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445)
특성흡수 헌터사냥꾼-446화(446/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2부 외전 3화
2부 외전 3. 재판
죽으면 누구나 가는 곳, 명계.
잿빛 구름으로 가득한 그곳을 한 남자가 신기한 눈초리로 둘러보고 있었다.
“오, 죽으면 이런 데 오는 거였어? 나름 멋있잖아?”
별다른 풍경이 없는 곳이지만 처음 보는 남자에겐 여간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혼이 된 자신의 몸도 그랬다.
“영혼이 됐다는 느낌이 이런 건가? 아무런 감각도 없어. 졸라 신기해.”
남자는 신기하다는 눈으로 자신의 심장을 내려다봤다.
옷은 죽기 전에 입었던 그대로였지만, 자신이 칼로 찔렀던 상처는 말끔히 사라진 상태였다.
“이거 불사신이라도 된 느낌이잖아? 이대로 영혼인 채로 사후세계에서 살아가는 건가?”
영화에서만 보던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는 사실에, 남자는 마냥 희희낙락거렸다.
“X발, 이럴 줄 알았으면 빨리 뒤질걸. 뭐하러 악착같이 살아 가지고.”
킬킬 웃던 그였지만 그것도 잠시.
[최현득 씨?]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금발의 여성이 나타나자 최현득의 미소가 사라졌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명계의 안내자, 프리엘라라고 합니다. 최현득 씨를 데려가기 위해 왔습니다.]“나를?”
의아해하던 최현득의 시선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매끈한 몸매의 프리엘라를 훑어본 그가 음흉하게 웃었다.
“이름이 뭐라고?”
[프리엘라입니다.]“몇 살이야?”
[예?]“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어디서 왔어? 미국? 영국?”
[사적인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뭘 튕기고 그래? 이런 데서 지내면 외롭지 않아? 내가 서양인은 만나본 적 없지만 잘해줄게.”
[하아…….]한숨을 쉬는 모습이 자존심을 긁었는지 최현득의 눈썹이 활처럼 휘었다.
“뭐냐? 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냐? X만 한 동양인이라서?”
[그런 말은 한 적 없습니다만…… 순순히 따를 것 같지 않으니 무력을 동원하겠습니다.]촤아악-
검은 밧줄이 프리엘라의 손에서 나타나더니 최현득을 휘감았다.
“X발, 이거 뭐야? 안 풀어?”
[따라오십시오. 재판소로 가겠습니다.]“재판소?”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프리엘라가 움직이자, 밧줄에 묶인 최현득 또한 풍선처럼 딸려갔다.
“이거 놔! 안 놔? 씨이바! 어디로 가는데? 재판소인가 거기로 가는 거냐? 거긴 또 뭐 하는 덴데!”
최현득이 발작하듯 고함을 질렀지만 프리엘라는 묵묵히 구름을 헤치며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프리엘라의 목소리는 움직임을 멈추고 나서야 들려왔다.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재판소입니다.]최현득의 눈에 거대한 잿빛 건물이 보였다.
디자인과 웅장함이 남달랐지만, 그보다 눈을 사로잡은 건 건물 앞에 줄지어 서 있는 수십 명의 영혼이었다.
“뭐야? 나 말고도 사람이 있었잖아?”
이런 곳에서 같은 동양인을 보니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최현득이 인사나 할 겸 움직였지만.
팽-
허리에 묶인 밧줄 때문에 더 이상 이동할 수 없었다.
“아이 씨, 이거 안 풀어?”
[품위가 없으시군요. 이 앞은 신성한 재판소입니다. 언행에 신경 쓰십시오.]“그러니까 재판소가 뭐냐고.”
[생전의 죄를 묻는 곳입니다.]“죄?”
죄를 묻는 곳이라 하니 최현득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닌 게 아니라 죽기 직전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X발, 무슨 재판을 죽어서까지……. 뭐, 나쁜 짓 하면 감옥에라도 들어가냐? 형량이 어떻게 되는데?”
[자세한 건 들어가 보면 알게 되실 겁니다.]“나 잘못한 거 없어. 내가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데. 사람 잘못 봤다고. 그러니까 이거 풀…….”
[재판은 누구도 열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잘잘못에 관한 판단은 재판장님이 하실 겁니다. 정말로 무고하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최현득으로선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찔리는 구석이 있었으니.
후미에서 줄을 서던 그때.
“어?”
최현득이 앞에 서 있는 젊은 여성을 보고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너 여기 있었구나?”
“아아…….”
“큭큭, 여기서 다 만나네? 반갑다야.”
정말로 반갑다는 듯 최현득이 손을 내밀었지만, 여성은 사색이 된 채로 벌벌 떨었다.
“야, 악수 안 받아? 지금 나 무시하냐?”
“으으…….”
정색한 최현득이 여성의 어깨를 잡으려 했지만.
탁-!
여성의 곁에 붙어 있던 남성 안내자의 제지에 최현득이 밀려났다.
[뭐 하는 겁니까? 떨어지세요.]“아니, 내가 뭘 했다고 그래?”
[김나연 씨가 무서워하지 않습니까. 당장 물러나세요!] [최현득 씨? 뒤로 오세요.]프리엘라도 줄을 당기며 최현득을 김나연으로부터 떨어트렸다.
프리엘라가 김나연과 안내자에게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김나연 씨, 엘브란도 님.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프리엘라? 저 영혼의 이름이 최현득입니까?] [네. 엘브란도 님.]엘브란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둘 사이의 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최현득은 어처구니없다는 태도였다.
“X바, 반가워서 인사 좀 하겠다는데 다들 왜 이래?”
“뭐야? 알고 있었잖아?”
최현득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제 보니 김나연의 앞줄에는 가족들도 있었다.
“이야, 내가 찔러 죽인 일가족이 여기 다 모여 있었네? 안녕들 하쇼?”
“…….”
“표정들이 왜 그래? 반갑지 않아? 난 이 상황이 엄청 재밌는데.”
“저, 저 살인자 놈이……!”
“그래도 다행인 줄 알아. 내가 사이좋게 죽인 덕분에 다들 한날한시에 만날 수 있던 거잖아. 안 그래? 큭큭큭큭.”
좌중이 조용해서 그런지 최현득의 웃음소리만 들렸다.
피해자인 김나연과 가족들은 귀를 막고 싶었지만, 영혼 상태라 그럴 수도 없었다.
애써 최현득을 외면하며 괴로운 기억을 뿌리치려 노력할 뿐.
[다음 영혼, 들어오십시오.]기다림 끝에 차례가 다가왔고 김나연 일행이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자인 엘브란도 또한 들어갔으나 잠시 후 밖으로 나오더니 프리엘라를 불렀다.
[재판장님이 최현득 씨도 들어오라고 하시네. 같이 진행하실 모양이야.] [아, 그래요? 알겠어요.]줄을 잡아끌었고 최현득은 불만 어린 표정이 되었다.
“좀 당기지 마. 알아서 간다고.”
이윽고 재판소에 들어선 최현득은 법정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재판장이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뭐야? 동양인이잖아?’
안내자들이 전부 서양인이라 재판장도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끽해야 20대 초반처럼 보이는데 재판장이라고?’
상석에 있는 재판장이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말한다.
[최현득. 김나연과 애인 사이였으나 헤어지자는 말에 격분하여 그녀와 가족들을 모두 칼로 찔러 죽이고 자살. 흠…… 이건 뭐, 재판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가 들어왔군.]“쓰레기라뇨. 거 말이 심한 거 아닙니까?”
최현득이 발끈했지만, 재판장은 가볍게 무시하며 김나연 일행을 바라봤다.
[반면 김나연과 그 가족들은 주말에도 봉사활동을 다니고 장애아동에게 정기적으로 후원할 정도로 선행을 베풀고 있었군. 이런 착한 가족들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죽이다니…….]재판장이 최현득을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봤다.
[정말 쓰레기가 따로 없구나.]“이보세요. 저도 인권이란 게 있거든요? 자꾸 쓰레기 취급하면 기분 나쁘다고요.”
[쓰레기를 쓰레기라 불렀을 뿐인데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는커녕 기분이 나쁘다?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군.]“이보세…….”
[더 볼 것도 없다. 최현득을 사지 분해 소멸형에 처하고, 김나연 일가는 파라다이스의 거주를 허락한다. 안내자들은 당장 시행하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재판장님.]공손히 머리를 숙인 프리엘라가 밧줄을 끌었다.
최현득이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양팔을 허우적대며 악을 썼다.
“뭔데? 왜 이러는데? 사지 분해 소멸형? 그게 무슨 벌이야? 어? 그게 뭐냐고오오오!”
재판장 뒤로 끌려간 최현득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리면서 멀어졌다.
[엘브란도. 자네도 저들을 데리고 가게.] [재판장님. 그전에 건의 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뭔가?] [웬만하면 재판 전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마주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조금 전에도 피해자가 두려움에 떠는 채로 줄을 기다려야 했거든요.] [음…… 그런 일이 있었군. 확실히 트라우마가 남아 있을 테니 사전에 격리할 필요가 있겠어.]재판장이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이 문제는 내가 아버지와 상의해서 이른 시일 내에 해결하도록 하지. 건의 고맙네. 엘브란도.] [별말씀을. 그럼 가보겠습니다.]엘브란도가 꾸벅 고개를 숙인 뒤 김나연과 가족들에게 손짓했다.
[가시죠, 여러분. 파라다이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저기…… 죄송하지만, 파라다이스가 뭔가요?”
[아, 제가 설명해 드리지 않았나 보군요.]엘브란도가 빙긋 웃으며 설명했다.
[파라다이스는 이승과 비슷하게 꾸며놓은 명계의 휴식처입니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영생을 보낼 수 있는 장소로, 일반 영혼들은 못 들어가고 오직 등급이 높은 영혼만 들어갈 수 있죠. 보통은 이승에서 선행을 베푼 영혼들에게 그 자격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아닌 저기 계신 재판장님이요.]“아…….”
김나연 일가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재판장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아…… 그렇구나.”
[등급은 좀 전에 높여드렸으니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가, 감사합니다.”
재판장에게 인사를 한 가족들이 엘브란도를 따라가다가 문득 궁금했는지 물었다.
“안내자님. 그럼 저희를 죽인 살인범은 어떻게 된 건가요? 무슨 소멸이라고 하시던데…….”
[사지 분해 소멸형이라고, 팔다리를 1mm 단위로 조금씩 깎아내면서 소멸시키는 처형 방식입니다. 소멸형 중에서도 최고형으로, 극한의 고통을 느끼면서 소멸하게 되죠.]“아…….”
김나연 가족들이 그거 잘됐다는 듯 안도의 목소리를 내며 재판소와 멀어졌다.
이윽고 침묵과 함께 재판장만 남게 되었을 때.
[휴우.]고개를 숙인 재판장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때였다.
[힘드니?]난데없이 들린 여성의 목소리에 재판장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어, 어머니?]재판장의 어머니인 차예린이었다.
[언제 오셨어요?] [좀 전에 왔단다. 너무 소리소문없이 와서 놀랐지?] [하하, 아니에요.]재판장인 민수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조금 전에 근엄했던 모습과 달리 미소가 선했다.
[쉬엄쉬엄하거라. 너무 힘들게 일하는 거 아니니?] [아니에요. 하나도 안 힘들어요.] [한숨까지 쉬어놓고 아닌 척할 거니?] [그건 답답해서 그런 거예요. 반성할 줄 모르는 악인들을 보면 한숨이 나오더라고요.] [어휴, 네가 고생이 많다.] [고생은요, 무슨.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민수호가 밝게 웃자 차예린도 따라 웃었다.
[그나저나 말도 없이 어쩐 일이세요? 무슨 일 있어요?] [일은 무슨. 그냥 심심해서 아들 얼굴 보려고 찾아왔지.] [아버지는요?] [네 아버지?]차예린이 민도준을 떠올리더니 뚱한 표정을 지었다.
[서연이랑 데이트 나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