원히 죽음을 반복할 것만 같았다.
“알겠습니다……. 제가 가진 디바인 포스를 전부 드리겠습니다.”
“하나 더. 명계의 통제권도 나에게 넘겨.”
“…….”
그 말에 데르키우스가 곤혹스러워했다.
‘그것까지 넘겨야 한다니…….’
통제권은 그에게 있어서 마지막 보루였다.
디바인 포스를 모두 잃는다고 하더라도 통제권이 있다면 명계의 영혼들을 소멸시켜서 다시 쌓을 수 있었으니까.
“넘겨. 싫으면 말…….”
“……넘기겠습니다.”
잠시 고민한 데르키우스지만 결국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환영 감옥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면 전부 의미 없는 것들이었으니.
“좋아. 진즉에 이렇게 나오지 그랬어. 그랬으면 지금까지 고통받을 일은 없었잖아? 안 그래?”
“……그러게 말입니다.”
후회해 봐야 이미 늦은 법이었다.
“정리하면 너는 나에게 디바인 포스 전부와 명계의 통제권을 넘기는 걸로. 그 대신 나는 너를 환영 감옥에서 풀어주는 거고. 맞지?”
“맞습니다.”
“만약 계약을 어길 시에는 소멸하는 걸로 한다. 이러면 됐지?”
“좋습니다…….”
“오케이.”
최성민의 입가에 밝은 미소가 피었다.
“그럼 계약서 작성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