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 드라우그 던전(1)
서준은 끝내 프리패스 이용권 가격인 20억을 채우고 나서야 레이드를 그만두었다.
“후우, 혼자하니까 어째 더 빡센 것 같네.”
물론 서준에게 있어 7~8성 수준의 던전은 그다지 어려운 수준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한다면 되려 어렵지 않은 수준이었기에, 더 힘들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레이드 속도를 내려면 삼단전(三丹田)의 힘을 사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삼단전의 힘을 사용하면, 그 힘을 버티지 못한 몬스터가 거의 증발하다시피 해버려 값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서준은 힘 조절을 하면서 레이드를 하느라 그 피로도가 더한 느낌을 받았다.
그 탓에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기까지 한 상황.
“뭐, 그래도 하루에 20억이 어디냐.”
하지만 서준은 오늘 번 돈을 생각하며 들뜬 마음으로 드림팀 건물로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온 드림팀 건물에는 어째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도망가고 나서 곧장 집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돈 버는게 얼마나 좋은데, 왜들 그렇게 싫어하는지 원···”
서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계좌의 잔고를 확인했다.
벌써 정산이 끝난 것인지 잔고에는 20억에 달하는 금액이 입금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20억 3천만원 가량이 입금되어 있었다.
그리고 수강생 시절.
정산까지 하루 혹은 이틀 정도 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빠른 처리였다.
아무래도 서준이 A급 프로 헌터임과 동시에, 길드로서 받는 여러가지 혜택들 중 하나인 것 같았다.
“길드 혜택이 좋긴 좋구나. 빨리 애들 실적 쌓게 해서 길드 랭킹을 올려야 겠네.”
서준은 굳은 다짐을 하며 곧장 초월자 학원에 접속했다.
그리고는 바로 프리패스 이용권을 재구매했다.
꾹.
그렇게 원터치와 함께 잔고에서 사라지는 20억.
고작 하루만에 20억을 벌었지만.
고작 하루만에 20억이 증발한다!
“······이런 제기랄.”
당최 언제쯤 이 기분이 익숙해질런지.
서준은 그저 짙은 한숨만 내뱉을 뿐이었다.
“에휴, 됐다. 한 두번 이러는 것도 아니고··· 이왕 구매한 거 석가모니 강의나 듣자.”
서준은 프리패스 재구매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달래기 위해 석가모니 강의를 수강했다.
꾹.
.
.
역시나 서두부터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내용이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왔다.
언제 들어도 변하지 않는 석가모니의 강의.
[어두운 과거를 잊고 싶은 사람. 현재가 너무 버거운 사람. 미래에 대한 공포로 절뚝대는 사람.] [오늘은 그런 이들을 위하여 한 가지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석가모니는 계속 말을 이었다.
[소승이 살던 지구라는 차원에는 다람쥐라는 동물이 있다. 작고 귀엽게 생긴 쥐로서 도토리라는 열매를 주식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런 다람쥐에게는 특이한 습성이 하나 있는데, 바로 도토리 2개를 주우면 하나는 자기 입에 넣고, 다른 하나는 겨우내 먹겠다고 땅 속에 묻어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다람쥐는 결국 그 묻어둔 도토리의 위치를 까먹어 찾아먹지 못한다. 그런 수고를 하고도 말이다.] [그야말로 빡대가리가 따로 없다.]“풉!”
서준은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 점잖던 석가모니가 빡대가리 라는 말을 사용한다니.
석가모니도 자기가 내뱉은 말이 우스운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찾지 못한 도토리는 오랜 시간이 지나 땅 속에서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되고, 또 숲이 되어 수많은 도토리를 다시 만들어낸다.] [그렇게 풍성하게 자란 도토리들은 다람쥐가 먹을 걱정이 없게 만들어 준다.] [당시엔 빡대가리라 생각했던 다람쥐의 행동이 결국은 다람쥐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대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그대의 삶에 고달픈 문제가 있다면, 너무도 힘든 일이 있다면. 해결하려들지 말고 다 잊어버린 채 묻어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다람쥐가 겨우내 먹기 위해 묻어 둔 그 도토리처럼, 묻어버린 그 문제가 나중에 어떻게 풀릴 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가 무언가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그것이 포기나 체념이 아닌 또 다른 가능성을 향한 선택일 뿐이라는 것을. 소승은 꼭 알아주었으면 한다.].
.
.
어딘가 정신이 나갈 것 같으면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묘한 느낌.
“후우···”
서준은 가슴 속, 응어리 쌓인 감정을 토해내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띠링, 하는 알림음과 함께 석가모니 강의 진행률이 화면에 떠올랐다.
서준은 그 알림창을 확인하다 (+0.1%)라는 수치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석가모니 강의는 언제 쯤 수료할 수 있을런지···”
서준은 생각난 김에 현재까지 진행된 각 강의별 진행률 상황을 확인했다.
{수료한 강의 – 역발산[A], 환골탈태[A], 통찰력[S]}
마지막으로 진행률을 확인했을 때가 프로 헌터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을 시점이었다.
한 마디로 그 시간 동안 올라간 강의 진행률이 고작 0.1%였다.
그리고 석가모니 강의를 제외하고 가장 낮은 상승 수치가 무려 2.5%.
물론 2.5% 앞에 ‘무려’라는 말이 붙을 수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0.1%와 비교하면 ‘무려’라는 말은 충분했다.
심지어 석가모니 강의는 서준이 초월자 학원과 함께 가장 먼저 접했던 강의였다.
그걸 감안하면 진행률 자체는 가장 낮지 않을지는 몰라도, 성장률 자체는 처참하다고 할 수 있었다.
“너무 느린데···”
그리고 서준이 갑자기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다름 아닌 이번 일.
그러니까 바로 프리패스 이용권의 기간 때문이었다.
프리패스 이용권에는 90일이라는 기간이 있었다.
그리고 석가모니의 강의는 프리패스 강의에서만 들을 수 있었다.
즉, 석가모니 강의를 수료하지 못한다면.
정확히는 석가모니 강의를 수료할 때까지 프리패스 이용권을 재구매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석가모니 강의는 초월자가 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수강해야만 하는 강의였으니까.
게다가 프리패스 이용권 또한 재구매할수록 인과가 치솟는다.
그 말은 즉.
프리패스는 90일 마다 돈을 잡아먹는 최악의 돈벌레다!
“차라리 개별 강의로··· 아니다. 그럼 그 인과가 어떻게 될지 상상도 못하겠네.”
그도 그럴 것이 석가모니 강의로 얻을 수 있는 부동심(不動心)은 무려 SSS등급이었다.
그리고 초월자 학원에서 SSS등급을 습득할 수 있는 강의는 거의 석가모니 강의가 유일했다.
거의라는 말을 쓴 이유는 아직 서준이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서준이 찾아본 바로는 석가모니가 유일했다.
S등급인 강의조차 수 백억을 하는 실정인데 그보다 몇 단계 상위인 SSS등급의 인과는 기본 수 천억은 할 터.
어쩌면··· 억단위를 초월할 수도 있었다.
90일 마다 돈을 잡아먹어도 프리패스가 이득은 이득인 셈이었다.
“아무튼 빨리 수료하는 게 이득이긴 한데···”
문제는 그 방법이라고는 꾸준히 강의를 듣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에휴···”
어째, 석가모니 강의를 통해 방금 내뱉은 응어리가 다시 석가모니 강의로 쌓이는 기분이었다.
서준은 다시 한 번 강의 진행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스마트폰을 품 속에 집어넣었다.
“그건 그렇고··· 생각보다 류진철이 잠잠하네.”
솔직히 서준은 던전 레이드 도중 류진철과 마주칠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서준은 보란 듯이 흑룡의 안방을 헤집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수작질은 물론, 당장이라도 뛰쳐나와 난리를 피울 줄 알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류진철은 아무런 행동도 나서지 않았다.
그 동안 흑룡이 보였던 태도와는 전혀 상반된 모습.
“설마··· 다른 수작질을 꾸미고 있나?”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말이었다.
서준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흐음, 아무래도 조금 더 대비를 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지금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가장 좋은 건 제천대성의 천월유성봉(天月流星棒)을 배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현재 수강 중인 란나찰(欄拿扎)을 수료해야만 배울 수 있었기에 불가능했다.
결국 할 수 있는 거라곤 현재 수강 중인 강의 진행률을 올리는 것 뿐인데···
“아니면 정말 다른 강의를 들어야 하나.”
서준은 품 속에 집어넣었던 스마트폰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초월자 학원에 접속.
미리 눈 여겨 보았던 강의들을 확인했다.
『[만독불침! 한서불침! 금강불괴! 궁극의 신체 단련! (강사: 아틀라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빛의 속도로 달려보자! (강사: 티알피)]』
다름 아닌 초월자 커뮤니티, ‘초시생들의 수다수다’에서 추천 받은 강의들이었다.
중급에서 고급 강의로 넘어가는 그 중간에 배워두면 좋다는 강의 중 압도적으로 추천이 많았던 강의였다.
특히, 저 아틀라스 강의는 수료 시 무려 3개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등급은 모두 A등급이긴 했다.
하지만 케이론의 감각, 환골탈태(換骨脫胎)가 A등급임을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만독불침, 한서불침, 금강불괴.
만일 서준의 생각하는 그 효과가 맞다면, ‘독 면역, 열과 냉기 면역 그리고 물리 면역’이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티알피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토르의 시종으로서, 모든 신화 속 인물 중 속도가 가장 빠른 인물이었다.
티알피라는 이름 자체가 ‘빛’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빛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
정말 빛의 속도로 달릴 수는 없겠지만, 신속(神速)이라는 이름 값은 충분히 할 터였다.
거기에 장삼봉의 보법과 어우러진다면···
“상상도 안되네.”
서준은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그래서인지 각 강의당 측정된 인과는 무려 400억원.
도합 800억원에 달하는 어마무시한 인과였다.
“아니, 제천대성의 란나찰이 270억이었잖아. 그새 또 인과가 오른건가··· 젠장.”
서준은 저도 모르게 하단전(下丹田) 깊숙한 곳에서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서준은 곧 고개를 털어내었다.
“에휴, 지금은 돈이 있어도 못 배우니까.”
애초에 돈이 충분히 있다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현재 서준이 듣고 강의는 도합 6개.
석가모니 강의를 제하더라도 5개의 일일 과제를 수행하면서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빠듯했다.
“장삼봉과 헤라클레스 강의를 수료한다면 모를까.”
각각 83%, 87% 진행률인 두 강의.
조금만 빡세게 하면 곧 두 강의를 수료할 수 있으니, 그때가면 다른 강의를 들을 여유가 생겼다.
“어쨌거나 돈을 모아두긴 해야하는데···”
90일 마다 돈을 갈취하는 프리패스 이용권.
앞으로 모아야 할 800억에 대한 아찔함.
“······암성님은 대체 언제 오시는 거야?”
자연스럽게 130억을 떼먹은 존재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아···”
서준은 한숨만 새어나올 뿐이었다.
바로 그때.
“안에 계십니까.”
돌연 누군가의 목소리가 건물 밖에서 들려왔다.
목소리를 보아하니 팀원들은 아닌 것 같았다.
“누구지?”
서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재 시각은 저녁 늦은 시각이었다.
이 시간에 드림팀을 방문할 사람은 흔치 않았다.
애초에 드림팀을 방문하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다는 것이 정확했다.
“누구시죠?”
“아, 안에 계셨군요. 김서준 헌터님. 저 협회장 이태범입니다.”
“협회장님?”
서준은 곧장 문을 열었다.
그러자 프로 헌터 협회장, 이태범이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문 밖에 서있었다.
“이 시간에 협회장님이 여긴 어쩔 일로···”
“그···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제게 말씀이십니까?”
이태범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태범이 직접, 그것도 이 시간에 찾아올 정도면 상당히 중요한 일일 터.
서준은 일단 이태범을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 적당한 자리에 앉은 뒤, 이태범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시길래 직접 찾아오신 거죠?”
이태범은 조금 뜸을 들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한국에 드라우그 던전이 생성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드라우그 던전이요?”
“네.”
고개를 끄덕이는 이태범의 모습에 서준은 놀란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서준 또한 드라우그 던전이 갖는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갑자기 왜 제게···”
그렇기에 서준은 이태범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라우그 던전에 관한 것은 서준이 아니라, 영성(靈星)에게 말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태범 또한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 이태범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 드라우그 던전을 김서준 헌터님이 처리해주실 수 있을까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네? 제가요?”
서준은 이어진 이태범의 말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말했다시피 드라우그 던전은 오직 영성(靈星)만이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걸 왜 제게···”
잠깐.
하지만 서준은 마치 입을 틀어막듯이 입을 꾹, 다물었다.
다름 아닌 지난 레이드 배틀 때.
드라우그로 인해 대폭 상승한 석가모니 강의 진행률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김서준 헌터님이라면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해서···”
보아하니 이태범 또한 그때의 일을 생각해 서준을 찾아온 것 같았다.
“······”
서준은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가뜩이나 현재 석가모니 강의 진행률로 골치 아픈 시점이었다.
심지어 레이드 배틀 때의 드라우그는 마도학으로 구현된 몬스터였다.
실제 드라우그는 그보다 더 강력한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그때는 1마리에 불과했지만 드라우그 던전에 서식하는 드라우그는 못해도 수 십마리다.
다른 이들이 바라보기엔 그 위험도가 수 십, 수 백배가 증폭되는 격이지만···
서준에겐 강의 진행률이 무려 수 십, 수 백배가 증폭되는 격이었다!
물론 드라우그의 정신 공격은 S급 헌터들조차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서준에게는 해당 사항이 전혀 없었다.
“물론 그냥 해결해달라는 뜻은 아닙니다. 약소하나마 금전적 지원도 드릴 예정입니다.”
게다가 돈도 따로 준단다!
서준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왔다.
“어, 얼마를···”
이태범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300억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 순간.
서준의 표정이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이태범이 느끼기에는 마치 고작 그따위 돈으로 자신이 움직이려 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역시 모자랐나···’
그도 그럴 것이 이태범이 생각해도 서준의 몸값으로 300억은 적은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A급 헌터 기준으로 300억은 엄청난 금액이었다.
하지만 서준은 평범한 A급 헌터가 아니었다.
잠재력만 최소 S급 헌터.
아니, 어쩌면 한국 최초로 영웅급 헌터를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를 헌터였다.
그런 헌터를 움직이는데 300억은 상당히 싼 축에 속했다.
그럼에도 300억을 부른 것은 현재 협회에서 동원할 수 있는 금액의 최대치였기 때문이었다.
해서 처음에 200억을 부른 뒤 협상하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이태범은 그러지 않았다.
괜히 서준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미친···!!’
그건 어디까지나 이태범의 생각이었다.
서준은 그런 이태범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서준은 돈을 주지 않아도 드라우그 던전을 처리할 생각이 있었다.
드라우그 던전은 좀처럼 생성되지 않는 던전이었다.
지난 수 십년간 한국에 드라우그 던전이 생성된 횟수는 고작 8번.
이번 것까지 더하면 9번에 지나지 않았다.
그 얼마 안되는 기회를 걷어차버린다?
석가모니 강의 진행률을 대폭 올릴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되려 돈을 주고서라도 드라우그 던전을 예약할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300억을 얹어준다는 이태범의 제안.
‘차, 참아라··· 우, 웃으면 안돼···’
서준은 자꾸만 비죽거리는 입가를 꾹꾹 눌러참아야만 했다.
그 탓에 서준의 표정은 더욱 딱딱하게 굳어만 갔다.
그리고 그 때문일까.
‘하필 프로 헌터 시험 준비로 예산을 모두 써버린 시기에···’
그런 서준의 모습에 이태범은 상당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드라우그는 실체가 없는 유령 몬스터.
만일 드라우그 던전이 브레이크를 일으켜 드라우그가 던전 밖으로 나온다면 그 피해를 감당할 수가 없다.
던전에 있을 때, 반드시 처리해야만 했다.
이태범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번 드라우그 던전을 처리해주시면 S등급 헌터증을 발급해드릴 수 있습니다. 실적이 살짝 부족하시지만 드라우그 던전이라면 그 정도는···”
서준은 입가를 가렸던 손을 끌어올려 코 끝까지 가려버렸다.
벌렁거리는 콧구멍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드림팀은 S등급 헌터가 있는 길드가 되니 권한 상승의 요건 또한 갖춰집니다. 그러니 길드 등급 또한 상승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 드림팀이 벌어들이는 수익에 각종 세금과 수수료가 대폭 인하···”
“아···”
서준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러버렸다.
결정타였다.
저건 결정타였다!
솔직히 그냥 할 생각이 있었다.
아니, 되려 제발 맡겨달라고 애걸해야만 했다.
그런데 300억을 얹어준다?
거기에 S급 헌터 승격까지 고려해준다?
길드 혜택도 상승시켜준다?
‘크흡···!’
서준은 비집어 새어나오는 웃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안되겠습니까?”
이태범은 거절당할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말을 마쳤다.
그리고 이어질 서준의 대답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서준은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크흡···!’
아니, 터져나오는 웃음 때문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이태범의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이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점점 이태범의 표정은 굳어져만 갔다.
꼴깍, 마른 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서준이 물어왔다.
“여, 영성님은 왜···”
그 마저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이태범은 곧장 대답했다.
“영성님과 연락이 원할하지 않은 터라···”
서준은 이태범의 말을 다르게 이해해버렸다.
영성과 연락이 닿으면 이 기회는 날아간다!
그러자 이번엔 서준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준은 다급해하지 않았다.
서준은 정말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처럼.
마치 그렇게 간곡히 부탁을 하니 어쩔 수 없이 수락하는 것처럼.
고개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끄덕였다.
“제가··· 제가 해보겠습니다.”
“저, 정말이십니까!”
서준에게서 답변이 들려오자마자 이태범은 모든 걱정과 근심이 말끔히 씻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굳어 있던 이태범의 표정이 일순간 풀리며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레이드는 언제 쯤 가능하신지···”
“당장 내일···!”
서준은 잠시 숨을 골랐다.
“······이 아니라, 크흠. 그, 글쎄요. 저도 주, 준비가 필요한지라···”
그럼에도 덜덜 떨리는 말.
“하지만 뭐, 워낙 사안이 급하니 내일 당장···! 아니, 최대한 빨리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행여 영성님한테 빼앗기면 안되니까요.
서준은 뒷말을 꾹꾹 눌러 참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김서준 헌터님!”
이태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프로 헌터들이 본다면 놀라 까무러칠만한 일이었다.
이태범은 한국의 모든 프로 헌터를 대표하는 프로 헌터 협회장이었다.
한국의 어느 누가 이태범에게 이런 대우를 받아보겠는가.
그에게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대격변의 영웅들만이 유일했다.
그런데 이제 막 A급 헌터가 된 이에게 이태범이 이런 태도를 보인다?
다른 이들이 본다면 놀라 까무러칠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서준은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크흡···!’
그저 비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