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86)
특성흡수 헌터사냥꾼-86화(86/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86화
86. 이세윤의 제안
말도 없이 끊긴 전화에 이세윤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핸드폰을 내려놨다.
‘단단히 화난 모양이네.’
당연한 일이었다.
예상했던 일이었고.
누군가 원하던 스킬북을 모두 사재기해서 성장을 방해한다면 자기라도 화날 테니까.
그럼에도 이세윤이 이런 치졸한 방법을 택한 데엔 다름이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민도준을 청룡 길드로 영입하고 싶었으니까.
‘뭐, 지금 당장 화는 나겠지만 우리 길드와 함께하다 보면 생각이 달라지겠지.’
민도준의 화를 샀음에도 이세윤은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2,200레벨에 도달한 그로선 이제 막 1,500레벨이 된 민도준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화를 내도 오히려 귀여울 따름.
‘그럴 사람처럼 보이진 않지만 만약에 공격한다 해도 걱정할 건 없어.’
무력으로 제압할 자신이 충분했기에 이세윤은 걱정을 놓았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직원이 들어왔다.
“이세윤 헌터님! 말씀하신 대로 오셨습니다!”
“그래요?”
손님이 벌써 왔다는 소식에 이세윤이 미소를 머금었다.
‘어지간히 급했나 보네.’
여유롭게 일어선 그가 길드 밖으로 나갔다.
다소 화난 얼굴의 민도준이 보인다.
“어서 오세요, 도준 씨. 기다리고 있었…….”
가까이 다가가던 이세윤이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뭐야, 이 위압감은……?’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더 이상 다가가면 위험하다고.
이세윤이 멈춘 채로 민도준을 쳐다봤다.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모습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가 그 사실을 인지하고는 깜짝 놀랐다.
‘내가 고작 1,500레벨한테 쫄아서 뒷걸음질 쳤다고?’
이세윤이 마지막으로 민도준을 봤던 건 1,000레벨이었을 때.
괭이눈 호랑이 던전을 막 공략하고 나왔을 때였다.
‘그때는 이런 위압감이 없었는데…….’
고작 500레벨이 올랐다고 이렇게 달라지다니.
‘아니, 드러내지 않았기에 몰랐던 건가?’
지금은 노골적으로 민도준이 화를 내고 있었다.
“원하는 대로 왔습니다. 할 얘기란 게 뭡니까?”
서늘한 그 목소리에 이세윤이 마른 침을 삼키며 말했다.
“일단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니 따라오시지요.”
등을 돌려 앞장서자 민도준이 따라왔다.
사무실로 안내하는 동안 이세윤이 힐끔힐끔 뒤를 쳐다봤다.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아니라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등 뒤를 내주기가 이렇게 불편할 줄이야…….’
앞장서고 있는 그로선 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
등을 보이기 불안한 적은 헌터가 되고 나서 처음이다.
‘적으로 돌리면 위험한 사람이야.’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이세윤이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민도준을 청룡 길드로 데려오기로.
“이쪽에 앉으시죠.”
민도준이 소파에 앉자 이세윤이 직원을 통해 차를 타 오도록 시켰다.
되도록 차를 마시며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하고 싶었다.
민도준의 심기를 건드리면 이렇게 불편할 줄은 그도 몰랐다.
“…….”
“…….”
침묵이 이어졌다.
먼저 운을 뗀 사람은 민도준이었다.
“무슨 말을 할지는 알고 있지만 들어는 보겠습니다.”
냉랭한 그 목소리에 이세윤은 일단 사과부터 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민도준 헌터님.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희와 만나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궁색한 변명과 함께 이세윤이 본론을 꺼냈다.
“빙빙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희 길드는 헌터님을 원합니다. 길드에 들어오시면 원하는 대로 매그넘 버스트 스킬북을 드리겠습니다. 갖고 있는 건 전부 다요.”
“몇 개나 갖고 있죠?”
‘됐어!’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본 말을 관심 있다는 뜻으로 오해한 이세윤이 조금은 밝아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스무 개입니다. 하나는 헌터님이 배우시고 나머지는 처분하시든 갖고 계시든 마음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참고로 스킬북은 개당 5천만 원에 매입했었습니다.”
아무리 비주류라지만 어디까지나 A급 스킬북.
평범한 A급 스킬북이 3억임을 감안하면 싼 편이었지만 어쨌거나 10억 원을 공짜로 주겠다는 말과 같았다.
단, 길드에 들어와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아, 오해하실 것 같아 말씀드리지만 스킬북은 계약금과는 별도로 드리는 선물입니다. 저희 청룡 길드에 가입 의사를 밝히시면 그 즉시 100억의 계약금을 드리겠습니다.”
100억.
어느 길드에서도 이 정도의 금액은 제시하지 못하리라.
그만큼 청룡 길드에서 민도준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던전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9 대 1로 업계 최고의 비율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또한 매년 생기는 우선권은 헌터님이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솔로잉을 도실 수 있도록 말이죠. 물론 그로 인한 수익은 전부 헌터님의 것입니다.”
높은 계약금과 정산 비율, 우선권의 약속 등.
파격적인 조건을 여럿 제시했으니 거절하지 못하리라.
‘무엇보다 스킬북을 얻으려면 우리 길드에 들어와야 해.’
원하는 걸 손에 쥐고 있는데 들어오지 않고 배기겠는가?
이세윤은 민도준의 다음 행동이 예상이 됐다.
고민을 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한숨을 쉰 뒤에 알았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수락할 것이다.
예상대로였는지.
아무 말 않던 민도준이 돌연 한숨을 쉬었다.
‘역시!’
이제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겠지.
하지만 이다음은 예상과 달랐다.
“다섯 개 이상.”
“네?”
“1년에 우선권 다섯 개 이상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음…… 그건…….”
이세윤은 말을 아꼈다.
우선권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리고 정산 비율은 10 대 0. 물론 제가 10입니다. 가능합니까?”
“예?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요구에 이세윤이 한숨을 쉬었다.
“정산 비율이 0이면 길드는 뭐 먹고 살라고요?”
길드는 헌터들의 수익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정산 비율이 가장 중요했다.
그걸 9 대 1까지 양보했건만 10 대 0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비율을 주는 곳이 있었다.
“지금 얘기한 두 가지는 제가 현재 센터에서 누리고 있는 혜택들입니다.”
“…….”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아닌 이상 이야기할 것도 없겠네요.”
“아니, 일산 지부에서 우선권을 다섯 개나 확보했다고요?”
“예. 저를 영입하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거죠. 누구처럼 치졸하게 스킬북을 가지고 협박할 게 아니라.”
“…….”
이건 예상치 못했다.
‘안 쓰는 센터들이 협의 하에 우선권을 양도한 건가? 그렇다면 민도준 헌터가 길드에 오지 않으려는 것도 이해가 가.’
솔로잉을 좋아하는 민도준으로선 길드보다 센터에 붙어 있는 편이 더 이득일 것이다.
길드처럼 정산 수수료도 떼지 않으니.
“이제 아셨죠? 제가 길드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 저로선 길드의 장점을 찾을 수가 없거든요.”
100억의 계약금을 받아봤자 장기적으로 떼 주는 수익을 생각하면 오히려 민도준의 손해다.
금전적으로는 전혀 이득을 볼 수가 없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던 이세윤이 다른 쪽으로 길드를 어필했다.
“길드의 장점이라면 무엇보다 안전이죠. 매번 새로운 사람과 공략하는 것보단 익숙한 길드원들과 안전하고 빠르게 공략할 수 있으니…….”
“솔로잉을 도는 저한테 파티원이 필요하리라 생각하세요? 안전? 안전을 생각했으면 헌터를 하지도 않았죠.”
“그래도 솔로잉으로는 이제 한계가 있을 겁니다. 조금 더 레벨이 높아지면 파티가 필요한 일이…….”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되는 일이고요.”
열심히 어필했지만 민도준을 설득하기엔 약하다는 걸 이세윤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어쩔 수 없이 치졸한 방법을 써야 했다.
“저희 길드에 들어오시면 그토록 찾던 스킬북을 얻으실 수 있죠.”
“그거야 다른 경로로 구하면 됩니다.”
“그건 힘들 겁니다. 저희 길드가 매그넘 버스트라는 스킬의 모든 유통 경로를 막을 거거든요.”
“…….”
“뭐 운 좋게 구하신다 하더라도 당장은 힘드실 겁니다. 최소한 방해는 할 수 있는 거죠.”
“후, 정말…….”
민도준이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까지 영입하려는 이유가 뭡니까?”
“그야 도준 씨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저한테 미운털 박히면서까지요?”
“도준 씨만 데려올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냥 포기하고 스킬북을 넘기실 마음은 없는 건가요?”
“네.”
자신에게 남은 카드는 이것뿐이라 생각했는지 이세윤의 눈빛에서 굳건한 의지가 느껴졌다.
민도준으로선 화딱지가 나는 상황.
‘이 또라이가 진짜…….’
원래부터 죽이고 싶었던 상대지만 이런 식으로 나오니 아예 사지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냥 이 자리에서 죽일까?’
민도준이 힐끗 옆에 떠오른 정보창을 쳐다봤다.
[이세윤]-설명 : 1997년생 헌터. 현재 레벨은 2,200. 청룡 길드 소속이며 직업은 한손검 전사다.
-전투방식 : 급소를 위주로 한 빠른 찌르기를 사용. 상대가 강하다 싶으면 거리를 잰 뒤 발놀림을 이용해 기습으로 찌르기. 다양한 공격 패턴 활용.
-약점 : 발을 묶으면 공격 패턴이 줄어듦. 탱커한테 의외로 취약함.
몇 개월 전만 해도 물음표였던 약점 간파 정보가 훤히 드러났다.
‘그렇다는 건 녀석을 상대로 싸울 만하다는 거겠지.’
약점 간파의 도움이 아니더라도 민도준은 이길 자신이 있었다.
레벨이 더 높은 김베드로도 이겼는데 이세윤을 못 이길 리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싸움을 걸면 이길 가능성은 충분했다.
‘죽이고 나서 투명화로 사라지면 괜찮지 않을까?’
민도준이 속으로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당연히 걸리고도 남겠지.’
자신을 본 사람이 없으면 모를까, 지금 죽이면 무조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지.’
최악의 선택지는 버린다.
다른 방법으로 스킬북을 얻어야 한다.
‘길드에 들어갈 수는 없어. 그렇다고 당장에 스킬북을 구할 수도 없고.’
해외를 통해 구하거나 직접 사냥을 해서 얻는 방법이 있지만 둘 다 열흘 이상은 걸릴 터.
‘그렇다고 말로 설득해선 넘어올 것 같지도 않으니…….’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거래를 하는 수밖에.’
설득이 힘드니 스킬북을 사들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스킬북의 시세가 5천만 원이니 5억 정도를 부르면 팔겠다고 할까?’
민도준이 곧장 생각을 고쳤다.
‘아니야. 돈이라면 넘치는 놈이 그깟 5억에 넘어갈 리가 없지.’
그렇다고 가격을 더 높인다 한들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리라.
미쳤다고 손해를 보면서 사고 싶은 마음도 없고.
‘돈으로 회유할 순 없어. 놈이 혹할 만한 거래가 필요해.’
뭐가 있을까?
민도준이 이세윤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저놈…… 고대의 석판에 관심이 있었지?’
고대의 석판은 B급 던전인 붉은 부리 시조새를 잡고서 얻을 수 있는 수집품이다.
민도준은 이세윤이 고대의 석판을 조사하겠다고 던전에 들어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장에 스킬북을 구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어차피 한 달 뒤면 풀릴 정보다.
정보를 내준다고 민도준이 보는 손해는 없다.
‘게다가 정보를 핑계로 놈과 단둘이 던전에 들어갈 수 있어.’
사람을 죽이기에 던전만큼 좋은 장소도 없을 터.
결정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이세윤 씨.”
“네.”
“저랑 거래하실래요?”
거래라는 말에 이세윤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저을 뿐.
“길드에 들어오실 게 아니라면 얼마를 주든 팔 생각은 없…….”
“고대의 석판.”
“……?”
“그 아이템의 쓰임새를 알고 싶지 않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