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17
17화 – 아카데미 경합(3)
이번 아카데미 경합은 총 2가지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던전 형식의 미로 그리고 수강생들 간의 토너먼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 첫 번째 경합은 다름 아닌 던전 미로 돌파였다.
주변으로 보이는 높디 높은 벽.
미로 전체에 울려퍼지는 공지에 서준은 몸 상태를 한 번 점검했다.
첫 번째 경합인 던전 미로 돌파는 그 규칙이 단순했다.
각 수강생들을 미로에 랜덤하게 배치. 어떻게든 미로를 탈출하면 끝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강생들과 협동을 하든, 혼자 돌파하든 자유.
단, 다른 수강생을 공격하는 행동은 일절 금지되었다.
대인전에 관한 능력은 다음 종목인 토너먼트에서 제대로 보겠다는 의도였다.
어쨌거나 이 미로는 던전의 형식 답게 중간중간 각종 몬스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물론 단순히 경합의 장이었기에 진짜 몬스터는 아니었다.
각성자에 대한 연구와 함께 발전한 마공학의 증강 현실.
주로 3~4성급의 몬스터들을 구현한 것으로 아직 수강생들에 불과한 이들에게는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완벽히 같을 수는 없었고 실제 몬스터와 비교하면 실제로는 한단계씩 뒤떨어진다는 것이 평가였다.
한 마디로 첫 번째 경합은 미로 형식의 던전을 레이드 해봐라! 이 말이나 다름 없었다.
그 과정에서 수강생들의 상황 판단력, 전투 센스, 임기응변 등을 평가.
그로써 수강생이 소속한 헌터 아카데미가 무얼, 어떻게 가르치는지도 같이 평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평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수강생들이 얼마나 빨리 미로를 돌파하느냐.
가장 먼저 돌파할수록 그 점수를 높게 받는 경합이었다.
그 순간, 경합 시작을 알리는 공지가 들려왔다.
서준은 철봉을 단단히 말아쥐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높고 두터운 벽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공간.
“완전 미로네.”
서준은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말에 혼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보다 이걸 어떻게 돌파해야하지.”
미로를 돌파하는 방법에는 딱히 정해진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이번 경합에서 또한 딱히 정해진 규정 같은 것도 없었다.
한 마디로 미로의 벽을 부수며 나아가든.
벽을 타고 올라가 미로의 구조를 한 눈에 보면서 나아가든.
어떻게든 가장 빠르게 탈출만 하면 되었다.
서준은 잠시 걸음을 멈춰 미로의 벽 꼭대기를 올려다봤다.
어찌나 높은지 목을 완전히 뒤로 젖혀야만 끝이 보였다.
“천장으로 덮여있잖아.”
이러면 벽을 타고 올라가는 방법은 힘들었다.
아니지, 꼭대기에서 천장을 뚫고 올라가면 상관없지 않을까.
서준은 벽으로 가까이 걸어가 어느 정도 힘을 주어 철봉으로 벽을 내리쳐보았다.
퉁.
가벼운 소리와 함께 손아귀로 밀려오는 저릿한 통증.
아무래도 단순히 콘크리트로 만든 벽이 아닌 것 같았다.
“이러면 천장을 부수는 건 그렇다쳐도 벽을 올라가는 것도 문제네.”
서준은 손을 한 번 주무르며 벽을 타고 올라가는 방법.
그리고 벽을 부수고 나아가는 방법을 동시에 머릿속에서 지웠다.
물론 항우의 강의 진행률이 30%를 넘은 지금.
역발산의 힘을 이용하면 한 두번 정도는 어찌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한두 번 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프리패스에 테세우스 강의가 있는지 확인해볼 걸.”
테세우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영웅으로서 크레타 섬의 미노타우르스를 죽인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그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곳이 바로 어느 누구도 탈출하지 못하는 미궁, 라비린토스.
테세우스는 그런 라비린토스를 탈출한 경력이 있었다.
하늘을 나는 편법을 사용하여 탈출한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를 제외하면 유일한 생존자라 할 수 있었다.
그 방법에 관하여 여러가지 말들이 있지만 본인에게 직접 듣는다면 나름의 팁 같은 것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미로 형식의 던전인지 누가 알았나.”
하지만 서준은 금방 고개를 털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합의 내용은 철저하게 비공개였으니까.
물론 경합이 2가지 방식으로 진행되며 그것이 던전 레이드와 토너먼트 방식의 결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드 하는 던전이 미로 형식의 던전인지, 토너먼트 결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는 경합 시작까지 알지 못했다.
서준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되면 정석적으로 미로를 탈출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준이 말하는 정석적인 방법이란 두 가지.
그 중 하나는 운이었다.
말 그대로 발길 가는 대로 걸음을 옮기면서 그곳이 탈출 방향이기를 기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운이 좋아야만 가능한 방법이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대부분 평생동안 미로에서 해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따라서 사실 정석이라 말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한 쪽 벽에 손을 붙이고 그대로 계속 걷는 방법이었다.
일명 좌수법 혹은 우수법으로 알려진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러면 중복 없이 미로의 전 구간을 훑을 수 있게 되므로, 언젠가는 미로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방법도 문제가 없지는 않았으니, 말 그대로 ‘언젠가는’ 이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운에 맡기는 것보다는 낫지.’
서준은 고민 끝에 좌수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단순히 운에 맡기는 것보다 확실한 편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서준은 왼쪽 벽에 바짝 붙었다. 손을 짚으라고 하지만 그건 왼쪽 벽으로만 가게 하기 위함이었으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가볼까.’
서준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서준은 갈림길을 마주할 수 있었다.
좌, 우 그리고 정면으로 이루어진 세 갈래길.
서준은 좌수법에 따라 고민도 하지 않고 왼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음?’
무슨 이상한 감각이 그런 서준의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뭔지도 모르겠고 왜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왼쪽 벽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지금 오른쪽으로 꺾어야만 될 것 같았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
‘뭐지···?’
서준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마… 이것도 직감의 일환인건가?’
그나마 현재 서준이 설명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뿐이었다.
지금 케이론에게 배우고 있는 여섯 번째 감각.
말도 안되는 소리임을 알았지만 케이론의 강의 진행률도 30%를 넘은 지금.
한층 더 날카롭고 예민해진 감각에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어떻게 할까···”
서준은 고민을 했다.
감에 맡긴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운에 맡긴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서준은 그 고민을 길게 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서준은 거침없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서준은 감각이 이끄는 대로 미로를 거닐었다.
발걸음에 주저함이 없었고 갈림길이 몇 개든 거침없이 방향을 잡았다.
그럼에도 서준은 특별한 문제를 마주하지 않았다.
그나마 문제라고 한다면 별 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정도?
간간히 들리는 공지들로 보아하니 다른 수강생들은 몬스터들을 만나 전투를 하는 것 같았다.
‘왜 나는 아무런 일도 없는거지.’
하지만 서준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몬스터를 만나보지 못했다.
설마 직감이 그런 것까지도 피하는 건가?
에이, 설마.
‘정말 그런거면 100% 찍어서 환골탈태를 배우면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거야.’
설마 미래 예지라도 하는건가? 3초 뒤의 적이 어떻게 공격하는 다 아는?
서준은 헛웃음을 흘렸다. 망상도 정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준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보이는 장면에 서준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형. 조심하세요.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몰라요.”
몬스터는 만나지 못했지만 같은 수강생은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조금 전, 대기실에서 만났던 이민기.
학생 같은 분위기에 어릴 것이라 짐작은 했었지만 실제로 나이 또한 19살로 고등학생이었다.
물론 이제 곧 한 해가 넘어가니 성인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서준이 보기엔 아직 어린 학생일 뿐이었다.
그리고 서준이 민기와 같이 다니는 이유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우연히 마주친 민기가 서준을 따라왔기 때문이었다.
‘오른쪽 길로 가니까 이 녀석이 있을 줄이야.’
정확히는 처음 오른쪽 길로 방향을 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친 것이 민기였다.
‘당신은?’
그래서 서준이 민기를 발견했을 때 살짝 놀랐다.
‘핫!’
물론 민기는 그 놀람의 정도가 더했지만.
어쨌든, 경합을 하는 모든 수강생들은 경쟁자였기에 서준과 민기는 서로를 경계했다.
하지만 첫 번째 경합인 미로에서 다른 수강생들을 공격하는 것은 엄연한 규칙 위반.
서준은 그 사실을 깨닫고는 곧 경계심을 풀었다.
‘그럼.’
그리고는 서준은 특별한 행동 없이 민기를 지나쳤다.
‘저기···’
그런데 민기가 그런 서준을 붙잡았다.
서준이 민기를 바라보자 민기가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같이 다니지 않으시겠어요?’
서준은 살짝 당황스러웠다.
다른 수강생을 공격하는 것은 엄격한 규칙 위반이고, 합동하는 것에는 제한이 없다고는 하지만 서준과 민기는 생판 모르는 사이.
‘생판 모르는 저보다는 같은 아카데미 수강생들이랑 하시는 게 좋지 않으세요?’
서준이 묻자 민기가 살짝 머뭇거리며 답했다.
‘아, 그게… 저는 혼자 출전했거든요.’
서준은 그때서야 자신 말고도 혼자 출전한 아카데미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굳이 저랑?’
‘아까보니까 그쪽도 혼자 출전하신 것 같아서요. 아무래도 약한 사람들끼리 힘을 합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약해? 내가?
민기의 말에 서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서준이 약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4부 리그 취급받는 경합이었지만 각 아카데미에서 유망주라 불리는 이들이 출전하는 곳.
아무리 서준이 초월자 학원의 강의를 듣고 있다지만 아직은 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서준이 이곳에 와서 아직 전투 능력을 선보인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아···’
하지만 서준은 민기의 말을 곧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려간 시선으로 보이는 서준 본인의 모습 때문이었다.
겉만 놓고보면 서준은 진짜 별 볼일 없었다.
듣도 보도 못한 드림 아카데미 출신이지.
아카데미에 들어온지 1달도 채 되지 않았지.
무엇보다 무기랍시고 공사판 철봉 하나 떡하니 들고 있지 않은가!
좋게 볼래야 좋게 볼 수가 없었다.
서준은 대기실에서 민기가 접근한 이유도 어쩌면 이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준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등을 돌렸다.
‘저는 별로.’
‘그러지 말고 같이 다녀요.’
그럼에도 민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사실 민기가 멋쩍어 하며 피할 줄 알았던 서준으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운 반응.
‘싫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미로라도 탈출하려면 힘을 모아야 해요.’
그렇게 한동안 실랑이가 이어졌고.
“그런데 형. 아까부터 걸음에 확신이 차 있으신데 뭘 알고 가시는 거예요?”
그 실랑이가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서준은 슬쩍 민기를 한 번 쳐다봤다.
사실 서준이 민기를 떨쳐놓으려면 진즉에 떨쳐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내버려 둔 이유는 민기가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걸 듣고 있자니 심심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몬스터도 마주치지 않는 터라 서준은 할 일이 없었고, 민기의 사교성은 그 공백을 매꾸기에 충분했다.
그 때문에 민기의 나이는 물론이고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느니, 10살이나 어린 여동생과 같이 살고 있다느니.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민기의 사정을 알게 되었지만 그럭저럭 들을 만했다.
‘어쩌면 그래서 일수도 있고.’
서준은 실소를 흘리며 민기에게 말했다.
“아니. 그냥 느낌대로 가는건데.”
“어쩐지··· 미로는 느낌대로 가면 큰일 나요. 제가 미로 탈출하는 법을 잘 아니까 이제부터 제가 앞장 설게요.”
이어 민기가 한 발짝 나서며 서준 앞으로 서보였다.
서준은 그 탈출하는 법이 무엇인가 궁금해 민기의 행동을 잠시 지켜봤다.
그러자 왼쪽 벽으로 찰싹 붙는 민기.
“이렇게 왼쪽 벽만 훑어가면 복잡한 미로도 탈출할 수 있어요.”
서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너무 오래 걸려. 난 그냥 느낌대로 갈래.”
“예? 그러면 무조건 길 잃어요.”
“그럼 따로 가던가.”
“하, 하지만···”
서준은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민기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멀어지는 서준의 모습.
“형! 같이가요!”
그리고 민기가 서준을 따라붙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여긴가?”
“무슨 걸음이 이렇게 빠른··· 네?”
순간 서준이 걸음을 멈추더니 뜬금없이 옆의 미로 벽을 힘껏 밀었다.
“갑자기 뭐하는···?”
그 순간.
빠라빰빰빠!
미로 전체에 울려퍼지는 팡파레 소리.
이어 커다란 전광판 하나가 하늘로 떠오르더니 이름이 적히기 시작했다.
“…?”
순간 민기의 표정에 얼이라는 것이 빠져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있더니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주변을 몇 번이나 두리번 두리번.
곧 상황을 인지하더니.
“에에에에에에에엑?!?!?!?”
놀라 까무러치기 시작했다.