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Absorpt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9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97화(97/447)
특성흡수 헌터사냥꾼 97화
97. 빠른 발 그리마
“…….”
김지훈이 다시 고민에 잠긴 건 민도준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쩌지? 따라갈까, 말까?’
막상 화장실에 보내고 나니 또다시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2시간 전에 있었던 일이 반복될 것 같은 좋지 않은 느낌이.
벌떡-
“어? 어디 가세요?”
“무슨 일 있나 확인하러 가 봐야겠습니다.”
“에이, 설마 또 그런 일이…….”
“그랬다가 두 명이 손도 못 쓰고 죽었잖아요?”
“…….”
“여기서 불안하게 있는 것보단 낫겠죠.”
김지훈이 걸어가자 파티원인 전진식도 하는 수 없이 움직였다.
볼일 보러 간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길 바라며.
* * *
쏴아아-
동료 마법사가 죽고 팀 내의 유일한 마법사가 된 조태웅이 참았던 물줄기를 쏟아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아, 시원하다.”
바지의 지퍼를 올리던 그가 별안간 예리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화르르르-
혹시 몰라 대비책으로 띄워놓은 화염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환해진 주변에 보이는 것도 없었다.
“뭐 없네.”
혹시나 2시간 전에 봤던 괴수가 나타나진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기우였다.
“하긴 큰 거 누는 것도 아니고 잠깐 사이에 뭔 일이 있겠어?”
비록 파티원들이 사망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지만 그 일이 자신에게 벌어지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올 테면 와 보라지. 곧바로 화염구를 먹여줄 테니까.”
그래도 겁이 나긴 했는지라 머리 위에 화염구를 띄워두고 볼일을 봤지만 괜한 걱정이었나 보다.
피식 웃은 조태웅이 스킬을 취소했다.
화염구를 켠 채로 돌아간다면 센 척했던 자신을 동료들이 비웃을 것이다.
“2시간이나 이동했는데 그 벌레 자식이 뜬금없이 나타날 리가 없잖아? 몰래 따라왔다면 모를까…….”
순간 조태웅의 안색이 굳어졌다.
섬뜩한 기분을 느낀 탓이다.
난데없이 바람이 불어온 것도 이쯤이었다.
후우우우웅-
‘어어……?’
갑자기 시야가 어지러워지며 정신이 핑 돌았다.
털썩-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진 조태웅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려 해 봤지만.
‘모, 몸이 움직이질 않아.’
어찌된 일인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몸이 자신의 명령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의식이 있고 눈앞이 보인다는 것뿐.
하지만 조태웅은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눈앞에 그리마를 닮은 그 괴수가 나타났으니까.
“아…… 아아…….”
차라리 기절이라도 했으면 모를까 이런 상황에서 괴수가 나타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떻게든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몸도 이런 데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화염구! 화염 폭발!’
몇 번이고 속으로 스킬을 되뇌었지만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만 떠올랐다.
[마비에 걸렸습니다.] [스킬의 사용이 차단됩니다.]그리마가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왔다.
멀리서 봐도 혐오스럽게 생겼는데 가까이서 보니 공포 그 자체였다.
‘저, 저리 가! 사, 살려 줘…… 제발……!’
그 간절한 바람에도 그리마는 식사 전에 입맛을 다시듯 더듬이를 흔들어댔다.
그 모습에 순간 팔다리가 뜯겨진 채로 죽은 동료 마법사가 떠올랐다.
‘크흑…… 흑…….’
마비된 상황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잠시 후에 벌어질 일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에.
서걱!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에 그리마가 보이지 않았다.
다리부터 잘라먹는 것인가?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뭔가 잘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눈알만 대록대록 굴리다가 답답한 마음에 움직이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들어 올렸다.
‘어……?’
조태웅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광경은 잘려 있는 그리마의 몸뚱이였다.
그다음으로 들어온 건 검을 내려친 자세의 마검사의 모습이었고.
‘마, 마검사 씨?’
두 가지만 봐도 상황은 어렵지 않게 추측이 가능했다.
‘나, 날 구해준 건가……?’
누구든 도와줬으면 했는데 마검사 양반이 나타났다.
이름은 모르지만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반가워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갈림길에서 늦게 좀 나왔다고 불평했던 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조태웅이 속으로 감사하다고 수차례 되뇌었지만 민도준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미끼로서의 역할은 끝났으니 더 이상의 관심은 없었다.
그의 시선은 오직 그리마에 고정되어 있을 뿐.
‘몸뚱이를 잘랐으니 더는 도망치기 힘들겠지.’
현재 그리마는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 고통스레 몸부림치고 있었다.
놈이 먹잇감에 정신이 팔린 사이, 투명화로 다가가서 기습한다는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원래는 머리를 노렸었지만…….’
놈이 반사적으로 피해버린 바람에 단칼에 죽이지 못했다.
어쨌거나 몸의 절반을 잃은 녀석으로선 전처럼 도망치기도 힘들 터.
‘그래도 벌레라 그런지 생명력 하난 질기군.’
아직도 죽지 않고 움직이는 그리마의 모습에 민도준이 혀를 차며 여유 있게 다가갔다.
치명상을 입은 그리마가 취할 행동은 단 하나.
‘죽기 살기로 덤벼들겠지.’
평소에는 겁이 많지만 코너에 몰린다 싶으면 앞뒤 재지 않고 덤비는 놈이 그리마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리마가 얼마 남지 않은 다리를 움직이며 민도준에게 달려들었다.
평소처럼 다리에 발라져 있는 마비 독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뒤 도망치려는 속셈.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던 민도준이 파이어 블래스트를 소환해 몸을 보호했다.
갑작스러운 불길에 놀란 그리마가 다리를 회수하며 몸을 비트는 순간.
서걱!
경로를 예측하고 날아든 민도준의 검이 그리마를 정확히 세로로 양단해버렸다.
[빠른 발 그리마를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 +240,000] (기여도 100%) [S급 마정석이 나왔습니다.] [S급 마정석이 나왔습니다.] [상급 랜덤 박스가 나왔습니다.] [파티 룰에 따라 자동으로 룰렛을 돌립니다.] [획득자는 민도준입니다.]빠르기만 빠르지 그리마의 체력은 별 볼 일이 없었기에 쉽게 잡을 수 있었다.
‘S급 마정석을 2개나 주다니……. 괜히 돈벌레로 불리는 게 아니었군.’
S급 마정석은 현재 시세로 15억에 달하는 최고가의 마정석.
별로 힘들이지 않고 30억을 벌어들인 셈이었다.
‘게다가 상급 랜덤 박스가 또 나왔어.’
이미 3개나 가지고 있었기에 이것까지 합하면 4개가 된다.
‘경험치도 짭짤하고 나쁘지 않아.’
나름 만족스러웠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미, 민도준 씨?”
고개를 돌리니 김지훈과 전진식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놀라는 걸 보니 전투 장면을 본 모양.
“마검사 씨가…… 잡았어?”
“어, 어떻게 그런 움직임을…….”
김지훈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 한 번뿐이었지만 민도준이 보여준 베기는 완벽했다.
한손검 전사인 자신조차 그렇게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베기는 처음 봤을 정도.
‘게다가 놈이 피할 방향을 예측하고 정확히 반으로 갈랐어.’
순간적이지만 민도준은 1,600레벨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움직임으로 그리마를 베었다.
2,000레벨이 넘는 자신조차 뛰어넘는 듯한 스피드와 힘을 보여준 것.
그동안 거대 지네에 고군분투하던 모습과는 차원이 달랐다.
“으으…….”
“조태웅 씨! 괜찮으세요?”
뒤늦게 전진식이 달려가 조태웅의 상태를 살폈다.
처음에는 꼼짝도 못하던 그의 상태가 이제는 부축을 받고 일어설 정도로 많이 호전됐다.
‘마법사라 그런지 금방 회복하는군.’
마력이 높을수록 그리마의 마비 독에 저항할 확률이 높아지기에 조태웅의 회복은 예상하던 바였다.
“민도준 씨, 어떻게 된 건지 안 말해 줄 거예요?”
김지훈의 추궁에 민도준이 시치미를 떼었다.
“뭐가 말입니까?”
“방금 그 움직임. 그동안 보인 것과는 다르던데요. 혹시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건…….”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저도 모르게 반응한 거죠.”
“그렇다 해도 저 괴수를 반 토막 낼 정도의 대미지를 보인다는 건 역시 힘을 숨긴 게…….”
“저 녀석이 보기완 달리 몸이 물렁하더군요. 생각보다 약해서 저도 베어보고 놀랐습니다.”
뻔뻔한 대답에 김지훈이 눈을 흘겼다.
그리마의 사체라도 있었으면 정말로 물렁물렁한지 확인했겠지만 연기로 사라져서 그럴 수도 없었다.
“지금 확인 못한다고 일부러 그러는…….”
“그런데 그게 왜 중요한 거죠?”
“…….”
“설사 제가 정말로 힘을 숨겼다 하더라도 김지훈 씨에게 증명해야 할 이유는 없을 텐데요?”
맞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김지훈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힘을 증명하면 자신에게 공돈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잠시 후, 혼자서 걸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진 조태웅이 눈물을 닦으며 다가왔다.
그는 자신이 떠받들던 김지훈을 지나쳐 민도준의 앞에 섰다.
그리고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마검사님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리고 일전에 버릇없는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반성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울먹이는 소리가 진심으로 느껴졌기에 민도준이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리마를 잡기 위해 조태웅을 미끼로 쓰긴 했지만 그는 감사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구해준 건 사실이니까.
‘마음만 먹으면 조태웅을 죽일 수도 있었어.’
사실 그리마가 미끼를 문 이상 기습하는 타이밍은 언제라도 상관이 없었다.
팔다리가 먹힌 이후에 기습해도 무방했었다는 소리다.
‘식사 중일 때야말로 그리마를 단칼에 죽일 수 있는 기회지.’
그럼에도 일찍이 나선 건 조태웅이 먹히는 꼴이 보기 싫어서였다.
아무리 자신을 흉봤다 한들 사람 목숨을 가지고 저울질할 정도의 냉혈한은 아니었다.
물론 악인을 상대로는 가차 없었지만.
‘이걸로 일단락됐나?’
겨우 떨쳐버렸나 싶었던 김지훈의 의심을 사긴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뭐, 계속 컨셉을 유지하다 보면 알아서 떨어지겠지.’
조태웅이 진정할 시간을 가진 뒤에 다시 사냥이 시작됐다.
“조태웅 씨는 뒤에서 따라만 오세요. 저희 셋이서 잡겠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같이 사냥하겠습니다.”
“그런 일도 겪으셨는데 괜찮겠어요? 힘들면 열외해도 좋습니다.”
김지훈이 재차 말했지만 조태웅은 한사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저 때문에 도준 씨가 페널티를 받으면 안 되잖아요.”
이제는 모를 수가 없는 은인의 이름을 콕 집어 말한다.
다른 파티원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출발하시죠.”
사냥은 무난하게 진행됐다.
민도준은 여전히 어설픈 칼질을 보였고 김지훈이 계속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렇게 한창 사냥하는 와중에 기쁜 소식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