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83)
특성흡수 헌터사냥꾼-83화(83/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83화
83. 이천식
“현준아, 이것 좀 네가 마무리해라.”
“네, 선배님.”
김현준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는 이천식은 신입 수사관답게 묵묵히 선배의 남은 일거리를 도왔다.
그러던 중.
지잉-
핸드폰으로 문자 하나가 왔다.
‘뭐지?’
문자의 내용은 간단했다.
[0]단순히 0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을 뿐이었으니.
하지만 문자의 의미를 아는 이천식에겐 그리 간단한 내용이 아니었다.
‘작전을 벌써 실행하라고……?’
아직 마음의 준비도 못 했는데 이렇게 빨리?
믿을 수 없다는 듯 문자를 보던 그가 답장을 보냈다.
[1]숫자 1.
아주 단순한 답문이었지만 거기에는 잘못 보낸 것이 아니냐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답장이 날아왔다.
지이잉-
확인한 내용은 아까와 같은 0.
잘못 보내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정말…… 지금 바로 작전을 시행하라는 거야?’
이천식의 동공이 촛불처럼 흔들렸다.
“야, 마무리하라니까 웬 문자질이야? 빨리 안 해?”
핸드폰에서 시선을 뗀 이천식이 야단치는 선배를 힐끗 쳐다봤다.
순간 살기를 느낀 선배가 움찔했지만 이천식이 언제 그랬냐는 듯 어리숙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그, 근무 중에 놀면 안 되지, 인마.”
신입에게 일을 떠넘긴 자신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선배는 대화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돌렸다.
“저어, 선배님.”
“어? 왜?”
“여기 처리하라는 문서의 이 부분을 보면 피해자 증거품을 확인하라고 하셨는데 어디 있는지 몰라서요…….”
“너 증거 보관실에 가봤잖아.”
“워낙 넓으니까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리숙하게 뒷머리를 매만지자 선배가 평소처럼 짜증 어린 목소리를 냈다.
“입사한 지 3개월도 지난 새끼가 품목별 위치도 아직 못 외웠어?”
“죄송합니다, 선배님.”
“하아…… 그래서 나보고 같이 가달라고?”
“죄송합니다. 이번 한 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씨, 귀찮은데……. 그럼 내가 도와주는 대신 오늘 저녁은 네가 쏴라?”
“물론입니다, 선배님.”
“흐흐, 정말이지? 두말하기 없기다?”
“네.”
“아주 비싼 거 얻어먹어야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선배가 앞장섰다.
선배의 뒤를 따르며 이천식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후우…… 오늘이 실행일일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협회에서 첩자 생활을 하며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날이 오늘일 줄이야.
‘그래도 이번 일만 잘하면 길드에서 가족들은 건들지 않기로 했잖아?’
가족들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얼굴까지 성형해서 잠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거야. 실수 없이 잘해야 돼.’
마음을 다잡은 순간 지하에 있는 증거 보관실에 도착했다.
언제 봐도 넓은 그곳을 걷는 도중 이천식이 한쪽 구석의 철문을 가리켰다.
“선배님, 저 문은 뭐예요?”
“아, 저거? 중요한 물건이 있는 곳인데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너 같은 말단은 구경도 못 하…….”
순간 선배가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목에 닿는 차가운 감촉을 느꼈기에.
“안내해.”
잭나이프를 갖다 댄 이천식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한다.
“야, 장난치지 말고 이거 치…….”
이천식이 손에 힘을 주자 따가운 통증과 함께 목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
행동으로 보아 장난이 아님을 눈치챈 선배가 그제야 긴장하기 시작했다.
“여, 여기 CCTV로 도배되어 있는 거 알지? 이 장면 고스란히 다 찍혔을 거야. 지금이라도 풀어 주면 내가 정상 참작이라도 받을 수 있게 잘 말해 줄 테니까…….”
이천식이 말없이 벌어진 상처로 나이프를 밀어 넣었다.
“그, 그만! 알았어! 시키는 대로 할게. 근데 뭐하라고?”
“문 열어.”
그가 가리킨 곳은 중요한 물건이 있다던 철문이었다.
선배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아이디 카드를 대고 문을 열어야 했다.
철컹-
선배를 안으로 밀어 넣은 이천식은 물건을 볼 수 있었다.
‘이건가? 내가 빼내야 할 물건이?’
직사각형의 유리 상자에 세워져 있는 검.
흑해 길드에서 누누이 말한 전설의 보검이었다.
‘확실히 예사롭지 않은 아이템이네.’
은색으로 빛나는 예기를 보니 왜 전설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탐욕에 젖은 이천식의 눈빛을 본 선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현준아. 보검이 탐나서 이러는 건 알겠는데…… 솔직히 헛짓거리하고 있는 거야. 이거 특수 강화 유리라서 헌터의 힘이 아니고서는 깰 수 없는…….”
“괜찮아. 나 헌터야.”
그리 말한 이천식의 손에.
츠으으읏-
큼지막한 해머가 나타났다.
헌터임을 증명한 셈이었다.
“허, 헌터였다고? 네가?”
적잖이 놀랐는지 선배가 말을 더듬었다.
“마, 말도 안 돼. 조회해봤지만 랭킹에 김현준이라는 헌터는 없었는데……?”
“당연히 없겠지. 가명이니까.”
다시 한번 놀라는 선배를 향해 이천식이 해머를 휘둘렀다.
빠각-
털썩-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그의 눈빛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이것만 가져가면…….’
이천식이 해머를 머리 위로 들었다.
빠악- 빠악-!
빠차앙!
몇 번의 내려침 끝에 유리 상자를 깰 수 있었다.
드디어 전설의 보검이 손아귀에 들어왔다.
에에에에엥-!
상자가 깨지면 발동되는지 시끄러운 경보음이 건물 전체에 울린다.
‘5분 내로 공무원 헌터들이 도착한다고 했나?’
흑해 길드에서 일러준 정보에 의하면 1분 내로 보안 요원들이 출동하고 5분 내로 인근의 공무원 헌터들이 소집된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천식이 보검을 들고 밖으로 나오자 보안 요원들이 권총을 겨누며 입구를 막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싹 다 죽이고 은신을 써서 도망칠 수 있겠지만…….’
이천식은 그러지 않았다.
뒤이어 나타날 공무원 헌터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에.
그래서인지 이천식은 꽤나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삶을 포기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였다.
‘이걸로 된 거야.’
그가 흑해 길드에서 받은 아이템을 꺼냈다.
[마력탄]-분류 : 소모품
-등급 : B
-효과 : 5초 후 범위 대미지
-대미지 : 레벨의 200%
-사용 제한 : 레벨 1,000 이하
-설명 : 응축된 마력을 폭발시켜 범위 대미지를 줄 수 있는 아이템. 사용 후 5초 안에 던지지 않으면 큰일 난다.
수류탄보다 강력한 위력을 지닌 마력탄.
이거라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우리 가족은 살 수 있어.’
이천식이 ‘사용’이라고 말한 뒤 눈을 감았다.
“저, 저거…….”
붉어지는 마력탄을 본 보안 요원들이 수상함을 느끼고 도망치기도 전에.
콰아아아앙!
엄청난 폭발이 증거 보관실을 덮쳤다.
* * *
연락을 받고 달려온 김상엽은 엉망이 된 증거 보관실을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하…… 이런 X발.”
잠깐 외근을 나간 사이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잿가루가 되어버린 증거품들을 보는 그의 표정에서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오셨어요? 팀장님.”
“대체 어떤 새끼야?”
적잖이 화가 났는지 김상엽이 부하 직원에게 다짜고짜 범인부터 물었다.
“그 김현준이라고…… 최근에 들어온 신입의 짓이랍니다.”
“자세히 말해봐.”
김상엽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의 경위를 들을 수 있었다.
헌터로 잠입했던 김현준이 선배를 협박해 전설의 보검이 있는 철문을 열었고, 검을 훔치려다 궁지에 몰리자 마력탄으로 자폭했다는 부분까지.
특히 마력탄 때문에 근처에 있던 보안 요원 전원이 폭발에 휘말려 사망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개 X같은 새끼를 봤나!”
“지, 진정하세요, 팀장님. 보는 눈도 많은데…….”
씩씩거리던 그가 갑자기 생각났는지 눈을 번뜩였다.
“보검은?”
“갖고 있습니다. 폭발에 가까이 있었는데도 아주 멀쩡하더라고요.”
“휴…… 불행 중 다행이구만. 그 빌어먹을 자식이 인벤토리에 넣어 놓고 자폭하기라도 했으면…….”
수천억을 가볍게 넘어서는 아이템이 사라지기라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상상하기도 싫은지 김상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증거품들은 어때?”
“보다시피 폭발점의 반경 20미터는 전부 소실됐고 대략 30% 정도만 남은 상태입니다.”
“하…….”
오늘따라 한숨을 많이 내쉰다고 생각하는 그때.
“김상엽 팀장님!”
다른 부서의 직원이 달려와 말했다.
“협회장님의 호출입니다.”
김상엽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올 것이 왔군.’
* * *
13층에 위치한 협회장실.
협회장과 대면한 김상엽은 대화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니, 대화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일방적인 꾸중이었으니.
콰앙-
책상을 친 협회장이 노기 어린 눈으로 쏘아봤다.
“대체 헌터가 범죄수사팀엔 어떻게 들어왔단 말이야?”
“죄송합니다.”
“죄송하단 말만 하지 말고 대답을 해 봐!”
“좀 더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들어온 것 같습니다. 랭킹을 조회했을 땐 헌터가 아니었거든요.”
“보검의 상태는? 괜찮나?”
“네. 흠집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맡아놓은 물건을 빼앗기면 헌터님을 뵐 면목이 없을 테니.”
안도의 숨을 내쉰 것도 잠시.
협회장이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안을 강화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야. 자네의 부서에서 벌어진 일이니 자네가 책임지고 해결해. 알았나?”
“알겠습니다.”
“대책이 마련되기 전까지 무기는 다른 곳에 보관해.”
“어디에 놓을까요?”
“또다시 밖에 내놓긴 그렇고 기왕이면 헌터가 맡는 게 좋겠지. 인벤토리야말로 안전하게 숨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니.”
“누구 점찍어 둔 헌터라도 있으십니까?”
“있지.”
협회장이 씨익 웃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헌터가.”
* * *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던 중년인이 여유롭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정찰병에게 듣기로는 증거 보관실이 초토화됐다고 합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보검은? 사라지지 않았겠지?”
“예. 은신 시간이 부족해 가까이서 보진 못했지만 확실히 있었답니다.”
“다행이군. 첩자 그놈이 인벤토리에 넣고 자폭하면 어쩌나 걱정했었거든.”
“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있었으니 그럴 일은 없었을 겁니다.”
“후후, 정찰병한테 잘 감시하라고 전해라. 분명 협회에서 보검을 맡길 헌터를 불러들일 테니.”
애당초 흑해 길드는 이천식에게 전설의 보검을 훔쳐오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어차피 혼자서 협회의 보안은 물론 출동한 공무원 헌터들을 뚫고 가져오기란 불가능할 테니까.
이천식에게 주어진 일은 그저 보검을 훔치기 위한 소동을 일으키는 것뿐.
그리하면 보관할 장소가 없어진 협회 측에서 보검을 다른 장소로 옮길 테니까.
“협회에선 분명 믿을 만한 헌터에게 보검을 맡길 거다. 잠시 맡겨두는 거라면 인벤토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하겠지. 우리는 그 헌터가 누구인지 알아내기만 하면 된다.”
헌터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직업이다.
그런 헌터에게 보검을 맡긴다는 건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으나 잠시뿐이라면 오히려 안전할 수도 있다.
“정찰병한테 한시도 눈을 떼지 말라고 해라. 협회에 들어가는 헌터가 보검을 맡을 헌터일 가능성이 높으니.”
“알겠습니다.”
보검을 보관할 헌터가 누구인지만 알아내면 게임은 끝이다.
협박을 하던 고문을 하던 해서 보검을 토해내게 만들면 그만이다.
“그런데 길드장님. 자폭한 길드원의 가족들은 어떻게 할까요?”
“가족들?”
중년인이 뭘 그리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무심하게 말했다.
“죽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